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코이가 골을 냈다. 


넌 아무 잘못도 없다니까! 문제는 이 재수없는-... 


문장은 완성되지 못했다. 맥코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의식을 잃은 그의 어깨에서 손을 뗀 스팍이 가볍게 몸을 굽혔다. 그가 맥코이의 손에서 주워든 것은 하얀 안대였다. 


커크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눈썹이 기운잃은 강아지마냥 아래로 쳐져 있었다. 거의 울상이었다. 


제-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스팍은 쓰러진 맥코이를 지나 커크의 앞까지 저벅저벅 걸어갔다. 커크가 어깨를 움츠렸다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스팍이 입을 열었다. 


일어나십시오. 


커크는 벌떡 일어났지만, 한 손으로 자신의 다른쪽 팔을 세게 부여잡고 있었다. 아직도 고치지 못한 버릇이었다. 커크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팔 놓으십시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그런 말투를 사용하지 말라고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스팍의 잔소리를 듣고 커크가 힘들게 침을 삼켰다. 꿀꺽, 하고 목울대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그는 슬그머니 손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내가 잘못...했어. 


다가온 스팍의 차가운 손이 커크의 머리칼을 스쳤다. 커크는 겁먹은 표정으로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안대가 다시 검은 눈을 가렸고, 커크는 얌전히 스팍이 매듭을 짓길 기다렸다. 


하지만 스팍은 한참 동안 그 상태를 유지했다. 커크의 머리 뒤에 손을 댄 채 움직임을 멈춘 것이었다. 조용히 있던 커크가 의아함을 느낄 때쯤, 스팍의 손이 커크의 뒷목을 쓸어내렸다. 그 손길에 커크는 저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다. 


당신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겁니까? 
아까, 의사 선생님에게 말한.... 
아니오. 여기에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닥터 맥코이는 그동안의 과로로 인해 쓰러진 것 같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 응. 


뒤늦은 대답이 이어졌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커크는 가만히 바지를 쥐었다가 놓았다. 짧은 혼란이 끝을 고했다. 


스팍은 긴 손가락으로 커크의 이마와, 눈가의 흉터와, 안대를 차례로 쓸었다. 사실 손은 벌컨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했다. 피부 접촉으로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그들에게 섬세하기 그지없는 손은 애정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였던 것이다. 엄지손가락이 커크의 턱에 닿았고 그의 검지와 중지는 커크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안착했다. 마인드 멜드를 위한 준비였다. 커크는 스팍에게 몸을 맡기듯 눈을 감았다. 스팍은 예전에도 커크에게 마인드 멜드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시도했다는 말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과 동일했다. 스팍은 지금의 커크에게 자신이 갖고있는 예전의 커크에 대한 지식을 주기 위해서 마인드 멜드를 고려했고, 시작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하지는 못했다. 지금처럼. 스팍은 손을 내려 커크의 어깨를 잡았다. 커크가 감정 없는 얼굴로 그를 마주 보았다. 만약 마인드 멜드를 한다면 커크는 그 생생한 정보(마인드 멜드를 통해 두 사람은 과거의 기억과 생각, 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다)를 바탕으로 보다 완벽히 커크를 재현해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스팍은 차마 그것을 행하지 못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사소했다. 스팍은 마인드 멜드를 함으로써 지금의 커크가 살아온 삶을, 그리고 그의 마음과 생각을 알게 될까 두려웠다. 스팍에게 지금의 커크란 그저 원래의 커크를 대리하는 존재였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스팍은 그와 그 이상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를 데려다주고 오겠습니다. 


스팍은 커크에게서 물러섰다. 그리고 기절한 맥코이를 손쉽게 들어올렸다. 맥코이는 스팍의 어깨 위에서 맥없이 흔들렸다. 그가 문을 나서기 직전, 커크가 그를 불렀다. 


잠깐만. 


말라붙은 목이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커크는 몇 번 헛기침을 했다. 미안. 스팍. 스팍이 그의 말을 기다리며 그대로 서 있자 커크가 말을 이었다. 


데리고 나가지 않아도 돼. 
...무슨 의미입니까? 
일어나면 물어볼 게 있어. 
제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꼭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별로 중요한 건 아냐. 나 믿지? 


커크가 밝은 얼굴로 물었다. 스팍은 입을 닫았다. 단조롭던 그의 얼굴에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스팍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그조차 커크의 의도를 유추할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예전 동료일 뿐이잖아. 그치? 


그러니까, 응? 커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재차 졸랐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커크의 흉내를 내는 그가 놀라울 정도였다. 이어진 재촉에 스팍은 마지못해 수긍했다. 자리를 비워달라는 부탁에도 동의해야 했다. 


어째선지 스팍은 그에게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마치 예전에 제임스 커크를 이길 수 없었던 것처럼. 머리로는 분명 그가 진짜 커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게다가 자신의 계획에 의해 그가 커크가 된 것이었지만, 스팍은 자가당착적인 모순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고마워. 스팍. 


커크는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마냥 해사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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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이(가) 치트키를 사용했다!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