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제임스 커크의 입버릇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그는 되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외침에 지독하게도 당한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에는 도통 길들여지지 않아서, 그는 그러한 상태를 매우 싫어했다.
종알종알 떠들어도 되돌아오지 않는 반응이라든가.
좋은 성적을 자랑스레 내보여도 돌아오는 건 무관심이라든가.
그러다가 결국은 자신을 떠나버린 '그 어머니'라든가.
차라리 말해주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싫으면 싫다고, 증오하면 증오한다고.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렇게 자신을 버릴 바에는, '난 널 견딜 수 없어서, 널 더이상 볼 수 없어서 떠나는 거란다'라고 차라리 노골적으로 말해주었더라면, 미련도 갖지 않았을 텐데. 가볍게 삶을 포기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에 와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아이가 상처받을까, 그것을 걱정한 거겠지. 그게 아이에게는 어떤 고문이 될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괴로움이 힘겨웠던 거겠지. 끝까지, 지독하게, 친절하고 착해 빠졌던 사람. 혹은 나쁜 말을 해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든지. 아니면 정말로 아무 관심도 없었든지. 말해주지 않았으니 지금까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어느 쪽이든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커크는 둥그런 잔 위를 빙그르르, 손으로 따라 그렸다. 지잉 하고 우는 듯 아릿한 소리가 났다.
그래도 떠날 거라면, 이왕 떠날 거라면, 더 친절하게 '네 이런 부분이 싫었단다'라고 지적해주기를 그는 바랐다. 하다못해 고칠 수라도 있게. 그 이별을 이해할 수 있게.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조차 말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바랐다. 그 정도로 간절했다.
그렇기 때문에 커크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자신이 조심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슬아슬한 중심 잡기. 이런 일 자체가 일어나는 원인을 봉쇄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실 꽤나 단순했다.
아무도 자신의 안으로 들이지 않는 일 말이다.
유리잔 위의 경계선상에서 살아가는 일. 어렵지 않았다. '안으로도 들이지 말고, 밖으로도 나가지 말라.'
그 미모와 매력이 그를 자극한다. 더불어 잘생긴 자신과 여러모로 잘 맞으리라 짐작하곤 하는데, 대부분은 그 생각이 맞다. 정말 답이 없는, 예를 들어 성격이 개차반이거나 골이 비었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더라도, 어쨌든 사랑을 나누는 데는 그리 많은 요소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 없다.
차가운 여자:
자신을 냉대하는 이성일수록 그는 앞서와는 다른 종류의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이를테면 '정복'이나 '도전' 욕구라고 정의될 수 있다. 자신을 무시하는 상대에게 그는 더 큰 성적 자극과 때려눕히고픈 심리를 느끼곤 했다. 그것이 그가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이유였다. 그 차가움이 뜨거운 차가움으로 돌아올 때까지.
다가오는 여자:
어느 모로 보나 최상의 조건이다. 자신의 잘난 용모나 목소리, 성적인 매력이 어필하는 바를 스스로도 잘 알기에 그런 이성에게는 당당하게 마주 다가간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고 나면, 뭐,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됐다. 이게 다다.
아니.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제임스 커크가 사랑하는 이유는 별 거 없다. '사랑받기 위해서' 그는 사랑한다. '사랑'을 건네면 '사랑'이 돌아오니까. 그 때문에 그는 몇 번 노력해보고 자신이 준 만큼 사랑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만 둔다. 그가 포기하지 않을 때는 확신이 있을 때 뿐이다. 그의 눈빛과 행동, 언사에서 느껴지는 작은 사랑의 흔적이라도 있다면 그는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적당한' 기준이 없다. 대신 어릴 때부터 발달시켜온 사랑에 대한 '센서'만큼은 탁월하다. 그것은 일종의 감각이며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후천적 본능이다. 그의 이런 발달에는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만) 어머니의 방임과 삼촌의 학대가 큰 역할을 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에서 애정과 원망을 동시에 발견하며, 아버지의 부재를 피부로 경험하고, 자신의 가치를 결정짓는 온갖 종류의 욕설을 들은 다음에, 제임스 커크는 기대도 미련도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자신의 외모가 사랑을 '구걸'하는 데 꽤 쓸모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부터 그는 그것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든 여자를 즐겁게 해 주면, 여자는 자신을 마음껏 사랑해주었다. 어머니와는 달랐다. 제임스 커크는 점차 사랑받는 법을 배워갔다. 여자들은 단순했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에는 모두가 똑같았다. 그는 그녀를 만족시키고, 그녀는 그를 만족시켰다. win-win이었다.
쾌락, 자극, 사랑, 기쁨, 행복.
청년 제임스 커크의 인생은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쾌한 척 농담을 던지는 법도 배웠고, 목표한 여자를 넘어뜨리기 위해 강한 척 하는 법도 배웠다. 가끔은 임자 있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진짜로 강해져야 할 필요도 있었다. 상대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거나 행동에서 심리를 짐작하는 일은 장난 수준도 되지 않았다. 제임스 커크는 그렇게 예리해졌고, 똑똑해졌고, 강해졌고, 사랑스러워졌다.
그 모든 행동과 말이 전부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해도,
커크는 후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맥코이와 자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맥코이는 서른 세 살의 애 딸린 유부남이었고 (동시에 이혼한 싱글이었지만) 그 때까지 남자와는 한 번도 자본 적 없는 스트레이트였다. 물론 스트레이트였던 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젊은 자신이 더 적응하기 쉬울 거란 이유에서 커크는 순순히 응낙했다.
하지만 커크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금세 깨달았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맥코이가 젤을 꺼내고 있었다. 그게 뭐야? 라는 질문에 맥코이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엄마의 마음."
무슨 개소리냐고 물었지만 신통한 반응은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맥코이는 정말로 커크를 위해서 수많은 책과 자료를 뒤졌고, 완벽주의라는 자신의 성향답게 모든 준비를 해온 상태였다. 그것을 커크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
아마도, 맥코이가 자신의 뒤에 손가락을 집어넣었을 때.
"자, 잠깐만! 나 이거 적응 안되는데...!"
"참아."
이제까지 맛본 적 없는 미묘한 기분이었다. 빨아들여질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쾌감. 이질적인 것을 몸 안에 받아들이는 감각. 커크는 가려울 정도로 근질거리는 느낌에 뒤로 물러났다. 갑작스레 겁이 났다.
"보... 본즈. 나, 잠깐, 잠깐, 마음의 준비가."
"진정해. 아들."
"어, 엄마. 이거 생각보다 이상-."
커크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를 진정시키던 맥코이가 다시금 그를 찌른 탓이었다. 커크가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몸이 굳어 잘 되지 않았다. 맥코이는 한 손으로 그런 커크를 쓰다듬기도 하고, 토닥여 주기도 했다.
"가만히 있어, 가만히."
"흐으......."
커크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냈다.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원. 맥코이는 속으로 혀를 차며 그곳을 문질렀다. 부드러운 젤 덕분에 커크의 뒤를 풀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맥코이는 잠시 후 손가락 하나를 더했다. 바로 반응이 왔다.
"아으으.... 뭐, 야...."
"젠장, 앓는 소리 좀 그만해. 이렇게 해둬야 안전하대."
"안전이고 자시고...."
커크가 힘겹게 입을 다물자 맥코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벌써 이 정도로 서는 거야?
"빌어먹을.... 야, 진짜 기분 이상해."
"아무렴."
이상하기도 하겠지. 맥코이가 우물거렸다. 그는 사실 걱정하고 있었다. 이혼한 이후로 남과 관계를 맺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혼자서 해결해오곤 했기에 커크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그닥 없었다. 하지만 비록 남자이고, 빌어먹을 애새끼 같은 커크일지언정,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역으로 자신이 뒤를 내줘야 할 터였다. 그건 정말이지 두려웠다. 보통의 남자에게 가장 무서운 건 그런 거였다.
"아흑...!"
생각없이 손가락을 찔러넣다가 커크의 신음에 맥코이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 소리를 듣자 조금 자신이 생겼다.
"짐. 네가 도와줄 게 좀 있는데."
"..말해..."
맥코이의 요청을 받은 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커크는 맥코이의 것을 잡고 비비기 시작했다. 맥코이는 오랫만에 맞이하는 그 아찔한 감각에 잠깐 탄식을 뱉었다. 그 모습을 본 커크가 아예 자신의 것과 맥코이의 것을 함께 비벼댔다. 차츰 그들의 사이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아...!"
누구의 것인지 모를 감탄사에 뒤이어, 맥코이가 커크의 팔을 붙잡아 멈췄다.
"기다려."
"응??"
"젠장, 기다리라고...!"
커크가 왜? 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맥코이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의 눈을 피했다. '중년 남성 중 절반, 발기 부전으로 고통...' 이라는 헤드라인이 떠올랐다. 맥코이는 무척이나 억울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남자에겐 안 서는 건가? 어쩌지? 커크는 벌써.......
"본즈."
커크가 몸을 기울여 왔다. 맥코이는 흠칫하며 그를 안았다. 커크의 뜨거운 숨이 목덜미에 훅 끼쳐왔다. 맞댄 가슴도 무척이나 뜨거웠다. 몸으로 따지자면, 커크의 몸이 더 근육으로 탄탄하게 다져져 있어서 맥코이는 자신이 더욱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커크와 자신은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만 두자. 못하겠다. 맥코이가 커크를 밀어내려고 할 때였다.
"윽! 뭐해?!"
커크가 이를 세워 맥코이의 목을 물었다. 깜짝 놀란 그의 귀에 대고 커크가 웅얼거렸다.
"예열."
맥코이가 대답할 새도 없이 커크가 자신이 문 곳을 핥았다. 핥고, 빨고, 자국을 남겼다. "아." 맥코이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 커크의 혀가 고양이처럼 맥코이의 목을 쓸었다. 맥코이의 팔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제임스 커크. 레이디 킬러. 빈말이 아니었다. 맥코이는 왜 많은 여자들이 커크에게 열광했는지 알 것 같았다.
커크는 맥코이의 가슴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반짝이는 길을 만들며 내려가던 그의 혀는 맥코이의 아랫배에서 한참을 머물렀고 그곳에서는 상당히 거친 키스 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맥코이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맥코이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커크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남자랑은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개를 숙였다. 맥코이의 것이 눈앞에 있었다. 커크는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핥았다.
"아...!" 반응이 있었다. 커크는 그것을 입에 집어넣고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맥코이의 신음 소리가 커졌다. 커크의 이가 스칠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떨어지는 것처럼 아찔했다. 맥코이는 커크의 머리칼을 붙잡았다. 더, 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커크는 입 속에서 열심히 혀를 놀리고 밖에서는 맥코이의 것을 비벼주었다. 맥코이가 부르르 떨었다. 충분했다. 넘치도록 충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맥코이가 커크의 머리를 잡아 떼어냈다.
"하아, 아......."
커크가 물기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자신도 처음 하는 일을 해서인지 호흡을 정돈할 수가 없었다. 맥코이는 그 모습이 더없이 유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그는 한숨쉬듯 입을 열었다.
"다리 벌려."
"으, 으응?"
맥코이는 한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거칠게 커크의 다리를 열었다. 침대 헤드에 기댄 커크가 어색하게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커크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맥코이가 다가갔다.
"무섭냐, 우리 아들?"
커크는 머뭇거렸지만 단호하게 도리질을 했다. 그리고 맥코이에게 팔을 뻗었다.
"엄마아."
"오냐."
커크를 안아올린 맥코이가 자신의 위에 그를 앉혔다. 그 순간 커크는 난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고통과 쾌감에 맥코이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몸이 꿰뚫리는 기분이었다. 그의 손톱이 살을 파고들자 맥코이는 더 세게 커크에게 들어갔다.
"아아아...!"
커크가 남자치고는 매력적인 교성을 내뱉었다. 게다가 맥코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를 끌어당기고, 빨아들였다. 그 조여드는 힘에 맥코이는 홀릴 것 같았다. 입으로 가쁜 숨을 내쉬듯이 아랫입도 벅찬 호흡을 시작했다. 커크는 제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그 쾌감에 쾌감을 더했다. 맥코이 또한 그와 함께 허리를 쳐댔다.
"흐, 아흐, 으으, 어, 어엄, 마아, 아흣...!"
"아아...!!"
두 사람의 신음과, 더운 공기와, 찔꺽거리는 소리,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 침대 헤드와 침대가 들썩이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찼다. 그 이상의 쾌락은 없었다.
"어, 엄, 마아...!"
커크가 엄마를 부를 때마다 맥코이는 다 큰 자식같은 커크를 범한다는 죄책감에, 그리고 그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부른다는 질투심에, 더 강하게 그에게 돌진했다. 커크가 맥코이의 등을 할퀴었지만 맥코이는 멈추지 않았다. 나쁜 아이에게는 벌을 주어야지. 종국에는 지친 커크가 그의 앞에서 부르르 떨며 속삭였다.
"아, 아아, 자, 잘못, 했어요..."
"우리 아가. 뭘, 응? 뭘, 잘못했지?"
"어, 엄마... 엄마, 미워, 했어......"
맥코이가 인상을 쓰고 허리를 쳐올렸다. 커크는 기쁨과 고통이 섞인 비명을 질렀다. 자괴감 섞인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 말에 맥코이는 남아있는 힘을 다했고, 결국 커크의 안에 사정했다. 이혼 이후 쌓였던 해묵은 감정들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기억의 잔재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이젠 끝났다는 듯 맥코이의 움직임이 멈추자 커크가 헐떡거리며 늘어졌다. 그는 거진 엉엉 울고 있었다. 맥코이는 얼룩진 커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얼굴조차 사랑스러워서, 눈물을 닦아주고 싶지 않았다.
한편 커크는 절정의 순간에 토해놓은 고백이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도 잊어버리도록 묻어둔 속마음들이었다. 원망, 분노, 그리고 포기.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비어 있기에 채우기를 갈망했다. 사랑을 흉내내는 수많은 다른 것들로. 그것은 마치 깊은 우물에 한 바가지씩 물을 떠 넣는 것 같았다. 물론 그도 우물이 그것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은 영영 말라 있을 터였다.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고개 들어봐."
커크가 들은 척도 않자 맥코이가 억지로 그의 턱을 잡아 올렸다.
"......."
그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단단히 깨물고 있었다. 커크는 팔을 들어 슥슥,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나, 하윽. 괜찮아."
"웃기시네."
"진짜로......."
괜찮다던 커크는 맥코이가 움직이자마자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맥코이가 웃으며 비꼬았다.
"어디가 괜찮은데?"
커크는 대답하지 못했다.
맥코이가 커크의 엉덩이를 잡아 끌어당겼다. 커크는 다시 헐떡이며 맥코이의 팔을 세게 쥐었다.
"아...!"
"아파?"
"아, 아니, 흐으, 아니야..."
언제나 자신을 고생시키던 커크가 연약하고 깊숙한 곳을 점령당하고 약해진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요놈, 맛 좀 봐라.
악문 이 사이로 고통이 비어져 나왔다. 커크의 손이 바닥을 긁었다. 손톱이 철제 바닥에 자국을 남기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다만 기대 이상이었을 뿐이었다. 평소에 스팍이 둘렀던 이성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에 이런 혼란과 격랑과 열정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리라. 그들의 조상이 가졌던 순수한 야성, 파괴적인 본능, 그리고 갈망과 욕구. 이것이 바로 책으로 보고 귀로 듣기만 했던벌칸의 '폰 파'였다.
스팍이 다시 한 번, 거침없이 커크에게로 돌진했다. 커크는 새어나오는 신음을 애써 가두며 허리를 틀었다. 평소에 그들이 즐기던 관계와는 확연히 다른 몸짓이었다. 쾌락도, 환희도, 속삭이는 밀어도, 여유로운 미소도, 담백하지만 부드러운 눈빛도 없었다. 이 행위는 조악하다기보다 순수한, 생명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욕구의 원형에 가까웠다.
즉, 번식이라는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커크는 덜덜 떨리는 이를 애써 다물었다. 아래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묵직한 통증에 정신을 놓칠 것만 같았다. 폰 파, 그리고 폰 파 상태의 벌칸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자신의 어떤 행동이 그를 자극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게 커크가 앓는 소리를 간신히 삼키고, 그를 할퀴는 대신 바닥을 긁어대고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커크는 점차 스팍이 일전에 자신의 목을 졸랐을 때나 방사능 코어에서 죽음을 기다릴 때보다도 더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위기감, 그래. 정말로 죽을 것 같은 공포.
커크는 스팍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를 받아낼 자신이 없었지만, 애써 웃었다. 복상사로 죽게 된다면 정말 부끄러울 거야. 아이고. 살아나도 이제 한동안 못 걸을지도 몰라. 호버링 체어가 필요하겠는데. 그거 타고 워프 팩터 1로 달리면...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라 커크는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은 집중해야 했다. 이렇듯 고통스럽고 폭력적이고 야만적이기 때문에 벌칸과 벌칸이 폰 파를 치르는 것이겠지. 어쩌면 스팍은 이런 상황을 염려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 이것을 예견했기에 그렇게 도망치듯 떠난 것이리라. 커크는 간신히 눈을 떴다. 스팍의 짙은 갈색 눈동자는 마치 용암이 터져나올 것 같이 붉고 어지러운 열기를 띠고 있었다. 초점이 사라진 불꽃 위에 잔뜩 겁을 먹은 자신의 얼굴이 비쳐서, 커크는 그저 눈을 감아 버렸다. 어쨌든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 후회할 수도 없었다. 커크는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연인의 머리를 안았다. 그의 귀에 대고 커크가 조용히 속삭였다.
"죽여줘. 어서."
그의 말에 응답하듯 스팍이 커크의 허리를 세게 끌어당겼다. 커크는 이번에야말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
18시간 전.
엔터프라이즈 호의 5년 임무 기간 중에 스팍의 폰 파가 찾아온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벌칸족 특유의 기간인 폰 파는 7년을 주기로 발생했고 스팍은 그 해 28세였다. 닥터 맥코이를 비롯하여 벌칸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이 있는 사람-사실상 스타플릿을 졸업한 대부분의 크루-이라면 그들의 부함장을 위해 잠깐의 휴식을 갖는 것에도 기꺼이 동의했을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스팍은 나름대로 그 해 있을 폰 파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두고 있었다.
"휴가를 달라고?"
커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스팍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연인은 흐트러짐 없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예, 캡틴. 뉴 벌칸에 다녀오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셔틀로는 무리야. 현재 지점에서 얼마나 걸릴지 몰라."
"워프 팩터 4로 20시간 걸립니다. 그쪽에 연락을 넣어 중간 지점까지 마중을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휴가 목적은?"
의심이 낮게 깔린 푸른 눈동자에 대고, 스팍은 스스럼없이 거짓 아닌 거짓을 고했다.
"벌칸족 재건 계획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한 번도 뉴 벌칸을 방문하지 않았으며, 이는 제 종족이 수립한 규범에 누가 되는 행동입니다." 그가 덧붙였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의자에 반쯤 기댄 채로 커크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스팍은 그 눈빛을 담담히 마주했다. 온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두 개의 목적 중 한 개만을 밝혔을 따름이었다.
"그게 내게 말할 수 있는 최고로 논리적인 변명이야?"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스팍. 설마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한숨을 내쉬듯 원망하는 목소리였다. 스팍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의 날을 세웠다.
"이것은 제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그리고 제 종족의 번영에 관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난 네 연인이기도 해."
스팍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커크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정할 수조차 없었다. 칸에 의해 서로가 영원히 이별하는 줄 알았던 그 날, 스팍은 커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뼈저리게 이해했다. 더없이 무거운 한 문장이 세차게 흘러와 자신의 벽을 허물어뜨렸고, 뇌리에 새겨져 자신의 존재를 주장했다. 바로 '제임스 커크를 사랑한다'는 것.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스팍은 그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유아 시절 저와 본드를 맺었던 벌칸 여성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제 속에 있던 수많은 벌칸족과의 고리가 단절되었습니다. 어머니를 포함해서."
당신이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어, 짐. 대신하게 하고 싶지 않아. 스팍은 말을 삼켰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제가 뉴 벌칸을 방문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데. 이야, 혹시 우리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중인 거야?"
"캡틴."
"알고 있어. 폰 파 때문이잖아."
스팍은 자신이 교육받은 방식에 의거하여 불유쾌한 단어를 스스럼없이 내뱉은 커크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폰 파는 현재의 벌칸족에게 있어 '필요하나 부끄러운' 의식이었으며, 그들의 도덕과도 어울리지 않는 고대의 잔재였다.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제어한다 자부하는 벌칸에게는 일종의 수치와 다름없었다.
"그 정보에 대해 당신에게 확인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 없지? 내가 너와 본드를 맺을 수 없는 이종족 연인이라서? 폰 파를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서?"
"짐."
커크의 마지막 말에 의표를 찔린 스팍은 재빨리 몸을 숙여 의자의 양 손잡이를 짚었다. 커크가 과히 좋다고 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코와 코를 맞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스팍은 낮게 말했다.
"짐. 그렇게 크게 벌칸의 사적인 특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조언하겠어."
"네가 먼저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래."
"무례? 내가?"
"그래."
커크는 스팍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리고 패드를 들고 일어났다.
"휴가는 불허하겠어."
"짐!"
"네가 이 함선에서 제일 똑똑하잖아. 방법을 찾아내."
스팍이 터보 리프트에 들어간 커크를 뒤쫓았다. 함장실, 커크가 행선지를 말하자 리프트가 덜컹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어." 스팍의 말에 커크가 코웃음을 쳤다. "글쎄. 적어도 그게 너는 아닐 거야."
목적지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 커크가 말없이 내렸고, 문이 닫혔다. 스팍이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내가 될 수도 있어. 짐."
-
10시간 전.
커크 또한 그 사실을 알았다. 폰 파 기간 중에 적절한 성적 관계를 갖지 않으면 벌칸은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 커크는 기실 벌칸에 대해서는 벌칸족 당사자들 다음으로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연인을 위해 이것저것 공부한 결과였다. 따라서 커크의 말은, 스팍을 죽게 하지 않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사실 커크는 스팍이 왜 평소에는 잘만 하던 섹스를 폰 파 때라고 해서 자신과 하지 않으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인이잖아?
게다가 스팍은 벌칸족 아버지와 인간 어머니를 둔 혼혈 벌칸이었다. 그런 부모 아래에서 자란 그가 종족이 다르다 해서 자신과의 폰 파를 거부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역시....... 후손을 남기는 일의 문제겠지.
커크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무늬 없는 회색-, 아니 하늘색이 감도는 밝은 잿빛 천장이 보였다. 엔터프라이즈의 색과 비슷했다. 예쁜 엔터프라이즈, 내 예쁜이. 커크는 손을 들어 천장에 엔터프라이즈의 모양을 덧그렸다. 예로부터 함선의 캡틴은 자신의 함선과 결혼한 거라고, 반 우스개로 그런 말이 전해지곤 했다. 스타플릿이 있었던 이래로 대부분의 함장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하면 별에 정착하곤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완전히 빈말은 아니었다.
제임스 커크 또한 결혼이나 정착에는 뜻이 없었다.
그래서 함선의 함장직이야말로 우주에서 태어난 자신에게 딱 맞는 의자라고, 커크는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스팍은?
명실공히 멸종 위기의 종족이다. 벌칸은 동시에 지구의 인간들과 최초로 접촉하여 우주 연방 시대를 도래하게 만든 가장 친숙하고 가까운 외계 문명이기도 했다. 스팍의 아버지는 지구에 주재하던 벌칸 대사였고, 인간과 결혼하여 벌칸-인간 혼혈인 스팍을 낳았다. 스팍은 다른 벌칸들과 다르게 벌칸 아카데미 대신 지구의 스타플릿을 선택했고, 뉴 벌칸 대신 엔터프라이즈를 선택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폰 파가 찾아오니 벌칸으로 돌아간다는 건가.
이해할 수는 있었다. 정체성이 없어서 문제인 자신에 비하여 스팍은 정체성이 두 개인 것이 문제였다.
커크는 침대에 주먹을 내리쳤다. 하지만 지금의 과학 기술로도 충분히 두 사람의 RNA를 조합하여 새 생명을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21세기부터 가능했던 기술이었다. 도대체 날 거부하는 이유가 뭐야? 커크는 거절당하는 감정을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떠남, 타르서스의 악몽. 화가 났다고 한다면, 맞다. 화가 났다. 자신이 단순히 인간이자 남성이라서 거부하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그들이 서로 사랑해온 것들이 설명되지 않았다. 설령 그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것도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어쨌든 제임스 커크는 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때 통신기가 울렸다.
"짐!"
닥터 맥코이였다. 커크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왜?"
"방금 셔틀 하나가 빠져나갔는데-."
커크의 심장이 뚝, 멎었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스팍이 거기에 탄 것 같아!"
-
4시간 전.
두 개의 하얀 셔틀이 검푸른 우주에서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스팍은 커크가 쫓아올 것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가장 빠른 셔틀을 골랐고, 커크는 그 다음으로 빠른 셔틀을 골라 잡아 탑승한 상태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추격전은 두 셔틀이 소행성대를 지나며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크고 작은 소행성 파편을 피하기 위해 둘 모두 속도를 줄였던 것이다. 스팍은 이를 통해 커크를 떼어놓을 심산이었고, 커크는 자신의 운전 실력을 믿고는 다시 속도를 올려 스팍의 꼬리를 잡았다. 이에 스팍의 셔틀이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방향을 선회했다. 커크는 미처 그 앞에 있던 작은 소행성 파편을 피하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부딪혔다. 그 충돌에 셔틀이 멈춰서고 말았다. 위험할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기에 스팍은 그런 커크를 내버려 두고 셔틀을 움직였다. 대신 그는 통신을 열었다.
"엔터프라이즈, 스팍이다. 캡틴의 셔틀이 소행성과 경미하게 충돌했다. 확인 후 구조 바란다."
"캡틴으로부터 응답이 없습니다. 근처 외행성에서 폭발이 일어나... 자기장이....... 통신... 곤란......."
"......."
스팍이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었다. 이 근처에는 적대적인 외계 종족도 없었으며, 이 소행성대에서는 셔틀이 다른 행성의 중력장에 이끌려 갈 가능성도 현저히 낮았다. 게다가 저 정도 가벼운 사고로 짐이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은 48.6%...
스팍은 머리를 흔들었다.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했다. 논리적인 생각을 하기 힘들어지는 것 자체가 폰 파의 전조 증상이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야말로 폰 파를 맞은 벌칸이었다. 확률적으로 그것이 가장 위험했다. 스팍은 차라리 자신이 우주선 셔틀에서 홀로 죽을지언정 커크를 다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팍......."
하지만 열어둔 통신에서 커크의 끊어질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스팍은 이미 조종간을 돌리고 있었다.
-
1시간 전.
커크의 셔틀과 도킹하여 그 안에 내려선 스팍은 급히 주변을 살폈다. 물건들이 죄다 쏟아져 있었다.
"짐!"
곧바로 운전석으로 향한 스팍은 쓰러져 있는 커크를 발견했다. 커크의 몸 위로 철제 선반이 넘어져 있었다. 스팍은 달려가 선반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커크를 부축해 세웠다. 몸을 살펴보니 의외로 커크는 가벼운 타박상 외에는 피 한 방울 흘린 데 없이 멀쩡했다. 커크가 비식 웃었다.
"결국 돌아올 거였으면서."
스팍은 말문이 막혀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부상을 입은 척 해서 자신을 끌어들이다니. 어미 오리가 다친 흉내를 내어 새끼들을 노리는 맹수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그 맹수는 자기 자신이었고, 커크는 사냥감이었다. 스팍에게 있어서 제임스 커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스팍이 딱딱하게 입을 열었다.
"짐. 난 너를 보호하기 위해 함선에서 나온 거야. 그런 나를 다시 부르면 내 행동은 무의미해져."
"멍청하긴. 네가 떠난 것부터가 비논리적이라는 생각 안해?"
"논리적인 판단 하에 이루어진 행동이었어. 폰 파는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인하자 커크는 오기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죽음을 각오하고 나갔다 이거지? 그는 옆에 앉은 스팍의 멱살을 잡아 끌었다.
"스팍. 이 엿같은 자식아. 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럼 뭐야? 폰 파 때는 각방이라도 쓰셨대?"
"다시 날 그렇게 부르거나 내 부모님을 모욕하는 언사를 한다면-."
"못할 건 뭔데?"
커크가 손을 뻗어 스팍의 바지 버클을 잡아당겼다. 스팍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짐!!"
스팍의 손이 커크의 팔을 낚아챘지만, 커크가 이미 지퍼까지 내린 상태였다. 평소에 내장되어 있던 스팍의 것이 속옷 안에서 불룩하니 튀어나와 있었다. 커크가 그것을 보고 이죽거렸다.
"꼬마 스팍은 벌써 준비됐네. 어디 그 폰 파라는 걸 보여달라고. 잘나신 벌칸아."
"...안 돼."
스팍이 그의 팔을 놓고 물러섰다. 커크는 더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스팍을 위해서, 사랑하는 스팍을 위해서라면 더 모욕적인 말도 할 수 있었다. 그때처럼 그를 감정적으로 몰아세우는 건 오히려 간단했다. 스팍이 지금 잠깐은 상처입을지 몰라도 결국은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갈 테니까. 과거에 그랬듯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세상에 미련이 없는 자신이어야 했다.
커크가 덤벼들어 스팍을 바닥에 눕혔다. 스팍은 어지러움 증세를 느꼈다. 사실 이 셔틀로 건너와 커크를 본 순간부터, 아니, 커크의 가냘픈 목소리를 들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감정과 이성의 균형이 흔들렸다. 폰 파가 시작되고 있었다.
"짐, 제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커크가 스팍의 손에 자신의 손을 부볐다. 벌칸식 키스였다. 스팍의 어지러움이 심해졌다. 손으로 깍지를 끼자, 스팍은 인간으로 치자면 입술을 꽉 깨물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팍이 다시 한 번 제발, 하고 중얼거렸지만 커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커크의 다른 손이 스팍의 배를 훑어내렸다. 아랫배를 거쳐, 그의 것까지 금세 도달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더라..."
커크의 중얼거림이 먼데서 들리듯 아련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스팍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커크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그의 손을 멈추고 자신에게서 떼어낸 뒤, 다시 셔틀을 타고 어디로든 떠나야 했다. 그에게서 멀어져야만 했다. 차라리 홀로 죽고 싶었다. 그의 남은 이성이 제발 그러라고 간절하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그의 감정이 이성을 비웃었다. 지금, 당장, 눈앞의 상대에게 자신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머리와 가슴 그리고 다리 사이가 불 붙은 듯 뜨거웠다. 커크가 자신의 것을 손으로 비벼댄 것도 한몫 했다. 산 채로 타들어가는 이 고통, 이것은 자신이 원치 않았지만 깊은 곳에서부터 원하던 것이었다.
"스파악......."
스팍이 흥분하는 것을 보고 커크 또한 젖은 목소리를 냈다. 그게 스팍의 감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스팍은 벌떡 일어나 커크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커크가 아픈 듯 신음을 흘렸고, 그것 또한 스팍을 자극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스팍을 자극하고 있었다. 간신히 뜬 샛푸른 눈동자. 윤기 나는 더티 블론드. 피가 몰려 진분홍색이 된 입술. 땀에 젖어 뽀얗게 보이는 목선. 노란색 유니폼과 몸에 딱 맞는 검은색 바지.
"짐, 나, 나는......."
스팍이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잡아 내뱉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의 손이 덜덜 떨리며 커크의 바지춤을 붙잡았다. 마치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커크는 긴 숨을 내쉬며 자신의 버클을 풀었고 스팍의 손을 인도해 들였다. 마찬가지로 그도 흥분해 있었다. 스팍의 손이 닿자 커크의 숨이 가빠졌다. 스팍 또한 타 부위보다 민감한 손으로 그 미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 노력을 다해 커크의 뒤를 어루만졌다. 그로서는 그것만이 최선이었다.
"미안, 짐..."
커크가 열에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취한 것처럼, 잔뜩 달큰한 느낌이었다.
"괜찮아. 난 괜찮아..."
그 시점에서 스팍은 이성을 잃었다.
스팍이 커크의 옷을 찢고 그를 들어올렸다. 커크 또한 알아서 허리를 맞춰 주었다. 스팍이 돌진했고, 커크가 헉 하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생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었다. 기술적으로는, 정말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커크가 몸을 떨며 스팍을 붙잡았다. 스팍은 아랑곳않고 거세게 허리를 움직였다. 커크의 호흡이 뜨문 뜨문 간헐적으로 끊어졌다.
"하, 으으, 하아, 으...!"
그것은 기계의 움직임마냥 무자비하고 무정한 행위였다. 커크는 허리를 젖히다 지쳐 스팍을 껴안은 채 힘없이 늘어졌다. 그는 고통과 열락에 젖어 눈을 감았다. 뜨거운 것이 흘러나왔다. 섹스돌이라도 된 것마냥 당하는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았지만, 이게 스팍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행스러울 뿐이었다.
왜냐하면, 스팍. 넌 죽었던 나를 한 번 살렸잖아. 그러니까 나도...
"하윽...!"
커크의 생각이 중단되었다. 스팍이 그의 안에서 폭발적으로 사정했고, 덕분에 거칠고 메말랐던 교통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졌다. 곧 스팍이 커크에게서 빠져나갔다. 커크는 다시금 숨을 몰아쉬었다. 공허한 느낌과 해방감이 동시에 몸을 가득 채웠다. 커크는 불꽃이 사그라들듯 주저앉았다. 그곳이 온통 얼얼해서 다리를 모을 수가 없었다.
또한 자신을 잠식해오는 두려움에, 앞에 서 있는 스팍을 차마 올려다볼 수도 없었다. 커크는 입가를 끌어올려 웃었다.
"이제 시작인가......? 내가 알기로 폰 파가 약 20시간..."
스팍에 의해 뒤로 넘어가면서, 커크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거친 숨만을 뱉었다.
-
19시간 후.
스팍이 눈을 떴다. 통신기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깹띤! 깹띤!! 계심니까!"
"캡틴! 제 말 들려요?"
캡틴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가슴이 덜컹 소리를 낼만치 떨렸다. 스팍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가운 셔틀 바닥에 커크가 뻗어 있었다. 그와 자신 모두 나체였다. 폰 파가 그들을 휩쓴 것이리라. 스팍이 허둥지둥 커크의 상태를 살폈다. 간신히 숨은 쉬고 있었다. 몸 곳곳에는 푸른 멍이 들어 있었고, 가벼운 찰과상이 대여섯 개, 그리고.......
스팍은 찬물을 맞은 듯 부르르 떨었다. 짐승과 다름없었을 자신에게 온전히 몸을 내어준 커크가 고마우면서도 원망스러웠다. 홀로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어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말 죽었다 살아났던 게 꼭 반 년 전인데. 왜 꼭 자신이 이런 꼴을 보게 하는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커크가 미웠다. 그 정도로 증오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스팍이 아기를 다루듯 조심조심 커크를 안았다.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팔을 간지럽혔다. 스팍은 옆에 떨어진 의료용 가운을 끌어당겨 커크에게 덮어주었다.불행 중 다행으로 이 셔틀에는 각종 의료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마 다친 상처도 금방 치료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짐?"
작은 짐승이 머리를 디밀어 연인을 깨우는 것처럼, 스팍이 부드럽게 커크의 얼굴을 쓸었다. 어머니를 부를 때와 같이 잔잔한 목소리였다. 커크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그것을 본 스팍은 더 살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짐."
커크의 눈이 천천히 벌어졌다. 투명하고 깨끗한 바다가 보였다. 스팍은 그곳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게 커크와 관계를 할 때마다 불을 켜는 이유였달까. 사막과도 같은 불과 모래의 행성에서 자란 그에게 바다는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어딘가 낯선 세계, 그리고 아름다운 낙원. 빛이 가득한 그 바다를 보기 위해 스팍이 이마를 쓸어주자, 커크가 긴 숨을 내쉬었다.
"스팍......."
"응."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스팍의 말문이 막혔다. 미안한 마음이 한껏 솟아올랐다. 폰 파는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여파가 여직 물결치는 바다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 스팍을 보고 커크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치만 살아있잖아. 안 그래...?"
"...난 분명 논리적인 안을 제시했어. 그걸 자초한 건 너야. 짐."
"하여간 말을 해도......."
커크가 혀를 차며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안아줘."
스팍이 바로, 하지만 다정하게 커크를 품에 안았다. 포대에 싸인 아기처럼 하얀 가운에 둘둘 감긴 커크는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겼다. 보드라운 커크의 머리칼이 스팍의 턱을 간지럽혔다. 스팍은 그게 싫지 않았다.
"...질투가 났었어."
"무슨?"
"네가 뉴 벌칸에 가서 만날 모든 다른 벌칸들에게."
"......."
"...네가 내가 아닌 다른 녀석을 안는다는 거."
커크의 고백 아닌 고백에 스팍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솔직한 말은 스팍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남겨 주었다. 만약, 커크가 지구나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서 다른 인간을 만나겠다고 한다면? 결혼해서 후손을 남기겠다고 한다면?
논리적으로는 그의 의견에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정상적인 이야기였다. 자신이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꺼지지 않은 그의 감정이 이에 반기를 들었다. 스팍이 커크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이제 이해할 수 있어."
"누구를?"
"내 아버지 사렉을."
커크가 작게 웃었다. 그걸 이제 알았어? 라는 웃음이었다. 스팍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어떻게 어머니를 벌칸으로 데려올 수 있었죠?'
'네 어머니를 사랑했으니까.'
스팍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커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커크는 그의 입김이 간지러운지 꿈틀거렸지만, 싫지는 않은지 흐흥거리며 기분좋은 소리를 냈다. 통신기는 빽빽대며 그들의 이름을 불렀고 전면 패널에서는 우주가 그들을 지켜보았다.
깔끔하고 정갈한 방이었다. 그 주인을 닮아있는 듯, 가구들조차 흐트러짐 하나 없이 단정했다.
하얀 침대 위에는 죽은 것처럼 똑바로 누워있는 벌컨인 한 명이 있었다. 그의 옆에 놓인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현재 시각은 0530, 이른 새벽이었다. 방 안은 그의 고른 숨소리로 가득했다.
그 때, 스르륵 방문이 열렸다. 수동으로 조정했는지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내 문 틈으로 한 남자의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푸른 조명을 받은 그의 눈동자는 장난기 가득한 강아지처럼 기대에 차 있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들어와 살짝 문을 닫았다.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는 침대 옆에 섰는데, 그제서야 자고 있는 벌컨인을 놀라게 해주려는 속셈인 것이 분명해졌다. 팔을 번쩍 들어올린 남자는 입모양만으로 하나, 둘-.
"짐."
"으아아악?!"
커크는 깜짝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가, 결국은 사래가 들려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콜록, 콜록!"
"짐. 저는 인간들보다 청각이 예민하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큭, 켁, 켈록!!"
"……."
커크가 침대에 반쯤 쓰러져서 거칠게 기침하자 스팍은 결국 손을 뻗었다. 그는 천천히, 하지만 강하게 커크의 등을 두드렸다.
"이걸로 절 놀라게 하려는 당신의 시도는 38번째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오전 일찍 일어나는 시도는 업무에 긍정적이라 평가할 수 있겠군요."
"스팍, 언제부터……."
"짐. 이미 몇 번 말씀드렸고, 당신은 잊어버렸겠지만, 저는 이 방에서 승강기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커크는 잔뜩 기침을 해 눈물이 고인 눈으로 스팍을 올려다보았다.
"참 고맙기도 하지. 그런데 자는 척을 해?"
"가능한 한 충분한 휴식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젠 정말 일어나야겠군요. 캡-."
스팍은 말을 잇지 못했다.
"시간 남았잖아."
커크는 그를 껴안고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졸지에 다시 침대에 누운 스팍은 잠깐 할말을 잃은 듯 보였으나, 곧 눈썹을 꼿꼿이 세웠다.
"캡틴. 이미 수면의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눕는 행동은 비논리적입니다. 불을 켜겠습니다."
"켜지 마."
"캡틴. 제가 일어나서 불을 켜야-."
"스팍. 가만히 좀 있어. 입 다물래, 아니면 키스할래?"
스팍은 잠깐 두 제안을 견주어 보았으나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짐. 당신에게는 두 방안 모두 같은 행동을 의미하므로 제게 두 방안 중에 고르라고 하는 행위는 불필요한-."
"그러게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커크가 키득거리며 손을 뻗었다. 그 손가락은 정확히 스팍의 입술에 가 닿았다. 스팍은 입을 벌린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조심스럽게, 섬세한 작품을 만지듯, 커크의 흰 손가락이 스팍의 입술선을 덧그렸다.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는 디지털 시계의 푸른 빛만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커크는 스팍의 얼굴을 만지는 것을 꽤나 좋아했다. 체온이 높은 편인 그는 벌컨족 특유의 체온이 시원하게 느껴졌고, 이는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스팍은 커크가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듯 쓰다듬는 것이, 사뭇 따뜻하게 느껴졌다.
스팍이 입을 다물자 자연스레 방에는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커크는 그것 보라는 양 싱긋 웃었다.
"이것봐. 얼마나 평화로워. 다시 잠이 솔솔 올 것 같잖아?"
스팍은 이에 다시 대꾸하려 했지만, 커크의 손이 여전히 자신의 입술 위에서 맴돌고 있었기에 그 시도를 포기했다.
커크는 이제 아예 옆으로 누운 채 두 손을 스팍의 얼굴에 댔다. 그가 얼굴을 당기는 것이 마치 강아지가 옷깃을 끌어당기는 듯 해서, 스팍은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몸을 살짝 틀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누워 있었다.
"짐……."
스팍의 목소리가 가늘게 새어나왔지만, 커크는 가볍게 쉿, 하고는 두 손으로 스팍의 눈꺼풀을 잡아 내렸다. 힘이 인간보다 세 배는 강한 벌컨이라도, 눈꺼풀조차 세 배로 강한 것은 아니었다. 스팍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그의 귀에 쿡 하는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부스럭거리는 소리도 함께였다. 커크가 움직이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왜 움직이는지는 스팍도 예상할 수 없었다.
"스팍. 옛날부터 궁금했는데."
"무엇입니까."
"이거 있잖아."
어느새 커크는 스팍의 뾰족한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스팍은 예민한 부분에서 부드러운 움직임이 느껴지자 참을 수가 없어 눈을 번쩍 떴다. 커크는 숫제 스팍의 귀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아아아. 잘 들려?"
"……짐. 제 귀는 마이크가 아닙니……."
"잘 들리네."
스팍이 이제는 정말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단호하게 입을 열었을 때였다.
"캡틴. 벌써 시간이-. 짐!"
평소엔 잘 내지 않는 높은 톤으로 스팍이 목을 울렸다.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야금야금 스팍의 귀를 깨무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 세게 물지도 않았건만, 금세 스팍의 귀 끝이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스팍은 급히 손을 들어 커크를 떼어냈다. 커크도 호락호락하진 않아서 그의 팔목을 잡아 내리고서야 간신히 그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었다.
"뭐하는 겁니까, 짐."
"맛이 궁금했어. 진짜 옛날부터 궁금했다니까. 진짜야."
스팍은 대답없이 커크를 노려보았다. 커크는 자신은 하나도 잘못이 없다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맨날 귀는 못 만지게 하잖아. 우리가 오늘부터 1일! 뭐 이런 초짜 커플도 아니고 응? 왜 그 정도도 안되는데? 우리가 그런 사이야? 응? 응응?"
말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분홍색 입술이 오물오물하는 것이 마치 붕어가 입을 달싹대는 것 같았다. 스팍은 그 입을 멈출 수 있다면 키스라도 하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그냥 그 입술째로 삼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호의 부함장, 그리고 이성적인 생명체인 벌컨족 스팍은 기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했다. 시계는 차분하게 0540을 표시하고 있었다.
"캡틴. 일어나겠습니다."
"못 가."
스팍은 커크의 손을 놓으려고 했으나, 그러자마자 커크가 스팍의 목을 안으려고 하는 통에 다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캡틴. 함장과 부함장 모두가 제 시간에 함교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항해가 어려우며, 가능하다 해도 크루들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자체 휴가인 셈 치지 뭐."
스팍이 눈썹을 올렸다.
"스타플릿 규정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캡틴."
"내가 최초로 시작하면 되지."
"그것은 비논리-."
커크는 스팍에게서 팔을 빼내려는 그 어떤 움직임도 먹히지 않자, 몸으로 그에게 돌진했다. 예상 외의 습격에 스팍이 뒤로 벌렁 누운 틈을 타 커크는 역으로 스팍의 손목을 잡고 몸을 굽혔다.
"짐. 벌컨이 인간보다 힘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군요."
스팍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스팍이 마음만 먹으면 3초 내에 둘의 위치는 뒤바뀔 수 있었다. 이전까지 내내 그랬듯이.
커크는 스팍의 입술이 자신의 볼에 닿을만큼, 그리고 자신의 입술이 스팍의 볼에 닿을만큼 고개를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글쎄. '승산 없는 시나리오'는 믿지 않으니까?"
"그것은 일전에……."
스팍이 커크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양이었다. 그가 잠깐 경계가 풀린 틈을 타 커크는 번개같이 움직였다.
"……."
그의 부드러운 입술이 스팍의 이마에 촉, 하고 닿았다가 떨어졌다. 스팍은 숨을 삼켰다. 스팍이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커크는 이미 스팍의 눈에도 입맞춤을 선사한 뒤였고, 스팍은 꼼짝없이 눈을 감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스팍은 경험을 통해 커크가 이런 작은 스킨십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그가 애정 표현을 하는 날은 자신이 꼼짝없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스팍."
"예."
"불 안 켜는 게 낫지?"
스팍은 그의 말에 담긴 속뜻을 파악하느라 한참을 고민해야했다. 그리고 그가 그에 대한 논리적인 답변을 내놓을 준비가 다 되었을 때쯤에는, 커크가 이미 스팍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놓고 있었다.
벌컨식 키스.
커크는 신중하게 스팍의 손가락 위를 자신의 손으로 훑었다. 이 날을 위해 며칠 동안 연습한 것처럼. 스팍은 점차 손끝에도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커크의 부드러운 입술이 스팍의 얼굴 위를 스칠듯 말듯 쓰다듬는 것, 가끔 혀를 내밀어 간지럽히듯 핥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손으로 전해오는 감각에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스팍은 벌떡 몸을 일으켜 커크를 잡아 눌렀다.
"아, 아아! 아오!!"
커크가 몸부림쳤지만, 둘의 위치는 완전히 뒤바뀐 채였다.
"스팍! 이건 불공평해!!"
"공평합니다. 짐."
"내가 캡틴이니까 내가 위-."
억울함이 뚝뚝 떨어지게 외치던 커크의 목소리는 스팍의 입술에 덮혀 들리지 않았다.
스팍의 혀가 강하게 커크의 입 속으로 들어왔고, 커크는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스팍의 혀와 얽혔다. 둘은 상당히 공격적으로 서로의 입 안을 탐색했다. 벌칸에게 입키스는 무의미했으나, 그동안 하도 키스를 해오는 커크 덕에 스팍도 지지 않을만큼 경험이 쌓인 터였다.
전투와 같은 키스 끝에 평범한 인간의 폐활량을 가진 커크가 먼저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스팍은 봐주지않고 몰아붙였다. 그는 오히려 커크와 입을 맞댄 채로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으?!"
커크가 놀라 얼굴을 떼려 했지만, 누워있는 상황에서는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스팍은 자체 휴가라는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린 캡틴을 혼내주려는 모양인지, 그렇게 한참을 있은 후에야 커크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졸지에 산소부족 상태를 겪은 커크는 숨을 헐떡였다.
"스팍……."
"왜 부르십니까."
"나쁜 자식……."
"임무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려던 쪽은 당신입니다. 짐. 이제 함교에 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으씨……. 넌 아가미로 호흡하냐? 왜 나만……."
스팍이 커크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커크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씩씩거리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 밝다고 할 수 없는 방이었지만, 커크의 푸른 눈동자와 붉어진 눈시울은 그 와중에도 확연히 보였다. 스팍은 이제 정말 일어나기 위해서라도 고개를 돌렸다.
"스팍."
"예. 캡틴."
"한 개만 부탁할게. 좀 억울해서."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말씀하시죠."
"너 우는 거 보고싶어."
스팍이 결국 커크를 돌아보았다.
"그 부탁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그 순간 스팍은 이해하고 말았다. 커크의 물기어린 눈을 보자마자, 커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커크를 좋아하는만큼, 커크도 자신을 좋아하고 싶다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
"약속해. 막지 않기."
짐. 그게 벌컨에게 얼마나 고문인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스팍이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기꺼이 커크를 향해 돌아앉았다.
"노력하겠습니다."
이번엔 커크가 스팍에게 손을 뻗었다. 마주 앉아서, 이번에는 부드럽고 젠틀하게, 커크가 입술을 열었다.
한쪽 손은 스팍의 손을 잡고 있었다. 세심하게 손을 움직이는 커크 덕택에 스팍은 눈을 꽉 감아야 했다. 커크는 그런 스팍의 반응에도 아랑곳않고 키스를 계속했다.
커크가 다른 손으로 스팍의 머리칼을 쥐고 살짝 뒤로 잡아당겼다. 스팍의 목이 젖혀지면서 몸이 기울어졌고, 커크는 스팍의 아랫입술, 턱에 이어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며 키스를 퍼부었다.
스팍은 자연스레 벌어진 입에서 신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삼켰다. 늘어져 있던 한 손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불을 움켜쥐었다. 뒤로 쓰러질 것 같았지만, 힘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커크는 스팍이 굳은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스팍."
"짐……."
"그냥 누워."
커크가 킥킥대고 웃으며 스팍을 쓰러뜨렸다. 스팍은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커크가 그의 위에 올라타자, 스팍은 겨우 손을 들어 커크의 얼굴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마인드멜드 하려는 거 아니지?"
커크는 이전에도 몇 번 당한 것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둘 모두 예민한 상태에서 마인드멜드를 했다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스팍은 그저 커크가 그랬듯이, 커크의 입술을 문질거렸다.
"웃."
부어오른 커크의 입술은 그만큼이나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스팍은 이렇게 약해서는 자존심만 높아서 어떻게든 자기를 덮쳐보겠다고 덤비는 커크가 아주 조금 안쓰러웠다.
"스파악~?"
스팍의 손짓을 읽은 커크는 짖궂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손 끝마디부터 살짝 살짝 깨물기 시작했다. 귀를 물렸을 때보다도 더 강한 자극이었다. 아랫배에서부터 찌르르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스팍은 이를 악물었다. 커크는 정말이지 못된 데가 있었다. 캡틴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지만, 파트너로서는, 가볍고 장난스럽기 짝이 없는 데다가 꼭 혼날 짓을 해서 결국은 큰 코 다치고 마는-.
"짐……."
커크는 스팍의 간절한 부름을 무시하고 키스에 열중했다. 부드러운 터치감만 느껴지던 키스는 어느새 깨무는 키스가 되어 있었다. 스팍은 커크의 이가 스칠 때마다 움찔거리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벌컨식 명상을 시도해야할지 고뇌했다.
'Rrrrr'
하늘이 도왔는지, 때마침 스팍의 통신기가 울렸다.
"받지 마."
"하지만 짐-."
"저거 분명 엄마야."
커크는 스팍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입은 멈췄어도 그놈의 꼼지락거리는 손은 가만히 있질 않아서, 스팍은 간신히 눈을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0600이었다. 함교에 0700까지는 나가야 했다.
"받지 말라니- 스팍!"
스팍은 커크의 가슴을 잡아 누르고 통신기에 손을 뻗었다. 커크가 있는 힘껏 버둥거렸지만, 스팍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침대 옆 협탁에서 통신기를 낚아채 버튼을 눌렀다.
"망할, 짐!! 아침부터 빌어먹을 레슬링 같은 연애질 그만하고 함교로 당장 내려와!"
확실히, 엄마는 엄마였다. 그는 커크의 통신기와 패드가 모두 연락 두절일 때 어디에서 그를 찾아야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상황을 훤히 보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건 제 통신기입니다. 닥터 맥코이. 그리고 기술적으로 함교는 최상층부에 있으므로 올라오라는 표현을-."
"스팍!! 이 고블린아, 아침부터 애 붙잡아놓고 뭐하는거야!"
비난의 화살이 스팍에게로 향하자, 커크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 아냐! 본즈! 내가 여기 온 건데……."
"어이구, 잘났다, 그래.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는 걸 대체 왜 당직도 아닌 내가 알려야 하는거야? 난 의사지 항해사가 아니라고!"
수화기 저편에서 '독따 맥꼬이가 몬저 욘락하게따고 하셔씀니다!'라는 체콥의 목소리가 들렸다. 커크는 피식 웃고 말았다.
"너 시끄러! 하여튼, 당장 올라오지 않으면 서로 방에 출입금지 시킬 거니까 그렇게 알어!"
"세상에. 본즈. 누구한테 명령하는거야. 내가 캡틴인데?"
"너 아직 출근 안했잖아!!"
본즈는 빽 소리를 지르고는 통신을 끊어버렸다. 스팍은 통신기를 든 채로 물끄러미 커크를 내려다보았다. 커크는 누워서 재미있다는 듯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아이고, 본즈. 귀여워 죽겠다니까."
창문이라고는 없는 함선 내 방이었기에 여전히 어두웠다. 일어선 스팍의 그림자에 커크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스팍은 불현듯 시계를 보았다. 0605. 시간은 충분했다.
"라이트 온."
"악! 스팍! 내 눈……!"
스팍의 목소리에 방 안이 환하게 밝아졌고, 커크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침대에서 약 삼십 분을 굴렀음에도 불구하고 스팍은 여느 때처럼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부스스한 앞머리를 정리하며 커크를 눈여겨보았다. 스팍이 단정함의 상징이었다면 커크는 흐트러짐의 상징이었다. 그의 캐주얼한 후드는 반쯤 지퍼가 내려간 채로 올라올 줄을 몰랐다. 더불어, 커크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스팍이 살며시 손을 뻗어 커크의 양 볼을 잡았다.
"아까 질문하신 것에 대한 대답은."
"뭐……?"
커크는 가까스로 손을 내리고 눈을 껌뻑거렸다. 푸른 크리스탈, 봄베이 사파이어, 워프 코어의 색깔 같은, 인간 중에서도 정말이지 인간적인 눈동자. 스팍은 그 바다 위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