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복도 전체에 붉은 빛이 점멸했다. 


이게 무슨-?! 

맥코이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스콧과 체코프 또한 깜짝 놀라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메디컬 센터는 평온했지만 스타플릿 시스템 내부적으로는 보안 레벨 레드가 발령된 상태였다. 맥코이는 거의 뛰다시피 하며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좀 해봐! 
이, 이건 제가 할 쑤 업서요(I can't do jat)! 써큐리띠 시스뗌을 해킹했다간 전 그대로 웜죄자가 된다구요!! 
거 영창 내가 가봤는데 별 거 없어! 빨리 스팍 그 양반이 보기 전에 꺼! 
해킹 기록운 남눈단 말이예요! 규약을 어기묘는 대령님께소 조를 가만두지 않으실...! 
됐어 그럼!! 거기서 도망치기나 해! 

맥코이는 그들에게서 도움받을 것이란 생각을 포기하고 통신기를 귀에서 뽑아내 집어던졌다. 그리고 복도 끝에 보이는 문을 향해 빠르게 다가섰다. 상당히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 문고리를 잡아 열게 되어있는 구식 문이었다. 

여기구나. 
여기에 있구나. 

순간적인 직감이 맥코이의 뇌리를 스쳤다.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본능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 문 뒤에 커크가 있었다. 
문고리를 잡아 돌렸지만 걸쇠가 걸려 있었다. 맥코이는 이를 갈며 문을 세게 두드렸다. 

이봐! 짐! 너 안에 있지!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급속도로 불안이 몰려왔다. 맥코이는 목이 쉴 때까지 커크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내려치고 발로 찼다. 미세한 흠집만 생길 뿐 그 빌어먹을 문은 통 열릴 기미가 없었다. 긴장으로 지친 맥코이는 문에 주먹을 댄 채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는 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짐. 지미. 솟아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덕분에 형편없이 먹먹한 목소리가 났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맥코이는 주먹으로 얼굴을 비볐다. 애가 끓었다. 그는 차가운 문에 이마를 붙이고 가늘게 속삭였다. 


부탁이야. 제발. 안에 있다면 대답이라도 해줘. 

여기까지 와서 그를 만나지 못한다면, 이젠 정말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리라. 게다가 더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보안 요원들이 올라올테고, 그대로 끌려가겠지. 맥코이는 깜빡이는 붉은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간청했다. 

널 다시 만나려고 왔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맥코이는 문에 귀를 붙이고 손을 댔다. 두터운 문에서는, 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손바닥에 와닿는 감각은 잔인하리만치 냉막했다. 자신을 거절하듯 차갑고 무정했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이라도.... 

맥코이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얼마나 정신없이 빌고 또 빌었을까. 맥코이는 어느새 보안 레벨 레드가 해제된 것도, 일단의 사람들이 걸어와 자신 앞에 서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주저앉은 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맥코이는 그 잠깐 사이에 폭삭 늙은 얼굴이었다. 


독또르....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맥코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놀랍게도 체코프를 비롯하여 스콧과 술루가 모두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다들 씁쓸하고 어색한 표정이었다. 

너희들이 어떻게...? 

맥코이의 말을 자르고 끼어드는, 여느 때와 같은 목소리의 소유자가 있었다. 


벌컨은 평균적인 인간의 수준보다 월등히 높은 청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닥터 맥코이. 

뭐? 맥코이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스팍을 바라보았다. 크루들 사이로 나타난 스팍은 맥코이를 노골적으로 내려다보았다. 다른 크루들은 그의 시선을 피하기만 했다. 

알고보니, 그들의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더 구체적으로는 스콧이 술루에게 가라고 외쳤을 때부터 스팍은 그들이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리프트에서 그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댄 것 또한 모두 들었다) 술루의 요청에 순순히 따른 것은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려고 하는가 관찰하기 위해서였으며, 그는 맥코이가 31층에 들어간 것도 금세 알았다. PADD와 써큐리티 시스템이 직접 연결되어 있었던 덕분이었다. 스팍은 경고등이 울린 즉시 술루의 통신기를 이용해 스콧과 체코프가 올라오도록 명령했고 동시에 직접 술루를 데리고 31층에 올라왔다. 보안 레벨을 해제한 것도 그였고, 이러한 불상사에 대비해 보안 시스템을 설치해둔 것도 그였다.

 
정리하자면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팍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스팍. 

전말을 알게 된 맥코이는 참담한 심정을 느끼며 비슬비슬 일어섰다. 혀끝에 와닿는 감각이 썼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아니,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커크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예전 동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는 어쩌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이용한 것일지도 몰랐다. 맥코이는 정말이지 커크를 다시 보기 위해서라면 스팍 앞에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었다.


규율을 어겼다고 잡아가도 좋으니까, 제발 마지막으로- 
비키십시오. 스팍이 그의 말을 잘랐다. 
뭐? 
문을 열 수가 없잖습니까. 

맥코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했고, 스콧이 대신 달려들어 맥코이를 끌어냈다. 맥코이는 당황한 얼굴로 스팍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어허, 의사 양반. 쉿. 

앞으로는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방문 요청을 하길 바랍니다. 모두에게 주지시켰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만약 앞으로 또 규율에 어긋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모두를 규정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스팍이 구식 열쇠로 문의 시건장치를 해제하며 말을 이었다. 딸깍, 하며 걸쇠가 풀어졌다. 

알겠습니까?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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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열린 문~~~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