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해보라니까. 제임스 티베리우스 커크. 위대한 영웅, 엔터프라이즈의 전 함장님. 못 말하겠어? 갑자기 부끄럼이라도 타? 


맥코이는 오기로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그가 꿋꿋이 커크 행세를 하자 화가 난 것도 있었지만,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싶은 심정도 꽤 컸다. 맥코이는 커크가 반응하지 않자 더더욱 말의 강도를 높였다. 

그건 알아? 네가 처음으로 여학생을 방에 끌어들인 날 나랑 약속을 하나 했거든. 물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 그래. 기억할 리가 없지. 다른 사람 얘기인데. 미안. 괜한 말을 했다. 
....... 

커크는 입술을 짓씹고 입모양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울듯 말듯 묘한 표정이었다. 맥코이는 그런 그를 못본 체 밀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내가 도대체 왜 여기 있지? 내가 찾는 사람은 여기 없는데. 다 들으라는 듯 크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맥코이가 문 앞에 섰다. 그대로 나갈 셈이었다. 커크가 그를 붙잡든지 말든지 상관없었다. 커크 흉내를 내는 그와는 볼일이 없었다. 원래대로의 그라면 또 모르지만. 맥코이는 문고리를 잡고 세게 돌렸다. 

잘 있어. 

맥코이는 그대로 그곳을 나갈 셈이었지만,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달칵 하고 어딘가의 걸쇠에 걸린 듯 열리지 않는 문 때문에 맥코이는 짐짓 당황했다. 이게 왜 이래, 당기고 흔들어도 보았지만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밖에서만 열 수 있어. 

담담한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귀에 들어왔다. 맥코이는 어금니를 악물고 돌아섰다. 그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아아. 그럼 아침까지 기다려야겠다. 

맥코이는 그대로 바닥에 앉았다. 팔짱을 낀 방어적인 자세는 풀지 않은 채였다. 커크는 가만히 서서 맥코이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맥코이는 잠깐의 침묵과 커크의 눈길을 견딜 수 없었고, 그래서 입을 열어 2차 공격을 시작했다. 적당히 진실과 거짓말도 보탰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아가야. 제임스 커크 새끼와 나는 질기고 지독한 악연으로 연결되어 있단다. 
...거짓말 마. 커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네가 뭘 알아? 맥코이가 비웃었다. 그 새끼랑 나는 서로 토사물을 주고받은 사이거든. 토사물뿐이겠어. 밤에 뜨거운 우정도 나누는 사이였지. 그 멍청한 벌컨이 뭘 가르칠 수 있었겠어.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맥코이는 집요하게 커크가 아파할 부분만 파고들었다. 그게 그에게 또다른 상처가 되리라는 생각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본즈....... 
날 그렇게 부르지 마. 그 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어. 
....... 

냉담한 맥코이의 말에 커크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팔을 들어 눈을 비볐다. 얼굴을 반쯤 가린 팔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커크는 소리없이 침을 삼켰다. 입을 앙다물고, 끝까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맥코이는 도저히 그런 커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힘들다면 흉내를 내지 않으면 될 텐데. 스팍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될 텐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고집스럽게 저러고 있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한참 후에 커크가 젖은 소매를 내렸다. 그는 그것을 등뒤로 가리려 애쓰며 짧게 말했다. 

싫다면 그 호칭으로 부르지 않을게. 내일 아침까지 편히 있다가 가. 침대에서 자도 돼. 잘 자. 

커크는 몇 걸음 물러서서 의자를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가지런히 두었던 책을 펼쳤다. 책장을 넘기는 그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그가 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맥코이는, 더는 참지 못하고 성큼성큼 걸어가 의자를 돌렸다. 놀라 동그래진 눈에 물기가 가득 어린 것이 보였다. 맥코이는 팔걸이를 잡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아무 의지도 감정도 없던 네게 사명감 따위가 갑자기 생길 리 없잖아. 스팍이 주인이랍시고 명령했어? 그래서 그렇게 죽어라고 따르고 있냐? 
무- 무슨 얘기 하는지 잘 모르겠어.... 
왜 몰라! 맥코이가 윽박질렀다. 커크는 어깨를 움칠거리며 눈을 찡그렸다. 맥코이가 커크의 턱을 쥐고 치켜올렸다. 커크는 반항하지 못했다. 
모르긴 뭘 몰라.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짓. 제임스 커크를 연기한다는 가증스러운 짓 말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제임스- 읍. 

맥코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야. 아니라고. 너는 그가 아니야. 대체 어떻게 내 앞에서조차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어? 네가 떠난 뒤로 난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어. 널 찾느라 방방곡곡을 뒤졌어. 스팍이 이런 곳에 꽁꽁 숨겨뒀을 줄은 몰랐지만. 알았어? 적어도 나한테는 원래대로 대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이 멍청한 자식아. 

맥코이가 길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동정심이라면 동정심이리라. 맥코이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커크는 하나뿐인 눈동자를 굴리며 한없이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택한 것은 예전과 다를 게 없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이 손 놓아줘.... 

오오냐. 끝까지 그렇게 나오겠단 말이지. 그 순간 맥코이가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졌다. 

네가 정말 제임스 커크라면, 내가 이제 무엇을 할지 알 거야. 

커크가 퍼뜩 눈을 들었다. 그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맥코이는 턱을 쥐었던 손을 내려 커크의 셔츠를 밀어올렸다. 커크는 허둥지둥 벗어나려 했지만 의자에 앉아있는 채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맥코이는 그가 어떤 반응을 하건 개의치 않았다. 손을 뻗어 커크의 가슴을 주무르자 커크가 미약하게 버르작대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맥코이는 그를 매정하게 뿌리쳤다. 갈색 눈동자가 혐오 반 비웃음 반으로 빛났다. 


싫어? 짐은 이런 걸 좋아했는데. 

커크의 움직임이 멎었다. 하나뿐인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맥코이는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그의 눈 위에 다정하게 입을 맞춰 주었다. 유두를 지분거리던 손은 점점 내려가 허리께를 더듬고 있었다. 맥코이의 입술이 속살거렸다. 

자, 이제 짐이라면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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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를 풀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어흥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