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코이는 스팍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대해 아주, 매우, 굉장히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한 가지- 크루들에 관해서는 그와 의견을 같이했다. 


엔터프라이즈의 크루들에게는 커크의 상태를 알리지 말자.


이는 자신들만 비밀을 간직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사람들을 진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시행한 조치였다. 스팍과 맥코이는 자신들이 커크를 잃고 고통스러워한 것과 마찬가지로 크루들이 어떻게 가슴아파하는지를 보았다. 특히나 맥코이는 지금의 커크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결국 그는 모든 크루들에게 줄 부담을 홀로 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 이상 슬퍼할 이유가 없었다. 또다른 슬픔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제임스 커크가 돌아왔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된다. 맥코이는 그렇게 여겼다. 


스팍 또한 이에 동의했다. 맥코이와는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스팍은 임무가 종료되는 와중에 크루들에게 불필요한 감정적 충격을 줄 필요가 없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커크의 몸 상태가 최악이라든지 그가 기억이 전혀 없다든지 하는 자세한 내용은 맥코이와 스팍만 알고 있었다. 당시 크루들에게 전달된 내용은 짧았다. 


제임스 T. 커크 함장은 트랜스포터 오작동으로 다른 우주에 갇혀있다가 돌아왔다. 건강상의 이유로 그는 함장직을 사임한다. 


돌아온 커크는 메디컬 베이의 특수실에 격리되어 있었고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맥코이, 그리고 스팍뿐이었다. 커크에 대해 신비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무성한 소문이 퍼졌던 것은 그래서였다. 엔터프라이즈의 전 크루 중 누구도 돌아온 커크와 대화하거나 그를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들이 커크를 만나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치의인 맥코이의 허가 하에 커크는 제대 후 일신을 스팍에게 의탁했고 따라서 스팍이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브릿지 멤버 중 일부는, 특히 우후라를 필두로 한 몇 명은 단체로 스팍을 찾아가기까지 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레너드 맥코이라면, 최소한 피도 눈물도 없는 벌컨은 아니지 않은가. 크루들이 마지막으로 맥코이를 찾아갔을 때 그는 모든 권한을 스팍에게 넘겼다는 이유로 그들의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맥코이가 먼저 도움을 요청했고, 크루들이 이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연락을 받은 술루가 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저녁 무렵이었다. 자신이 부순 것을 대신해 최신형 통신기를 사주기로 약속한 맥코이는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고, 언제 왔는지 스콧까지 책상 위에 앉아 체코프와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이렇게 모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는데요. 
한 백 년쯤 됐제? 


술루가 들어서자 스콧이 농을 던졌다. 오 개월 정도 되오씀니다! 체코프도 끼어 작은 사무실 안이 왁자지껄해졌다. 맥코이는 이에 낄 생각이 없어 그저 잠자코 있었다. 한동안 사는 얘기를 주고받던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맥코이를 돌아보았다. 


긍까, 이렇게 정예 부대를 불러제낀 이유가 뭐요 의사양반. 역시 그거요? 


스콧은 특정 단어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체코프와 술루는 이해했는지 시선을 주고받았다. 맥코이는 팔짱을 낀 채로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스팍이 짐을 데리고 있어. 그건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이지. 한 달 전에는 정비소에 있는 엔터프라이즈에 들어가기까지 했고. 


스콧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멀리서 봤소. 짐보가 그 노오란 셔츠를 입고 브릿지에 들어가시더라고. 허, 증말 눈물나는 줄 알았다니깐. 내가 달려가려 했는데-


맥코이는 길게 이어지려는 스콧의 말을 제지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몇 주 동안이나 짐이나 스팍을 보지 못했어. 스팍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좀 했었거든...어쨌거나. 그 후 체코프는 스팍이 자택근무로 전환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최근 스팍이 자택에 들어간 기록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도 알아냈지. 나는 직접 가봤었는데, 스팍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어. 


맥코이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그럼 스팍과 짐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몇 가지 사실을 제외했지만 결정적인 이야기들은 충분히 전달된, 맥코이의 브리핑이 끝나자 체코프와 스콧이 눈을 깜빡이며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거기서 막힌 상태였다. 스팍이 있는 곳을 찾는다면, 그곳에 커크도 있을 텐데. 맥코이마저 인상을 풀지 않는 가운데 술루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질문에는 제가 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후라는 우주에 있어 그들의 작전에 함께하지 못했고, 캐롤 또한 출장 때문에 자리를 비운 터라 그들에게 응원 메세지만을 전해왔다. 


짐에게 안부 전해줘요. 
제 안부도요. 
염려 딴딴히 붙들어 매라굽쇼. 


스콧이 가슴을 팡팡 쳐 보였다. 우후라와 캐롤이 통신을 종료하자 스콧이 호버링 카 뒷자석을 돌아보았다. 키보드를 두들기던 체코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잘 들리쇼? 


스콧의 질문에 술루와 맥코이가 차례로 답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깨끗하게 잘 들립니다. 
잘 들려. 


체코프와 스콧은 스타플릿 메디컬 센터 지하주차장에 주차한 호버링 카에 있었고 술루와 맥코이는 센터 내부에 있었다. 스콧은 모니터링을, 체코프는 해킹을, 술루는 작전 지휘와 스팍 블로킹을, 맥코이는 커크를 찾는 역할을 맡았다. 


기억하시죠? 제가 스팍 대령님을 붙들고 시간을 끌테니 닥터는 그 사이에 먼저- 
그 설명만 다섯 번째야! 


술루의 말에 맥코이가 투덜거림으로 답했다. 술루는 지난번의 경험을 토대로 스팍이 센터 로비 대신 뒷문을 이용할 거라 예상했고 그것은 적중했다. 스콧이 속삭이듯 외쳤다. 


주인공 오셨수! 


알고보니 스팍은 개인 차량이나 대중교통 대신 무료 셔틀만을 이용했다. 탑승 기록이 남지 않는 유일한 교통 수단이었다. 또한 맥코이를 비롯한 크루들이 스팍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스팍은 셔틀에서 내려 잠깐 주변을 살피고는 센터 뒷문으로 들어왔다. 모니터를 주시하던 스콧이 고개를 들어 창문으로 스팍을 확인했다. 그는 주차장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직원용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 


움직여, 움직여! 


스콧의 재촉에 술루가 비상계단에서 튀어나갔다. 술루를 알아본 스팍은 멈칫했고 그 틈에 술루가 인사를 건네며 웃었다. 본격적인 작전 시작이었다. 


또 뵙네요. 





사실 이 소설의 장르는 첩보 액션 스릴러 입니다 


Posted by 카레우유 :

한편 레너드 맥코이는 백방으로 커크와 스팍을 찾고 있었다. 군의관을 때려치고 나온 맥코이로서는 다시 스타플릿 소재의 건물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고, 스팍은 이를테면 군부의 권력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철통같은 시스템의 보안을 뚫을 능력이 맥코이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해낼 사람을 알았다. 


구로니까 스팍 부함댱님- 아니 대령님께서 일하시눈 곳만 찾으묜 되죠? 구론 고죠? 
그렇다니까. 
저도 지굼은 아까데미 소속이라 들키묜 안 돼요. 구나저나 왜 구걸 찾으시눈 고에요? 
그게....... 


맥코이가 말을 골랐다. 


사소한 말다툼을 했는데, 나한테 단단히 삐졌는지 내 연락은 죽어도 안 받아. 그 몹쓸 빌어먹을 못되처먹은 냉혈동물 파충류가. 


다채로운 욕설을 듣고 체코프가 멋쩍게 웃었다. 


두 분께소 싸우시돈 게 어디 하루이뜰인가요. 구롬 다른 사람 통신기로 욘락해 붜시눈 건 오때요? 


맥코이가 잠잠해졌다. 체코프는 터치 키보드를 치다 말고 옆을 돌아보았다. 


독또르? 
넌 정말 천재야, 꼬마. 전화 좀 빌릴게. 


맥코이가 그의 통신기를 낚아챘다. 체코프는 당황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독또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찾아놔! 
구치만...! 독또르 맥꼬이! 


체코프는 닫힌 문을 쳐다보며 허탈하게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주시하고 한숨을 쉬었다. 느릿한 표정과 대비되게 키보드 위의 손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 분 다 죵말 제멋대로라니까....... 



스팍은 파벨 체코프 교수로부터 연락이 온 것을 보고 잠시 고민했다. 그는 커크의 개인실에서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아무리 추론해봐도 그가 개인적으로, 그것도 먼저 자신에게 연락해올 일은 없었다. 업무적으로 스타플릿 아카데미에 자신을 초청한다거나 세미나 연락이 아닌 이상은.

 
아니, 그런 경우에도 그가 아닌 담당 교직원이 연락을 할 터다. 스팍은 체코프가 연락할 이유란 얼마 전 술루가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제임스 커크에 대한 것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잠시 외출하겠습니다. 
다녀와. 


커크는 잡고있던 책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맥코이의 집에 있던 것과 동일한 아날로그형 장서였다. 스타플릿 규약집이라거나 우주 외교 분쟁에 관한 판례집, 외계생물학 등 재미없는 책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커크는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완벽한 커크가 되기 위해 그것들을 탐독했다. 


그럼. 스팍은 짧게 목례하고 개인실을 나섰다. 그리고 커크가 들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곳까지 멀어진 후에야 연락을 받았다. 


스팍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체코프 교-. 
야 이 개자식아!! 


연락을 받자마자 터져나오는 노호성에 스팍은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 발달된 청각을 지닌 벌컨에게 큰 소리는 그 자체로 고문이었다. 스팍은 통신기를 자신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욕설이 쏟아져서, 스팍은 이 장소가 밀폐된 복도라는 데 매우 감사했다. (메디컬 센터의 꼭대기층에는 커크의 개인실 하나밖에 없었으며, 일정 계급 이하는 들어올 수 없는 등 엄중한 보안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게 커크를 데려가면 모를 줄 알았냐는 둥, 허락도 없이 집에 들어왔으니 고소하겠다는 둥, 당장 튀어나오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는 둥 다양한 협박과 으름장과 욕설이 이어졌다. 스팍이 즉시 연락을 끊지 않은 이유는 인내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런 맥코이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스팍은 묵묵히 기다리다가 맥코이의 목소리가 잦아들었을 때에야 통신기를 원위치에 두었다. 


용무가 끝났다면 통신을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닥터 맥코이. 


아카데미 건물을 나와 교정에 서 있던 맥코이는 다시 분을 참지 못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주변을 지나가던 생도들과 교관 몇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야!! 지금까지 얘기한 거 어디로 들었어?! 귀는 큰데 왜 사람 말을 못 알아먹어?? 


제 종족을 비하하는 발언과 제 인격을 모독하는 당신의 언급을 10분 동안 경청했습니다. 이것으로 당신이 연락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이라 사료되는 바입니다. 또한 타인의 통신기로 연락하는 행위는 삼가주시면 고맙겠군요. 그럼 이만. 
스팍!! 젠장, 스팍!! 끊지 마, 빌어먹을, 끊지 말라고!! 제발!! 


맥코이는 숫제 땀을 흘리며 통신기를 붙들고 매달렸다. 워낙 소리를 지른 탓에 (그리고 스타플릿에 소속된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을 거리낌없이 불러제낀 탓에) 맥코이는 사람이 뜸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잠시 동안 스팍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맥코이는 거의 절망했다. 그는 통신기를 부여잡고 애타게 요청했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스팍. 끊지 마. 
용무를 말씀하시죠. 


스팍의 딱딱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운 적이 없었다. 맥코이는 심호흡을 하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어쨌거나 현재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스팍이 아닌가. 맥코이는 두 손으로 소중히 통신기를 쥐었다. 긴장감에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짐.... 너랑 있어? 


스팍은 뜸을 들였다. 맥코이에게는 천추보다 긴 5초였다. 


부정합니다. 


순간 맥코이는 통신기를 던져버리고 욕을 내뱉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내가, 봤어. 감시 카메라로 네가 내 집에 들어왔던 걸 봤다고. 그리고 다음날 그가 사라졌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다섯 살짜리 꼬마라도 알아! 


결국 맥코이의 언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스팍은 평온하게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우리의' 제임스 T. 커크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긍정합니다. 당신의 집에 있던 자는 사라졌지만 제임스 커크라면 제 근처에 있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빌어먹을 헛소리야? 


맥코이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쳤다. 스팍은 더없이 냉정하게 답했다. 


조만간 알게 될 겁니다. 
젠장, 내가 알아듣게 설명- 


뚝. 
더 이상의 대화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스팍은 그대로 연락을 종료했다. 


덕분에 맥코이는 학생 시절 이후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던 상스러운 말을 마음껏 쏟아냈고, 이번에야말로 있는 힘껏 통신기를 벽에 집어던졌다. 



-



퇴고할 시간도 업서ㅠㅠ 학어ㅜㄴ 컴으로 몰래몰래올리는중



Posted by 카레우유 :



스팍과 지낸 지 일주일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커크는 날짜를 헤아리다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오늘 의사 선생님 와? 

PADD위를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책상에 앉아있던 스팍은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의료 등급이 있는 제가 대신 당신의 신체 상태를 체크할 겁니다. 
그렇구나. 

커크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커크는 손으로 한쪽 팔을 만지작거리며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그 반응이 어딘가, 스팍 내면의 불편함을 야기했다. 그 모습을 본 스팍은 PADD를 내려놓고 커크 앞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커크. 
응? 
닥터 레너드 맥코이를 보고 싶습니까? 
응. 
제가 말씀드린 것들 전부 기억하십니까? 
응. 

커크는 어느새 자신의 팔을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가락의 핏기가 사라져 하얗게 된 채였다. 이를 눈치챈 스팍이 팔을 뻗어 그의 손을 떼어놓았다. 


그만하세요. 혈액순환이 안 됩니다. 


커크는 아, 하고 그제야 손에 힘을 풀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스팍은 그 와중에 살짝 스친 커크의 피부에서 밀려들어오는 공백의 감정을 느꼈다. 즉,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맛이 썼다. 

스팍이 짧은 한숨을 뱉었다. 무언가 해야만 했다. 해야만 할 일이 있는데, 스팍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찬찬히 기억을 떠올렸다. 


일전, 당신이 제게 제임스 커크가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응. 

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기억하십니까? 
'응'이라고 했어. 

커크가 단조롭게 대답했다. 스팍은 자신이 필요 이상의 말을 하고 있다고 인식했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제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커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단순히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짐은 존경하는 친구이자 사랑하는 형제였습니다. 그는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알았고, 제게 놀라운 세계를 알려준 사람이었습니다. 무모하지만 용감했고 가벼웠지만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스팍은 커크가 아닌 그 앞에서 차곡차곡 진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당사자에게 진심을 고할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만, 지금 이 기회, 이것이라도 놓친다면 앞으로 다시는 말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말하지 않은 생각은 마음 한 켠에서 먼지에 파묻히다 종래는 잊혀지고 말 것이었다. 보내지 못한 편지와 하지 못한 말들처럼. 끝끝내 수신자를 잃고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것들처럼. 

그의 전략은 천재적이었고, 그의 말은 다정했습니다. 지구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인간적인 영웅. 고고한 우주의 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제임스 티베리우스 커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 
그리고 당신은 절대 그가 될 수 없습니다. 


커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스팍 또한 그의 무반응에 더이상 개의치 않았다. 

과거에 제가 감정적으로 행동했던 일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그런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에, 당신이 감히 그를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에 감정의 영역을 해결할 수 없었던 겁니다. 지금은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모두 제거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럼, 


커크가 운을 뗐다. 커크는 자신의 팔 대신 환자복을 움켜쥐고 있었다. 또다시 무의식적으로 취해진 행동이었다. 즉, 일종의 습관이었다. 스팍은 그것을 다시금 그것을 지적하려다 입을 그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럼 왜 지금은 내가 그를 흉내내길 원해?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를 위해서인데? 
저와 당신을 제외한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커크는 이해하지 못했다. 스팍은 부연했다. 

당신이 지금 세계로 나간다면 다른 사람들은 제임스 커크를 당신으로 기억하겠죠. 백지 상태의 무능력한, 죽어가는 인간. 저는 제임스 커크가 그렇게 기억되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최후 또한 명예롭게 역사에 기록되길 원합니다. 
내가 사라지길 원하는구나. 커크가 중얼거렸다. 
10913이라는 사람은 저와 닥터 맥코이만 알고 있으니까요. 셋 중의 한 사람이 발설하지 않는 한 그 사실이 밝혀질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제임스 커크로서 살아가면 됩니다. 


스팍이 강조했다.


죽을 때까지. 


커크의 손에 힘이 풀렸다. 잔뜩 구겨졌던 환자복이 그제야 제 모습을 찾아가려 시도했다. 하지만 세게 접혀 생긴 주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이미 발생한 일을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지극히 단순한 논리구조였다. 커크는 죽었고, 자신은 그 커크가 아니며, 스팍은 그가 커크가 되기를 바랐다. 따라서 커크는 결론을 내렸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그렇게 할게. 



-



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