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오늘부터 폭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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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휴식 시간이야? 10분, 그 정도밖에 안 지났어! 말이나 돼? 그쪽이 숨기는 게 있겠지!"
복도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가는 커크를 따라 맥코이도 걸음을 빨리했다. 커크는 즉시 리프트에 탑승했고, 우후라는 빠르게 앞서 일어난 일들을 요약해서 보고했다.
"휴식을 요청한 것은 저희 측입니다."
"뭐?" 커크가 눈을 황망하게 떴다.
"스팍 중령님께서 휴식을 요청하셨고, 보안 회선으로 아레비크의 저의를 간파했다고 말씀하신 후 통신이 두절되었습니다. 긴급 보안 프로토콜에 따른 연락이 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함장님."
2차 협상 재개까지 3분 남았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커크의 귀에 직접 들어왔다. 리프트의 문이 열리자마자 술루가 벌떡 일어섰지만, 커크는 손을 저어 술루를 다시 의자에 앉으라고 지시했다. 커크는 그 와중에도 흘깃 칸을 살폈다. 그는 변함없는 얼굴로 자리에 앉아 커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직접 간다. 칸이 나와 동행해. 프로토콜대로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 즉시 중립 행성 전체에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고 지원을 보내. 알겠지, 술루? 믿는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술루 또한 다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크로노스에서 스팍과 커크가 칸을 찾기 위해 내려갔을 때 대신 함장의 자리에 앉았던 것처럼 결연한 표정이었다. 모두가 분주히 손을 움직였고, 칸은 벌떡 일어서서 커크를 향해 다가왔다. 커크의 뒤에 서 있던 맥코이만이 머리를 저으며 그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함장과 부함장이 모두 내려가는 건 규율 위반이라고 스팍이 누누히 말했을텐데?"
"내가 언제나 그 반대에 반대했던 거 알잖아."
커크가 씁쓸하게 웃고 칸과 함께 리프트에 들어섰다. 맥코이는 그런 커크를, 도저히 붙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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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돌아가는군. 규약 3조라고?"
커크는 칸의 말에 내심 찔렸으나 아무렇지 않게 리프트의 문을 노려보았다. 칸이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한 바였다. 그는 브릿지에서는 함장인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주었으나, 단둘이 있으면자신의 이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만약 그가 마음을 바꿔 브릿지에서조차 자신을 압박하려 든다면-. 아마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엔터프라이즈가 그의 손아귀에 빠졌다는 사실을. 커크는 자신이 칸에게 다시 한 번 이용당하는 그러한 장면을 다시는 크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예민하게 구는 건 네 쪽이지. 난 스타플릿 규약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 협상은 나 혼자로도 충분해."
하지만, 칸이 운을 뗐다. 커크는 칸이 내뱉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심장 깊숙한 곳을 여지없이 찔러왔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것을 간파했다. 그가 직접 말했던 대로.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넌 그가 걱정되서 달려가는 게 아닌가?"
때마침 리프트의 문이 열렸다. 커크는 칸에게 대답하지 않고 빠르게 걸어나가 전송기 위치에 섰다. 스콧이 레버를 잡고 있었다. 칸은 얼굴에 미묘한 표정을 띄운 채 커크의 옆에 나란히 섰다.
"2분 남았슈. 함장 나리."
"말할 시간도 아까워. 전송해."
"몸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목적이 협상이 아닌 것 같으니까, 라는 스콧의 말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
스팍의 예상대로였다. 커크는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둘의 생각이 반쯤 공유되고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칸을 데리고 중립 행성으로 내려왔고, 아레비크 종족들의 앞에 섰다. 스팍 또한 본드를 통해 커크가 어떻게 협상을 진행할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1차 협상자와 다르군."
가벼운 갑옷을 걸친 아레비크 종족 대표가 커크와 칸을 맞이했다. 회의장 안에는 종족 대표를 비롯해 한 명의 보좌관, 그를 호위하는 군인 두 명과 중립 행성 소속의 중개자- 이를테면 평화유지군이 회의장을 지키고 서 있었다. 카다시안 계통이라는 아레비크 종족은 일반적인 카다시안과 마찬가지로 휴머노이드 종족이었으며, 안면에 돌기가 솟아있는 게 특징이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죠. 전 행성 연방 스타플릿 소속 엔터프라이즈의 함장 제임스 T. 커크고 이쪽은 부관인 과학자 칸입니다."
"우리의 협상 조건을 듣자마자 휴식을 요청한 뒤 협상자를 바꿔 내보낸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군. 커크 함장."
"그쪽이 신경쓸 필요는 없는 문제입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행성 연방 가입이죠. 심지어 듀테륨을 제공하겠다고. 그렇다면 우리로부터 정말 원하는 게 뭡니까?"
커크의 예리한 질문에 칸이 눈썹을 움직였다. 듀테륨이라면 원자로, 특히 워프 코어에 필수적인 물질이었다. 워낙 희소하여 대량으로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 고가치의 물질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것을 행성 연방에 제공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동시에, 믿기 힘든 제안이었다.
"말했다시피 평화와-."
"평화와 동맹으로서의 안전 보장. 그것뿐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대표님. 행성 연방은 연방 전체의 안전을 위해 가입 당사 종족을 검증할 의무가 있습니다. 듀테륨 저장고를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제안을 의심한다는 뜻이었다. 다소 무례한 커크의 말에 아레비크 종족 대표가 불쾌한 듯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커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좋다."
대표가 몸을 일으키자 커크와 칸 또한 일어섰다. 커크는 칸의 어깨를 짚었다.
"칸이 직접 확인할 겁니다."
그들이 동의하고 앞장섰다. 칸은 뒤에서 커크의 멱살을 끌어당기고 속삭였다.
"날 사지로 몰아넣는군. 제임스."
"알아서 살아남아."
커크의 대꾸에 칸이 피식 웃었다. 그들의 제안 자체가 거짓이라면, 지금 안내하는 것 또한 함정일 가능성이 높았다. 원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협상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면 협상하러 내려온 자들 일부를 죽이고 카다시안으로 돌아가면 끝이었다. 그들이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은 한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부디 살아있는 그를 찾길 바라지."
"네 시체 정도는 수거해줄게."
칸이 비꼬자 커크가 맞받아쳤다. 곧 칸은 그들을 따라 어딘가로 향했고, 대표와 보좌관을 비롯하여 평화유지군도 모두 자리를 비웠다. 그들은 회의장 밖에서 통로를 지킬 터였다. 홀로 남은 커크는 즉시 커뮤니케이터를 열었다.
"스카티. 혹시 점검 다시 할 수 있어?"
"뭐라굽쇼?"
"중요한 일이야. 칸이 엔터프라이즈에 무슨 짓을 해뒀는지 모르는데, 잘못하면 폭발할지도 몰라."
커뮤니케이터 너머로 스콧이 길게 욕설을 쏟아붓는 소리가 들렸다. 커크는 잠시 커뮤니케이터를 멀찍이 들고 있다가 다시 가까이했다.
"어, 스카티?"
"니미럴 칸이 그 짓을 할 때꺼정 뭘 한거요! 대체!!"
"...풀점검 다시 하고, 알아낼 때까진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엔진인지 워프 코어인지 뭔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커크가 커뮤니케이터를 닫고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스팍 또한 어딘가에서 멀쩡히 있으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도 본드 때문이겠지. 칸도 내보냈고 스콧에게 명령도 내렸으니 이제 스팍을 찾는 일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째서 갑자기 모습을 감춘 걸까. 그것도 안전 요원들도 모두 데리고. 그가 알아냈다는 아레비크의 저의는 무엇일까. 그는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커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마음속의 질문에 분명한 대답이 들려왔다.
"저는 여기 있습니다."
스팍의 목소리였다. 커크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어느새 회의실 안에 들어왔는지, 스팍이 자신의 옆에 꼿꼿이 선 채 뒷짐을 지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모습에 걱정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커크는 활짝 웃었다.
"스팍!!"
커크가 벌떡 일어나자 스팍이 그의 어깨를 눌러 강제로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팔걸이를 짚은 채 몸을 기울였다. 졸지에 스팍의 팔 안에 갇힌 커크는 의아한듯 이게 뭐냐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상태로 점점 스팍의 얼굴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커크는 천천히 표정을 굳혔다. 스팍의 손이 마인드 멜드를 하려는 것처럼 자신에게 다가왔다.
스팍은 커크와 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칸이 없는 지금이 기회였고 이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기실 본드로는 완전한 것을 볼 수 없었다.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불완전한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마인드 멜드가 필수였다. 스팍에게는 지금 당장, 그것이 필요했다. 그것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스팍 마누라 뺏길 기세....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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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님?"
스팍은 현재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쿼터 안에 커크와 칸이 서 있었다. 칸이 커크를 제압하거나 위협하고 있는 모양새가 아니란 것에 일단 안심했지만, 스팍은 그들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급속히 불안을 느꼈다. 즉시 허리춤에서 페이저를 꺼내든 스팍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어째서 칸이 여기 있는 것인지, 커크는 어째서 태연하게 칸의 앞에 서 있는 것인지, 자신의 모든 추리력을 동원해 봐도 논리가 연결되지 않았다. 스팍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함장님. 위험합니다. 물러서십시오."
"아냐. 스팍."
커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스팍은 페이저를 세게 쥐었다. 커크 때문에 칸을 조준할 수가 없었다.
"지금 물러서야 할 건 너야."
스팍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커크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 손은 페이저를 집어들었고, 서서히 올라와서, 결국은 자신을 겨누었다. 스팍은 암담한 심정으로 질문했다.
"함장님. 왜 제게 페이저를 겨누시는 겁니까?"
"물러서라고 했어."
"함장님!"
스팍이 미간을 찌푸렸다. 커크는 표정을 굳혔다. 도대체 칸이 어떤 짓을 했기에 커크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 스팍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칸, 이건 전부 칸 때문이었다. 칸에 대한 분노가 거세졌다. 스팍이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그런 그의 움직임을 예상이나 한 듯 커크가 그를 마주보고 움직였다. 마치 칸을 보호하는 듯했다.
"비켜주십시오."
"너나 페이저 내려놔. 명령이야."
스팍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현재를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스팍은 아주 천천히 몸을 굽혔다.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며, 적용 가능한 모든 규정과 예외 조항과 역대 사례들을 훑었다. 그 순간 한 가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페이저를 바닥에 내려놓으려던 스팍이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그는 빠르게 읊었다.
"닥터 맥코이로부터 당신이 PTSD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현재의 함장님은 환각, 환청 및 현실검증력 저하로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 여겨지며, 스타플릿 규정에 의해 제 임의로 현 상황을 해결하겠습니다."
스팍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뒤에 있던 칸이 커크의 곁으로 다가왔고, 커크가 급히 팔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만둬! 스팍, 난 본즈가 처방해준 약을 먹었고, 지금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도 알아. 그리고 내 우선임명권에 의해 칸은 오늘부터 엔터프라이즈 크루야. 그러니까 페이저는 당장 치워."
"뭐라고요(Pardon, sir)?"
스팍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스팍과 칸 모두 커크를 바라보았다. 커크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칸은 5년 임무 동안 그가 필요한 임무에 참여할 거야. 내 치료에 협력했고 그 기간 동안 아무 말썽도 일으키지 않았으니까. 5년 임무가 끝나고 지구로 돌아가면, 다시 수감되어 형을 집행할 거고. 이해했어?"
"어디서, 언제 그런 논의가 이루어진 겁니까? 엔터프라이즈 전체에 심각한 위협이 되거나 생존에 직결되는 위기가 아닌 이상, 그것은 장교들의 동의를 받아 결정할 사안입니다. 또한 저 자가 탈옥한 거라면 응당 그에 대한 처분이 먼저-."
칸이 비웃듯이 스팍의 말을 끊었다.
"그럴 필요 없어."
스팍은 즉시 시야에 들어온 칸을 노려보았다. 커크의 바로 곁에 칸이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는데, 칸은 커크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있기까지 했다. 스팍은 당장 페이저를 그에게 쏘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고 커크를 돌아보았다.
"무슨 의미입니까?"
"탈옥…하지 않았어."
커크의 짧은 대답에 스팍은 입술을 깨물었다. 탈옥하지 않았다? 불충분한 설명이었다. 탈옥하지 않았으니 처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 터였다. 하지만 탈옥하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손의 마디 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자제심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았다. 스팍은 자신의 추론을 통해 나온 결론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입을 열었다.
"함장님께서 그를 구금실에서 꺼내주셨습니까?"
"…그래."
"함장님께서 그를 여기로 부르신 겁니까?"
"……. 그래."
스팍은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마지막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다.
"함장님. 그가 자력으로 탈출했고 당신을 협박한 거라고… 말해주십시오."
제발, 스팍은 속으로 덧붙였다. 커크가 긍정한다면 그 즉시 칸을 제압할 모든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스팍은 칸을 조준한 채로 간절히 빌었다.
"아니야." 커크는 고개를 저었다.
스팍은 한없는 절망을 느끼며 커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본드를 통해 전해져오는 커크의 심정과 생각을 알아내려 했다. 함부로 자신의 속마음을 읽는 것을 커크가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스팍이 천천히 그의 생각을 읽었다.
-내가 전부 책임지겠어.
스팍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커크는 이미 모든 것을 결심한 듯 단호했다. 스팍은 그런 커크의 태도에서 다소 슬픔을 느꼈다. 어째서 커크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것인가? 처음 구금실에서도, 스팍은 구금실을 열어준다면 칸을 제압하고 커크를 구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커크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은 칸에게 유린당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커크는 스팍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스팍은 새삼 씁쓸한 감정을 경험했다.
스팍이 페이저를 세게 쥐었다. 어쨌든 커크가 칸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게 그의 높은 자존심 때문이든 옆에 있는 칸에 대한 공포 때문이든 상관 없었다. 본인이 커크를 구하면 그만이었다. 스팍은 칸을 제압하고 그를 다시 냉동 튜브에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와 한 번 싸운 경험이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면, 커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칸을 제압하면 된다. 간명한 결론에 이른 스팍이 즉시 페이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칸을 향해 쏘았다.
"안 돼…!"
미약하게 외치며 칸의 앞을 막아서는 커크를 보았을 때, 스팍은 무정형의 변수인 커크를 간과한 점을 그 즉시 후회했다.
"함장님!!"
페이저의 광선을 맞은 커크가 작게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고, 뒤에 있던 칸이 그를 부축했다. 스팍은 이를 악물고 커크에게 달려갔다. 커크는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입을 열었다.
"이제 이런 걸로 안 죽어. 오버하지 마."
"함장님, 죄송합니다. 제 실수였습니다. 무사하십니까?"
"괜찮다니까. 비켜."
커크의 몸에 손을 댄 순간, 스팍은 그의 생각을 보다 분명하게 들었다.
-난 죽지 않지만, 스팍은 죽을 수도 있어. 내가 그를 보호해야 해.
의외의 생각에 스팍이 멍하니 커크를 바라보았다. 그 틈에 칸이 스팍의 손을 쳐냈다.
"함장의 안위를 지킨다는 부관이 함장을 공격하다니. 놀랍군." 칸이 비꼬았다.
"지금 함장님의 안위를 위협하는 건 너라는 사실에 한 치의 오차도 없어. 함장님을 놔."
스팍도 만만치 않게 맞섰다. 스팍의 눈동자는 맹수처럼 위험한 빛을 띄었고, 칸의 눈동자는 마치 그를 깔보는 것처럼 선명한 조소의 빛을 띄었다. 칸이 스팍을 도발하듯 커크에게 분명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직접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지. 제임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커크는 미약하게 떨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스팍. 나가."
"함장님!" 스팍이 비명처럼 그를 불렀다.
"난 휴식이 필요해. 다음 시프트까지 함장석을 맡아. 그때 칸에 대한 제반 사항을 발표하겠어."
커크가 확고하게 명령을 내렸다. 스팍은 커크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일어난 커크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옆에 서 있던 칸만이 흥미롭다는 듯 스팍과 눈을 마주쳤다. 스팍은 속에서 파도처럼 솟구치는 분노를 이길 수가 없었다.
"중범죄자의 탈옥, 함장에 대한 협박은 즉결처분권을 발동할 충분한 이유가 돼. 주지하고 있길 바라지."
자신을 위협하는 스팍을 향해, 칸이 커크를 잡아당기는 것으로 답했다. 칸은 커크의 허리를 반쯤 안은 채 입을 열었다.
"자신의 함장을 죽일 뻔한 부관이 할 말로는 안 들리는군. 내 피가 아니었으면 그는 벌써 죽었어. 예전에 죽었겠지."
"내 발언과 내 행동은 상관성이 적어. 또한 네 피가 그를 살렸다고 해서 네가 저지른 범죄들이 상쇄되는 건 아니지. 그리고 네가 현재 취하고 있는, 함장님과의 불필요한 접촉은-."
"그만!"
커크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칸과 스팍 모두 입을 다물었다. 커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쿼터를 울렸다.
"스팍. 제발 나가. 쉬고 싶어."
이것 보라는 양, 칸이 스팍을 노려보았다. 커크는 아예 몸을 돌려 칸의 품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스팍은 가슴 깊이 비참함을 느꼈고, 계속 저런 커크를 보느니 쿼터를 나가는 게 말 그대로 속이 편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절대로 커크와 칸을 함께 놔두고 싶지 않았다. 커크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한 칸이 또 무슨 짓을 할지, 자신들을 어떤 방식으로 괴롭힐지 감도 오지 않았다. 스팍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겼다.
"빠른 복귀를 기다리겠습니다. 함장님."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스팍이 쿼터를 나서며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문이 닫히는 틈 사이로 칸과 커크가 입을 맞추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스팍은 자기도 모르게 쥐고 있던 페이저를 우그러뜨리고 말았다.
-
"칸, 그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칸의 거친 키스에 커크는 그를 말리려 했지만, 칸은 힘있게 커크를 몰아붙였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던 커크는 결국 침대에 걸려 쓰러졌다. 칸이 그대로 그의 위에 엎드렸다.
"널 꿈에서 현실로 꺼냈어. 그걸로 충분하잖아……."
"충분하지."
커크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칸이 즐거이 대답했다. 칸은 손을 들어 커크를 쓰다듬었다. 커크는 그 부드러운 손길을 외면하려 애썼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칸의 시선을 피하면, 조금이나마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하얗게 질리던 스팍의 얼굴이 자꾸 생각났고, 놀라서 크게 뜬 스팍의 눈과 자신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스팍의 선명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사실은 다시 그를 부르고 싶었다. 스팍이 이 절망에서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스팍의 이름을 들었을 때 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회상하며 커크는 긴장했다. 칸의 시선을 자신에게 붙잡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의 말로 판단컨대 칸은 엔터프라이즈를 '폭발'시킬 어떤 장치를 해둔 것이 분명했다. 설령 장치가 없더라도, 벤젠스 호를 만든 그의 실력이라면 엔터프라이즈를 해킹하는 것은 일도 아닐 터였다. 그 위협을 제거하기 전까진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다. 칸이 엔터프라이즈와 스팍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일전에 원자로 코어에 직접 들어갔던 것처럼,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함장의 역할이었다.
"제임스. 다시 말하지만 넌 내 거야. 네 몸도, 네 혈관을 흐르는 피도, 네 생명도."
"…그래."
커크는 체념했다. 칸의 손가락이 자신의 입술을 스쳐, 턱을 지나고 목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는 것을 온전하게 느끼면서 커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호흡을 진정하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칸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자명했다: 바로 자신이었다. 그것만으로 칸을 잡아둘 수 있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장사이리라. 커크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내 피가 너를 고쳤으니, 우린 이를테면 혈연 관계지. 넌 내 가족이고 난 네 가족이야."
칸은 커크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한 뒤 커크에게서 떨어졌다. 의외의 말과 행동에 커크는 눈을 번쩍 떴다. 칸은 이미 몸을 돌려 커크의 책상으로 향한 뒤였다.
"피곤하다면 편히 쉬도록."
칸은 커크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책상 위에서 책을 한 권 골라 꺼내들었다. 커크는 그런 칸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를 믿을 수가 없었지만, 동시에 믿고 싶기도 했다. 칸이 정말 자신을 가족이라 여기는 걸까? 72명의 다른 증강인간들- 그의 크루와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이것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커크는 미약하게 희망을 느꼈다. 칸이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한, 5년 임무를 진행중인 엔터프라이즈에 위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 사이에 칸이 손을 써둔 것을 제거하고 칸을 제압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커크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게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해결 방안이었다. 역으로 자신이 칸을 이용하리라.
커크는 조금이나마 안심하며 눈을 감고 누웠다. 칸이 그의 쿼터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못내 신경쓰였지만, 달리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커크는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모든 게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니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했다. 내 힘으로 해결하겠어, 커크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 1편부터 강렬한 게 미드의 특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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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프라이즈는 대형 계류장에 정박해 있었다. 계류장 자체에서는 연료봉을 구할 수 없어 베르포 항성계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연료봉 운반 셔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스팍은 함장석에 앉아 자잘한 지시를 내렸고, 커크는 여전히 자신의 쿼터에서 숙면을 취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커크는 혼자가 아니었다.
"제임스."
칸의 손가락이 커크의 볼을 부드럽게 쓸었다. 커크는 자꾸 몸을 뒤척거릴 뿐, 쉽게 깨어나지 않았다. 스팍과 격렬하기 그지없는 밤을 보낸 덕분이었다. 칸이 거듭 그의 이름을 부르자 커크가 결국 비몽사몽한 채로 칸에게 대답했다.
"응……?"
"피곤한가?"
"우웅……. 피곤해……."
칸이 커크의 옆에 앉은 채로 몸을 굽혔다. 서서히 칸의 얼굴이 커크의 얼굴과 가까워졌다. 칸은 그가 귀엽다는 듯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고 커크는 그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윽고 칸의 혀가 자신의 입 안으로 들어와 잇몸을 쓸어대는 것, 자신의 혀를 빨아들이듯 잡아당기는 것도 허용했다. 생각보다 짙고 뜨거운 키스가 이어지자 커크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어서, 부지중에 칸의 팔을 붙들었다. 커크가 간신히 입을 뗐다.
"진짜, 진짜 피곤해. 스팍."
그 순간 칸이 얼어버린 듯 움직임을 멈췄다. 커크가 짐짓 놀라 칸의 얼굴에 가볍게 입술을 부볐지만, 칸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커크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스팍…?"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스팍이 아니라 칸이었다! 커크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고,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위험했다. 자신의 온몸에서 본능적으로 위험 신호가 울리고 있었다. 커크는 두 눈을 의심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칸……?"
그의 목소리가 들린 즉시 칸이 커크 위로 거칠게 올라탔다. 그리고 그의 멱살을 잡아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칸은 유령처럼 하얀 얼굴로 잔뜩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불쾌한 감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뭐라고?"
"미, 미안해."
커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실 딱히 미안하진 않았다. 미안할 것도 없었다. 왜 미안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이 스팍을 부른 것이 칸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것 하나만큼은 커크도 분명히 알았다.
"나는 스팍인 줄 알고……."
순간 뺨에 불이 일었다. 커크는 얼얼한 볼을 감싸쥘 생각도 못한 채 눈을 크게 뜨고 칸을 돌아보았다. 칸이 차가운 표정으로 다시 손을 뻗고 있었다. 커크는 되살아난 악몽에 몸을 움츠리고 질끈 눈을 감았다.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꿈이어야만 해.
커크가 예상한 것처럼 다시 그가 손찌검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칸은 커크의 턱을 잡고 자기 쪽으로 세게 끌어당겼다. 커크는 그 통에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제임스 커크."
칸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도저히 이게 꿈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너무도 선명했다. 커크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불안하게 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았고, 손아귀를 벌린 심연 같았다.
"내가 네 병을 고쳤지. 내가 널 우월하게 만들었어. 넌 내 피조물이고 난 네 조물주야. 너는-."
칸이 선고를 내리듯 커크와 자신에 대한 정의를 늘어놓았다. 사실을 나열하는 그의 태도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칸의 다른 손이 커크의 부어오른 뺨을 쓸었다. 부드럽게, 다시 부드럽게.
"-내 거야(Mine)."
그 한 단어에서 커크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관계 정립에 대한 미약한 기쁨과 다가올 일에 대한 가슴 저릿한 공포, 그리고 나약한 자신에 대한 절망까지.
볼을 매만지던 손이 어느새 입술에 도달했다. 칸이 강제로 그의 입을 벌렸다. 커크가 작게 숨을 뱉었다.
"흐윽."
칸은 아랑곳않고 거칠게 커크의 입 안을 더듬었다. 차마 그의 손가락을 깨물 수 없었던 커크는 입을 벌린 채 칸의 시선을 피했다. 침대 시트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칸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입에서 다시 다른 자식의 이름이 나오도록 해봐. 어서."
커크는 절망했다.
"…자, 잘못했어……."
"해봐!"
칸이 윽박질렀다. 커크는 칸의 팔에 매달렸다.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잘못했어……."
커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칸이 그를 침대 밖으로 내던졌다. 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칸이 정강이를 걷어차는 바람에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커크는 뼈가 부러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눈앞에 칸의 발이 보였다. 커크는 호흡을 진정하려 애썼다. 온몸을 떨리게 만드는 절망감에 저항해야만 했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도대체 그가 언제 어떻게 구금실에서 탈출한 것인지, 그가 왜 자신에게 집착과도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인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것은 칸을 수틀리게 한다면 자신을 물론이고 엔터프라이즈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커크는 동물적인 직감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날 고문했지." 칸이 운을 뗐다.
커크는 처음 듣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매일. 한 시간씩. 마커스보다 지독했어. 적어도 그는 내 눈을 태우지는 않았거든."
"난 전혀 몰랐어…!"
칸이 커크의 얼굴을 쥐었다. 혼란이 가득한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푸르고 푸르렀다. 그의 무죄를 주장하듯, 순결하고 투명했다. 칸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똑똑이 말했다.
"상관없어. 다시 그의 이름을 말해. 그자부터 죽여버릴 테니까."
"안 돼!"
깜짝 놀란 커크가 칸의 다리를 붙들었다. 스팍만큼은 지켜야 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떠안고 가야만 했다. 애초에 칸을 이 엔터프라이즈에 태운 것조차 자신 때문이지 않던가?
"칸. 전부 내 책임이야. 내 잘못이야. 차라리 날 죽여. 대신 아무도 죽이지 말아줘. 부탁이야-."
"'부탁'?"
순식간에 커크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었다. 커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칸은 커크의 얼굴을 바닥에 짓누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뭐든지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이제 와서 부탁이라. 그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냐."
"우윽, 칸……."
"선택은 내가 해."
"제발……."
겁에 질린 커크가 몇 번이고 빌었지만, 그는 용서하지 않았다. 커크의 마음속이 때늦은 절망과 후회로 가득 찼다. 이젠 정말로 되돌릴 수 없었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다 잘못했어, 커크는 소용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애원했다. 답없이 떨리는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왔다. 칸은 커크의 등을 짓누르며 그의 간청을 무시했다.
"이미 늦었어. 내가 엔터프라이즈를 폭파시키기 전에 날 막을 방법을 찾아봐."
"난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칸, 제발 그러지 마……."
"아아. 제임스. 생각해."
칸이 커크의 귀에 입술을 붙였다. 커크의 숨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넌 나만큼 똑똑하잖아(You are as clever as I am)."
-
스팍은 연료봉을 얻기 위해 상대 셔틀에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행성 연방의 군부 스타플릿 소속임을 밝히고 해당 절차에 따라 연료봉을 보급받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단지 커크가 늦게까지 브릿지에 출석하지 않는 것만이 계속 신경쓰였다. 피로감이 상당하리라 예상은 했지만, 그가 이렇게 늦을 이유는 아니었다. 스팍은 커크에게 찾아가는 대신 다시 PADD에 감시 영상을 불러왔다. 커크를 감시할 수는 없으니 칸을 감시해야 했다.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음."
여전히, 미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영상대로라면 칸은 분명 구금실에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스팍의 눈이 매 초 간격으로 영상 내의 칸을 훑었다.
스팍의 눈이 커졌다. 그는 기억력이 인간보다 월등히 좋은 편이었고 덕분에 한 번 본 것은 웬만하면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칸은 몇 시간 전에 일어났던 그 모습 그대로 일어났고 정확히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들어올려진 손의 각도까지 동일했다.
이게 무슨 의미지?
스팍은 그 순간 가능한 모든 논리를 동원했다. 빠르게 결론이 나왔다. 이 영상은 가짜였다! 더 정확히는, 녹화된 영상이었다. 스팍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브릿지의 모든 크루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술루. 의자."
스팍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짧게 지시한 후 터보 리프트로 날듯이 달려갔다. 당장 구금실에 가서 확인해야 했다. 어째서 아무도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인지, 칸이 도대체 언제 이 링크를 바꿔치기한 것인지, 스팍은 구금실로 달려가는 중에도 추론하고 또 추론했다.
"……."
스팍이 지긋이 입술을 깨물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칸이 있던 구금실은 텅 비어 있었고, 그를 감시하던 카메라는 해킹된 뒤였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갔는지는 몰라도 브리그 베이를 지키던 보안 요원이 전혀 몰랐을 정도니, 정식 통로가 아닌 다른 경로를 선택한 것일 터였다.
스팍은 즉시 커크의 쿼터로 향했다. 칸이라는 위험한 존재가 엔터프라이즈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테러리스트가, 커크를 한 번- 아니 여러 번 위험하게 만들었던 자가, 도대체 언제부터 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게 이 닫힌 작은 세계 안에 숨어들었다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와중에도 스팍은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했다. 겨우 화해한 커크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물론 칸의 탈옥이라는 1급 중대 상황이니 그도 이해해줄 테지만. 스팍은 커크의 쿼터로 달려가는 길에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맥코이와 마주쳤다.
"스팍?"
"아직 함장님을 방문하지 않은 건가?"
"네가 푹 쉬어야 할 것 같다며? 지금쯤은 일어났을 것 같아서 가보는 참이지."
스팍의 마음이 급속도로 불안해졌다. 아직 맥코이마저 커크를 확인하지 않았다? 커크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스팍은 맥코이에게 바로 커크에게 가라고 하지 않은 것을 짧게나마 후회했다.
"칸이 탈옥했어."
"뭐??" 맥코이가 반쯤 비명을 질렀다.
"그가 우주선을 빠져나갔다는 증거는 없으니 칸은 아직 이 안에 있겠지. 경계를 발령했다간 그를 자극하거나 크루의 불안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어서, 그에 대한 판단을 함장님께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스팍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맥코이는 불안한 얼굴로 스팍에게 물었다.
"대체 언제?"
"확실하지 않아."
이를 갈듯 스팍이 대답했다.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금 화가 났다. 맥코이는 발길을 돌렸다.
"메디컬 베이에서 대기할게. 어디 숨어있는지도 모르니까, 일단 이쪽만이라도 비상 경계 태세로 돌려서 샅샅이 검사하고."
스팍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나았다. 맥코이가 바쁘게 움직였다. 스팍 또한 커크의 쿼터로 향하는 걸음을 빨리했다. 칸은 지금까지 맞이했던 적들 중 가장 위험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더없이 높은 지능을 가졌다. 이쪽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그는 이미 예상하고 있을 터였다. 즉 비상 경계 발령을 통해 자신의 탈옥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된다면, 인질을 취하거나 위협을 가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스팍은 절대로 견딜 수 없었다. 스팍이 서둘러 커크의 쿼터 문을 열었다.
"함장님?"
문이 열린 후, 스팍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거기에 칸이 있었다.
겁에 질린 커크가 몇 번이고 빌었지만, 그는 용서하지 않았다. 커크의 마음속이 절망으로 가득 찼다. 이젠 정말로 되돌릴 수 없었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다 잘못했어, 커크는 소용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애원했다. 답없이 떨리는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왔다. 칸은 커크의 등을 짓누르며 그의 간청을 무시했다.
이미 늦었어. 내가 엔터프라이즈를 폭파시키기 전에 날 막을 방법을 찾아.
난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칸, 제발. 그러지 마…….
아아. 제임스. 생각해.
칸이 커크의 귀에 입술을 붙였다. 커크의 숨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ㅡ넌 나만큼 똑똑하잖아.
(You are as clever as I am.)
함장님, 위험합니다. 물러서십시오.
아냐. 스팍.
커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스팍은 페이저를 세게 쥐었다. 커크 때문에 칸을 조준할 수가 없었다.
지금 물러서야 할 건 너야.
스팍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함장님. 왜 제게 페이저를 겨누시는 겁니까?
(Captain. Why are you taking aim at me with a phaser?)
스팍. 너 또 날 감시했어? 본드로?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때까지도 스팍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커크의 마음은 변함없을 거라고. 자신이 그를 이해하는 만큼 그도 자신을 이해하리라고. 몇 번이고 부딪치고 싸웠지만, 결국 서로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고. 벌칸으로서 논리와 이성을 신봉하는 만큼, 스팍은 제임스 T. 커크를 믿었다.
본드 끊어.
아니, 믿었었다. 그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스팍이 끝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커크의 얼굴은 여전히 섬뜩하리만치 희푸르고 평온했다. 그 무신경한 모습에 더 분노라는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커크가 이럴 리가 없었다. 이건 자신의 커크가 아니었다. 스팍은 거칠게 항변했다.
지금 그 의미를 인지하고 발화하는 중입니까? 본드는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짐, 저는 벌칸에 대한 당신의 이해력을 의심할 수밖에-.
맥코이가 부러 세게 트라이코더를 그의 목에 들이밀었다. 커크가 아야야, 하고 엄살을 피웠다.
"의사로서의 세심함이라고 해줄래? 그리고 너 예수랑 하나도 안 닮았거든."
"부활했잖아!"
"그는 3일 만에 눈을 뜨셨고 네놈은 15일이나 걸렸지. 어차피 난 무신론자야.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어디보자. 악몽은 어때? 좀 나아졌어?"
트라이코더를 내려놓은 맥코이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커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맥코이는 팔짱을 낀 채 커크의 모든 행동을 주시했다. 슬슬 눈치를 보는 게 또 거짓말을 할 모양이었다.
"그게......."
"또 거짓말 하면 내 의사자격 전부 내놓고 엔터프라이즈에서 내릴거야."
못됐다, 커크가 눈을 크게 뜨며 불만을 토했다. 하지만 맥코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의사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정상적인 진단을 방해하는 일이었고, 이는 처방과 결부되어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또한 맥코이는 커크가 자신의 고통을 숨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본인도 경험한 것이었기에 더욱 더.
파멜라나 자신 또한, 일이 생겼을 때 그때 그때 이야기했다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작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손대지 못할 큰 벽이 되었고 그것은 그들의 사이를 영영 갈라놓았다. 아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맥코이는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결국은 맥코이의 눈빛에 진 커크가 꼬리를 내렸다.
"또 꿨어."
"같은 내용?"
"응. 그런데 조금 달랐어."
"어떻게?"
커크는 그 꿈을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고민했다. 다시 생각해도 낯이 뜨거워졌다. 아, 젠장. 이게 뭐야. 쪽팔리게. 커크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맥코이는 늘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꿈을 심리적으로 분석한다나 뭐라나. 외과의사가 심리학이라니 아주 유능하기 그지 없었다. 커크가 다시 망설였다.
"그게, 그가 나를 '가족'이라고 불렀는데...."
"계속해."
"되게 자극적으로 대하더니, 나머지는 똑같았어. 나를 협박하고 박아대고.... 알잖아. 트라우마로 이런 걸 계속 보는 거라며? 그런데 갈수록 감각이 명확해지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돼?"
스팍이 자르타클라 교도소에 도착해 죄수들을 인도하고 난 뒤에도 엔터프라이즈는 움직이지 못했다. 엔진 점검은 거의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조 동력 쪽에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해 기술부원들이 모두 그리로 몰려갔기 때문이었다. 스콧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들은 스팍은 결국 통신을 종료해버렸다.
스팍은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엔터프라이즈의 점검이 완료되는데 최소 4시간. 점검이 완료될 경우 이곳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1시간. 총 5시간. 대신 이 교도소의 셔틀을 빌려타고 갈 경우 걸리는 시간은 순수하게 8시간. 중간에 점검을 완료한 엔터프라이즈가 나와 자신의 셔틀을 맞이한다면 약 5시간 20분이 걸리지만, 접촉 지점은 불안정한 별무리 지대이므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한 이 셔틀을 돌려주러 다시 이곳에 와야만 한다.
이곳에서 엔터프라이즈를 기다리는 것이 경제적이었다. 스팍은 허탈한 숨을 토해냈다.
그는 습관처럼 자신의 영혼을 더듬어 커크를 찾았다. 커크는 희미하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팍은 초조해졌다.
대체 왜, 커크는 타인과 관계를 한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은 왜 거부한 것일까. 그는 혹시 '일부러' 자신을 멀리 보낸 것이 아닐까?
아냐, 억측이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감정을 가라앉혀야 했다. 물론 가능성이 존재하나 그것 또한 차근차근 검증해보자. 스팍은 논리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현실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가정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과학자였다. 자신이 관찰한 객관적 사실(fact)만을 증거로 결과를 추론하는 벌칸이었다.
첫 번째 사실. 커크는 타인과 관계를 가졌다. 타인의 정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여자든, 남자든, 휴머노이드든. 그의 성향으로 볼 때 충분히 발생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정확을 요하기 위해 규명이 필요하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두 번째 사실. 커크는 자신의 도움을 거절했다. 왜? 과학에서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나름대로의 이유는 차후에 그가 밝힐 것이다.
세 번째 사실. 커크와 자신은 본딩되어 있다. 하지만 커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본드. 커크는 그것을 몰랐다. 스팍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커크로부터 보다 분명한 정보를 확인해 사실을 확정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리라.
스팍은 즉시 엔터프라이즈에 통신을 시도했다.
"엔터프라이즈. 여기는 스팍이다."
-
커크는 함장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금 전에 심하게 장난을 친 탓에 체코프는 반쯤 삐쳐 있었고, 술루는 자신의 시프트가 아니라서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커크는 물끄러미 스팍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의 텅 빈 자리가 웬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없으니까 더 보고 싶은걸.
커크에게 있어 스팍은 든든하고 능력 있는 부함장이었다. 또한 전장에 나가서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동료이자 친구였고,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보여도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주변 사람을 (특히 자신을) 배려할 줄 아는 남자였다. 물론 그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랬다. 커크는 그의 그런 측면을 그의 일부로써 존중했다. 커크는 그가 싫지 않았다.
"함장님. 자르타클라로부터의 통신입니다. 부함장님께서 개인 회선을 요청했습니다."
스팍이? 텔레파시라도 통했나? 커크가 반가운 얼굴로 손짓하자 우후라가 통신을 넘겼다.
"헤이, 스팍. 나 보고 싶었어(Did you miss me)?"
정작 보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었지만, 늘 그렇듯이 질문으로 상대방에게 인사하는 커크였다.
"함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긴히' 얘기해봐."
"사적인 일입니다. 통신을 함교가 아닌 별개의 공간에서 할 것을 요청합니다."
마냥 웃던 커크가 입을 다물었다. 덜컥 불안해졌다. 저 벌칸에게 사적인 일이라면 틀림없이 '그 때'의 일일 것이고, 커크는 그 기억을 수면으로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다. 스팍이 왜 자꾸 그 일을 상기시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하면 안돼? 네가 그러니까 무섭다."
"그렇다면 제가 돌아간 뒤에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함장님. 한 가지 사실만 확인해 주십시오."
"뭘."
"약 10시간 전에 성관계를 가지셨습니까?"
커크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혹시 그의 통신을 누구라도 들었을까 싶어 커뮤니케이터를 쥐고 주변을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체코프는 별지도를 보고 있었고, 우후라는 다른 통신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크루들 또한 저마다 자기 일에 충실히 임하고 있었다.
커크는 결국 몸을 일으켜 터보 리프트로 향했다. 체코프를 불러 함장석을 지키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리프트 벽에 몸을 기댄 커크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야??"
커크의 거친 반응에 스팍은 자신의 모든 가정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느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커크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사실은 두 개일 수 없었다: 팩트는 언제나 하나였다. 즉 가능성은 둘이었다. 자신이 옳고 커크가 틀렸든가, 커크가 옳고 자신이 틀렸든가. 스팍이 차분하려고 애쓰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이해합니다. 당신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상대와 관계를 했든지-."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데? 너 혹시 나 감시해?"
커크가 답답하다는듯이 말해왔다. 스팍의 마음이 불안으로 차올랐다. 대화 중에 뭔가가 맞지 않고 삐그덕거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함장님? 저는 사실 확인을 하려던 것뿐입니다. 예와 아니오로 대답해주십시오."
맥코이의 말마따나 커크 스스로도 자신이 꿈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난 꿈이 명백히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도대체 스팍은 뭘 보고, 뭘 알고 이렇게 연락을 해온걸까?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날 감시하는 걸까?
커크는 떨리는 손을 들어 PADD를 확인했다. 혹시나 지난 일이 정말 꿈이 아니라면.... 현실이라면.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커크가 버튼 몇 개를 터치해 모니터실과 연결된 화면을 불러왔다. 칸의 감금실이 비쳤다. 칸은 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들이닥친 안도감에, 커크가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야......."
그의 힘없는 목소리에 스팍이 주먹을 쥐었다. 거짓말이었다. 스팍은 두 번째 사실도 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했다.
"함장님. 그렇다면 왜 그때 저의 도움을 거절하셨습니까?"
"무슨......."
"당신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을 도와드리겠다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그것을 해소했습니다. 왜입니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까?"
커크 또한 스팍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뭐? 하고 되묻자, 스팍은 더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저는 안 되는지 질문하고 있는 겁니다."
"뭐가 안돼?"
"당신의 성욕을 해소하는 상대 말입니다."
미쳤어. 커크가 입을 벌렸다. 스팍이 지금 왜 그것에 집착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이렇듯 자신을 추궁할 때마다, 그와 자신과의 거리가 급속도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커크는 먹먹한 목구멍에서 간신히 말을 끌어올렸다.
"괜찮다고 했잖아...!"
"다른 사람과 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안 했다고!!"
"거짓말 마십시오."
스팍의 단호한 말에 커크는 포기했다. 그리고 될 대로 대라 하고 내뱉어 버렸다.
"씨발, 그래. 했다. 했어."
스팍의 눈썹 끝이 치솟았다. 사실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해도 그가 이렇게 나오니 더없이 불쾌했다.
"칸이랑."
커크가 통신을 끊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스팍의 손에 있던 통신기가 부서졌다.
예수의 12제자 중 도마(Thomas). 부활한 예수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그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