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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레우유 :

맥코이는 커크의 곁에 앉아 있었다. 해가 진 하늘은 무척이나 어두웠고, 안개가 낀 듯 흐렸다. 논문을 훑어보고 있던 맥코이는 희미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디 있어...? 

커크가 잠꼬대를 하듯 중얼댔다. 맥코이는 PADD를 내려놓고 가만히 커크의 손을 잡았다. 커크는 몸을 들썩였지만 그를 뿌리치지는 않았다. 단지 슬그머니 일어나며 잡힌 손을 빼낼 뿐이었다. 

누구세요? 

맥코이는 고통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나야. 

물론 들릴 리가 없었다. 커크는 급하게 한 사람을 찾았다. 

스팍. 스팍. 어디 있어? 
잠깐 나갔어.... 젠장. 가만히 있어봐. 

맥코이는 그의 손바닥에 어제처럼 문자를 쓰려고 했지만, 커크가 완강하게 밀어냈다. 그는 스팍의 차가운 체온에 익숙해져 있었고, 한동안 그 외의 사람들과 접촉한 적이 없었다. 커크는 자신의 팔을 움켜쥐고 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가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맥코이는 커크를 끌어당겨 안았다. 커크는 그를 거부하며 버둥거렸다. 

싫어요. 하지 마세요. 
짐. 나라니까. 무서워하지 마. 
제발. 저를 데려가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데려가려는 게 아니야.... 진정해. 

맥코이가 다독여 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커크의 반항이 심해질수록 맥코이의 동요도 커져갔다. 그는 커크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입술 위에 얹어보기도 하고, 그의 손등에 글자를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커크는 떨며 빌기만 했다. 

놓아주세요.... 잘못했어요.... 

맥코이는 도저히 어찌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끓는 목소리로 자신임을 알려 보아도, 그를 아무리 끌어안고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커크는 포식자에게 붙들린 초식동물처럼 몸부림을 치며 그로부터 빠져나가려 노력했다. 

제발, 나야말로 제발. 짐. 널 해치지 않아. 응? 

그에게 반 강제로 붙들려있던 커크는 끝까지 한 사람의 이름만 불렀다. 그가 의지하고 그가 아는 이름을. 

스팍, 어디 있어? 스팍- 

맥코이의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절망이 짙은 표정으로 그가 커크를 놓았다. 뒤로 물러난 커크는 몸을 옹송그린 채 제자리에서 떨었다. 맥코이는 그를 바라보며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그와 대화할 것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줄 것을. 몇 십번째인지 모를 회한을 곱씹어도 여전히 지독한 쓴맛이 느껴졌다. 커크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맥코이는 가까스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차마 그의 몸에는 닿지도 못했다. 커크가 다시 도망치거나 거부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으로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맥코이는 고개를 숙여 커크의 발등에 입을 맞추려 시도했다. 커크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맥코이는 다시, 잘못 만지면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혹여나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의 발을 소중히 감싸쥐었다. 이번에는 커크도 그를 떨쳐내지 못했다. 맥코이의 입맞춤이 발등과 발목을 거쳐 무릎에 도달했을 때 즈음, 커크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욱신거리는 가슴을 다잡고 커크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제야 그도 가만히 끌려왔다. 맥코이는 천천히 대화를 시도했고, 결국은 자신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그가 누군지 알게 된 커크는 손을 뻗어 찬찬히 맥코이의 얼굴을 더듬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울듯한 기분으로 그의 손길을 느꼈다. 눈두덩이와 미간, 콧대, 입술을 차례로 매만지던 손끝이 거뭇한 턱 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레너드. 커크가 재차 불렀다. 

맥코이는 커크의 손바닥에 키스하는 것으로 답했다. 커크는 묵묵히 있었다. 할 말이 있는데, 차마 꺼내기가 힘든 듯 그의 입술이 씰룩였다. 맥코이는 연거푸 손바닥에, 손목에, 팔에 입을 맞추며 차츰 그에게 다가갔다. 커크가 미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면도...해줘야 하는데. 

자신과 함께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일까. 맥코이는 지난 날들을 떠올리다 그만 가슴이 저릿해졌다. 

괜찮아.... 괜찮아. 지미. 괜찮아. 
이제 해줄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쩌지. 
괜찮다니까. 정말이야. 

맥코이는 그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꾸준히 대답했고, 커크는 대답을 들을 수 없으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그것은 변하지 않은 그들의 대화 방식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 해줄게요. 
아냐. 더 이상 네가 뭔가를 해줄 필요는.... 

말이 길어지자 맥코이는 커크의 손을 뒤집었다. 그리고 거기에 찬찬히 자신의 말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해줄...필요가...없다...? 

커크가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맥코이는 커크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말을 들으며, 위안했다. 스팍이 없어도 그들은 충분히 대화할 수 있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제한되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내가...원하는 걸...해주겠다...고요? 당신도 내가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요? 

당신'도'?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맥코이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나답게 살기를 원해요? 
그래. 

커크는 스팍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나다운 게 뭔데요? 



-



나다운 건 뭘가...



Posted by 카레우유 :

스팍. 


낯익은 목소리에 스팍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커크가 깨어나 있었다. 스팍은 목을 가다듬다가, 이내 그것이 무의미한 일임을 깨달았다. 


짐. 

대신 스팍은 본딩을 통해 자신의 말을 전했다. 커크가 미약하게 안심하는 것이 느껴졌다. 커크는 스팍의 손을 쥔 채 그것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그것만이 타인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었다. 

어디 있어? 
당신 옆에 있습니다. 침대 옆, 의자에. 
더 가까이 와.... 

커크의 요청에 스팍은 몸을 옮겨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커크는 한 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엉금엉금 움직이더니 그의 품에 안겼다. 그 행동에 스팍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커크가 그렇게 몸을 한껏 붙이고서야 안정을 느끼는 것을 보고는 그저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스팍. 

커크가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스팍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이미 빛을 잃어 혼탁해진 눈동자로. 그것을 본 스팍의 마음에 안타까움이 번졌다. 

예.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이런 몸으로 제임스 커크의 흉내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커크는 그 사실을 잘 알았고, 자신이 다시 버려질까봐 겁을 내고 있었다. 그 두려움이 잔잔하게 전해져왔다. 스팍은 그를 마주 안고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굳이 누군가를 흉내낼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의 의사를 존중하겠습니다. 

커크는 스팍의 옷깃을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볼을 비볐다. 나름대로의 애정 표현이었다. 스팍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나는, 네가 원하는 걸 하고 싶어. 

제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유? 커크가 반문했다. 
예. 자유요.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자유. 당신답게 살 자유.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듯이, 스팍은 그에게 자신의 삶을 찾게 해주고 싶었다. 적어도 고통없는 일상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언정. 

커크는 침묵했다. 그의 손가락만 서서히 올라와 스팍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스팍은 자못 긴장했다. 혹시라도 말을 잘못했나 싶어 입술을 깨무는 사이에, 커크가 궁금하다는 듯 속삭였다. 

나다운 게 뭐야? 



레너드 맥코이는 그가 말한 것보다 일찍 병원을 찾아왔다. 오후 7시. 검붉은 해가 침대를 가득 물들인 시간이었다. 노을에 쫓겨 맥코이가 들어왔을 때, 스팍은 잠든 커크를 안은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길게 늘어진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문턱에 걸렸다. 

맥코이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물론 스팍은 금세 그의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들고 온 음료와 가방을 책상에 둔 맥코이와 스팍의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자는 거야? 
잠든 지 약 12분 경과했어. 

맥코이는 짧게 한숨을 쉬었고, 스팍은 아주 조심스럽게 커크를 침대 위에 눕혔다. 아기를 대하듯 신중한 행동이었다. 

아기.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몰랐다. 커크는 만들어진 지, 인간으로 치자면 태어나 의식을 갖게된 지 약 8년에서 9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정신연령 또한 그 정도라는 의미였다. 

스팍이 커크에게 이불을 덮어준 후 맥코이의 옆에 앉았다. 어제보다도 지친 기색이었다. 맥코이는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눈치껏 물었다. 

상태는 좀 어때? 
시각을 85% 이상 상실했어. 
...청각 보정 장치나 인공 안구를 쓰는 건 생각해봤어? 
그에게 더 이상 무리를 줄 생각은 없어. 

아. 그래. 맥코이는 우울하게 수긍했다. 둘 사이에서는 여느 때처럼, 긴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스팍은 흘낏 시계를 보고는 일어서서 정복을 갖춰 입기 시작했다. 며칠만의 출근 준비였다. 맥코이에게 커크를 맡기고 자리를 비울 생각인 듯했다. 맥코이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말을 건넸다. 

언제 돌아올 예정이지? 

스팍은 회색 정복의 목깃을 올리고 모자를 착용했다. 바지의 주름은 그 와중에도 곧고 단정했다. PADD까지 챙기고 나서야 스팍은 그의 말에 간결하게 답했다. 

최대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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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전후로 완결하겠다는 의지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