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 


낯익은 목소리에 스팍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커크가 깨어나 있었다. 스팍은 목을 가다듬다가, 이내 그것이 무의미한 일임을 깨달았다. 


짐. 

대신 스팍은 본딩을 통해 자신의 말을 전했다. 커크가 미약하게 안심하는 것이 느껴졌다. 커크는 스팍의 손을 쥔 채 그것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그것만이 타인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었다. 

어디 있어? 
당신 옆에 있습니다. 침대 옆, 의자에. 
더 가까이 와.... 

커크의 요청에 스팍은 몸을 옮겨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커크는 한 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엉금엉금 움직이더니 그의 품에 안겼다. 그 행동에 스팍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커크가 그렇게 몸을 한껏 붙이고서야 안정을 느끼는 것을 보고는 그저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스팍. 

커크가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스팍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이미 빛을 잃어 혼탁해진 눈동자로. 그것을 본 스팍의 마음에 안타까움이 번졌다. 

예.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이런 몸으로 제임스 커크의 흉내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커크는 그 사실을 잘 알았고, 자신이 다시 버려질까봐 겁을 내고 있었다. 그 두려움이 잔잔하게 전해져왔다. 스팍은 그를 마주 안고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굳이 누군가를 흉내낼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의 의사를 존중하겠습니다. 

커크는 스팍의 옷깃을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볼을 비볐다. 나름대로의 애정 표현이었다. 스팍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나는, 네가 원하는 걸 하고 싶어. 

제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유? 커크가 반문했다. 
예. 자유요.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자유. 당신답게 살 자유.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듯이, 스팍은 그에게 자신의 삶을 찾게 해주고 싶었다. 적어도 고통없는 일상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언정. 

커크는 침묵했다. 그의 손가락만 서서히 올라와 스팍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스팍은 자못 긴장했다. 혹시라도 말을 잘못했나 싶어 입술을 깨무는 사이에, 커크가 궁금하다는 듯 속삭였다. 

나다운 게 뭐야? 



레너드 맥코이는 그가 말한 것보다 일찍 병원을 찾아왔다. 오후 7시. 검붉은 해가 침대를 가득 물들인 시간이었다. 노을에 쫓겨 맥코이가 들어왔을 때, 스팍은 잠든 커크를 안은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길게 늘어진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문턱에 걸렸다. 

맥코이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물론 스팍은 금세 그의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들고 온 음료와 가방을 책상에 둔 맥코이와 스팍의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자는 거야? 
잠든 지 약 12분 경과했어. 

맥코이는 짧게 한숨을 쉬었고, 스팍은 아주 조심스럽게 커크를 침대 위에 눕혔다. 아기를 대하듯 신중한 행동이었다. 

아기.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몰랐다. 커크는 만들어진 지, 인간으로 치자면 태어나 의식을 갖게된 지 약 8년에서 9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정신연령 또한 그 정도라는 의미였다. 

스팍이 커크에게 이불을 덮어준 후 맥코이의 옆에 앉았다. 어제보다도 지친 기색이었다. 맥코이는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눈치껏 물었다. 

상태는 좀 어때? 
시각을 85% 이상 상실했어. 
...청각 보정 장치나 인공 안구를 쓰는 건 생각해봤어? 
그에게 더 이상 무리를 줄 생각은 없어. 

아. 그래. 맥코이는 우울하게 수긍했다. 둘 사이에서는 여느 때처럼, 긴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스팍은 흘낏 시계를 보고는 일어서서 정복을 갖춰 입기 시작했다. 며칠만의 출근 준비였다. 맥코이에게 커크를 맡기고 자리를 비울 생각인 듯했다. 맥코이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말을 건넸다. 

언제 돌아올 예정이지? 

스팍은 회색 정복의 목깃을 올리고 모자를 착용했다. 바지의 주름은 그 와중에도 곧고 단정했다. PADD까지 챙기고 나서야 스팍은 그의 말에 간결하게 답했다. 

최대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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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전후로 완결하겠다는 의지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