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밖으로 나가던 스팍은 로비에서 술루와 마주쳤다. 


스팍 대령님. 
대위. 


엔터프라이즈의 5년 임무 종료 후 그들은 각기 한 계급씩 승진했다. 커크 실종 이후 무사히 함선과 크루들을 이끌어 탐사를 마친 것에 대한 상급이었다. 그 이후 엔터프라이즈의 일원들은 제각기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지상직을 선택한 술루, 스타플릿에서 교편을 잡은 체코프를 비롯하여 다른 함선에 탄 우후라, 엔터프라이즈에 남은 스코티, 제대하고 병원으로 돌아간 맥코이 등 구심점을 상실한 이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스팍 혼자 커크를 잃은 게 아니었다. 그들 모두, 그리고 스타플릿과 지구 또한 제임스 커크를 잃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긍정하지. 
여긴 어쩐 일로.... 

반가운 표정을 지었던 술루는 스스로 답을 찾은 듯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이를 눈치챈 스팍은 로비 대신 뒷문을 이용할 것을, 하고 5초 간 후회했다. 

함장님, 아니, 미스터 커크가 여기 있군요. 
내가 귀관에게 대답할 의무는 없어. 

술루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대령님. 단지 추측했지요. 
근거 없는 추측은 삼가도록. 귀관은 왜 이곳에 왔지? 
여동생이 여기 있습니다. 

술루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입을 다물었다. 스팍은 그럼, 하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술루가 그를 붙들었다. 

대령님. 그가 무사한 것 맞습니까? 우리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바로 은퇴하다니 짐이 그럴리가 없어요. 물론 몸이 안 좋다고 들었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모습이라도 보여주셨어야죠. 지금은 정말 그가 살아있는지조차- 
귀관이 상관할 문제가 아냐. 

스팍이 냉막하게 뿌리쳤다. 술루는 얼굴을 굳혔다. 

스타플릿에 모셔온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엔터프라이즈에 들어갔었다고. 그런데 어째서 저희들은 그를 만날 수 없는 겁니까? 
크루들을 보지 못하게 한 건 닥터의 권고였어. 그에게 더 충격을 주지 않고자 하는. 
왜 저희를 만나는 것이 충격이라는 거죠? 


스팍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실 그 충격이란, 정확히 말하면 그의 충격이 아니라 크루들이 받을 충격이었다. 맥코이는 커크가 아닌 커크를 보게 될 크루들의 반응을 걱정했다. 스팍조차 한때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것을 보면, 그의 우려는 신빙성이 있었던 셈이다. 그들에게 지금의 커크는 감당하기 버거운 존재였다. 

나는 그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해. 

스팍은 그 말만 남기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더 대화했다간 그에게 커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만들 소지가 있었다. 커크가 더이상 예전의 커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퍼뜨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맥코이와 스팍이 유일하게 합의한 사안이었다. 스타플릿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도 커크는 그저 심한 충격으로 요양중인 환자여야 했다. 술루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 


스팍. 

스팍이 뒤를 돌아보았다. 


상관에 대한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군. 

이름 대신 계급 혹은 직함을 부르라는 지적이었다. 술루는 기죽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예의요? 대령님. 우리는 한때 엔터프라이즈의 일원이었고, 모두 한 배를 탄 가족이었어요. 우리에겐 진실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는 게 예의가 아닌가요? 

스팍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술루가 평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어요. 스팍. 
내포된 의미가 불분명하군. 

무의미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끝까지 모든 걸 감출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경고인가? 
조언입니다. 

스팍이 입술을 오므리며 답했다. 

새겨듣지. 



스팍은 그 후로 더욱 주의깊게 메디컬 센터를 드나들었다. 정문과 로비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직원용 엘리베이터에 늘 홀로 탑승했다. 또한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20시간을 커크의 개인실에 있었다. 그곳에서 스팍은 자신의 업무를 보았다. 


커크는 노쇠한 장기를 인공 장기로 대체하는 수술을 받기로 했다. 인공 장기라고는 하지만 실제 인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오히려 노화하는 인간의 것과 달리 교체만 적절히 해준다면 영구적으로 기능할 수도 있었다. 스팍이 총력을 기울여 개발해낸 초기 시험버젼이었다. 

업무를 보지 않을 때면 스팍은 커크에게 제임스 커크에 대해 가르쳤다. 그의 말투는 어떠하며, 성격은 어떠했는가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커크는 성실하고 충실하게 그것들을 학습했다.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처럼 명령에 대한 수용에 불과했다.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론적으로 차츰 과거의 커크와 비슷한 모습이 되어가는 커크를 보고서도 스팍은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콜리나르의 영향이었다. 단지 처음 커크를 데려왔을 때부터 느꼈던 익숙한 구토감만큼은 어쩌지 못했다. 커크처럼 행동하는 커크를 볼 때마다 스팍은 목젖까지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을 애써 참아야 했다. 무조건 반사처럼 몸의 반응 중 하나로 굳어진 모양이다. 스팍은 그렇게 판단했다. 

맥코이는 질리지도 않고 끈질지게 연락을 해왔다. 마치 일전의 맥코이에게 스팍이 연락을 했듯이. 하지만 스팍과 달리 맥코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에 최소 대여섯 번은 부재중 전화와 욕설이 80% 이상인 음성 메세지, 커크는 어디에 있냐는 문자 메세지가 날아들었다. 물론 스팍은 그 어느 것에도 답장하지 않았다. 

커크가 인공 장기 이식 수술을 받고 요양하는 동안 스팍은 엔터프라이즈의 구 크루들의 사진을 챙겨왔다. 그들의 이름과 성격, 계급, 배경 등을 설명했다. 특히 제임스 커크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대해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이때쯤의 커크는 자신이 이 세계의 제임스 T. 커크의 대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게 스팍이 진행중인 과정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그게 자신이 해야하는 일인 양, 존재의 이유인 양 따를 뿐이었다. 

그것만이 그가 가진 유일한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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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 발제 다하구 원고까지 다해따..

이제 바나나 푸딩을 먹승료ㅜㄱㄹ이ㅛ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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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가 사라졌다. 


엔터프라이즈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실종됐던 그 날처럼. 원래 그것이 진짜 현실이고 몇 주 간의 일이 오히려 꿈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는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맥코이는 온 집을 뒤졌다. 차라리 잠깐 외출하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기를. 맥코이는 헛된 기대를 붙잡고 욕실과 옷장, 찬장과 벽장을 열었다. 그가 들어가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침대 아래를 훑고 이불을 들췄다. 그의 방에도, 자신의 방에도, 부엌에도 거실에도 욕실에도 어느 곳에도 커크는 없었다. 그가 사용하던 물건들 또한 감쪽같이 사라진 채였다. 


그는커녕 그가 존재했다는 흔적마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맥코이는 커크의 방에서 자신이 준 선글라스를 발견했다. 단정하게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그외에 맥코이가 사준 물건들은 옷이며 가방이며 모두 얌전하게 정리되어 옷장 안에 있었다. 


맥코이는 이 상실의 경험이 낯익었다. 


짐. 제발, 짐. 그만해. 그만하고 나와.... 


맥코이가 끓는 목소리를 토해냈다. 파멜라와 헤어졌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냉정한 얼굴로 이별을 선고하던 그녀가 커크와 겹쳐 보였다. 
빈 집은 커크가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지만 맥코이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소리내어 그를 찾으면 그가 없다는 게 정말 사실이 되어버릴까봐, 목소리를 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원래 혼자 살았던 집인데도 지금은 그 집이 너무나 크고 넓게 보였다. 예전에는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갔는데, 말을 하면 답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자신의 말은 방향을 잃고 죽은 새처럼 바닥에 떨어질 뿐이었다. 


내가 잘못했어....... 돌아와. 제발. 


맥코이는 온기가 사라진 침대를 그러쥐고 울었다. 야속하게도 깨끗히 정돈된 침대는 마치 새것 같았다. 


아무도 그 위에 누운 적이 없던 것처럼. 



혹시 어제 저에 대해 언급하셨습니까? 


한두 명이 타기에는 과하게 큰 셔틀이었다. 커크는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고 스팍은 그 옆자리를 차지했다. 운전수를 제외하고는 두 사람이 셔틀의 유일한 탑승객이었다. 


아니요. 


커크는 고개를 저었다. 스팍은 부재중 통화 알람과 음성 메세지 알람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도 패드를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창문을 흘끔이던 커크가 안전 벨트를 잡은 손을 꼼질거렸다. 불안해하는 그를 향해 스팍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스타플릿 소재의 메디컬 센터로 가게 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곳에서의 당신은 전 대령 제임스 T. 커크입니다. 전관 예우로 당신이 있을 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한 특실이며, 가능한 최고의 보안으로 보호받을 겁니다. 또한 저는 당신의 치료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함께 있을 겁니다. 질문이 있으면 지금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어디가 아파요? 


머뭇거리던 커크가 스팍을 돌아보았다. 스팍은 기계적으로 그를 마주 돌아보고 무덤덤하게 설명했다. 


특정 부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심장을 비롯해 간, 폐, 내장, 위, 그리고 안구 등이 각기 다른 비율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원하신다면 그곳에 도착해서 자료를 보고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죽는 거에요? 


스팍이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니오. 당신이 죽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도심 외곽으로 향하는 동안 스팍은 몇 가지를 당부했다. 자신을 '스팍'으로 부를 것과 존댓말을 사용하지 말 것, 누구든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주 인사해 줄 것 등이었다. 커크는 당혹스러워했지만 그것 또한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이전 주인들도 비슷한 명령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스팍은 그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센터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뒷문으로 들어가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덕분에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커크는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았고, 스팍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커크의 개인실은 단조롭고 깔끔했다. 침구와 협탁, 작은 원목 책상과 의자가 전부였다. 책상 위에는 엔터프라이즈 모형이 수줍게 앉아 있었다. 커크는 모형에 홀린 듯 다가가 책상에 턱을 괴고 그것을 우러러보았다. 


이게 뭐에요? 


스팍은 대답에 앞서 커크의 말투를 지적했다. 커크는 그가 일러준 대로 고쳐 말했다. 


이게 뭐야? 
NCC-1701. 스타플릿 소속의 우주탐사선 엔터프라이즈호입니다. 
내가 이걸 알아? 


기묘한 질문이었다. 커크의 손가락 끝이 닿을 듯 말 듯 엔터프라이즈로 향했다. 그 움직임은 신중하다못해 경건했다. 커크의 연푸른 우주에 하얀 함선이 가득 들어찼다. 


예쁘다. 


스팍은 그 미묘한 어긋남을 인지하는 대신 친절히 설명했다. 


제가 당신을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일전, 함께 브릿지에 방문했었습니다.


커크의 손가락이 엔터프라이즈의 길다란 엔진부를 훑어내려가다가, 둥그런 원반부 중앙에 닿았다. 원반부 중앙, 바로 그 아래는 브릿지가 있는 위치였다. 톡톡, 손가락이 다정하게 엔터프라이즈를 두드렸다. 커크는 스팍의 말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정말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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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20화에서 완결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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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길었다. 맥코이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Nothing). 

귀로 떨어지는 절망적인 답변에 맥코이는 커크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아무렴. 그랬겠지. 다시 한 번 커크를 꽉 안아준 맥코이는 천천히 그를 밀어냈다. 커크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럼 이제 가서 자. 
같이.... 
오늘은 내가 너무 피곤해. 그 얘기는 내일 하자. 

맥코이가 몸을 돌려 옷을 벗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피곤했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보다 차분한 상태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명한 결론에 이른 맥코이는 커크를 무심하게 지나쳐 욕실로 향했다. 찬물로 샤워를 하자 더 명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커크가 아니라 스팍을 추궁하는 편이 빠를 것이다. 맥코이는 세면대를 짚고 진작 그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자기 자신을 책망했다. 거울 속의 레너드 맥코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는 듯해서, 맥코이는 시선을 내려버렸다. 차디찬 물방울이 턱을 타고 흘렀다. 

물론 커크가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또다른 문제였지만, 그것 또한 스팍 탓이라고 여기면 될 일이 아닌가. 맥코이는 마음을 편히 먹고 내일 오전에 병원에 출근하며 스팍에게 연락하리라고 다짐했다. 그에게 어떤 욕설을 쏟아부을지 고민하자 차츰 기분이 나아졌다. 


욕실에서 나왔을 때 맥코이는 커크가 침대 옆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쓰러움도 잠시, 그를 이렇게 두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코이는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자던 그를 흔들어 깨웠다. 커크는 눈을 반쯤 뜨고 마지못해 웅얼거렸다. 

여기서라도 자게 해 주세요. 


맥코이는 여느 때처럼, 최초의 그를 만났을 때처럼, 그리고 제임스 커크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올라와서 자. 

맥코이는 침대 위를 두드렸다. 그리고 대충 바지만 걸치고 반대편에 누웠다. 커크는 잠깐의 휴지pause 후에 (맥코이는 커크의 반응 속도가 느린 것이 마치 버퍼링이 느린 기계 따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매트리스에 손을 얹었다. 맥코이는 등을 돌린 채였지만 매트리스의 흔들림으로 커크가 침대 위에 눕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무게와 맥코이의 무게로 양분된 매트리스가 버거운지 삐그덕 소리를 냈다. 

맥코이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간밤에 커크는 뒤에서 맥코이의 등을 껴안은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자리에 누운 지 꽤나 시간이 흐르고 맥코이 또한 살풋 잠에 들락 말락 하는 시점에, 타인의 팔이 허리를 감아오는 것을 느꼈지만 맥코이는 그를 그저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아침까지 등을 돌린 채 자다가 일어난 것이었다. 


맥코이가 눈을 떴을 때 커크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시트에 남은 미미한 온기로 맥코이는 그가 자신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으리라 짐작했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커크는 평소보다 공을 들여 아침을 차렸다. 하지만 어제 급히 퇴근한 덕에 병원에서 질책 아닌 질책을 받았던 맥코이는 아침을 반쯤 먹고 일어섰다. 출근하며 스팍에게 연락도 해야 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맥코이는 마지막으로 물 한 잔을 비우고 현관으로 향했다. 


다녀올게. 
안녕히 가세요. 


배웅하는 인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급히 나가던 맥코이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맥코이의 바람과 달리 스팍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출근하는 중에도, 수술과 수술 사이 잠깐 짬이 날 때도 연결을 시도했지만 단조로운 기계음만 들릴 뿐이었다. 맥코이는 스팍에게 이것을 확인하는 즉시 회신하라고 반 협박으로 메세지를 남겼다. 


오후에는 커크의 치료에 대해 문의했던 의사에게 (미시시피 주립 의대 동창이었다)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장기 이식 쪽으로 경험이 많은 친구였다. 맥코이는 커크의 신체가 위험한 이유는 첫 번째로 그의 장기가 언제 기능이 멈출 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라 보았다. 때문에 커크를 치료하려면 내부 기관 먼저 손을 보아야 했다. 그는 친우인 맥코이의 개인적인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었고 일사천리로 수술 일정이 잡혔다. 커크의 혈액 샘플을 통해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장기를 찾아낸 것이었다. 


맥코이는 친구와 대학 시절 무용담을 주고 받으며 들떴고 스타플릿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는 약간 우울해했다. 수술과 연구, 친구와의 대화로 그날은 모니터를 확인할 새도 없었다. 


퇴근한 맥코이는 사과를 대여섯 알 샀다. 스팍에겐 여전히 연락이 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맥코이는 어제의 일에 대해 화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같이 자고 싶다면 수술이 끝난 뒤에, 건강한 상태에서 고려해보자고 말할 참이었다. 남자와 잔다는 것에 대해 한 줌의 거부감도 없다면 거짓말일 터다. 맥코이는 한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아 키웠고 남자와 남자 간의 교류는 자신과는 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평범한 23세기의 남자였다.


물론 맥코이는 커크가 스타플릿 생도일 무렵에도 남자와 자는 것을 많이 보아왔고 그 행위가 올곧게 쾌락만을 향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였고 마음을 주는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커크는, 아니, 지금의 커크 또한 어떻게 보면 그와 같았다. 그는 몸과 몸을 부대끼는 행위 즉 스킨십을 통해 안정감을 찾았다. 그 방법 밖에는 없다는 걸 맥코이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맥코이는 '그런' 커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사소한 성적 취향 정도는 양보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알람처럼 들려야 할 커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조차, 맥코이는 커크가 먼저 자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묘한 이 기시감을, 맥코이는 애써 무시했다. 적막한 집 안, 그가 싫어하는 우주처럼 고요한 침묵을 그는 깨뜨리려 노력했다. 맥코이는 소파에 가방을 집어 던지고 부엌에서 부러 큰 소리를 내며 사과를 씻었다. 커크가 일어나는 기미는 없었다. 맥코이는 사과를 손에 든 채 커크의 방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방은 깨끗했다. 커크가 매일 청소해서 티끌 하나 앉지 않은 깔끔한 방이었다. 여느 때와 같았고, 모든 게 그가 나가기 전과 동일한 상태였다. 


하지만 커크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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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몬하니! 응? 왜 먹지를 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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