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 vs 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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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은 맥코이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과 커크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 것이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스팍은 맥코이에게 말하지 않은, 커크의 신체 상태에 대한 또다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말하지 못한 것은 스팍을 쫓아낸 맥코이 그 자신의 탓이었다. 


스팍은 맥코이를 통해서가 아닌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제대한 맥코이와 달리 스팍은 여전히 스타플릿 소속이었고, 대령이었으며, 권한을 사용하는 법을 알았다. 병원 입구를 나온 스팍은 금세 인파 틈에 섞여들어갔다. 


사무실 창문으로 스팍을 지켜보던 맥코이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시 버티칼을 돌렸다. 책상위를 정리하는 그의 손이 분주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크였다. 맥코이는 스팍이 '갑작스런 노화 반응 혹은 기관 정지'가 올지 모른다고 말한 것을 떠올렸다. 또한 커크에게 남은,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음을 기억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커크가 시력을 잃어버리거나 심장이 멈춰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맥코이는 커크가 홀로 죽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커크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그렇게 또다시 무력하게 커크를 잃어버린다면 아마도 맥코이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기에. 



다녀오셨어요. 


여느 때처럼 커크가 거실에서 그를 맞이했다. 맥코이는 아무 말 없이 커크를 바라보았다. 다소 부스스한 더티 블론드, 검은 눈자위, 파란 눈동자. (게다 그의 머리는 자신이 직접 손질해준 것이기도 했다) 어떻게 만들어졌든지간에 그는 커크였다. 자신의 새로운 짐 커크였다. 우주가 우연히 만들어낸 장난감이 아니라 특정 존재가 의도를 담아 만든 피조물이었다. 맥코이의 눈길에 동정과 연민과 애정이 어렸다. 커크는 맥코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고개를 갸웃하며 반복했다. 


다녀오셨어요?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맥코이가 커크를 끌어당겨 안았다. 커크는 그의 팔에 안긴 채 눈을 크게 떴다.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소리 없는 질문을 던졌다. 두 팔이 갈 곳을 모르고 허공을 저었다. 


쉬, 맥코이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커크는 손을 늘어뜨리고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커크는 맥코이의 표정을 읽었다. 어떤 의미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말을 중얼거렸다. 맥코이에겐 그것마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짐, 지미, 속으로 거듭 부르며 맥코이가 커크의 얼굴을 매만졌다. 조각품을 만지듯 섬세한 손짓으로 커크의 이마와 아미를 덧그렸다. 피부는 거칠었지만 따스했다. 커크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고, 맥코이는 커크의 볼을 그의 큰 손으로 감쌌다. 마침내 커크의 벌어진 입과 맥코이의 입술이 맞닿았다. 



그 날, 그 사건 이후 스팍은 변했다. 그는 자신이 감정과 이성 모두 제대로 다룰 수 없음을 통감했다. 깨달음을 얻은 스팍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뉴벌컨에 가서 약식으로 콜리나르를 치르는 일이었다. 그것은 감정을 한 개체에서 절제해내는 벌컨의 전통 의식 중 하나였다. 기실은 감정을 내부에 더 깊이 파묻는 과정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그것을 치른 벌컨만이 진정한 벌컨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다른 우주의 스팍은 그것에 반대했다. 당신은 콜리나르를 치르지 않았냐는 스팍의 질문에 그는 침묵했다. 이유가 어떤 것이든 그가 콜리나르를 치르지 않았음은 분명했다. 그래서 스팍은 또다른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의식을 치른 후에야 스팍은 훨씬 더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그 커크'에 대해서 사고할 수 있었다. 그가 커크든 아니든 자신이 저지른 일은 분명 비이성적인 일이었고, 그래서 스팍은 그것을 사과하고자 했다. 그래야만 이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임무 중 실종'된 제임스 커크와 동일한 외모를 갖고 있었으나 그와 실질적으로 동등한 개체는 아니었다. 


한편 맥코이의 의뢰는 돌고돌아 스팍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졌다. 지구 내에서라면 가히 최고의 과학 지식과 분석 능력을 지니고 있는 벌컨(대부분의 벌컨이 뉴벌컨으로 이주한 상황에서 지구에 거주하는 벌컨족은 스팍이 유일했다)에게 그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한동안 연락을 받지 않는 맥코이 때문에 고민하던 스팍에게 커크의 검사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를 자극했다. 그 결과 스팍은 커크의 검사 자료를 토대로 대부분의 실험에 참여했다. 


닥터 레너드 맥코이의 개인 의뢰였기에 분석에 참여한 다수의 과학자와 의사들은 피분석자가 제임스 커크라는 사실조차 몰랐지만, 스팍은 알았다. 그는 명실상부한 관계자였다. 엔터프라이즈의 5년 탐사 임무가 종료된 후, 정식으로 스타플릿으로부터 제임스 커크의 보호자로 승인받은 남자였다. 


그 날, 맥코이가 구두 합의 하에 (더불어 스팍의 직접적인 요청도 있었다) 커크의 신병을 인수해 데려갔더라도 기록상 커크를 돌볼 자격이 있는 것은 스팍이었다. 비록 그가 커크가 아니라 해도, 그를 보호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는 자신이란 뜻이었다. 또한 콜리나르를 완료한 지금은 그를 이성적으로 대할 자신도 있었다. 


스팍은 맥코이가 개인적인 감정에 휩싸여 커크를 내주지 않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 또한 상실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커크가 아닌 자를 커크로 여기며 자기위안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스팍은 생각했다. 이는 병원에서 날을 세우는 맥코이를 본 이후 더욱 굳어졌다. 
물론 사실과 크게 다르지도 않은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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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ㅈ님께 커미션 드렸는데 요로코롬 너무너무 이쁜 커크가 왔습니다!!!! (주먹울음)

 

정작 14화 본편에는 커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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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에서 커크를 데려온 이후로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었지만, 맥코이는 스팍이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그 일이 있었던, 그 날로부터는 별로 긴 시간도 지나지 않은 터였다. 그러니까, 겨우 두 달 남짓. 맥코이는 숫제 으르렁거리며 스팍을 경계했다.


다시는 나나 짐을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스팍은 뒷짐을 진 채 마찬가지로 쌀쌀맞게 대꾸했다.


가장 안전하고 정확한 방법으로 검사 결과를 운반하라고 요구한 건 그쪽이야. 닥터.
그래서 네가 왔다? 웃기지도 않는군. 결과 내놓고 당장 여기서 나가주겠어?


맥코이는 스팍이 빈손으로 왔음을 알아차렸고, 스팍은 손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그 의미를 알아챈 맥코이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미리 예측하지 못한 본인의 불찰이었다. 차라리 페이퍼로, 아니, 직접 가지러 갔어야 했다. 끝까지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원본은 파기했어. 전부 내가 기억하고 있지.
젠장(Dammit).


여전히 재수없는 녀석이라고, 맥코이가 진심을 담아 투덜거렸다. 동시에 짐짓 손을 뻗어 모니터를 껐다. 자신의 커크를 스팍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스팍은 꼿꼿이 선 채 말을 이었다.


아마 예상하고 있겠지만 그 자- 제임스 티베리우스 커크의 신체를 가진 자는 우리가 찾던 짐 커크가 아니야.
...무슨 뜻이야.


맥코이가 이를 지긋이 악물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오히려 확실하게 듣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그가 커크든 커크가 아니든 오직 하나의 진실을.


방사성 동위 원소 붕괴 정도로 신체의 연대를 측정했고, 그의 몸에 있는 장기들이 저마다 그 연대가 다른 것을 확인했어.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게 왜?
분석 결과 그건 모두 제임스 커크의 것이었어. 닥터 맥코이, 한 개체의 세포와 기관이 다른 속도로 노화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맥코이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때아닌 갈증에 책상 위에 있던 물컵에 저절로 손이 가려 했지만, 참았다.


불가능하지. 그래서 장기매매 암시장을 뒤졌잖아. 어떤 놈이 어떻게 바꿔치기를 했는지 기록을 찾아내려고-
맥코이. 나는 방금 그의 모든 기관을 구성하는 세포가 제임스 커크의 체세포와 동일하다고 말했어.
그러니까 내 말도....... 잠깐. 그건 불가능해.


맥코이가 얼굴을 굳혔다. 스팍은 담담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 우주에 동일한 개체가 하나 이상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알고 있지.
뭐?
두 명의 나.


스팍이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게 말했다. 두 명의 스팍. 다른 우주의 스팍. 다른 시간대의 스팍.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커크. 하지만 분명 커크이면서 커크가 아닌 커크.
마침내 두 사실을 연결지은 맥코이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모든 장기는 제임스 커크의 것. 하지만 연령대가 다르다. 그 의미는-.


여러 명의 제임스 커크.......
그것도 각기 다른 나이의.
맙소사.


맥코이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천천히 부서진 파편들이 모여 특정한 하나의 사실을 만들어냈다. 맥코이는 그제서야 커크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집에 있는 커크는 한 명의 커크이면서, 한 명이 아니었다. 타인의 피와 살로 만들어진 괴물, 프랑켄슈타인처럼 여러 인간의 피와 살과 기관들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리고 그 여러 인간이 바로 평행 우주의 제임스 커크들이었다.


감히 그런 시도를 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아니, 그 생각을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인간으로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발상을 할 수 있지? 그것은 그 자체로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었다. 물론 맥코이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의사로서 그 비윤리적인 시도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 만들어졌다는 게 그런 의미였던 거야?


커크는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것은 비유나 완곡한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였던 것이다. 그는 '만들어진' 존재였다. 어디에도 없으며, 그 자체로 커크이면서 커크가 아닌 존재.


그를 만든 그의 창조주는, 스팍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대체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는지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의 창조주는 분명 고차원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졌으리라 예상돼. 또한 현존하는 기술로는 불가능한 결과물이니 사용된 기술 또한 미래의 기술이리라 추정한다.
칸은 어때? 그것도 칸의 손자의 손자쯤 되는 놈일지도 모르지.


맥코이가 비꼬았다. 스팍은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것까진 예측할 수 없어. 하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추론이군.
젠장, 스팍!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맥코이가 책상을 내려쳤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커크에게, 짐한테 그 사실을-
그를 커크라 지칭하기엔 무리가 있어. '커크들'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지.


맥코이는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스팍은 공기 중에 흐르는 감정의 기류로 그의 심기가 불편함을 알았지만, 하려던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또한 검사 결과에 따르면 그의 신체에서 돌발적인 노화 반응 혹은 기관 정지가 발생할 가능성이 75%이상이야. 따라서 그를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시설에 거주하게 하고, 이 사실에 대해 그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어.


불만스럽게 책상을 두들기던 맥코이의 손이 멈췄다. 그는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짧게 선언했다.


주치의는 나야. 내가 결정해.


스팍도 지지 않았다.


닥터 맥코이. 나는 스타플릿 소속 과학장교이자 현 엔터프라이즈 함장으로써 전 함장인 제임스 T. 커크에 대한 충분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내 행동을 막는다면 스타플릿에 대한 비협조적인 태도, 주요 인물에 대한 허가받지 않은 보호 관찰 시행을 이유로 정식 고소장이 접수될 거야. 그것을 원하나?
날 군부 법정에 세우려면 네가 커크에게 한 짓에 대한 변명거리부터 생각해둬야 할 거야. 죄목은 심플해. 강간이라고, 들어는 봤지? 초록피가 흐르는 고블린 동네에도 그런 단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팍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맥코이는 기세를 몰아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심술궂게 웃었다.


이제 볼일 끝났으면 나가주시죠. 써(Sir).

 

 

 

Posted by 카레우유 :

보고 싶은 장면이 많음 -> 한 화에 우겨넣음 -> 전개가 들쭉날쭉; 

퇴고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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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가 처음으로 뭔가를 요구했다. 맥코이는 그 사실에 감동하면서도 그 내용에 전율했다. 커크는 맥코이를 끌어안고 가슴에 볼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안아줘요. 


맥코이는 미약하게 몸을 떨었다.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동상처럼 굳어있는 맥코이의 허벅지를 커크가 천천히 쓸어올렸다. 


내 말 듣고 있어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커크의 말대로 그와 잔다면, 자신과 스팍이 결국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몸은 그를 원했다. 그를 잃었던 시간만큼 더욱더 그를 원했다. 되찾은 그를 안고 싶었다. 어쩌면, 스팍에게 크게 화를 냈던 것도 자신이 가질 수 없던 것을 그가 먼저 가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신뢰의 대가가 섹스라니, 농담이라면 잔인한 농담이었다. 참을 수 없을만큼 가볍고 지독한 장난. 제임스 커크 그 자체였다. 맥코이는 선택을 해야만 했고, 그 선택은 아마 지금까지 해온 것 중에 가장 큰 무게를 가지게 될 터였다. 
슬금슬금 다가오던 커크의 손이 사타구니를 스쳤을 때, 맥코이는 결심을 내렸다. 그는 커크를 밀어내고 벌떡 일어섰다. 

이건 아니야. 

확신보다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말을 되내며, 맥코이가 물러났다. 커크는 미미하게 상처받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가지 마세요. 
잠깐 바람 쐬고 올게. 먼저 자. 알았지? 
가지 마세요. 
금방 올 거야. 걱정말고. 
가지 마세요. 
다녀올게. 

아귀가 맞지않아 삐그덕대는 퍼즐 조각처럼 두 사람의 대화도 기묘한 방식으로 어긋났다. 그것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질주하는 자동차였다. 달리면 달릴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거리가 벌어지기만 하는 무한의 두 직선이었다. 

맥코이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멀리 갈 수도 없었다. 만약 커크가 집을 나간다면 붙잡아야만 했다. 맥코이는 촌스러운 빛을 점점이 뿌리는 가로등에 기대어 이마를 짚었다. 

술이 고팠다. 



맥코이는 날이 밝은 뒤에야 집에 들어갔다. 커크는 보이지 않았지만, 식탁에 차려진 단촐한 아침이 커크가 아직 집 안에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맥코이는 반쯤 안도하고 반쯤 후회했다. 무난해 보이던 관계는 껍질을 벗겨내고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허상이었다. 원점이었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사람들은 여러가지 반응을 보인다. 문제에 덤벼들어 부딪치거나, 문제를 못 본 척 외면하거나, 혹은 문제로부터 도망치거나. 다수의 사람들이 양 극단을 피해 중도를 택한다. 과거를 덮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넓은 길이었고, 쉬운 길이었다. 맥코이 또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침 고마워. 

맥코이가 식사를 마치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문을 반쯤 열어둔 커크의 귀에까지 들리도록. 

다녀올게. 

대답은 없었다. 맥코이는 커크를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그가 혼자 잘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때보다도 더 마음이 무거운 이유를, 맥코이는 부러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미적지근하게, 또는 아슬아슬하게 하루가 지나갔다. 하루, 이틀, 사흘. 커크는 다시 그 일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맥코이 또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커크와 맥코이는 금요일마다 외식을 했고 토요일마다 장을 봤다. 커크는 가구도 많지 않은 집을 매일 깨끗이 청소했다. 빨래와 아침 준비 또한 커크의 몫이었다. 맥코이는 커크가 하는 일에 한 번도 토를 달지 않았다. 서로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게 자신들의 해야 하는 일인 양 굴었다. 

눈 때문에 이발하러 갈 수 없는 커크를 위해 맥코이는 손수 가위를 잡기까지 했다. 제딴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커크의 머리는 들쭉날쭉해졌다. 맥코이는 미안하다고 말했고 커크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맥코이는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커크는 맥코이의 면도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맥코이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은 면도마저 그에게 맡겨버렸다. 커크는 칼을 쓰는 구식 방법 외에는 몰랐고 맥코이는 몇 번이고 칼을 소독한 후에야 사용을 허락했다. 몇 번 면도기의 사용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밤마다 하얀 거품에 젖은 커크의 손이 맥코이의 턱을 매만졌다. 서늘한 칼날이 느긋하게 입가를 노니는 것을 느끼고 있노라면, 맥코이는 그대로 커크의 손에 입을 맞추고 싶어지는 마음을 참아야만 했다. 



오늘은 커크의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맥코이는 병원에서 그것을 혼자 볼 생각이었다. 


오후 7시. 맥코이는 일을 마무리하고 검사결과를 가져온다는 사람을 기다렸다. 정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죠. 

맥코이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모니터에 못박혀 있었다. 화면 속의 커크는 침실을 정돈하고 있었고, 맥코이는 그런 커크를 지켜보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때문에 들어온 사람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닥터 맥코이. 

팽팽한 실처럼 높은 톤. 그 목소리를 알아들은 맥코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스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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