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가 사라졌다. 


엔터프라이즈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실종됐던 그 날처럼. 원래 그것이 진짜 현실이고 몇 주 간의 일이 오히려 꿈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는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맥코이는 온 집을 뒤졌다. 차라리 잠깐 외출하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기를. 맥코이는 헛된 기대를 붙잡고 욕실과 옷장, 찬장과 벽장을 열었다. 그가 들어가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침대 아래를 훑고 이불을 들췄다. 그의 방에도, 자신의 방에도, 부엌에도 거실에도 욕실에도 어느 곳에도 커크는 없었다. 그가 사용하던 물건들 또한 감쪽같이 사라진 채였다. 


그는커녕 그가 존재했다는 흔적마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맥코이는 커크의 방에서 자신이 준 선글라스를 발견했다. 단정하게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그외에 맥코이가 사준 물건들은 옷이며 가방이며 모두 얌전하게 정리되어 옷장 안에 있었다. 


맥코이는 이 상실의 경험이 낯익었다. 


짐. 제발, 짐. 그만해. 그만하고 나와.... 


맥코이가 끓는 목소리를 토해냈다. 파멜라와 헤어졌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냉정한 얼굴로 이별을 선고하던 그녀가 커크와 겹쳐 보였다. 
빈 집은 커크가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지만 맥코이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소리내어 그를 찾으면 그가 없다는 게 정말 사실이 되어버릴까봐, 목소리를 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원래 혼자 살았던 집인데도 지금은 그 집이 너무나 크고 넓게 보였다. 예전에는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갔는데, 말을 하면 답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자신의 말은 방향을 잃고 죽은 새처럼 바닥에 떨어질 뿐이었다. 


내가 잘못했어....... 돌아와. 제발. 


맥코이는 온기가 사라진 침대를 그러쥐고 울었다. 야속하게도 깨끗히 정돈된 침대는 마치 새것 같았다. 


아무도 그 위에 누운 적이 없던 것처럼. 



혹시 어제 저에 대해 언급하셨습니까? 


한두 명이 타기에는 과하게 큰 셔틀이었다. 커크는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고 스팍은 그 옆자리를 차지했다. 운전수를 제외하고는 두 사람이 셔틀의 유일한 탑승객이었다. 


아니요. 


커크는 고개를 저었다. 스팍은 부재중 통화 알람과 음성 메세지 알람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도 패드를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창문을 흘끔이던 커크가 안전 벨트를 잡은 손을 꼼질거렸다. 불안해하는 그를 향해 스팍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스타플릿 소재의 메디컬 센터로 가게 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곳에서의 당신은 전 대령 제임스 T. 커크입니다. 전관 예우로 당신이 있을 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한 특실이며, 가능한 최고의 보안으로 보호받을 겁니다. 또한 저는 당신의 치료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함께 있을 겁니다. 질문이 있으면 지금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어디가 아파요? 


머뭇거리던 커크가 스팍을 돌아보았다. 스팍은 기계적으로 그를 마주 돌아보고 무덤덤하게 설명했다. 


특정 부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심장을 비롯해 간, 폐, 내장, 위, 그리고 안구 등이 각기 다른 비율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원하신다면 그곳에 도착해서 자료를 보고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죽는 거에요? 


스팍이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니오. 당신이 죽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도심 외곽으로 향하는 동안 스팍은 몇 가지를 당부했다. 자신을 '스팍'으로 부를 것과 존댓말을 사용하지 말 것, 누구든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주 인사해 줄 것 등이었다. 커크는 당혹스러워했지만 그것 또한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이전 주인들도 비슷한 명령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스팍은 그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센터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뒷문으로 들어가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덕분에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커크는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았고, 스팍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커크의 개인실은 단조롭고 깔끔했다. 침구와 협탁, 작은 원목 책상과 의자가 전부였다. 책상 위에는 엔터프라이즈 모형이 수줍게 앉아 있었다. 커크는 모형에 홀린 듯 다가가 책상에 턱을 괴고 그것을 우러러보았다. 


이게 뭐에요? 


스팍은 대답에 앞서 커크의 말투를 지적했다. 커크는 그가 일러준 대로 고쳐 말했다. 


이게 뭐야? 
NCC-1701. 스타플릿 소속의 우주탐사선 엔터프라이즈호입니다. 
내가 이걸 알아? 


기묘한 질문이었다. 커크의 손가락 끝이 닿을 듯 말 듯 엔터프라이즈로 향했다. 그 움직임은 신중하다못해 경건했다. 커크의 연푸른 우주에 하얀 함선이 가득 들어찼다. 


예쁘다. 


스팍은 그 미묘한 어긋남을 인지하는 대신 친절히 설명했다. 


제가 당신을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일전, 함께 브릿지에 방문했었습니다.


커크의 손가락이 엔터프라이즈의 길다란 엔진부를 훑어내려가다가, 둥그런 원반부 중앙에 닿았다. 원반부 중앙, 바로 그 아래는 브릿지가 있는 위치였다. 톡톡, 손가락이 다정하게 엔터프라이즈를 두드렸다. 커크는 스팍의 말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정말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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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20화에서 완결날 줄 알았는데...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