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과 지낸 지 일주일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커크는 날짜를 헤아리다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오늘 의사 선생님 와? 

PADD위를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책상에 앉아있던 스팍은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의료 등급이 있는 제가 대신 당신의 신체 상태를 체크할 겁니다. 
그렇구나. 

커크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커크는 손으로 한쪽 팔을 만지작거리며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그 반응이 어딘가, 스팍 내면의 불편함을 야기했다. 그 모습을 본 스팍은 PADD를 내려놓고 커크 앞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커크. 
응? 
닥터 레너드 맥코이를 보고 싶습니까? 
응. 
제가 말씀드린 것들 전부 기억하십니까? 
응. 

커크는 어느새 자신의 팔을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가락의 핏기가 사라져 하얗게 된 채였다. 이를 눈치챈 스팍이 팔을 뻗어 그의 손을 떼어놓았다. 


그만하세요. 혈액순환이 안 됩니다. 


커크는 아, 하고 그제야 손에 힘을 풀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스팍은 그 와중에 살짝 스친 커크의 피부에서 밀려들어오는 공백의 감정을 느꼈다. 즉,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맛이 썼다. 

스팍이 짧은 한숨을 뱉었다. 무언가 해야만 했다. 해야만 할 일이 있는데, 스팍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찬찬히 기억을 떠올렸다. 


일전, 당신이 제게 제임스 커크가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응. 

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기억하십니까? 
'응'이라고 했어. 

커크가 단조롭게 대답했다. 스팍은 자신이 필요 이상의 말을 하고 있다고 인식했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제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커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단순히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짐은 존경하는 친구이자 사랑하는 형제였습니다. 그는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알았고, 제게 놀라운 세계를 알려준 사람이었습니다. 무모하지만 용감했고 가벼웠지만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스팍은 커크가 아닌 그 앞에서 차곡차곡 진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당사자에게 진심을 고할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만, 지금 이 기회, 이것이라도 놓친다면 앞으로 다시는 말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말하지 않은 생각은 마음 한 켠에서 먼지에 파묻히다 종래는 잊혀지고 말 것이었다. 보내지 못한 편지와 하지 못한 말들처럼. 끝끝내 수신자를 잃고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것들처럼. 

그의 전략은 천재적이었고, 그의 말은 다정했습니다. 지구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인간적인 영웅. 고고한 우주의 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제임스 티베리우스 커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 
그리고 당신은 절대 그가 될 수 없습니다. 


커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스팍 또한 그의 무반응에 더이상 개의치 않았다. 

과거에 제가 감정적으로 행동했던 일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그런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에, 당신이 감히 그를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에 감정의 영역을 해결할 수 없었던 겁니다. 지금은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모두 제거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럼, 


커크가 운을 뗐다. 커크는 자신의 팔 대신 환자복을 움켜쥐고 있었다. 또다시 무의식적으로 취해진 행동이었다. 즉, 일종의 습관이었다. 스팍은 그것을 다시금 그것을 지적하려다 입을 그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럼 왜 지금은 내가 그를 흉내내길 원해?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를 위해서인데? 
저와 당신을 제외한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커크는 이해하지 못했다. 스팍은 부연했다. 

당신이 지금 세계로 나간다면 다른 사람들은 제임스 커크를 당신으로 기억하겠죠. 백지 상태의 무능력한, 죽어가는 인간. 저는 제임스 커크가 그렇게 기억되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최후 또한 명예롭게 역사에 기록되길 원합니다. 
내가 사라지길 원하는구나. 커크가 중얼거렸다. 
10913이라는 사람은 저와 닥터 맥코이만 알고 있으니까요. 셋 중의 한 사람이 발설하지 않는 한 그 사실이 밝혀질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제임스 커크로서 살아가면 됩니다. 


스팍이 강조했다.


죽을 때까지. 


커크의 손에 힘이 풀렸다. 잔뜩 구겨졌던 환자복이 그제야 제 모습을 찾아가려 시도했다. 하지만 세게 접혀 생긴 주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이미 발생한 일을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지극히 단순한 논리구조였다. 커크는 죽었고, 자신은 그 커크가 아니며, 스팍은 그가 커크가 되기를 바랐다. 따라서 커크는 결론을 내렸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그렇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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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