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quest for 천수
장르: 스타트렉 리부트
요약: 5년 임무 중 잠시 우주정거장에 들러 휴식을 취하던 중 발생한 (사랑의) 위기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커크스팍, 커크스팍커크
주의: 이미 커플! 다크니스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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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프라이즈는 지난 탐사로 파손된 물품과 약품을 보급받기 위해 FE-X5 우주정거장에 정박중이었다. 단순히 필요한 물품을 전송해 올릴 수도 있었지만, 작은 행성 위에 개척된 우주 정거장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다는 함장의 사적인 이유로 며칠의 여유가 주어진 것이었다. 그 이유야 어찌됐든 다수의 선원들이 그 결정을 쌍수들고 환영했다.
"난 정말 이 '땅'이 밟고 싶었어."
지상에 내려서자마자 맥코이의 입에서 감상이 튀어나왔다. 다른 선원들의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함선을 지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모두 정거장 내 도시로 내려왔다. 뿔뿔히 흩어져 가는 선원들을 바라보며 커크가 입을 열었다.
"열심히 밟아. 한달만이던가?"
"세달만이다. 지난 탐사에만 참여했어도."
커크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자신은 전혀 그 일에 책임이 없다는 듯 태평한 표정이었다.
"스팍은?"
"틀렸어. 네가 해도 안 되던 걸 내가 어떻게 끌어내냐?"
"후."
맥코이의 말에 커크가 잠깐 풀이 죽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반수 이상의 선원이 함선을 비우고 함장까지 함교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등 항해사마저 함선에서 내린다면 응급 상황에 대비할 수 없음은 확실했다. 스타플릿 규정상 최소한 두 명이 함교에 남아 있어야 원활한 점검과 통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스팍은 비상시 함교가 비어 있어 함선이 위험에 처했던 역대 기록들을 줄줄이 읊으며 커크의 입을 다물게 했고, 결국 함교에 스팍과 우후라, 체콥만 남겨둔 채 내려온 것이었다.
커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정박중일 때는 다른 프로토콜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렇게 말하지 그랬나?"
"그땐 생각이 안 났어."
"잘났다. 난 약품 확인하러 병원에 갈 거야. 넌 알아서 놀아라."
"술집 같이 안 가?"
"연락해."
"그래."
멀어져가는 맥코이의 등을 보며 커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1500시였다. 확실히, 술을 들이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커크는 팔을 쭉 뻗고 걸음을 옮겼다.
"이쁜이들이나 많았으면 좋겠다."
제임스 T. 커크는 그런 시간에 구애받는 남자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
함교는 한산했다. 엔터프라이즈 전체가 한적했고 오히려 쓸쓸한 분위기를 풍겼다. 우후라와 스팍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체콥은 죽을 맛이었다. 자신이 왜 나머지 선원들을 따라 내려가지 못했는지 과거의 자신이 미워질 지경이었다. 세 명 밖에 없는 함교에서 이제 와 내려가고 싶다고 말하기엔 이미 늦은 것 같았고 부함장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체콥은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가 함교에 돌아온다면 그걸 구실로 교대할 수 있을텐데.
그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후라가 나직하게 스팍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은 안 내려가요?"
스팍이 의외라는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체콥 또한 앞을 보고 있었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몇 번이나 언급한 것 같지만, 내가 내려갈 필요성이 없고 함교에는 늘 최소한의 인원이 상주하고 있어야 해."
"...당신은 정말 하나도 변한 게 없네."
"발화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군."
교제하던 시절에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지성이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팍이 눈썹을 비뚜름히 올렸다. 우후라는 늘 직언을 했고 사실을 가감없이 표현할 줄 알았다. 생도일 때도 그러했고, 통신장교가 된 이후에도 그러했다. 칸의 사건 이후에 자신의 마음 향방을 알게 된 때조차 그녀는 깔끔하게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둘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녀는 미련조차 갖지 않는 유능한 여자였다. 우후라가 벌칸이었다면, T'pring이 죽지 않았다면, 커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녀와 본드를 맺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은 결국 0%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내려가야 할 이유가 있나?"
"스스로 생각해 보시죠."
"난 그 방식이 편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커크가 종종 스팍을 대하던 방식이었다. 편리성을 들어 표현하긴 했지만 분명하게는 껄끄러운 방법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는 속시원히 말해주는 법이 없었다. 그는 스팍이 스스로 깨닫기를 원했다. 그리고 보통은 감정적인 문제거나, 인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스팍은 그런 과정을 거쳐 이번에도 그런 종류의 것이리라 짐작했다.
"이젠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동의할 수 없군. 적어도 당신과 교제할 때는 그런 일이 현저히 적었어."
이번에는 우후라가 눈꼬리를 올릴 차례였다. 그녀가 아무리 지성과 이성으로 철벽을 두른 여성이라 해도 기분까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벌칸이 아니었다.
"비교대상이 되는 건 기분 나쁘네요."
"객관적인 사실을 비교한 거야. 경험적 사실은 절대적이지."
"감정은 상대적이에요."
"내가 현재의 연인인 제임스와 과거의 연인인 우후라 당신을 비교한 것이 당신에게 감정적인 불쾌감을 일으켰다면, 그것에 대해 사과하지."
우후라가 말을 잃고 입을 다문 사이에, 스팍이 덧붙였다.
"한 가지. 혹시 나와 교제한 경험이 함교에서 일하는데 심리적인 방해가 되는지 알아두고 싶군. 그건 곤란해."
거기까지 들었을 때 체콥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기요!!! 조는-, 조는 내료가도 될까요? 내려갈게요."
"아냐. 괜찮아. 그냥 있어. 체콥."
"이 이상 함교에 빈 자리가 생기는 건 비상 상황에 대한 위험성을 13.5%포인트 더 증가시켜. 자리에 있기를 권하지. 소위."
"네......."
체콥은 벌떡 일어난 것이 무색하게 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자신의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위험이 더 큰 것 같다고 생각하며, 체콥은 커뮤니케이터를 들었다. 그 똑똑한 머리로도 이 자리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술루....... 저 좀 구해주세요......."
-
맥코이가 커크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다. 양 팔에 우주 각계의 미녀 아가씨들을 끼고 그녀들이 흘려주는 술을 받아마시는 모습에 맥코이는 혀를 찼다.
"저것도 함장이라고......."
"어어! 왔어!! 야아아-, 이것봐. 내 친구 투덜쟁이 왔다. 술 따라줘. 얼른!"
"워, 됐어. 짐. 안 돌아갈 거야?"
"며칠 걸릴건데 뭘. 나도 보는 눈 없이 오랜만에 좀 놀아보자......."
새끼, 스팍이 신경 안 쓴다고 살판 났구만. 맥코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바에 앉아 잔을 홀짝였다. 저런 꼴을 보아하니 짐 커크는 결혼을 해도 오래 못 갈 위인이었다. 자신과는 다른 이유로 말이다. 새삼 허전한 왼손 약지를 보자 맥코이도 술이 고파졌다. 조안나, 우리 조는 한 8살쯤 되었겠지. 학교는 잘 다니려나. 파멜라가 알아서 잘 하겠지.
서러운 속에 독한 술을 몇 잔 들이붓고 나서야 커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옆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옆구리에는 눈이 돌아가게 예쁜 아가씨를 끼고 있었다. 그녀도 거하게 취했는지 계속 커크의 얼굴과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허이구. 자알 한다."
맥코이의 한숨 섞인 소감에 커크가 비식 웃었다. 그도 여자의 허리를 쓸고 있었다.
"나 오늘 안 들어갈래."
"스팍이 찾을텐데?"
"찾으라 그래."
"자식아. 그럼 나 혼자 가라고?"
"가. 가버려. 아니면 친구 소개해줘?"
커크가 뒤를 향해 무어라고 소리쳤다. 기가 막히게 예쁜 검은 머리의 여자가 비틀거리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젠장. 필요없어. 간다."
"가든지."
맥코이는 남은 술을 한 모금에 털어넣고 일어섰다. 그 와중에 맥코이의 근처까지 다가온 여자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받아주었다. 고마워요, 그녀의 웅얼거림에 맥코이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시시피 주립 의대 퀸카였던 파멜라와 아주 닮은 얼굴이었다.
"나는......."
무어라 궁색한 말을 내뱉으려던 맥코이의 입이 여자의 입술에 덮혔다. 맥코이는 눈을 깜빡였다. 커크가 그 모습을 보고 낄낄거렸다. 그랬다. 커크는 파멜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 너머로 커크가 웃는 모습을 보자 맥코이는 커크가 꾸민 것임을 알아차렸다.
"너-."
"당신 잘 생겼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고향별에서 기다리는 부인이라도 있나?"
"......."
맥코이는 대답없이 커크를 노려보았다. 그는 이미 등을 보이고 멀어지는 중이었다.
그가 다시 커크를 본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
"우주정거장 아가씨들을 창녀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거짓말."
여자가 커크의 코를 부드럽게 밀었다. 커크는 흐흥거리며 그 손에 코를 비볐다.
"이렇게 예쁜걸. 내 눈의 별, 내 품의 꽃."
"흥. 뱃사람들은 다 똑같아. 귀에 달콤한 파도 소리를 들려주고선 다시 훌쩍 떠나 버리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던 커크는 그저 여자를 끌어당겨 안았다.
"당신도 예쁜 애인이 있겠지?"
"워-. '그녀'는 아니고 '그'지만."
"어쨌든. 그 사람도 당신이 이러는 거 알아요?"
"...알겠지."
"알고서도 당신을 여기에 보냈어요?"
커크는 어깨를 살짝 들어올렸다.
"아마 신경도 안쓸걸."
그의 얼굴이 어두워진 걸 알아채고 여자가 커크의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남자들은 도무지 섬세하지 못하다니까. 어때요, 이참에 날 데려가는 건?"
"하는 거 봐서."
"못됐어, 정말."
커크가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는 작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당겨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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