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quest for 천수
장르: 스타트렉 리부트
요약: 5년 임무 중 잠시 우주정거장에 들러 휴식을 취하던 중 발생한 (사랑의) 위기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커크스팍, 커크스팍커크
주의: 이미 커플! 달달 없어.. 앵슷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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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하군."
커크로부터 사적인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함선 내 함장의 부재는 길수록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재는 24시간을 넘어 40시간에 접어들고 있었다.
스팍은 커뮤니케이터를 들어 다시 연락을 시도했다.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스팍의 신경이 곤두섰다. 공적인 업무 외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울려대던 커뮤니케이터였다. 그런 제임스 커크 함장이 메세지도 않고, 자신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않는다?
무언가 일이 생긴 것이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닥터 맥코이. 스팍이다. 함장님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당신이라 들었어. 함장님은 어디에 계시지?"
커뮤니케이터에서 불편한 기색이 흘러나왔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술집 바닥에 퍼져 있겠지."
"함장님께서 기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알콜을 섭취하도록 내버려둔 건가? 수석 군의관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군."
맥코이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참 빨리도 걱정한다. 그렇게 걱정할 거면 왜 진작 따라 내려가지 않았나?"
"당신이 그의 오랜 친구이니 그를 제대로 돌보리라 생각했을 뿐이야. 그런데 내 생각이 틀린 것 같군."
"틀렸지. 아주 제대로."
이를 갈듯이 대답하는 맥코이의 말에 스팍이 고개를 기울였다.
"닥터 맥코이. 부연 설명을 요구한다."
"거절한다. 네가 커크 자식 찾아와."
"지금 내게 명령을 내리는 건가?"
잠시 동안 대답이 없었다. 스팍이 재차 닥터 맥코이?, 하고 부르자 그제야 맥코이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부탁'하는 거다."
"받아들이지."
스팍은 통신을 끊었다.
-
커크가 마지막으로 들렀다던 술집에 도착한 스팍은 취객들을 샅샅히 훑었다. 낯익은 금발은 보이지 않았다. 커크를 찾는데만 집중하던 스팍의 귀에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벌칸이다. 벌칸.
멸종위기라던? 몇 년 전에 모행성이 산산조각나서....
그 엔터프라이즈의 부함장인가 봐.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관 없었다. 우선 순위는 따로 있었다.
"제임스 T. 커크 함장님을 찾고 있다."
바텐더가 컵을 닦던 행동을 멈추고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도 제법 당황한 표정이었다.
"누구요?"
"스타플릿 소속 대령 제임스 T. 커크. 그는 현재 이곳에 정박중인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그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그 책임은 전부 이 장소와 이곳에 있던 생명체들이 지게 될 것이다. 이제 다시 묻지. 제임스 T. 커크 함장은 어디에 있나?"
"스타플릿 소속 대령 제임스 T. 커크. 그는 현재 이곳에 정박중인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그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그 책임은 전부 이 장소와 이곳에 있던 생명체들이 지게 될 것이다. 이제 다시 묻지. 제임스 T. 커크 함장은 어디에 있나?"
스팍의 위협적인 말에 바텐더들이 허둥지둥 움직였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건대 전후 사정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스팍은 그제서야 커크가 이곳에서 자신이 함장임을 숨겼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고급스러운 장식이 달린 옷을 입은 마른 남자가 뒤에서 나왔다. 행색을 보아하니 사장인 모양이었다.
"누구를 찾으신다고요, 아니, 그전에, 당신은 누구쇼?"
"스타플릿 소속 중령 스팍이다."
"그래서 우리 중령님께서 누구를 찾으신다굽쇼?"
"정정하지. 신장 185cm, 금발에 숏컷, 밝은 파란 눈의 인간 남자를 찾고 있다."
그가 딱 소리를 냈다. 바텐더들 또한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이 주변 술집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남자였다. 엔터프라이즈가 정박한 이후에 나타났으니 어림짐작으로 그 선원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개망나니가 함장이었을 줄이야!
"첨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랬슈. 지미는 내 집에 있네."
그의 말에 스팍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안내를 요청하지."
"협조하지 않는다면?"
"스타플릿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면 군법회의에-."
스팍의 말에 그가 주황색 안경을 치켜들며 킬킬 웃었다.
"농담이네. 어서 가지."
그의 안내를 받아 스팍은 고급스러운 대저택으로 들어섰다. 23세기, 우주정거장조차 개인 사유재산으로 건설할 수 있을만큼 부를 축적한 우주적 상인들이 존재하는 시기였다. 이 상인도 그러한 종류인 것 같았다. 이 우주 정거장은 마치 작은 도시 또는 작은 성과 같았다. 스팍이 정원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대단히 흥미롭군."
"하! 이거 벌칸에게 칭찬을 다 듣다니, 나도 살만큼 산 기분이군."
"이 정거장 전체가 절반은 대지, 절반은 기계로 건설되어 있다. 이만큼 유기적인 시스템은 찾기 힘들지."
"그 함장 나리보다 백 배는 똑똑하신 것 같구만."
웃던 그는 곧 스팍을 하얀 문 앞으로 인도했다. 이 뒤에 계시네, 하고 손짓하고는 그가 멀어졌다. 스팍이 버튼을 누르자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은 잘 꾸며진 방이었다. 그의 취향대로 화려한 색의 가구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와 대비되게 하얀 침대 위에는-.
커크가 있었다.
스팍이 성큼성큼 다가가 커크를 흔들어 깨웠다.
"함장님. 일어나십시오."
커크는 피곤한 듯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끙끙거리며 몸을 틀었고 그제야 스팍은 이불 근처에 묻어있는 여자의 립스틱 자국을 발견했다. 스팍은 그 순간 커크가 다른 여자와 잤음을 100% 확신했지만, 그저 눈썹을 치켜올리며 커크를 세게 잡아 돌릴 뿐이었다.
"함장님. 함교를 비운지 42시간이 지났습니다. 돌아오셔야 합니다."
"좀만 더 잘래..."
"제임스 커크 함장님.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보충했습니다."
"조금만..."
"일어나십시오. 이제 함선에 돌아가야 합니다."
"조금만 더... 응? 메이......."
커크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자 스팍은 가볍게 실랑이하던 것을 멈추고 손을 내렸다.
"알콜로 인한 효과가 잔존하므로 기상 여부와 상관없이 함선으로 모시겠습니다."
스팍이 이불을 걷어제치자 커크가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드로즈 한 장만 걸친 채였다.
"스팍?!! 너 여길 어떻게...!"
"술이 깬 것 같으니 스스로 옷을 입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함장님."
"스팍!! 어떻게 날 찾았냐니까!!"
커크의 말에 스팍이 고개를 기울이고는 의문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있던 술집에서 흔적을 찾았습니다. 그게 중요합니까?"
"젠장......."
명백히 '바람피는 현장'을 들킨 꼴이 된 커크는 조심스럽게 스팍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뒷짐을 지고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스팍은 아무것도 모를지도 모른다. 여자는 이미 나간 뒤였고 흔적이랄 것도 없었다. 커크는 다만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문 채로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었다.
"그, 크흠. 스팍?"
"말씀하시지요."
"나 찾아서 내려온 거야?"
"그렇습니다."
커크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함장님께서 함선을 오래 비우시면 선원들에게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나아졌던 기분은 다시 한없이 떨어졌다.
"말이나 못하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해하지마."
"함장님?"
옷을 다 입은 커크가 스팍의 앞에 섰다. 한껏 빈정거리는 표정이었다.
"너한테 뭘 더 바라겠어. 그치?"
"무엇에 동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말하기 싫다."
커크의 말에 스팍이 목을 꼿꼿이 세웠다. 좋지않은 기분이 엄습했다. 그의 감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예전과 같았지만, 달라진 커크의 태도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40시간 동안 조용한 커뮤니케이터, 새 메세지가 들어오지 않는 PADD, 그리고 충분히 기분이 나쁜 듯 보이는 커크. 스팍은 납득할 수 없었다.
"함장님."
앞장서서 걸어가는 커크의 등에 대고 스팍이 그를 불렀다.
"함장님의 태도가 이전과 다릅니다."
다른 이성과 자리를 함께한 것을 포함해서. 스팍은 말을 삼켰다. 커크가 자유분방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커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그 믿음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내가 뭐가 다른데?"
"......."
커크가 역으로 질문해온 덕택에 스팍은 잠깐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어디에서부터 이야기해야할지 모호했다.
"정확히는, 42시간 전부터입니다."
"아- 그만." 커크가 그의 말을 끊었다. "길게 말하는 거 질려. 내가 뭐가 다른데? 그것만 말해."
"저를......."
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팍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커크의 행동으로 보면 분명한 사실이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추측을 기정사실화할 추가 사항을 얻기 전까지 성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커크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스팍을 돌아보지도 않고 버튼을 눌렀다.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차라리 다시 여자를 안고 히히덕거리며 놀고 싶었다. 지금은, 정말이지 지금은, 스팍을 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왜 이래 이거?"
"제가 수동으로 열겠습니다."
스팍이 나서서 기계를 조작해보기도 하고 벌칸의 괴력으로 문을 두들겨 보기도 했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스팍은 자신이 너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정박되어 있는 엔터프라이즈 호와, 비어있는 함교, 함장과 부함장 모두 부재중인 상황. 어쩐지 너무 쉽게 자신을 함장에게로 인도했다 싶었다. 그걸 이제야 생각하다니! 그 남자의 짓이 분명했다.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야."
스팍의 말에 커크가 동의하며 주변을 살폈다.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화려한 방에는 창문조차 없었다. 커크는 마지막 희망으로 커뮤니케이터를 열었다. 먹통이었다. 방해 전파까지 깔아둔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커크가 욕설을 내뱉으며 벽을 내리쳤다.
자신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으면 함정에 빠지지도 않았을텐데. 뿐만 아니라 스팍도.
커크는 스팍이 싫은 것보다도 더 자신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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