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코이의 말이 맞았다. 스팍은 커크를 돌보기는커녕 그에게 상처만 주었다. 그는 타인을 돌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스팍은 벌컨이었다. 벌컨은 종족적 특징상 장수하는 존재였고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타 종족을 늘 먼저 보내곤 하는 입장이었다. 그 이별이 점층적으로 쌓여 감정이 무디어지게 되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벌컨이 벌컨답게 형성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팍은 젊다기보다, 어렸다. (벌컨 기준으로) 그리고 한 이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또다른 이별을 해야만 했고, 그것은 그렇잖아도 감정에 서툰 스팍이 더 감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맥코이는 스팍의 연락을 받고 몇 시간 후에 달려왔다. 급한 수술이 있었다고 했다. 스팍은 그 사이에 자신을 추스리고, 방을 치우고, 커크의 몸을 정돈했다. 그는 스팍의 손이 닿자 몇 번 움찔거렸으나 깨어나진 않았다.

맥코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소파에 앉아있던 스팍은 손짓으로 커크의 방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스팍은 커크에게 옮은 것처럼 아무 대답도 않았다. 답답해하던 맥코이는 품에서 트라이코더를 꺼내며 방으로 구르듯 달려들어갔다. 스팍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마냥 가만히 앉아 다가올 결말을 기다렸다.

몇 분 후, 맥코이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뛰쳐나왔다.

누구야. 어떤 새끼야.

스팍은 침묵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을 할 수 없었고, 수년간 스팍과 함께한 맥코이는 그 의미를 잘 알았다. 맥코이는 그것을 긍정- 이를테면 자백이라 받아들였다.

너야? 대답해. 너냐고!

스팍은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또는 입을 열어 대답하지 않았다. 맥코이가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울 때까지도 반응하지 않았다. 맥코이는 커크와 스팍이 전부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몸도 마음도 망가져버린 사람들처럼.

맥코이가 스팍의 뺨을 세게 때렸다. 강렬한 충격 덕분인지 스팍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맥코이는 그것으로 부족하다 여겼는지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스팍이 그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스팍과 맥코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맥코이는 스팍의 눈에서 참을 수 없는 죄책감과 자괴감을 보았다. 그답지 않았다. 벌컨답지 않았다. 하지만 맥코이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말을 모두 쏘아댔다.

이 개자식아. 네가 어떻게 짐한테 그럴 수 있어. 스팍. 네가 어떻게-.
그는 제임스 커크가 아니야.

스팍은 속으로 거듭 되내이던 것을 입밖에 내었다. 그리고 고장난 테이프처럼, 앵무새처럼, 그 말만을 반복했다. 그는 제임스 커크가 아니야. 그는 제임스 커크가 아니야. 그는 제임스 커크가 아니야. 맥코이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그래서 저렇게 죽도록 괴롭혔어?

스팍은 입을 다물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를 쥐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손끝의 미세한 떨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피부에 닿았던 커크의 목줄기가, 박동하던 그의 동맥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죽도록 괴롭힌 게 아니야. 죽이려 했어. 내 손으로 죽이려 했었어. 없애려 했었어.
너. 제정신이 아냐. 너한테 더이상 못 맡겨.

맥코이가 학을 뗐다. 그는 미친 사람 보듯 스팍을 보고 있었다. 스팍은 그것이 자신을 정의하는 옳은 단어라 여겼고 맥코이가 자신의 얼굴을 갈겼을 때는 진심으로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이미 미쳤다는 의미가 아닐까. 스팍이 말을 이었다.

데려가. 내가 완전히 부수기 전에. 제발 데려가줘. 닥터 맥코이. 치워줘. 구해줘.

누구에게서 누구를 구해달라는 건지 불명확했다.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혼란에 빠진 스팍이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울고 싶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파도처럼 자신을 덮쳐왔다. 마치 악마가 인형을 갖고 논 것처럼, 자신의 몸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정신을 차리자 모든 일이 일어나 있었고 결과는 처참했다. 맥코이가 그에게 선고를 내렸다.

지금 이 시점 이후로 나나 짐을 볼 생각, 하지도 마. 접근 금지야. 다시 눈앞에 나타난다면 그때는 나도 용서하지 않겠어.

맥코이가 방에 들어가 커크를 안아들고 나왔다. 스팍은 맥코이가 현관문을 열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맥코이가 바깥으로 한 발짝 나서자, 그제야 스팍이 반쯤 쉰 목소리를 냈다.

맥코이.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마.

-

커크는 맥코이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피부의 상처는 모두 치료된 모양이었지만, 속은 여전히 욱신거리는 게 어지간히도 당한 듯싶었다.

꼬마, 더 누워 있어.

몸을 일으키려는 커크를 맥코이가 잡아 눌렀다. 이마를 눌린 커크는 어쩔 수 없이 뒤통수를 베개에 파묻고 눈동자만 굴렸다. 푸른 눈과 검은 눈. 왼쪽 눈은 그 이후로 며칠이 지났지만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맥코이가 갖은 수를 써도 모두 헛수고였다.

커크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매번 불안한듯 문과 창문을 흘끔거리기만 했다. 맥코이는 그런 그를 돌보기 위해 일하던 병원에도 휴가를 냈다. 자신이 없을 때 커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러웠고, 또 커크가 갑자기 사라져버릴까, 혹은 스팍이 찾아올까 무섭기도 했다.

널 해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여기는 내 집이고, 안전해. 그러니까 안심해. 응? 안심하고 좀 더 자라.

맥코이가 커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커크는 놀란 듯 움칫했으나 이내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검은 눈도 푸른 눈도 모두 눈꺼풀에 덮여 사라졌다. 동시에 긴장했던 맥코이의 몸도 풀어졌다.

맥코이는 서서히 몸을 숙여 커크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이젠 내가 지켜줄게. 짐.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