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약 2년 만에 티스토리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스타 트렉 비욘드를 계기로 휴덕을 종료하고 가열차게 덕질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요청하셨던 Dirty BlooD의 유료 업로드가 드디어 이루어졌으니 다음 포스타입을 이용해주시면 되겠습니다.


KCLK 3호 : http://kaellyur.postype.com/




자주 접속하진 않으나 SNS를 통해 연성 알림 및 피드백 교류도 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 @kaellyur



이후로 모든 덕질은 KCLK 2호 또는 3호에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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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LK 2호 공지

2014. 9. 12. 19:03 from ▷삶을 삶아요



최근 블로그에서 주된 활동(=덕질)을 하고 있습니다.

KCLK 2호: http://blog.naver.com/kaellyur



티스토리에서 썰로 풀고 말았던 생도커크 교관스팍을 현재 연재하는 중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그쪽으로 찾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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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레우유 :



* 연재했던 Dirty BlooD 시리즈의 특별 외전입니다. 

* Dirty BlooD 1,2,3부 스포일러 주의!

* 커크 롤링 심합니다. 불편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 소설 완결 후 팬레터를 보내주셨던 아샤님을 위한 소설입니다. 




Posted by 카레우유 :





네이버 블로그에서 합니다.


http://blog.naver.com/kaellyur/220062501718



Posted by 카레우유 :

맥코이는 커크의 곁에 앉아 있었다. 해가 진 하늘은 무척이나 어두웠고, 안개가 낀 듯 흐렸다. 논문을 훑어보고 있던 맥코이는 희미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디 있어...? 

커크가 잠꼬대를 하듯 중얼댔다. 맥코이는 PADD를 내려놓고 가만히 커크의 손을 잡았다. 커크는 몸을 들썩였지만 그를 뿌리치지는 않았다. 단지 슬그머니 일어나며 잡힌 손을 빼낼 뿐이었다. 

누구세요? 

맥코이는 고통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나야. 

물론 들릴 리가 없었다. 커크는 급하게 한 사람을 찾았다. 

스팍. 스팍. 어디 있어? 
잠깐 나갔어.... 젠장. 가만히 있어봐. 

맥코이는 그의 손바닥에 어제처럼 문자를 쓰려고 했지만, 커크가 완강하게 밀어냈다. 그는 스팍의 차가운 체온에 익숙해져 있었고, 한동안 그 외의 사람들과 접촉한 적이 없었다. 커크는 자신의 팔을 움켜쥐고 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가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맥코이는 커크를 끌어당겨 안았다. 커크는 그를 거부하며 버둥거렸다. 

싫어요. 하지 마세요. 
짐. 나라니까. 무서워하지 마. 
제발. 저를 데려가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데려가려는 게 아니야.... 진정해. 

맥코이가 다독여 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커크의 반항이 심해질수록 맥코이의 동요도 커져갔다. 그는 커크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입술 위에 얹어보기도 하고, 그의 손등에 글자를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커크는 떨며 빌기만 했다. 

놓아주세요.... 잘못했어요.... 

맥코이는 도저히 어찌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끓는 목소리로 자신임을 알려 보아도, 그를 아무리 끌어안고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커크는 포식자에게 붙들린 초식동물처럼 몸부림을 치며 그로부터 빠져나가려 노력했다. 

제발, 나야말로 제발. 짐. 널 해치지 않아. 응? 

그에게 반 강제로 붙들려있던 커크는 끝까지 한 사람의 이름만 불렀다. 그가 의지하고 그가 아는 이름을. 

스팍, 어디 있어? 스팍- 

맥코이의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절망이 짙은 표정으로 그가 커크를 놓았다. 뒤로 물러난 커크는 몸을 옹송그린 채 제자리에서 떨었다. 맥코이는 그를 바라보며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그와 대화할 것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줄 것을. 몇 십번째인지 모를 회한을 곱씹어도 여전히 지독한 쓴맛이 느껴졌다. 커크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맥코이는 가까스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차마 그의 몸에는 닿지도 못했다. 커크가 다시 도망치거나 거부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으로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맥코이는 고개를 숙여 커크의 발등에 입을 맞추려 시도했다. 커크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맥코이는 다시, 잘못 만지면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혹여나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의 발을 소중히 감싸쥐었다. 이번에는 커크도 그를 떨쳐내지 못했다. 맥코이의 입맞춤이 발등과 발목을 거쳐 무릎에 도달했을 때 즈음, 커크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욱신거리는 가슴을 다잡고 커크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제야 그도 가만히 끌려왔다. 맥코이는 천천히 대화를 시도했고, 결국은 자신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그가 누군지 알게 된 커크는 손을 뻗어 찬찬히 맥코이의 얼굴을 더듬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울듯한 기분으로 그의 손길을 느꼈다. 눈두덩이와 미간, 콧대, 입술을 차례로 매만지던 손끝이 거뭇한 턱 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레너드. 커크가 재차 불렀다. 

맥코이는 커크의 손바닥에 키스하는 것으로 답했다. 커크는 묵묵히 있었다. 할 말이 있는데, 차마 꺼내기가 힘든 듯 그의 입술이 씰룩였다. 맥코이는 연거푸 손바닥에, 손목에, 팔에 입을 맞추며 차츰 그에게 다가갔다. 커크가 미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면도...해줘야 하는데. 

자신과 함께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일까. 맥코이는 지난 날들을 떠올리다 그만 가슴이 저릿해졌다. 

괜찮아.... 괜찮아. 지미. 괜찮아. 
이제 해줄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쩌지. 
괜찮다니까. 정말이야. 

맥코이는 그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꾸준히 대답했고, 커크는 대답을 들을 수 없으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그것은 변하지 않은 그들의 대화 방식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 해줄게요. 
아냐. 더 이상 네가 뭔가를 해줄 필요는.... 

말이 길어지자 맥코이는 커크의 손을 뒤집었다. 그리고 거기에 찬찬히 자신의 말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해줄...필요가...없다...? 

커크가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맥코이는 커크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말을 들으며, 위안했다. 스팍이 없어도 그들은 충분히 대화할 수 있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제한되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내가...원하는 걸...해주겠다...고요? 당신도 내가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요? 

당신'도'?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맥코이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나답게 살기를 원해요? 
그래. 

커크는 스팍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나다운 게 뭔데요? 



-



나다운 건 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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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 


낯익은 목소리에 스팍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커크가 깨어나 있었다. 스팍은 목을 가다듬다가, 이내 그것이 무의미한 일임을 깨달았다. 


짐. 

대신 스팍은 본딩을 통해 자신의 말을 전했다. 커크가 미약하게 안심하는 것이 느껴졌다. 커크는 스팍의 손을 쥔 채 그것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그것만이 타인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었다. 

어디 있어? 
당신 옆에 있습니다. 침대 옆, 의자에. 
더 가까이 와.... 

커크의 요청에 스팍은 몸을 옮겨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커크는 한 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엉금엉금 움직이더니 그의 품에 안겼다. 그 행동에 스팍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커크가 그렇게 몸을 한껏 붙이고서야 안정을 느끼는 것을 보고는 그저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스팍. 

커크가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스팍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이미 빛을 잃어 혼탁해진 눈동자로. 그것을 본 스팍의 마음에 안타까움이 번졌다. 

예.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이런 몸으로 제임스 커크의 흉내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커크는 그 사실을 잘 알았고, 자신이 다시 버려질까봐 겁을 내고 있었다. 그 두려움이 잔잔하게 전해져왔다. 스팍은 그를 마주 안고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굳이 누군가를 흉내낼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의 의사를 존중하겠습니다. 

커크는 스팍의 옷깃을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볼을 비볐다. 나름대로의 애정 표현이었다. 스팍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나는, 네가 원하는 걸 하고 싶어. 

제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유? 커크가 반문했다. 
예. 자유요.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자유. 당신답게 살 자유.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듯이, 스팍은 그에게 자신의 삶을 찾게 해주고 싶었다. 적어도 고통없는 일상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언정. 

커크는 침묵했다. 그의 손가락만 서서히 올라와 스팍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스팍은 자못 긴장했다. 혹시라도 말을 잘못했나 싶어 입술을 깨무는 사이에, 커크가 궁금하다는 듯 속삭였다. 

나다운 게 뭐야? 



레너드 맥코이는 그가 말한 것보다 일찍 병원을 찾아왔다. 오후 7시. 검붉은 해가 침대를 가득 물들인 시간이었다. 노을에 쫓겨 맥코이가 들어왔을 때, 스팍은 잠든 커크를 안은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길게 늘어진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문턱에 걸렸다. 

맥코이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물론 스팍은 금세 그의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들고 온 음료와 가방을 책상에 둔 맥코이와 스팍의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자는 거야? 
잠든 지 약 12분 경과했어. 

맥코이는 짧게 한숨을 쉬었고, 스팍은 아주 조심스럽게 커크를 침대 위에 눕혔다. 아기를 대하듯 신중한 행동이었다. 

아기.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몰랐다. 커크는 만들어진 지, 인간으로 치자면 태어나 의식을 갖게된 지 약 8년에서 9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정신연령 또한 그 정도라는 의미였다. 

스팍이 커크에게 이불을 덮어준 후 맥코이의 옆에 앉았다. 어제보다도 지친 기색이었다. 맥코이는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눈치껏 물었다. 

상태는 좀 어때? 
시각을 85% 이상 상실했어. 
...청각 보정 장치나 인공 안구를 쓰는 건 생각해봤어? 
그에게 더 이상 무리를 줄 생각은 없어. 

아. 그래. 맥코이는 우울하게 수긍했다. 둘 사이에서는 여느 때처럼, 긴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스팍은 흘낏 시계를 보고는 일어서서 정복을 갖춰 입기 시작했다. 며칠만의 출근 준비였다. 맥코이에게 커크를 맡기고 자리를 비울 생각인 듯했다. 맥코이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말을 건넸다. 

언제 돌아올 예정이지? 

스팍은 회색 정복의 목깃을 올리고 모자를 착용했다. 바지의 주름은 그 와중에도 곧고 단정했다. PADD까지 챙기고 나서야 스팍은 그의 말에 간결하게 답했다. 

최대한 빨리. 



-



40화 전후로 완결하겠다는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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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의 손이 멀어지고 나서도 맥코이는 금방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원형 그대로의 기억도 아니고 한 번 스팍을 거쳤기에 감정이 희석되었음에도 그랬다. 스팍이 거듭 그의 이름을 부른 후에야 맥코이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맥코이는 넋이 나간듯 중얼거렸다. 


우리들이.... 그를 저렇게 만들었어. 

문자적으로는 맞지만, 실체적으로는 달라. 다른 우주의 우리들은 '우리'가 아냐. 


그게 중요해? 맥코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삿대질을 해가며 항변했다.

 
쟤는 잘못이 없어. 하지만 우리들이, 그리고 또다른 우리들이 쟤를 망가뜨린 거야. 우리 탓이야.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자면, 그는 처음부터 정상이 아니었어. 게다가 그의 신체적 특징은 인간의 범주에 넣기에도 불분명해. 피조물 혹은 발명품에 가깝지. 
젠장, 그가 원해서 저렇게 된 거냐고! 아니잖아! 누가 쟤를 만들었는데? 누가 온 우주에서 제임스 커크의 존재를 지워버렸는데? 대답해봐. 스팍. 똑똑한 네가 어디 말해보라고! 


맥코이의 호통에 단호함을 유지하던 스팍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난처한 표정이었다. 맥코이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스팍의 가슴을 밀쳤다. 


그가 제임스 커크든 아니든 상관 없어. 상관 없으니까.... 나는 그를 다시 보내지 않을 거야. 어떻게 저 녀석을 떠나보내? 저렇게 길잃은 강아지처럼 겁에 질린 놈을.... 아무것도 듣지도 못하고....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변했다. 고개를 숙인 맥코이의 주먹에서 천천히 힘이 빠졌고, 스팍은 그런 그를 잡아 가볍게 바로 세웠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힘을 주며 강조했다. 


나 또한 그를 보낼 생각이 없어. 그리고 그는 온전히 내 책임이야. 따라서 그가 죽을 때까지 나는 그를 보호하고 곁에 있을 거야. 


'내 책임'이라는 말에 맥코이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흐려졌다.


...무슨 뜻이지? 
내가 그를 전적으로 돌보겠다는 뜻이지.


즉시 맥코이가 미간을 모아 명백히 불만을 표시했다. 


빌어먹을. 너 진짜, 지금 또 나를 쫓아낼 생각은 아니겠지.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저 녀석에겐 내가 필요해. 
아예 그와 대면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냐. 하지만 맥코이,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지? 그와 대화할 수도 없고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 수 없어. 그런데도 그가 당신을 필요로 할 거라고 생각하나? 


사실이었다. 스팍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적확한 사실을 면도날처럼 들이대며 가슴을 저며냈다. 맥코이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원하면 언제든지 방문하는 것은 가능해. 하지만 '짐'을 괴롭히고 또 발작하게 만들 거라면, 그때는 동료로서의 우리의 관계도 재고해야 할 거야. 


그의 협박은 논리적이기에 더 현실적이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맥코이는 스팍이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리라는 데 의사 자격증을 걸 수도 있었다. 후회와 죄책감을 길게 토해내고, 맥코이가 일어섰다. 몇 주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 그리고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은 진실들. 스팍이나 맥코이나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급속도로 피곤이 몰려왔다. 짓무른 눈을 비비던 맥코이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하나만 물을게. 너.... 분명 '짐'이라고 불렀지. 저 녀석을 제임스 커크로 받아들였다는 뜻이야? 


스팍은 간결하게 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짐'이었어. 


여전히 아리송한 답변이었다. 스팍은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맥코이는 그로부터 더 이상의 설명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커크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내일 이 시간에 올게. 


맥코이는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스팍은 커크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떠날 수 없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시각을 잃은 상황에서는 어폐가 있는 관용어구였다) 아니, 그가 일어났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을 경우 그가 불안해할 것임을 스팍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스팍이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들을 수 없기에 더욱 마음 놓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이었다. 


짐. 


사실 스팍은 맥코이에게 모든 기억을 보여준 게 아니었다. 아마도 맥코이는 평생 알 수 없겠지만, 스팍이 그를 '짐'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정당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10913. 


그것은 알파벳-숫자 단일치환에 의하면 특정하고 고유한 단어를 의미했다. 그것은 하나의 알파벳에 하나의 숫자를 대응하되, 순차적으로 치환하는 일종의 암호작성법이었다. 예를 들면 A는 1, B는 2, C는 3.... 이런 식이었다. 무척이나 단순해서 20세기 이후로는 잘 쓰지 않는 방식이기도 했다. 스팍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짐(Jim=10913). 


그는 제임스 커크였고, 짐이었다. 그에게 이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스팍도 아는 사람이었다. 커크의 첫 번째 주인. 그를 만들고 그를 버린 자. 그의 눈을 앗아간 자. 모든 사건의 시작점이자 근원.


스팍은 기억 속에서 그와 마주했다. 


그는 미래의 자기 자신이었다. 


스팍은 불의의 사고로 커크를 잃고 난 뒤 평생을 평행 우주 연구에 바쳐, 결국 다른 우주의 커크를 빼앗아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그 계획에는 차질이 있었다. 우주의 간극을 지나는 사이 커크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고 (미완성된 기술, 과도한 에너지 흐름, 불안정한 연결 통로 등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신체의 일부만 그의 우주로 넘어오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커크라는 퍼즐을 '완성'하려는 목적으로 불가피하게 또다른 우주의 커크를 끌어들여야만 했고, 그렇게, 필연적으로 모든 우주에서 커크가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스팍은 커크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 미약한 온기를 느끼고 안심했다. 그는 살아 있었다. 


-아직까지는. 


미래의, 혹은 다른 우주의 자신이 저지른 일로 인해 수많은 우주에서 커크가 사라졌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커크는 어쩌면 전 우주를 통틀어 유일하게 남은 제임스 커크인지도 몰랐다. 비록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도. 


그런 상황에서 그가 제임스 커크의 기억을 갖고 있다든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든지 말든지의 문제는 더이상 논의할 가치가 없었다. 온 우주에서 하나뿐인 커크 앞에서 그외 모든 건 불필요했다. 스팍은 약식으로 치른 콜리나르의 제어를 스스로 풀었다. 콜리나르는 언젠가 다시 치를 수 있지만, 커크는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영영 없었다. 


스팍은 커크를 진작 알아보지 못한 것을 사죄했다. 그에게 상처를 준 것에 용서를 구했다. 그를 만들어낸 다른 우주의 스팍을 대신해서 무릎을 꿇었다. 


정말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짐. 


스팍은 커크의 손을 잡고 조용히 속삭였다. 들리지 않는, 들을 수 없는 귀에 대고. 


끊임없이, 또 끊임없이. 




-




이제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Posted by 카레우유 :

맥코이는 커크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켰다. 덕분에 그가 병실을 나온 시각은 한참이나 늦은 때였다. 스팍이 목석마냥 의자에 꼿꼿이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맥코이는 커크가 잠들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고 스팍은 이미 알고 있노라고 답했다. 본딩인지 뭔지 덕분이겠지. 침울함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 도저히 대화를 이어갈 기운이 나지 않았다. 맥코이는 그대로 스팍 곁에 풀썩 앉았고 스팍은 고개만 돌릴 뿐 별반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을 공유한 후에야, 계속 머리를 맴돌던 질문이 생각났다. 


마인드 멜드. 예전에 짐이 말한 적이 있어. 서로가 가진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고. 

스팍이 조용히 긍정했다. 

그럼- 너도 저 아이가 어떤 과거를 갖고 있는지 다 봤다는 뜻이네. 
전부는 아니지만, 긍정해. 그의 기억을 읽었어. 하지만 그것을 세계에 공개할 수는 없어. 
왜? 

스팍이 망설였다. 맥코이는 그의 머뭇거림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일지 추론했다. 반인륜적이어서일까, 혹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일들이어서일까. 

그의 주인들이 누구였을는지 추론해봐. 맥코이. 
노예상이나 악독한 취미를 가진 거부. 제국. 혹은 로뮬란... 그런 자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야(Negative). 
그럼? 

맥코이의 반문에 스팍은 그답지 않게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맥코이는 스팍의 지친 표정과 어두운 기색에서, 그의 입에서 나올 사실이 평범한 일을 넘어서는 것이리라고 예상했다. 

...우리들이었어.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무슨 개소리야. 우리라니. 맥코이가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맥코이. 물질계에는 셀수없이 많은 평행 우주가 있고, 그 우주마다 각기 다른 개체가 있어. 또다른 스팍, 또다른 제임스 커크, 또다른 레너드 맥코이. 당신도 있었어. 그의 과거 주인들 중에.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모두 다 '과거'라고 보긴 힘들지만. 


덜덜 떨리는 손을 쥐어 두려움을 감추며, 맥코이가 인상을 찡그렸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미래의 스팍이 이 우주에 온 건 블랙홀 때문이었어. 우주를 그렇게 자유롭게 넘나드는 건 불가능해. 
논리적인 주장이야. 하지만 생각해봐. 맥코이. 목표 지점을 블랙홀의 중심으로 지정한다면? 블랙홀을 빠져나간 후의 우주가 어느 시간대이며 어느 장소일지는 예측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동일한 우주가 아니리라는 것은 추론 가능하지. 
...말도 안 돼. 그건 거의 무작위(landom)의 확률이라고. 

스팍이 피곤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대꾸했다. 

하지만 다른 우주의 '우리'는 그것을 실행했어. 제임스 커크를 실어 블랙홀로 쏘아보냈지. 
도대체 왜? 

맥코이의 따지는 듯한 말투에 스팍이 긴 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그 이상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맥코이는 스팍을 재우쳤다. 

왜 다른 우주의 우리가 그렇게 한 건데? 
세계에 알려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스팍은 여느 때처럼 단호했다. 맥코이가 입술을 씹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맥코이는 계속해서 생각하던 것을 입밖에 뱉었다.

스팍. 내게 마인드 멜드를 해. 
뭐? 
말할 수 없다면 보여줘. 네가 본 것들, 저 애가 살아온 과거들. 나도 알고 싶어. 물론 안 된다고 말하겠지, 알아. 하지만 나도 주인 중 하나였다며? 그럼 나도 당사자야. 그리고 나는 진실을 알아야겠어. 

맥코이를 돌아본 스팍이 눈썹을 꿈틀였다. 그것은 불쾌하다기보다 놀라움에 가까웠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스팍은 결국 맥코이의 주장에 수긍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얼굴을 지긋이 눌러오는 스팍의 찬 손가락을 느끼며, 맥코이는 눈을 감았다. 

...기억 속에서 본 다른 우주의 당신도 비슷한 말을 했더군. 

그 말에 놀람을 표시하기도 전에, 맥코이는 그의 기억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다. 



커크는 사람의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어느 과학자가 만든 피조물 프랑켄슈타인처럼, 타인의 피와 타인의 살을 모아 만든 누구도 아닌 존재였다.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아이로서 자라나거나 성장하지도 못했다. 그는 눈을 떴을 때부터 성인의 몸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우주의 커크들을 모아 만든, 이를테면 제임스 커크의 총집합이었다. 그의 몸 어느 하나 커크가 아닌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제임스 커크가 아니었다. 

그의 주인은 스팍이었을 때도 있었고, 맥코이였을 때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지금의 커크를 견디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를 떠나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모두 제임스 커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다른 우주였지만 커크의 죽음, 혹은 실종은 동일하게 발생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건이었다. 우주의 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커크가 사라지는 일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그들은 커크를 잃었다. 

때문에 그들은 지금의 스팍과 맥코이처럼 커크를 간절히 찾다가, 그를 발견했다. 하지만 종래에는 커크가 아니지만 커크인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었다. 

상황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스팍이 먼저 그를 발견한 적도 있었고 맥코이가 먼저 그를 만난 적도 있었다. 외딴 행성을 탐사하던 중에 불시착한 셔틀을 찾아내거나 지구를 헤매는 그와 마주친 적도 있었다. 정말로 노예시장에 떨어진 커크를 구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우주에서건 커크는 동일했다. 아무 기억도 갖고 있지 않았고, 제임스 커크의 육체를 가진 것 외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다. 추억도 말투도 습관도 어느 것 하나 커크와 닮아있는 게 없었다. 

이전의 스팍들과 맥코이들, 일명 주인들은 그런 커크를 본래의 제임스 커크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를 다시 떠나보내게 된 것이었다. 다른 우주로. 또다른 스팍과 맥코이가 있는 곳으로. 그들이 커크를 수용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두 번째 이별을 선택했다. 


커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커크는 언제나 자신의 사람들과 이별해야만 했다. 제대로 된 이유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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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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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는 안대를 벗고 환자복을 입은 채였다. 가장 먼저 그의 왼쪽 눈이, 그 동공과 홍채의 이동조차 분간할 수 없는 온통 검은 눈이 보였다. 맥코이는 그 눈을 다시 마주하자 새삼스러운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맥코이가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커크는 양 옆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스팍이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커크의 손 또한 놓지 않은 상태였다.

자꾸 두 사람의 손에 시선이 가는 것을 애써 참고, 맥코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아?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 손을 들어 맥코이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맥코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스팍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

한참 후에야 커크가 더듬거리며 답했다. 

괜찮, 아...

그조차 힘겨웠는지 금세 손을 떨궜다. 맥코이는 그런 커크의 손을 낚아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북받쳐 올랐다. 그는 커크의 마른 손에 볼을 비비며 키스를 퍼부었다.

짐. 지미. 깨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정말,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너를 힘들게 하지 않을게....

그 순간 커크가 맥코이의 손을 뿌리쳤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잘게 떨고 있었다. 당황한 맥코이는 절망적으로 매달렸다.

짐...?!
소용없어. 맥코이.

스팍이 힘없이 조언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는 청각을 상실했어. 시각도 서서히 잃어가는 중이지. 그가 알아듣기 원한다면, 입모양을 읽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말해주는 편이 좋을 거야. 
뭐라고?

맥코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커크는 스팍의 손을 꽉 쥔 채 맥코이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시선조차 흐트러져 있었다. 맥코이는 마구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데 어떻게 너는 그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는 거지? 
마인드 멜드. 그리고 유사 본드. 현재 나와 짐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어. 그리고 그는 자신이 청각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야. 그러니 천천히 말해주길, 그는 바라고 있어.

맥코이는 스팍이 그를 '짐'이라고 지칭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건 무슨 변화일까. 스팍은 그를 제임스 커크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일까? 게다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한다고? 

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너를 통해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야?
아직까지는 아냐. 하지만 만약, 그가 시각을 완전히 잃게 된다면 그때는 아마 나를 필요로 하겠지.

새로운 종류의 농담이구나, 맥코이는 허망하게 손을 뻗었다. 커크는 그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야. 속으로 울음을 삼킨 맥코이가 커크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나야(I.t.i.s.m.e). 

커크는 어깨를 움찔거릴 뿐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바라보는 눈. 맥코이는 그 하늘에, 혹은 바다에, 또는 우주에 무엇이 담겨 있을는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해(S.o.r.r.y).

그저 해야 할 말을 건넬 뿐. 또다시 그가 어디론가 떠나기 전에. 자신의 곁을 떠나기 전에.

스팍은 맥코이가 하는 양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만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스팍이 손을 놓자 커크는 허공을 휘저으며 눈에 띄게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가지 마요. 
미스터 맥코이가 함께 있을 겁니다.
가지 마, 가지 마요....

스팍은 잠시 잊었다는 듯 (커크가 청각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커크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그리고 두 손을 모두 맥코이에게 건네주었다. 커크는 이전보다는 미약하게 눈을 굴리며 맥코이의 손을 맞잡았다.

그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기다릴 테니 대화가 끝나면 밖으로 나올 것을 요청한다.

맥코이는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팍은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예전처럼, 마치 그때처럼 커크와 맥코이 둘만 한 방에 남았다. 

맥코이는 커크의 양 손을 맞잡은 채 가만히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많았지만, 그것을 모두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짐(J.i.m). 정말 미안해(S.o.s.o.r.r.y). 

맥코이는 커크가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일견 감사하며,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눈물이 제멋대로 튀어나오려 했다.

만약 네가 용서하지 않는다 해도-(I.f.y.o.u.d.o.n.o.t.f.o.r.g)
당신을 용서해요. 

문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커크가 대답했다. 

정말로 용서한 걸까? 용서받을 수 있기는 한 걸까? 맥코이는 그 무조건반사적인 대답을 진정한 그의 의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분명 그의 '주인'들을 거쳐오며 자동화된 반응, 혹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건 그렇게 쉬이 종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보호자를 자처하며 스팍에게서 그를 데려왔던 맥코이로서는 더더욱. 자책감이 뒷목을 짓눌렀다. 맥코이는 커크를 타이르듯 문장을 이었다.

나는 정말로 네게 큰 잘못을 했고, 쉽게 용서받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아(I did a really big fault to you and I know It would be hard to ask forgiveness).
나도, 알아요. 

급하게 커크의 손바닥에 문장을 휘갈기던 맥코이가 일순간 정지했다. 커크는 맥코이의 손을 잡아 그 이상 쓰지 못하게 하면서,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랬어요. 하지만 용서해요. 당신도. 스팍도. 

맥코이는 그 이상 할말을 찾지 못했다. 왜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에게 양 손을 잡혀있어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맥코이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울어요?

어느새 커크가 맥코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맥코이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손길이 사무치도록 따스해서, 그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맥코이는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기어코 떨어뜨렸다. 커크의 가느단 손가락에 눈물 방울이 걸려, 윤곽을 타고 흘러내렸다. 커크는 조심스럽게 맥코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의 얼굴을 구석구석 매만졌다. 마치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

괜찮아요.
내가 괜찮지 않아....
괜찮아질 거에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맥코이는 말없이 커크를 끌어안았다. 그는 그 상태로 오래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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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짝) 울-지-마!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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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이 원하는 사람과 맥코이가 원하는 사람은 달랐다. 물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은 본래의 제임스 커크였지만, 그는 현실적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대체자- 일명 10913에게 자신이 원하는 커크를 투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10913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하고 결정한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은 그의 '주인'이 골라주었다. 그는 무언가를 고를 필요가 없었다. 그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조차 주인에 의해 결정되었다. 
 

10913은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첫 주인을 떠올렸다. 잘 생각나지 않았다. 두 번째도, 세 번째와 네 번째도, 다섯, 여섯, 일곱 번째도.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에 이르러서야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독특하고 이상했던 사람들. 모든 주인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문득 깨달았다.

 

그 얼굴들은 바뀐 적이 없었다. 

 


 

커크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의사들이 대여섯 명 달라붙어 그를 고치려 애썼다. 하지만 그들은 문제 부위가 정확히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아귀가 맞지않는 조각을 억지로 끼운 퍼즐처럼 온통 고장나 있었기 때문에. 
 


 

수술실 밖에서 스팍은 타인의 시선도 아랑곳않고 맥코이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허공에 들린 발이 허부적대며 가없는 몸부림을 쳤다.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를, 그를 되돌리려 했어. 짐 흉내를 내는 걸, 그만두라고-
그래서 그에게 충격을 준 건가?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아냐! 나는- 저 정도까지 되리라고는-

 

스팍은 계속해서 변명도 듣지 않고 맥코이를 몰아붙였다. 


비논리적이군. 대관절 무엇으로 그를 되돌린다는 거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그건 아무런 가치와 쓸모가 없는 일이야. 타당한 근거 없는 당신의 목적에는 동의할 수 없어. 
젠장!! 그러는 너는 왜 '고쳤다'고 했어? 고치긴 뭘 고쳐! 그래봐야 쟤는 제임스 커크가 될 수 없는데!! 
 

숨이 막혀 얼굴이 붉어진 맥코이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스팍은 천천히 그를 놓았다. 콜리나르를 받았음에도 울렁거리는 가슴이 숨을 쉬이 드나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 뇌리를 강하게 치고 지나갔다. 


자신은 그를 '고장난' 상태라고 여겼던 것인가? 그를 제임스 커크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 자체가 그를 정말로 커크라고 상정했던 것인가? 혼란스러워하던 스팍이 손에서 힘을 풀었다. 바닥에 내려선 맥코이는 기침을 몇 번 했다. 그리고 예리한 말로 스팍을 비난했다. 


그도 똑같은 인간이야. 제임스 커크든 아니든. 왜 타인이 되기를 요구해? 그의 인권이나 마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 벌컨 사전엔 그런 단어가 없나보지?
 

맥코이의 비아냥에 스팍이 눈썹을 세웠다. 자신이라고 할 말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대로 돌려주지. 그는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 또한 그에게 누군가가 되라고 강요했지. 당신의 입맛에 맞는, 당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그럼, 맥코이. 나와 당신의 차이점이 뭐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맥코이는 스팍의 말에 항변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응급 처치가 끝난 후에도 커크는 한참이나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때문에 의기양양하게 커크를 만나러 왔던 크루들은 실망을 안고 돌아가야 했다. 스팍과 맥코이는 크루들이 있거나 말거나 조용히 그의 곁을 지킬 뿐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약속이나 한듯 한 사람이 들어오면 한 사람이 나갔다. 그런 식으로 언제나 커크 곁에는 최소한 한 사람이 있었다. 

 

스팍과 맥코이는 그날 이후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대화가 필요할 리 없었다. 둘 모두 스스로가 커크에게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부당한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굳이 상대방에게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자숙하며 커크에게 용서를 구할 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스팍은 문 밖에서 두런두런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잠시 병실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스팍은 그것이 대화가 아니라 혼잣말임을 알고 조용히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미안해. 꼬마야. 네가 날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으니까 일어나 줘. 제발 일어나만 줘. 해달라는 건 전부 해줄게. 응...? 내가 잘못했어.... 


맥코이는 대답없는 커크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창백한 유령의 얼굴을 한 커크는 깨어나지 않았다. 살아있었다는 흔적조차 사라진 듯했다. 마지막에 함께한 게 자신이었기에 그는 더 자책했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렇게 커크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다, 고맙다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했는데. 만약 그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남은 평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먹먹한 무게감에 맥코이는 그제서야 울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신을 찾았다. 아내가 떠나고 제임스 커크가 죽고 그가 사라졌을 때조차 찾지 않았던 신에게, 커크를 돌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뒤늦은 후회는 언제나처럼 아무 소용도 없었다. 
 

다음날 병실을 지키던 스팍은 침대 옆에 서서 커크를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맥코이가 하던 것처럼 신에게 빌거나 기도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대신 스팍은 이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위험과 책임과 급변사태를 감수하고, 스팍은 커크에게 마인드 멜드를 시도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남은 방법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고 그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물론 그가 용서해준다면 말이지만. 스팍은 한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커크의 이마를 쓸었다. 


당신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나의 마음을 당신의 마음으로. 


그날 밤 맥코이가 찾아왔을 때 스팍은 방을 나가지 않았다. 꼭 나가야만 한다는 법은 없었기에 맥코이는 별다른 의문 없이 다른 의자를 끌어왔다. 스팍과 맥코이는 침대를 경계로 양쪽에 앉아 있었다. 
 

맥코이. 
 

스팍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을 때, 맥코이는 커크의 하얀 얼굴에 손을 뻗는 중이었다. 그는 손을 멈추고 반문했다. 
 

왜? 
그와 마인드 멜드를 했어. 
 

잠깐 조용하던 맥코이가 (마인드 멜드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뒤늦게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라고? 스팍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를 깨우기 위한 시도였어.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머릿속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지. 
이야기를 했다고? 깨어난 거야? 
 

맥코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커크와 스팍을 번갈아 보았다. 스팍은 그답지 않게 지친 얼굴이었다. 맥코이는 그제야 스팍의 얼굴에 어린 어두운 기색을 알아차렸다. 
 

무슨 뜻이야? 알아듣게 설명해. 
 

스팍은 가만히 커크의 손을 잡았다. 맥코이는 의심 반 기대 반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커크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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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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