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는 안대를 벗고 환자복을 입은 채였다. 가장 먼저 그의 왼쪽 눈이, 그 동공과 홍채의 이동조차 분간할 수 없는 온통 검은 눈이 보였다. 맥코이는 그 눈을 다시 마주하자 새삼스러운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맥코이가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커크는 양 옆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스팍이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커크의 손 또한 놓지 않은 상태였다.

자꾸 두 사람의 손에 시선이 가는 것을 애써 참고, 맥코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아?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 손을 들어 맥코이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맥코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스팍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

한참 후에야 커크가 더듬거리며 답했다. 

괜찮, 아...

그조차 힘겨웠는지 금세 손을 떨궜다. 맥코이는 그런 커크의 손을 낚아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북받쳐 올랐다. 그는 커크의 마른 손에 볼을 비비며 키스를 퍼부었다.

짐. 지미. 깨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정말,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너를 힘들게 하지 않을게....

그 순간 커크가 맥코이의 손을 뿌리쳤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잘게 떨고 있었다. 당황한 맥코이는 절망적으로 매달렸다.

짐...?!
소용없어. 맥코이.

스팍이 힘없이 조언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는 청각을 상실했어. 시각도 서서히 잃어가는 중이지. 그가 알아듣기 원한다면, 입모양을 읽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말해주는 편이 좋을 거야. 
뭐라고?

맥코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커크는 스팍의 손을 꽉 쥔 채 맥코이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시선조차 흐트러져 있었다. 맥코이는 마구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데 어떻게 너는 그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는 거지? 
마인드 멜드. 그리고 유사 본드. 현재 나와 짐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어. 그리고 그는 자신이 청각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야. 그러니 천천히 말해주길, 그는 바라고 있어.

맥코이는 스팍이 그를 '짐'이라고 지칭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건 무슨 변화일까. 스팍은 그를 제임스 커크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일까? 게다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한다고? 

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너를 통해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야?
아직까지는 아냐. 하지만 만약, 그가 시각을 완전히 잃게 된다면 그때는 아마 나를 필요로 하겠지.

새로운 종류의 농담이구나, 맥코이는 허망하게 손을 뻗었다. 커크는 그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야. 속으로 울음을 삼킨 맥코이가 커크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나야(I.t.i.s.m.e). 

커크는 어깨를 움찔거릴 뿐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바라보는 눈. 맥코이는 그 하늘에, 혹은 바다에, 또는 우주에 무엇이 담겨 있을는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해(S.o.r.r.y).

그저 해야 할 말을 건넬 뿐. 또다시 그가 어디론가 떠나기 전에. 자신의 곁을 떠나기 전에.

스팍은 맥코이가 하는 양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만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스팍이 손을 놓자 커크는 허공을 휘저으며 눈에 띄게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가지 마요. 
미스터 맥코이가 함께 있을 겁니다.
가지 마, 가지 마요....

스팍은 잠시 잊었다는 듯 (커크가 청각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커크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그리고 두 손을 모두 맥코이에게 건네주었다. 커크는 이전보다는 미약하게 눈을 굴리며 맥코이의 손을 맞잡았다.

그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기다릴 테니 대화가 끝나면 밖으로 나올 것을 요청한다.

맥코이는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팍은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예전처럼, 마치 그때처럼 커크와 맥코이 둘만 한 방에 남았다. 

맥코이는 커크의 양 손을 맞잡은 채 가만히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많았지만, 그것을 모두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짐(J.i.m). 정말 미안해(S.o.s.o.r.r.y). 

맥코이는 커크가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일견 감사하며,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눈물이 제멋대로 튀어나오려 했다.

만약 네가 용서하지 않는다 해도-(I.f.y.o.u.d.o.n.o.t.f.o.r.g)
당신을 용서해요. 

문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커크가 대답했다. 

정말로 용서한 걸까? 용서받을 수 있기는 한 걸까? 맥코이는 그 무조건반사적인 대답을 진정한 그의 의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분명 그의 '주인'들을 거쳐오며 자동화된 반응, 혹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건 그렇게 쉬이 종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보호자를 자처하며 스팍에게서 그를 데려왔던 맥코이로서는 더더욱. 자책감이 뒷목을 짓눌렀다. 맥코이는 커크를 타이르듯 문장을 이었다.

나는 정말로 네게 큰 잘못을 했고, 쉽게 용서받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아(I did a really big fault to you and I know It would be hard to ask forgiveness).
나도, 알아요. 

급하게 커크의 손바닥에 문장을 휘갈기던 맥코이가 일순간 정지했다. 커크는 맥코이의 손을 잡아 그 이상 쓰지 못하게 하면서,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랬어요. 하지만 용서해요. 당신도. 스팍도. 

맥코이는 그 이상 할말을 찾지 못했다. 왜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에게 양 손을 잡혀있어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맥코이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울어요?

어느새 커크가 맥코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맥코이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손길이 사무치도록 따스해서, 그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맥코이는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기어코 떨어뜨렸다. 커크의 가느단 손가락에 눈물 방울이 걸려, 윤곽을 타고 흘러내렸다. 커크는 조심스럽게 맥코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의 얼굴을 구석구석 매만졌다. 마치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

괜찮아요.
내가 괜찮지 않아....
괜찮아질 거에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맥코이는 말없이 커크를 끌어안았다. 그는 그 상태로 오래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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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짝) 울-지-마! (짝)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