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프와 술루, 스콧은 커크가 말을 길게 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었다. 전해들었던 대로 부상이나 수술의 후유증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간 것이다. 기실 그들에겐 커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레너드 맥코이에게는 아니었다. 


맥코이는 크루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스팍마저 자리를 비우면, 커크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작정이었다. 지켜본 결과 커크는 크루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콧에게는 그의 별명을 불러가며 친근하게 굴었고 술루에게는 그의 여동생 안부를 물었다. 즉, 그는 크루들의 기본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제대로 숙지하고 있었다. 


본즈. 안 가? 

그래. 저걸 포함해서. 맥코이는 표정을 굳히고 팔짱을 꼈다. 중앙으로 모인 눈썹이 명백히 그가 불만에 차 있음을 보여주었다. 

응. 안 갈 거야. 

스팍이 그렇게 되도록 놔둘 리 없었다. 

나가십시오. 닥터 맥코이. 
내가 여기서 나가야 하는 이유를 대봐. 이 초록피 고블린아! 

스팍은 여느 때처럼 즉시 답했다. 

먼저 당신은 재대하여 스타플릿 소속이 아니므로 메디컬 센터 보안층에 들어올 수 있는 개인적인 권한이 부재하며- 
젠장(Damn it). 누가 그걸 일일히 배경음악으로 깔아달래? 난 짐이랑 개인적으로 할 얘기가 있어. 자리 좀 비켜줘. 

스팍이 고개를 비뚜름히 기울였다. 치켜올라간 그의 눈썹 또한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허가할 수 없습니다. 저의 입회 하에 대화한 후 이곳에서 나가주시면 감사하겠군요. 

정중한 표현이었지만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보면 할 말만 하고 꺼지라는 의미였다. 맥코이는 보답으로 셋째 손가락을 높이 들어올린 뒤 커크를 끌고 개인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잠깐 밖에서 얘기 좀 해. 


그러나 커크는 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맥코이를 말리려 들었다. 


본즈. 이 안에서 얘기하자. 응? 

맥코이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젠 더 이상 그의 행동을, 이 우습지도 않은 촌극을 보아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는 스팍이 커크를 데려간 순간부터 지금까지 겪은 일들로 참을성이 바닥난 상태였다) 맥코이가 커크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본즈'라고? '본즈'라고?? 이런 짓 그만둬. 최소한 나는 네가 누군지 알아. 나와 스팍은 네가 누군지 안다고. 스팍이 제임스 커크 흉내를 내라고 시켰지. 응? 그런 거지? 네가 원한 게 아니었지?


맥코이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적어도 그가 자신에게는 원래의 모습을 보일 거라는 희망을. 

갑자기 왜 그래. 본즈. 나야. 제임스 티베리우스 커크.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었던 사람. 

커크의 말에 맥코이는 자신이 딛고 선 땅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현실이 한없이 추락했다: 바닥이 없는 현실의 이름은 절망이었다. 커크는 여전히 또렷한 눈동자 하나로 자신을 꿰뚫어보았다. 그것만큼은, 그래, 정말 예전의 커크와 다를 게 없었다. 기쁠 때는 밝고 진한 하늘색, 화가 났을 때는 어둡고 진한 푸른색, 평소에는 연한 청록빛으로 빛나는 그 오묘한 우주. 비록 하나뿐이 남지 않았어도 우주는 우주였다. 자신이 바라보던 우주였다. 하지만 그 우주는 자신이 살아온 우주가 아니었다. 맥코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커크의 옷깃을 쥐었다. 


아니. 넌 제임스 커크가 아니었어. 그만. 그만해. 내 앞에서는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난 계속 제임스 T. 커크였어. 넌 계속 본즈였고. 우리가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셔틀에 나란히 앉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맥코이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만! 

머리가 어지러웠다. 맥코이는 정말이지 스스로가 바보가 된 심정이었고, 지금의 커크를 감당할 수가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그리움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분명 그가 진짜 커크가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입밖에 내어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그동안 얼마나 듣고 싶었던 단어였던지, 모든 게 그토록 사무치게 다가왔다. 본연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이대로, 정말 스팍이 의도한 대로 그를 제임스 커크가 되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우리는 친구를 되찾을 수 있을 텐데. 세계는 영웅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만약 눈을 감고 진실을 모른 체 한다면-. 


하지만 맥코이는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옳은 것 사이에서 저울질해야 한다면 그는 옳은 것을 고르는 사람이었다. 간절히 염원하는 자신을 죽이고 맥코이는 커크에게 속삭였다. 


스팍이 네게 강요한 것, 옳지 않은 일이야. 이렇게 두어선 안 돼. 
닥터 맥코이. 당신이야말로 그만하시죠.

 
결국 맥코이와 커크의 대화를 듣고있던 스팍이 나섰다. 맥코이는 커크를 잡아당겨 그를 끌어안다시피 했다. 스팍에게 그를 다시 내어줄 수는 없었다. 그의 계획에 커크가 희생당하도록 둘 수 없었다. 


본즈, 자꾸 왜 그래! 


커크가 되려 인상을 쓰며 맥코이에게서 빠져나오려 했다. 맥코이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스팍이 맥코이를 떼어내려 다가오는 사이에 커크의 하얀 안대가 맥코이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 그래. 그 뒤에 커크가 커크가 아님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가 있었다. 


맥코이는 그렇게 생각한 즉시 손을 뻗어 커크의 안대를 벗겨냈다. 커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는 허겁지겁 두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리려 노력했다. 


안 돼요...! 

다시 날 보고 얘기해. 이제 제대로 얘기하자. 


맥코이는 실날같은 희망을 느꼈다. 커크에게 다가서려던 맥코이는 곧바로 스팍에게 제지당했다. 


여기서 나갈 것을 권고하지. 지금 당장. 

맥코이는 순간 스팍의 갈색 눈에서 튀어나오는 불꽃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지지않고 대들었다. 

그는 네 소유물이 아냐. 네 멋대로 모든 걸 결정할 수는 없어. 
날 그의 보호자로 전권 위임한 것은 당신이고, 이제 와서 아무 권한이 없는 당신이 그 사실을 변경할 수는 없어. 알아들었나(Am I clear)? 
네가 한 짓을 기억하고도 그런 말이 나와? 너는 그를 돌볼 자격이 없어!! 너야말로 알아먹어? 나는 정당하게 그를 데려왔었다고! 

스팍과 맥코이는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고, (사실 목소리가 커진 쪽은 맥코이 혼자였다) 때문에 커크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더듬는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마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서툰 움직임이었다. 커크는 찾던 물건을 한참 동안 발견하지 못하자 결국 포기했다. 


그만... 그만해주세요. 

커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지만 거진 악을 쓰던 맥코이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 말을 들은 스팍은 이를 무시했다. 커크는 급기야 목소리를 높였다. 

주인님!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스팍과 맥코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커크를 바라보았다. 커크는 기어들어가려하는 목소리를 붙잡아 공기중에 토해냈다. 

싸우지 마세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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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과 본즈가 커크의 양육권을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