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코이는 커크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켰다. 덕분에 그가 병실을 나온 시각은 한참이나 늦은 때였다. 스팍이 목석마냥 의자에 꼿꼿이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맥코이는 커크가 잠들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고 스팍은 이미 알고 있노라고 답했다. 본딩인지 뭔지 덕분이겠지. 침울함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 도저히 대화를 이어갈 기운이 나지 않았다. 맥코이는 그대로 스팍 곁에 풀썩 앉았고 스팍은 고개만 돌릴 뿐 별반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을 공유한 후에야, 계속 머리를 맴돌던 질문이 생각났다. 


마인드 멜드. 예전에 짐이 말한 적이 있어. 서로가 가진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고. 

스팍이 조용히 긍정했다. 

그럼- 너도 저 아이가 어떤 과거를 갖고 있는지 다 봤다는 뜻이네. 
전부는 아니지만, 긍정해. 그의 기억을 읽었어. 하지만 그것을 세계에 공개할 수는 없어. 
왜? 

스팍이 망설였다. 맥코이는 그의 머뭇거림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일지 추론했다. 반인륜적이어서일까, 혹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일들이어서일까. 

그의 주인들이 누구였을는지 추론해봐. 맥코이. 
노예상이나 악독한 취미를 가진 거부. 제국. 혹은 로뮬란... 그런 자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야(Negative). 
그럼? 

맥코이의 반문에 스팍은 그답지 않게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맥코이는 스팍의 지친 표정과 어두운 기색에서, 그의 입에서 나올 사실이 평범한 일을 넘어서는 것이리라고 예상했다. 

...우리들이었어.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무슨 개소리야. 우리라니. 맥코이가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맥코이. 물질계에는 셀수없이 많은 평행 우주가 있고, 그 우주마다 각기 다른 개체가 있어. 또다른 스팍, 또다른 제임스 커크, 또다른 레너드 맥코이. 당신도 있었어. 그의 과거 주인들 중에.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모두 다 '과거'라고 보긴 힘들지만. 


덜덜 떨리는 손을 쥐어 두려움을 감추며, 맥코이가 인상을 찡그렸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미래의 스팍이 이 우주에 온 건 블랙홀 때문이었어. 우주를 그렇게 자유롭게 넘나드는 건 불가능해. 
논리적인 주장이야. 하지만 생각해봐. 맥코이. 목표 지점을 블랙홀의 중심으로 지정한다면? 블랙홀을 빠져나간 후의 우주가 어느 시간대이며 어느 장소일지는 예측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동일한 우주가 아니리라는 것은 추론 가능하지. 
...말도 안 돼. 그건 거의 무작위(landom)의 확률이라고. 

스팍이 피곤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대꾸했다. 

하지만 다른 우주의 '우리'는 그것을 실행했어. 제임스 커크를 실어 블랙홀로 쏘아보냈지. 
도대체 왜? 

맥코이의 따지는 듯한 말투에 스팍이 긴 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그 이상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맥코이는 스팍을 재우쳤다. 

왜 다른 우주의 우리가 그렇게 한 건데? 
세계에 알려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스팍은 여느 때처럼 단호했다. 맥코이가 입술을 씹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맥코이는 계속해서 생각하던 것을 입밖에 뱉었다.

스팍. 내게 마인드 멜드를 해. 
뭐? 
말할 수 없다면 보여줘. 네가 본 것들, 저 애가 살아온 과거들. 나도 알고 싶어. 물론 안 된다고 말하겠지, 알아. 하지만 나도 주인 중 하나였다며? 그럼 나도 당사자야. 그리고 나는 진실을 알아야겠어. 

맥코이를 돌아본 스팍이 눈썹을 꿈틀였다. 그것은 불쾌하다기보다 놀라움에 가까웠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스팍은 결국 맥코이의 주장에 수긍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얼굴을 지긋이 눌러오는 스팍의 찬 손가락을 느끼며, 맥코이는 눈을 감았다. 

...기억 속에서 본 다른 우주의 당신도 비슷한 말을 했더군. 

그 말에 놀람을 표시하기도 전에, 맥코이는 그의 기억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다. 



커크는 사람의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어느 과학자가 만든 피조물 프랑켄슈타인처럼, 타인의 피와 타인의 살을 모아 만든 누구도 아닌 존재였다.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아이로서 자라나거나 성장하지도 못했다. 그는 눈을 떴을 때부터 성인의 몸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우주의 커크들을 모아 만든, 이를테면 제임스 커크의 총집합이었다. 그의 몸 어느 하나 커크가 아닌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제임스 커크가 아니었다. 

그의 주인은 스팍이었을 때도 있었고, 맥코이였을 때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지금의 커크를 견디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를 떠나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모두 제임스 커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다른 우주였지만 커크의 죽음, 혹은 실종은 동일하게 발생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건이었다. 우주의 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커크가 사라지는 일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그들은 커크를 잃었다. 

때문에 그들은 지금의 스팍과 맥코이처럼 커크를 간절히 찾다가, 그를 발견했다. 하지만 종래에는 커크가 아니지만 커크인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었다. 

상황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스팍이 먼저 그를 발견한 적도 있었고 맥코이가 먼저 그를 만난 적도 있었다. 외딴 행성을 탐사하던 중에 불시착한 셔틀을 찾아내거나 지구를 헤매는 그와 마주친 적도 있었다. 정말로 노예시장에 떨어진 커크를 구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우주에서건 커크는 동일했다. 아무 기억도 갖고 있지 않았고, 제임스 커크의 육체를 가진 것 외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다. 추억도 말투도 습관도 어느 것 하나 커크와 닮아있는 게 없었다. 

이전의 스팍들과 맥코이들, 일명 주인들은 그런 커크를 본래의 제임스 커크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를 다시 떠나보내게 된 것이었다. 다른 우주로. 또다른 스팍과 맥코이가 있는 곳으로. 그들이 커크를 수용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두 번째 이별을 선택했다. 


커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커크는 언제나 자신의 사람들과 이별해야만 했다. 제대로 된 이유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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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