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님께 영업당한 쟈콜쟈... 덕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저를 책임지시기 바랍니다^*^

크오 주의

수위 없음

에이전트오브쉴드, 판타스틱4 스포 주의



-



언제부터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 쟈니 스톰은 알지 못했다. 한바탕 치기어린 불꽃을 피워 시가지를 달구던 중이었는지, 혹은 자신을 제압하기 위해 그 열기를 뚫고 나타난, 성실함으로 점철된 검은 수트를 입은 그를 처음 보았을 때였는지, 아무튼지간에 자신의 마음에 불씨가 튄 그 순간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불은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속에 불을 붙인 남자의 이름은 필립 J. 콜슨이었다. 그마저도 가르쳐줄 이유가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하던 것을 며칠이고 졸라 알아낸 것이었다. 에이전트 콜슨에서 미스터 콜슨으로, 미스터 콜슨에서 콜슨으로, 콜슨에서 필로 상대방을 규정짓는 어휘가 바뀌기까지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콜슨은 여전히 그를 휴먼 토치라 불렀다)


그에 대한 마음은, 비유하자면 프로메테우스가 훔쳐낸 신의 불 같았다. 일반적인 불과 다르다는 점에서 그랬다. 쟈니는 그것을 그 이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어릴 때 누나가 들려주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불이 이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홀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자신의 몸에서 뿜어내는 불이 평범한 불이라면,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이 불은 불의 태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겁고 강렬했다. 물리적인 뜨거움을 느끼지 않는 쟈니에게 그것은 일종의 고통이었다. 


"아저씨. 나 안 보고 싶었어?"


오랜만에 쉴드 본부에 온 콜슨을 향해 쟈니가 손을 뻗었다. 수트 재킷을 벗는 것을 도와주려 했지만, 콜슨은 여느 때처럼 그의 손을 거절하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보고 싶었습니다."


쟈니는 입을 비죽이며 콜슨의 옆을 맴돌았다. 콜슨은 최근 '버스'에서 개인 팀을 이끌고 있었기에 본부에 오는 상황이 많지 않았다. 일명 어벤져스 사건 이후로 그는 명예의 전당 (즉, 순직자 명단)에 올라 있었고, 레벨 7 이상의 에이전트들만 그가 부활해서 비밀스런 일들을 처리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다. 레벨 6이었던 에이전트 콜슨이 개인 팀을 갖고 통솔권을 소유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어벤져스 사건의 몫이 컸는데, 희생된 자신의 삶과 한정판 캡틴 트레이딩 카드를 대신해 디렉터 퓨리가 그에게 준 것이라고, 알음알음 소문이 떠돌았다. 사건의 경위가 어떠하건 간에 쟈니는 그 '버스'가 콜슨을 자신에게서 빼앗아간 기분이 들어 그닥 즐겁지 않았다.


"아저씨. 아저씨."

"왜 부릅니까. 휴먼 토치."


넥타이를 풀어낸 콜슨은 여전히 쟈니를 돌아보지 않았다. 쟈니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한 것 없는 그 태도에 안정감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콜슨은 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니, 지금쯤은 알 터다. 그는 자신을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더 가깝게 두었으나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쟈니는 늘상 벽 안에서 넘실거리는 불길을 참고 또 참아왔다. 


한 번은 그 불을 고스란히 쏟아내었다가 (문자 그대로) 콜슨에게 단단히 애 취급을 받고 말았다. 결국 철이 덜 들었다는 이유로 콜슨의 가까이에 있을 수 있는 특권은 얻어냈지만, 동시에 콜슨에게 제 감정을 표출할 기회는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래서 쟈니는 부러 콜슨에게 아이처럼 굴곤 했다. 그가 자신을 더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어른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보아주고 싶은 마음도 때론 가닥없는 불꽃처럼 솟아올라서, 쟈니는 그 양가적인 감정을 도통 정돈시킬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담배 피웠으면 좋겠다."


그제야 콜슨이 쟈니를 돌아보았다. 눈을 크게 뜬,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에게 주목하는 그 얼굴을 보고 쟈니는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성공했다, 먹혔다, 라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담배에 불 붙여주고 싶어서." 


쟈니가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들어 불꽃을 피웠다. 그리고는 라이터처럼 손가락을 까딱여 담배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했다. 콜슨은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을 띄우며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제 심장뿐 아니라 폐도 망가뜨리고 싶은 모양이군요." 


담담한 콜슨의 말에 쟈니는 화들짝 놀라 불을 꺼트렸다. 


"그런 거 아냐!"

"휴먼 토치."


딱딱한 훈계조의 말투가 들리면 쟈니는 꼼짝 못하고 꼬리를 말곤 했다. 쟈니가 주눅든 표정을 짓자, 콜슨은 무언가 말을 더 하려는 듯 쟈니를 바라보다가 결국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잔소리를 꼭 하고 지나가던 타이밍에 여느 때와 같은 그것이 없자 외려 쟈니가 더 몸이 달아 콜슨을 붙들었다. 


"잘못했어. 나는 그저, 그냥, 내가 아저씨한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나 싶어서......."

"그냥 여기 있어주면 됩니다. 그걸로 충분해요."

"그걸로 될 리가.... 그걸로 될 리가 없잖아! 나는 내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난 아저씨한테...!"


철없는 아이로 남고 싶지 않아. 쟈니가 꿀꺽 말을 삼켰다. 목구멍을 할퀴고 내려가는 말은 불을 삼킨듯 뜨거웠고, 잿물마냥 살을 녹였다.


"휴먼 토치. 당신은 당신의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제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해야할 일을 하면 됩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콜슨이 뱉는 문장 하나 하나가 화인처럼 마음 속에 새겨졌다. 결국-, 결국은, 말하지 못할 테지. 쟈니는 울컥 솟아오르는 심정을 또다시 참았다. 이런 콜슨마저 좋아했기에, 이런 그에게 내쳐지고 싶지 않았기에, 여느 때처럼 쟈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콜슨은 손을 뻗어 쟈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이 너무도 다정하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쟈니는 그의 손을 잡아 천천히 자신의 볼로 가져갔다. 따뜻하고 거친 그의 손으로 얼굴을 부볐다. 이번에는 콜슨도 뿌리치지 않았다. 


쟈니가 눈을 감았고, 콜슨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 또한 쟈니와 같이 마지막 문장을 삼킨 터였다. 차마 그에게는 하지 못할 말을. 잔인한 말을.


'나를 좋아한다면 그 말을 제게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