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로 진화하는 김본즈

 

 

-

 

 

맥코이는 짧은 남편 경력이 있었다. 덕분에 그때까지 모았던 재산을 탈탈 털리긴 했지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이를테면 '있을 때 잘하자'와 같은 값비싼 교훈 말이다. 그래서 맥코이는 스팍처럼 그를 커크로 되돌리려 하거나 그에게서 커크와의 차이점을 본다거나 하는 미련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때로 현명함은 연륜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동거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미묘한 사실을 암시했다. 굳이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을만치 가까운 관계라거나, 이름 외의 호칭들로 얼기설기 연결된 피상적인 관계라든가.

 

맥코이는 자신이 말했던 대로 그후 스팍의 연락을 일체 받지 않았다. 하루 간격으로 울리던 벨소리는 이틀, 사흘로 점점 그 틈을 벌려 가더니 결국은 완전히 울리지 않게 되었다. 스팍의 패배였다. 맥코이는 그런 스팍을 손톱만큼 동정했지만 그와 커크를 만나게 해줄만큼 아량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다. 커크를 평생 자신의 보호 아래 둘 수만 있다면, 그게 가능했다면 맥코이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한동안 직장에 나가지 않았던 맥코이는 만약 오늘도 나오지 않으면 평생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병원 원장의 친절한 연락을 받았다. 그 의미인즉슨 커크를 홀로 집에 두고 나서야 한다는 것을 뜻했고, 맥코이의 불안이 가중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맥코이는 문을 나서기 전까지 커크를 앉혀놓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아니면 아무에게도 문 열어주지마. 택배나 방문객이나, 그런 게 있을리도 없겠지만, 그런 사람들도 안 돼. 특히 스팍은 절대 안 돼.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진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 알겠지? 

 

커크는 잠시 고민끝에 반문했다. 

 

나는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에요? 

아냐. 내 말뜻은 그게 아니라.... 

 

커크의 어깨를 잡고 맥코이가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직장까지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병원보다는 적어도 자신의 집이 안전하리라 생각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도 널 혼자 두고 싶지 않아. 응? 급한 일이라서 그런 거니까, 금방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집을 지켜달라는 말이 떨어지자 커크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라도. 맥코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커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맥코이는 집에 카메라라도 설치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커크에 한해서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인다는 사실보다 커크가 그만큼 불안정한 상태라는 사실이 그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맥코이는 자신을 정당화하며 진료를 보는 시간 외에 틈틈이 이베이를 뒤졌다. 

 

누구보다 먼저 퇴근하려던 맥코이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기간 동안 쌓여있던 일거리와 맞닥뜨려야 했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것도 채 세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주변인들의 눈총을 뒤로 하고 맥코이는 서둘러 병원을 나왔다.

 

닥터, 집에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어요? 

 

나가는 그의 등 뒤로 간호사의 우스갯소리가 달라붙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애인은 아니고 애지만. 맥코이는 속으로 쓰디쓰게 웃었다. 

 

어둑해진 병원 정문을 나서서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느새 골목에 들어섰고, 어느새 현관 앞이었다. 맥코이는 커크가 집 안에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차가운 문에 대고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기척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겠지. 맥코이는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을 축이며 문을 열었다. 거실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부엌도, 자신의 방도 깨끗했다. 맥코이는 한달음에 커크의 방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침대 옆 구석에 커크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맥코이는 쌓였던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찬찬히 훑어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을 옹송그리고 있는 커크가 안쓰러웠다. 

 

짐. 꼬맹아. 침대에서 자야지. 맥코이는 부러 살갑게 속삭이며 그를 부둥켜 안고 일어섰다. 그에겐 도저히 예전처럼 투덜대거나 잔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맥코이는 그를 침대에 눕히고 옆에 앉아 얼굴을 쓰다듬었다. 오늘 하루, 그것도 약 14시간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조바심을 내고 불안해하다니. 내일은 또 어떻게 출근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어쩌면 커크보다 문제가 큰 쪽은 자신이 아닌가 하며 맥코이가 조소했다. 

 

짐. 지미. 꼬맹아. 

 

부를 수 없었던 이름을, 그가 잠들고 나서야 마음껏 불렀다. 맥코이는 예전부터 커크가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은 일종의 습관이었다. 최소한 잠자는 커크는 말썽을 피우는 문제아도 아니었고, 온기를 찾아 남의 침대에 기어들어가지도 않았고, 자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상한 상태에 있지도 않았다. 커크는 커크였다. 

 

맥코이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살짝 벌어진 입을 닫아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손이 아니라 입이 먼저 그곳으로 향했다.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속으로 되내이던 맥코이의 따스한 숨이 입술을 스쳤을 때, 거짓말처럼 커크의 눈이 벌어졌다. 

 

안 돼요.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