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살의 주의
한마디: 이렇게 나는 스팍칸을 찍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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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은 통신을 받은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보고서 문제를 잘 해결했다 싶었더니 또 시작이었다. 스팍은 도저히 자신의 상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함장이라면 자신의 목숨도 중한 줄을 알아야 했다. 모름지기 함장이란 함선 전체를 책임지고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제임스 커크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자살 행위는 지양하는 편이 나았다.
더욱이 그는 한 번 죽었던 사람이 아닌가. 방사능 코어의 문 앞에서 느꼈던 절망감. 벌칸 모성이 블랙홀에 먹혀 사라질 때의 상실감. 어머니를 손 끝에서 잃었을 때의 좌절감.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자신의 혈관 속을 거세게 흘러다녔다. 스팍은 눈썹을 찡그렸다. 제임스 커크. 당신을 다시 죽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으므로.
스팍은 좀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차분히 호흡하며 커크가 칸을 만나러 갈 이유를 추론해 보았다. 닥터 맥코이의 소견에 따르면 커크가 아무 목적도 없이 칸을 만나러 갈 리는 없었다. 그를 만나서 대화해야 할 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었다.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에 대한 추궁이라든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모색이라든가.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가 직접, 홀로 내려갈 필요는 없었다. 스팍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역시 비논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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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짐."
칸의 단어 선택에 커크는 얼굴을 찌푸렸다. 주먹을 쥐고 있는 손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구금실 앞에는 도착했으나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커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칸과 눈을 마주쳤다. 칸은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태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예상보다 빠르군."
"네놈이 내 군의관을 위협했잖아."
그건 위협이라고 볼 수 없지. 칸이 비웃었다. 커크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귓가에서 속삭이던 그때의 칸이 떠올라 견디기가 힘들었다. 몸이 바짝 긴장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빨리 요구사항을 듣고 판단할 생각이었다. 그와 오래 있을 생각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요구사항을 말해."
"좋아. 먼저 네 신체의 반응에 대한 유전적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다. 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커크가 명백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대가 없이 선의를 행할 리 없었다.
"네가 왜 그런 일을?"
"대신 나를 포로 대신 과학부서의 크루로 대우하는 게 조건이야."
"미친......."
칸의 말에 커크가 중얼거렸다. 그가 엔터프라이즈 내의 포로로써 함께 타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부담인데, 심지어 죄수복을 벗기고 선원으로써의 신분을 달라고?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커크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들을 가치도 없는 요구야. 할 말 끝났으면 가보겠어."
"끌리지 않는가 보군."
"물론. 내가 살고 싶었다면 어느 정도는 솔깃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별로 남은 인생에 뜻이 없거든."
커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겠답시고 맥코이를 위협한 게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 어쨌든 칸은 구금실에 수감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그는 무력했다. 자신을 위해 피를 뽑히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더 이기적으로 생각해보니 그를 얼려둔 채 필요할 때만 깨워서 피를 뽑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커크는 칸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인도적 대우 또한 필요 없었다.
"그런 대답을 기대했지."
하지만 칸의 말에 커크는 안색을 달리했다. 그를 앞에 두고는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웃기지 마."
"짐.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나?"
"안 궁금해."
"네 굴욕적인 모습을 보는 거지. 절대로 안 하리라 생각했던 일을 하게 될 때. 그것도 스스로. 표정이 볼만할거야."
칸이 웃었다. 그 모습에 다시 기분이 나빠진 커크는 다시는 그와 대화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스팍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커크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젠장......."
스팍은 성큼성큼 다가와 커크의 앞에 섰다. '함장님'이라 부르는 말도 없었다. 그의 표정은 이제까지 커크가 본 어느 표정보다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커크는 자연스레 움츠러드는 가슴을 펴고 먼저 입을 열었다.
"스팍. 여기서 나-."
"칸과 대화하셨습니까?"
스팍이 커크의 말을 잘랐다. 그 냉정한 태도에 커크는 태연히 그를 대하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커크는 목을 세우고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군요."
칸은 아무 반응도 없이 스팍과 커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스팍은 그런 칸의 모습이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커크에게 집중하며 불쾌한 감정을 가라앉히려 했다. 하지만 마주 보고 있는 커크마저 순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난 함장이야. 내 마음대로 함선 어디든 가고,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어."
"닥터 맥코이는 분명 당신에게 안정을 취하라는 처방을 했고 저 또한 휴식을 권고했습니다. 장교가 의견을 제시할 경우 당신은 그것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듣지 않을 권리도 있지."
커크의 말에 스팍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곧 말을 이었다. 그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뭐가 됐든 그로부터 합리적인 설명을 들어야 머릿속의 논리가 이어질 것 같았다. 커크와 칸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알아야만 했다. 자신이 보지 못한 곳에서 어떤 식으로 칸이 커크에게 말했을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스팍에게 조바심을 일으켰다. 자신에게 있어서 '모르는 것'은 비논리적이었다. 그리고 비논리적인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목적으로 개별적인 행동을 취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기 싫다면?"
"함장님. 저 자는 당신을 강간했습니다. 그런 자를 왜 만나러 온 겁니까?"
커크가 입술을 깨물었다. 스팍의 노골적인 말이 가슴을 베어내다 못해 푹푹 찔렀다. 다시 현기증이 났다. 이 함선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위로해주지 못했다. 커크는 숨가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커크 또한 이 상황을 도저히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커크는 이를 악물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마음까지 산 채로 찢겨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듣든지."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출구를 향했다. 스팍이 재차 함장님, 하고 불렀지만, 그는 단호하게 멀어졌다. 그의 노란 옷이 보이지 않게 되자 스팍은 서서히 시선을 옮겼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비논리적인 감정에 대한 또다른 분노가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그는 드디어,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저기 있는 칸 때문이라고.
"함장을 그렇게 보내도 되나?"
세심하게 신경이라도 써주는 듯한 말투였다. 스팍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커크가 죽은 후 지구까지 쫓아내려가 싸우던 그때와 같이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다만 커크가 눈앞에서 사라진 덕분에 온전히 감정을 제어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스팍은 무정하게 대답했다.
"너와는 관계없는 사항이야. 한 가지만 묻지. 함장님과 무슨 대화를 했지?"
"내게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한 거라면 안됐군. 나도 대답할 마음이 없어."
"엔터프라이즈에는 만약을 대비해서 적은 종류지만 충분한 대인 무기가 탑재되어 있어."
"나를 고문할 텐가?"
"필요하다면."
스팍의 눈에 칸의 조소하는 얼굴이 들어왔다. 스팍은 이성적으로 칸을 고문할 수 있는 138가지의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중에서 최단 시간 내에 활성화 가능한 것은 42가지였다. 포로의 인도적 대우 조항 같은 건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칸이 이 엔터프라이즈에 타고 있다는 사실은 스타플릿의 고위 간부와 엔터프라이즈 소속 선원들만 알고 있었고, 그 말은 이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간에 5년 뒤 칸을 살려 보내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정식 포로조차 아니었다.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근거없는 과학지식 주의
한마디: 본마미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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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맥코이는 손을 들어 목을 주무르는 척 했다. 반사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문을 열자, 맥코이의 의자에 앉아있던 커크가 튀어나오며 반색했다. 그는 그대로 맥코이를 껴안았다.
"기다렸어. 본즈!"
"징그러워. 떨어져."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커크를 매정하게 떨어내지는 못하는 맥코이였다. 그는 커크가 자신의 목에 남은 자국을 발견할세라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럽게 커크의 어깨를 잡았다.
"왜 이래. 무슨 일 있지, 너?"
스타플릿의 동기로써, 룸메이트로써, 그리고 군의관으로써 맥코이는 커크의 행동 양식에 대해 몇 가지 꿰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말해."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숨기려 외려 밝은 척 하는 행동. 또는 누군가에게 거절당할 때마다 타인에게 더욱더 애정을 표현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행동 따위. 그는 심지어 일견 과해 보이는 스킨십도 서슴치 않았다. 그것이 한때는 커크와 맥코이 사이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어쨌든.
오히려 맥코이는 그 소문이 싫지 않았다. 그 근거없는 소문 덕분에 그에게 여자가 다가오는 일도 없었고, 귀찮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맥코이는 커크를 돌보는-정말 그랬다- 게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술을 처먹고 반시체가 되어 돌아오면 치료해주면 되었고, 틈틈히 노는 주제에 머리는 좋아서 학업 문제로 자신을 귀찮게 하지도 않았다.
아니다. 어쨌든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녀석이기는 했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서 그랬고, 자신보다 어리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렇게 맥코이는 틈틈히 커크를 챙겨 주었다. 그리고 제임스 커크, 빌어먹을 녀석은 맥코이가 자신을 신경 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자신을 굴리곤 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맥코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제나 내 속만 썩이지. 빌어먹을 자식.
맥코이는 한 손으로 커크의 등을 두들기며 한심스럽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멍청아. 너 지금 나한테 뭔가 말하러 온 거잖아."
"본즈..."
맥코이를 껴안은 채로 커크가 입을 열었다. 그의 턱이 자신의 어깨 너머에 있는 탓에,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맥코이는 그저 목의 졸린 자국을 들킬세라 부러 태연한 척 하며 커크의 등을 계속 쓸었다. 커크는 이에 힘을 얻은 듯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스팍 설득하는 거, 실패했어."
"그럼 스팍의 보고서가 그대로 올라가는 거야?"
"응."
"네 상태도 알려지고?"
응....... 커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맥코이는 그것만으로 커크가 이렇게 우울해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또?"
"또라니?"
"말해."
맥코이가 정곡을 짚자, 커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 맥코이는 자신의 사소한 사정- 이를테면 과거사라거나, 부모에 대한 감정, 트라우마 등에 대해 자세히 알면 알았지 모르지는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면서 처음으로 가진 '진정한 친구' 목록에 든 두 번째 사람이었고 '믿을 수 있는' 동료였다. 커크는 망설이다 마지못해 대답했다.
"스팍이 내게 함장의 자격이 없다고 했어."
"뭐??"
"정확히 그렇게 말한 건 아니고, 직무를 내려놓으라고... 했어."
칸으로도 벅찬데, 내가 그 초록 홉고블린마저 상대해야 해? 맥코이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스팍 그 불친절한 놈이 커크에게 조목조목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함장직을 그만두라고 종용한 게 틀림없었다. 그는 커크의 신변과 정신 건강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돌려 말하는 대신 직설적으로 내뱉었겠지.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맥코이는 두 손을 들어 커크의 어깨를 짚었다. 일단 하나를 해결해야 했다.
"짐. 그놈은, 내가 왜 그 녀석을 두둔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충분한 안정을 취하길 바라는 거야. 너를 함장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게 아니라고."
"너도 그렇게 생각해? 스팍처럼?"
커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미 한 생각에 꽉 붙들린 사람을 설득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이지 커크의 이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심적으로 약해지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물리적으로 다친 모습을 보는 게 나았다. 그건 자신이 치료해 줄 수라도 있으니까. 물론 어느 쪽으로든 다치지 않는 편이 제일이지만. 맥코이는 재차 말을 이었다.
"짐, 짐. 내 말 잘 들으라고. 아예 그만두라는 게 아냐. 나도 그 자식이 너에 대한 모든 사항을 그대로 보내는 건 마음에 걸려. 하지만 치료법을 찾을 때까지, 응, 그 때까지만, 쉬라는 거야. 무리하지 말고. 내 말 알아먹어?"
".......응."
"금방 해결할 거야. 그 뒤엔 니가 좋아하는 함장 의자에서 신나게 놀든 그것을 부수든 거기서 자든 전혀 상관 안 할 거라고. 아무도 상관 안 해. 넌 그...에 대해 신경쓸 것도 없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새끼를 네게서 떨어뜨려 놓을 거니까.
맥코이는 속으로 다짐했다. 커크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아서 기뻤다. 그렇다고 정말로 나중에 함장 의자를 부수면 큰일이겠지만.
커크가 나가면 바로 칸의 혈액에 대한 실험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현재까지 시도한 방법은 최소한 세 가지였는데, 모두 실패했다. 먼저 칸의 혈액과 일반 인간의 혈액을 비교해서 차이가 있는 부분을 분석하고 재현하는 것. 칸의 혈액에 있는 특이 유전자가 인위적으로 조합된 물질이기 때문에 인간의 혈액에서 동일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전공학자가 탑승하지 않은 이상은.
칸의 혈액과 일반 혈액을 섞어 의도적으로 혈액의 분량을 늘려보려는 시도도 했다. 하지만 그를 놀리기나 하는 것처럼, 칸의 혈액은 사람의 속에 있는 혈액이 아닌 외부 혈액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실패.
다음으로는 칸의 혈액 자체를 복제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맥코이의 분야와는 점점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커크의 상태를 생각하면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이 복제 시도마저 실패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남아있을지 몰랐다. 맥코이는 빨리 칸에게서 채취한 혈액을 꺼내 실험을 계속하고 싶었다.
"...본즈. 이건 뭐야?"
실험을 구상하던 맥코이의 귀에 커크의 질문이 들려왔다. 그의 손이 자신의 목을 훑고 있었다.
젠장! 당황한 맥코이는 급히 커크의 손을 떼어내고 자신의 손으로 목에 난 자국을 가렸다. 그리고 태연하게 주무르는 척을 하며 목을 왼쪽 오른쪽으로 꺾었다.
"뭐가? 요즘 목이 너무 아파서 스트레칭 좀 했어."
"스트레칭?"
"그래."
커크가 고개를 기울였다. 빌어먹을. 맥코이는 속으로 다시 욕을 했다. 저 똑똑한 자식이 믿을 리가 없는데. 더 그럴듯한 변명을 생각해야 했다. 레너드 맥코이, 생각해!!
"스트레칭을 했는데 멍이 들었다고?"
"요가! 그래, 요가 같은 거 했어. 굉장하더라니까."
맥코이는 자신의 귀로 들어도 전혀 신빙성이 없는 주장을 펼치며 손을 저었다. 커크에게 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느니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게 나았다. 그래, 그런 게 나았다.
"그래?"
커크의 눈에 반신반의하는 빛이 떠올랐다. 맥코이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거짓말을 보탰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다 풀린 것 같아. 진짜로. 그러니까 이제 실험에 집중할 시간이야. 지미 보이."
"...알겠어. 나가볼게."
"그래."
짐 커크가 순순히 나가다니, 맥코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기쁨에 취해 그는 문을 나서는 커크의 눈썹이 씰룩거리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
"흠. 그랬군."
보안 요원 몇 명을 꼬드기자 금방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커크는 잠시 고민했다.
딱 일주일이었다. 칸에게 붙잡히고, 칸에게서 빠져나온 것이. 남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커크는 그 일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침울해져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살아갈 의지를 얻었다고나 할까. 역설적인 일이었다. 열심히 죽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죽을 수가 없는-적이 자신을 구하는- 상황이 오자, 커크는 죽으려는 시도 자체도 포기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게 견딜 수 없어서 죽으려 했는데 죽지도 못하니, 그냥 살자. 목숨이 붙어있는 한 살자. 끝까지 살자.
그러니 칸을 직접 대면하지만 않는다면 어쨌든 커크는 버틸 재간이 있었다.
하지만 맥코이를 위협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 부분에서 화가 났다. 부탁이 있으면 조용히 하면 될 것이지, 그런 식으로 폭력을 행사하다니. 보안 요원들이 없었다면 맥코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수도 있었다. 덧붙여서 맥코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도 화가 났다. 믿었는데. 난 믿고 전부 말했는데.
요구사항이 있다고 했으니 자신이 가기만 하면 해결될 거였다. 다만 혼자 찾아가야 할지 보안 요원들을 대동해야 할지가 문제랄까. 이전의 일을 생각하면 혼자 가는 건 위험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을 대동하자니 칸이 자신을 어떤 식으로 모욕할지 도저히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 모욕을 그들이 다 듣게 하느니 차라리 혼자 가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래, 혼자 가자. 구금실 문을 열지만 않으면 되겠지.
커크는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구금실이 있는 덱 출입구에서 커크는 보안 요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여긴 닥터 맥코이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난 함장인데?"
"커맨더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입니다. 특히 함장님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들어가시려면 닥터 맥코이와 오세요."
스팍 이새끼. 커크가 속으로 욕을 하며 눈을 치켜떴다.
"이봐. 커맨더 위에 있는 게 누구지? 바로 나야, 캡틴. 명령 체계가 영 엉망이네."
"그 때는 커맨더께서 임시 함장이셔서..."
"그 때? 지금은? 누가 함장이지? 대답해봐."
"제임스 커크... 함장님이십니다..."
결국 커크에게 진 보안 요원이 괴로워하며 눈을 돌렸다. 커크는 짐짓 화를 내는 척 하며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거봐. 잘 아네. 금방 다녀올게. 잘 지키고 있어."
"예..."
커크는 복도를 따라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가 눈에 안 보일쯤 되어서야 보안 요원은 통신기를 꺼냈다. 자신의 치밀한 상관은 이런 상황에 대한 프로토콜마저 마련해 놓은 뒤였다. 그는 감탄을 뒤로 하고 입을 열었다.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단호박 주의(속이 답답해질 수 있음)
한마디: 트위터에 휴덕 선언하고 연성에 올인하는 나란 덕후 그런 덕후ㅠ 내 일상 없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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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이 자신을 보고 표정을 굳히자, 커크는 눈을 크게 떴다. 주먹까지 쥔 것을 보니 자신을 불편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벌칸인 스팍이 저 정도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커크는 차츰 스팍을 설득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를 불러낸 것조차 잘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 화가 난 것일지도 몰라. 아니면 나를 이미 칸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고 있는지도.
그런 스팍과 대화해야 하다니. 커크는 이를 악물고 애써 웃었다.
"앉아."
"용무를 말씀하십시오."
"스팍.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로봇 같다. 일단 앉아."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몰랐지만, 커크는 일단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안 그래도 낮에 칸의 혈청을 맞고 온 터라 몸이 잘 제어되지 않았다. 또 애꿎은 의자를 부수거나 스팍에게 맞아야 하는 일은 없기를. 커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사담입니까?"
"아니야.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나에 대한 보고서 때문이야."
커크의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던 스팍이 그 말에 고개를 곧추세웠다.
"보고서에 대한 의견은 받을 수 없습니다."
"스팍, 들어봐. 내 말을 들어보라고."
"함장님의 상태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위험합니다."
위험? 내가 위험하다고? 커크는 숨을 삼켰다. 스팍이 말한 것은 '그의 상태'였지만, 커크의 귀에는 '위험'하다는 단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팍의 말은 자신 또한 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스팍. 아니야. 난 괜찮아."
"칸의 혈청에 대한 적절한 대체물이 마련될 때까지, 함장님은 직무를 내려놓으실 것을 권합니다."
대체 스팍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나보고 함장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거지? 커크는 이제 심지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끝없는 현기증이 밀려왔다. 몸 속의 피가 제멋대로 뛰놀고 치솟는 것 같았다. 통제, 통제해야 해. 커크는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임무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스타플릿은 새 함장을 임명하는 대신 이대로 임무 수행을 명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팍은 뒤에 어떤 말을 덧붙여야 좋을지 잠깐 고민했다. 커크의 표정이 시시각각 어두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스팍은 커크가 안정을 취하고 쉬기를 원했다. 그것이 커크에게 필요한 것이라 판단했고 커크 또한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스타플릿에 정확한 보고서를 보내는 일 또한.
커크는 그런 스팍의 생각을 알 리가 없었다. 설혹 알았다 해도,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커크에게 '함장'의 자리가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스팍이 이해할 수 없듯이.
'함장'이라는 자리는 커크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세상에 자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였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였다. 이 너른 우주에서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 엔터프라이즈의 의자, 그 자리 말이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말은 커크에게 '너는 더이상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혹은 '너는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자격이 없어'라든지.
동시에 자신이 '함장'이라는 것은 임시 함장으로써 800명의 생명을 구한 아버지 조지 커크와의 연결점이었고 아버지 대신 자신을 지지하고 믿어주었던 크리스토퍼 파이크 함장과의 연결점이었다. 더이상 세상에 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커크는 우주가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함장의 자리는 놓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함장으로써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이 커크가 생각하는 '함장'이었다.
커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스팍이 일어났다. 칸의 혈청으로 인한 부작용일까. 스팍은 대처 방법을 떠올렸다. 커크를 다시 자기 손으로 기절시키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했다. 커크가 정말 칸과 같은 힘을 가지게 되었다면,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스팍이 급히 물었다.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커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함장으로써의 자격을 의심받았다. 그것도 스팍에게. 그에게서 또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두려웠다.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힘이 또 무언가를 부수고, 스팍의 생각에 확신을 심어줄까 두려웠다. 커크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함장이야. 함장이라고... 함장이어야만 해.
"괜...찮아."
"닥터 맥코이를 부를까요?"
"괜찮다니까!!"
커크가 소리를 질렀다. 아차 싶었다. 미리 컵에서 손을 뗀 탓에 아무것도 부수지는 않았지만,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가는 스팍에게 함장의 자격이 없네 통제권을 빼앗겠네 그런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커크는 급히 덧붙였다.
"진짜, 괜찮아. 헤이, 이것봐. 괜찮아 보이지?"
간신히 손을 내리고 활짝 웃어보였다. 스팍은 의뭉스럽게 그런 커크를 바라보았다.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반대되는 행동을 종종 보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커크는 특히 심했다. 닥터 맥코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솔직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인간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오해와 반목, 싸움이 있었는지 알고도 그러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징이겠지. 스팍은 커크에게 긍정하는 대신 무정하게 대답했다.
"벌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상태는 불안정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휴식을 추천합니다."
커크의 웃음이 멈췄다. 심장이 날카로운 것으로 베여나간 것처럼 아팠다. 제발.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제발. 커크는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둘 모두 스팍에게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치겠지. 커크는 이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난 괜찮다니까......."
제발, 믿어줘. 믿을 수 없겠지만, 제발 좀! 커크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억지로 웃었다. 온 힘을 다해서.
"충분히 쉬었어, 스팍. 맞다. 우리 3D 체스나 할까? 예전에는 많이 했잖아?"
"마무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스팍......."
커크가 거진 울상을 지으며 스팍을 불렀다. 그 부름에 스팍은 흠칫 놀랐다. 그의 힘없는 목소리가 또다시 그 장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이건 비논리적이야. 스팍은 눈썹을 세웠다. 더 이상 커크와 한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부른 의도는 명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라는 것이겠지. 그래서 스타플릿의 검열을 피하고, 자신의 상태를 숨긴 채 임무를 수행하려는 목적일 터였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처럼 울며 매달릴 수도 있겠지. 내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어. 스팍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한다면 더욱더 커크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입증하는 꼴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스팍 본인에게도 과히 좋지 않은 기분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칸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보고서는 직접 결재해 올리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팍 또한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쿼터를 나왔다. 커크는 문이 닫히자마자 입을 부여잡았다. 뜨거운 것이 속에서 치솟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의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만 흘러내렸다.
-
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맥코이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나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함장 제임스 커크에게 모욕을 준 일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졌으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죽일 수조차 없었다. 자신을 죽이면 그들의 함장도 죽는다. 세상에 이런 농담이 어디 있지? 칸은 마음껏 조소했다.
"팔."
순순히 팔을 내밀자 맥코이는 그의 팔에 바늘을 꽂았다. 이전과 다르게 큰 원형의 통과 연결되어 있었다. 피를 비축해둘 셈인가 보군. 그 의미는 여전히 제임스 커크의 알레르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겠지. 칸이 말을 건넸다.
"날 죽이고 싶나?"
"닥쳐."
정말로 죽이고 싶겠지. 제임스 커크뿐만 아니라 칸 자신에게 죽임당한 많은 사람들의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칸은 정말로 즐거웠다.
"그럼 죽여."
"엿같은 새끼."
"아. 못 하겠군. 그랬다간 짐이 죽지."
맥코이가 폭발했다. 그가 구금실의 칸을 향해 소리를 쳤다.
"개새끼야, 감히 짐이라고 부르지 마!!"
즉시 칸이 손을 벌려 다가온 맥코이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맥코이가 그의 팔을 떼어내려 발버둥쳤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칸의 손아귀 힘이 점점 강해졌다.
"컥...!!"
구금실이 있는 덱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맥코이뿐이었기에 도움을 요청할 보안 요원들도 주변에 없었다. 손에서 PADD와 통신기 모두 놓친 바람에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다. 맥코이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개자...식......."
"네 함장을 데려와. 요구사항이 있다."
"미...쳤......."
구금실 뒤편에서 붉은 불빛이 번쩍였다. 다행스럽게도 구금실을 감시하던 엔지니어부에서 그 광경을 보고 보안 요원들을 급파한 것이었다. 그들이 문 앞에 나타난 것을 보자 칸은 그대로 손을 놓았다. 바닥에 떨어진 맥코이가 기침을 토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켈록! 하아, 미친 놈... 하아..."
"다음에 그를 데려오지 않으면, 닥터, 부러진 목뼈를 스스로 맞춰야 할 거야."
용건은 끝이라는 듯 칸이 몸을 돌렸다. 보안 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맥코이가 일어섰다. 그는 세 번째 손가락을 높이 세우며 그의 피가 담긴 통을 들었다. 이걸로 한 달 동안 여기 내려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보안 요원들과 와야겠지만.
맥코이는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커크를 칸에게 데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는 보안 요원들과 엔지니어부에게서 오늘 일은 못 본 것으로 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또한 최대한 빨리 목의 자국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부 덱으로 걸음을 옮겼다. 리제너레이터 한 방이면 끝이었다. 한 방이면.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단호박 주의(속이 답답해질 수 있음)
왜 다음편 없죠?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작가 나와 아 내가 작가구나 나새기 글써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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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일주일이 지났다.
칸은 여전히 통제 하에 있었다. 그를 만날 수 있는 건 피를 채혈하는 닥터 맥코이뿐이었고, 구금실에는 그 외 모든 선원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스콧이 이중삼중으로 보안을 설치한 덕택에 구금실의 문을 여는 코드 또한 수시로 변경되었다.
커크는 그 일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함장일을 하겠다며 내려왔다가 스팍에 의해 의무실로 끌려갔다. 리제너레이터로 물리적인 상처는 금방 나았지만, 심리적인 충격이 있을 거라는 맥코이의 소견에 따라서였다. 커크는 그 날의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입 하나 뻥긋하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의 크루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함선은 하나의 작은 세상이었다.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일종의 닫힌 사회. 말인즉슨 외부로 이 일이 새어나가지만 않는다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조용히 있는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기실 세상은 제임스 커크가 죽었다 살아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사람들은 커크가 칸에 의해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했다는 식으로 알고 있었다.
칸의 피의 효능을 세간에 알리기 꺼려했던 스타플릿의 조치였다. 그리고 커크의 예의 '알레르기' 사건이 발생했고 그들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전에 부랴부랴 그들을 5년 탐사 임무에 보내버린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도록.
그런 식으로 이번 일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칸이라는 중범죄자(그는 이미 재판을 받았었다)를 태운 엔터프라이즈는 스타플릿에 정기적으로 칸의 상태와 커크의 상태를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고, 바로 그 건 때문에 장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함장 제임스 T. 커크를 제외하고.
"현재 상태를 그대로 보고하는 건 짐을 잡아가라고 광고하는 꼴이야. 그건 안돼."
맥코이가 펼친 반대 의견을 스팍이 반박했다.
"하지만 보고를 올린다면 함장님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고려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허위로 작성할 수 없어."
맥코이가 인상을 썼다. 수석 군의관과 부함장의 논쟁이 시작되자 나머지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입을 다물었다.
"정신 나갔어? 짐은 함장직도 박탈당하고 저 칸처럼 모르모트 신세가 될 거라고! 아니면 같이 얼음과자가 되든지!"
"엔터프라이즈의 함장 자리는 종신직이 아니니 그건 관계없는 일이야. 그리고 캡틴 커크는 칸과 달리 범죄 사실이 없으니 그런 형을 받을 가능성도 현저히 낮지. 닥터 맥코이."
"그래서 지금 짐을 칸과 같은 취급을 하겠다는 거야?!"
"내 발화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 같군."
"그래서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너희들 다 뭐하고 있냐?"
컨퍼런스실에 모여있던 장교들이 깜짝 놀라 일어섰다. 커크가 입구에 기대서서 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었다.
"나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자리인데 내가 빠지면 섭하지."
"관찰 자료와 기록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해당 대상인 함장님은 보고 작성 과정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
"누가 그래?"
커크가 손에 쥐고 있던 사과를 베어물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확실히 일주일, 아니 이전보다 훨씬 밝아진 분위기에 다들 내심 안도했다. 커크가 우울해하고 있던 탐사 초기 동안은 정말이지 엔터프라이즈 내에 어두침침한 안개가 낀 것처럼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원흉이 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 또한 제임스 커크임이 틀림없었기에, 맥코이는 더더욱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내가 나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면 되겠네."
커크가 모니터를 보려 하자 스팍이 그를 제지했다.
"안됩니다."
"왜 안돼? 너 방금 보고서 내자며? 내가 잘못 들었나?"
"당신의 보고서는 객관성과 타당성이 불충분할 가능성이 83%입니다."
"또 시작이군. 내 경험상 보고서에 관해서라면, '절대로 벌칸을 믿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겠어."
"벌칸에 대한 신뢰도와 보고서에는 아무 상관 관계가 없습니다."
그 순간, 키들거리며 웃던 커크의 손에서 사과가 큰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강한 힘으로 사과를 짜부라뜨린 것 같았다. 그의 손에서 사과가 줄줄 흘러내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아무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커크가 애써 입을 다문 채 서서히 손을 내렸다. 칸과 같은 힘이 생겼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공공연하게 입증한 꼴이었다. 컨퍼런스실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너 검사 좀 하자."
맥코이가 급히 커크를 컨퍼런스실 밖으로 끌어냈다. 그는 한참을 걸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복도에서 커크를 몰아세웠다.
"제정신이야?"
"언제나처럼, 제정신이지."
부글부글 끓는 속을 투다다다 뱉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맥코이가 커크의 양 어깨를 잡았다.
"너 지금 네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는 있는 거지?"
"누구보다 잘 알지."
커크가 맥코이의 손을 떼어내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잠깐 밝았던 그의 표정이 지금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직 5년이라는 여유가 있어. 그 이후에 내 상태를 알게 된 스타플릿에서 내게 무슨 처분을 내리든, 난 상관 없다고. 그러니 그 전까지는 살고 싶어. 본즈. 죽고싶지 않아."
"짐...."
"그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죽음의 위기를 경험해왔잖아? 그 일주일을 5년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한들 무슨 상관이야.. 젠장, 그 계산은 스팍이 잘할거야. 어쨌든. 5년. 본즈. 듣고 있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남은 5년 동안 내가 살아있도록 도와줘."
나로써, 제임스 커크로써. 그의 마지막 말에 맥코이는 그저 울고싶어졌다.
저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칸 때문이라면,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대에게 감사할 일만 늘어나는 꼴이었다. 정말이지 답도 없고 길도 없는 더러운 세상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주에는 이런 시련만 가득한지. 맥코이는 여느 때처럼 우주를 원망했다.
"내 목숨이 일주일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5년 남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하더라고."
커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멍청한 새끼. 맥코이는 속으로 욕설을 삼키며 생각했다.
일주일이고 5년이고 개뿔, 몇십년 동안 끈질기게 살도록 해주마. 내가 네 알레르기 문제를 해결해서, 징징거리며 이제 그만 일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함장석에 엉덩이 붙이고 살게 해주마. 칸 없이도 살게 해준다고. 시발 이 짐 커크 개새끼야.
"그러니까 내 말은, 보고서에 '아무 이상 없다'라고 써야 한다는 뜻인데......."
커크가 더러워진 손을 바지에 슥슥 닦으며 중얼거렸다. 니비루 때처럼 스팍이 또 개인 보고서를 올려버리면, 사정을 봐줄 만한 사람도 더이상 없고, 어쨌든 그래. 그러니까 보고서는 하나만 올라가야 해. 문제 없다는 걸로. 듣고 있어, 본즈?
"듣고 있어. 요는 스팍만 설득하면 된다는 거 아냐."
"그렇지."
"그걸 나더러 하라고?"
"그렇지."
"그냥 나가서 죽으라고 하지?"
아, 본즈, 커크가 그에게 매달렸다. 이번에는 맥코이가 매정하게 그를 밀어냈다.
"이 엔터프라이즈에서 유일하게 스팍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너야."
커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일주일 동안 스팍은 공적인 업무가 아니라면 자신과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사적인 대화도 없었고 이전에는 조금 있었는지도 모르는 '우정(Friendship)'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커크는 자신이 죽음에서 깨어난 자리에 스팍과 맥코이가 서 있던 것을 기억했다. 스팍은 그렇게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던 자신의 옆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스팍은 자신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왜? 모를 일이었다. 짐작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을 질문해서 확인사살당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커크는 자신의 마음에 더는 상처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스팍은 나와 별로 대화하고 싶지않은 것 같던데."
"웃기지 마. 그 스팍이?"
"진짜로."
"그 때......."
맥코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은 엔터프라이즈 내에서 암묵적인 금기에 가까웠다. 그는 입을 몇 번 벌렸다가 그냥 다물었다. 그리고 커크의 등을 두들겼다.
"아냐. 둘이 얘기해봐."
칸은 내게 맡기고. 맥코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 나 원 참. 이제 말도 마음대로 못하고. 여전히 입맛이 쓴 맥코이였다.
커크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
"내 쿼터로 와."
마치 일주일 전처럼, 커크가 통신기로 스팍을 불렀다. 스팍은 작성하고 있던 보고서를 한 번 보고는 빠르게 대답했다.
"업무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0시에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와."
스팍은 그의 말 끝에 어떤 단어가 붙을지 100%의 확률로 예상할 수 있었다.
"명령이야."
제임스 커크. 그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함장이라는 자신의 권한을 남용했고 그것은 사적인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전까지 자신이 만났던 상관들에 비하면 함장이라는 명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스팍은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고 또 이해했다. 물론 처음 함장이 되었을 때보다는 자신의 책임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속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런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에게 권위가 있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평소에 크루들과 한담을 나누거나 농담을 하고 킬킬거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철없는 생도 그 자체였다. 그런 주제에 적을 맞이하거나 함장석에 앉는 순간이 오면 갑자기 가벼운 태도를 싹 지우고 진중한 모습이 된다. 인간이 본래 여러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스팍은 그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일정한 태도를 보일 수 없는 것인가. 비효율적이다. 스팍은 그렇게 판단했었다.
스팍이 커크의 쿼터 앞에 섰다. 가볍게 노크를 하고 자신임을 밝히자 문이 열렸다. 딱 일주일 전처럼, 의자에 앉아서 컵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커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반갑게 웃으며 손짓했다.
아,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자신이 커크를 의도적으로 피했던 이유가.
그의 눈을 볼 때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칸의 밑에서 신음하던 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땀에 젖은 얼굴, 꺼져가는 목소리, 눈물이 잔뜩 고인 채 흔들리는 눈동자. 쓰러져서 힘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짐-.
그리고 칸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거기서 스팍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칸을 다시 보게 된다면 턱을 날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건 합당한 분노야. 스팍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광경을 떠올리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었지만, 떠올릴 때마다 의도치 않게 치고 올라오는 일로지컬한 '감정 그 자체'는 통제하기 어려웠다. 감정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스팍은 자신도 절반은 인간이니만큼 감정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모욕했던 커크에게 분노했던 그때처럼. 그러니 '분노'라는 감정은 충분히 논리적이었다.하지만 잦은 감정은 절반의 벌칸에게 그리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올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