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코이가 부러 세게 트라이코더를 그의 목에 들이밀었다. 커크가 아야야, 하고 엄살을 피웠다.
"의사로서의 세심함이라고 해줄래? 그리고 너 예수랑 하나도 안 닮았거든."
"부활했잖아!"
"그는 3일 만에 눈을 뜨셨고 네놈은 15일이나 걸렸지. 어차피 난 무신론자야.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어디보자. 악몽은 어때? 좀 나아졌어?"
트라이코더를 내려놓은 맥코이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커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맥코이는 팔짱을 낀 채 커크의 모든 행동을 주시했다. 슬슬 눈치를 보는 게 또 거짓말을 할 모양이었다.
"그게......."
"또 거짓말 하면 내 의사자격 전부 내놓고 엔터프라이즈에서 내릴거야."
못됐다, 커크가 눈을 크게 뜨며 불만을 토했다. 하지만 맥코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의사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정상적인 진단을 방해하는 일이었고, 이는 처방과 결부되어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또한 맥코이는 커크가 자신의 고통을 숨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본인도 경험한 것이었기에 더욱 더.
파멜라나 자신 또한, 일이 생겼을 때 그때 그때 이야기했다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작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손대지 못할 큰 벽이 되었고 그것은 그들의 사이를 영영 갈라놓았다. 아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맥코이는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결국은 맥코이의 눈빛에 진 커크가 꼬리를 내렸다.
"또 꿨어."
"같은 내용?"
"응. 그런데 조금 달랐어."
"어떻게?"
커크는 그 꿈을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고민했다. 다시 생각해도 낯이 뜨거워졌다. 아, 젠장. 이게 뭐야. 쪽팔리게. 커크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맥코이는 늘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꿈을 심리적으로 분석한다나 뭐라나. 외과의사가 심리학이라니 아주 유능하기 그지 없었다. 커크가 다시 망설였다.
"그게, 그가 나를 '가족'이라고 불렀는데...."
"계속해."
"되게 자극적으로 대하더니, 나머지는 똑같았어. 나를 협박하고 박아대고.... 알잖아. 트라우마로 이런 걸 계속 보는 거라며? 그런데 갈수록 감각이 명확해지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돼?"
스팍이 자르타클라 교도소에 도착해 죄수들을 인도하고 난 뒤에도 엔터프라이즈는 움직이지 못했다. 엔진 점검은 거의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조 동력 쪽에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해 기술부원들이 모두 그리로 몰려갔기 때문이었다. 스콧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들은 스팍은 결국 통신을 종료해버렸다.
스팍은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엔터프라이즈의 점검이 완료되는데 최소 4시간. 점검이 완료될 경우 이곳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1시간. 총 5시간. 대신 이 교도소의 셔틀을 빌려타고 갈 경우 걸리는 시간은 순수하게 8시간. 중간에 점검을 완료한 엔터프라이즈가 나와 자신의 셔틀을 맞이한다면 약 5시간 20분이 걸리지만, 접촉 지점은 불안정한 별무리 지대이므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한 이 셔틀을 돌려주러 다시 이곳에 와야만 한다.
이곳에서 엔터프라이즈를 기다리는 것이 경제적이었다. 스팍은 허탈한 숨을 토해냈다.
그는 습관처럼 자신의 영혼을 더듬어 커크를 찾았다. 커크는 희미하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팍은 초조해졌다.
대체 왜, 커크는 타인과 관계를 한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은 왜 거부한 것일까. 그는 혹시 '일부러' 자신을 멀리 보낸 것이 아닐까?
아냐, 억측이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감정을 가라앉혀야 했다. 물론 가능성이 존재하나 그것 또한 차근차근 검증해보자. 스팍은 논리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현실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가정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과학자였다. 자신이 관찰한 객관적 사실(fact)만을 증거로 결과를 추론하는 벌칸이었다.
첫 번째 사실. 커크는 타인과 관계를 가졌다. 타인의 정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여자든, 남자든, 휴머노이드든. 그의 성향으로 볼 때 충분히 발생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정확을 요하기 위해 규명이 필요하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두 번째 사실. 커크는 자신의 도움을 거절했다. 왜? 과학에서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나름대로의 이유는 차후에 그가 밝힐 것이다.
세 번째 사실. 커크와 자신은 본딩되어 있다. 하지만 커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본드. 커크는 그것을 몰랐다. 스팍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커크로부터 보다 분명한 정보를 확인해 사실을 확정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리라.
스팍은 즉시 엔터프라이즈에 통신을 시도했다.
"엔터프라이즈. 여기는 스팍이다."
-
커크는 함장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금 전에 심하게 장난을 친 탓에 체코프는 반쯤 삐쳐 있었고, 술루는 자신의 시프트가 아니라서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커크는 물끄러미 스팍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의 텅 빈 자리가 웬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없으니까 더 보고 싶은걸.
커크에게 있어 스팍은 든든하고 능력 있는 부함장이었다. 또한 전장에 나가서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동료이자 친구였고,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보여도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주변 사람을 (특히 자신을) 배려할 줄 아는 남자였다. 물론 그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랬다. 커크는 그의 그런 측면을 그의 일부로써 존중했다. 커크는 그가 싫지 않았다.
"함장님. 자르타클라로부터의 통신입니다. 부함장님께서 개인 회선을 요청했습니다."
스팍이? 텔레파시라도 통했나? 커크가 반가운 얼굴로 손짓하자 우후라가 통신을 넘겼다.
"헤이, 스팍. 나 보고 싶었어(Did you miss me)?"
정작 보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었지만, 늘 그렇듯이 질문으로 상대방에게 인사하는 커크였다.
"함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긴히' 얘기해봐."
"사적인 일입니다. 통신을 함교가 아닌 별개의 공간에서 할 것을 요청합니다."
마냥 웃던 커크가 입을 다물었다. 덜컥 불안해졌다. 저 벌칸에게 사적인 일이라면 틀림없이 '그 때'의 일일 것이고, 커크는 그 기억을 수면으로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다. 스팍이 왜 자꾸 그 일을 상기시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하면 안돼? 네가 그러니까 무섭다."
"그렇다면 제가 돌아간 뒤에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함장님. 한 가지 사실만 확인해 주십시오."
"뭘."
"약 10시간 전에 성관계를 가지셨습니까?"
커크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혹시 그의 통신을 누구라도 들었을까 싶어 커뮤니케이터를 쥐고 주변을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체코프는 별지도를 보고 있었고, 우후라는 다른 통신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크루들 또한 저마다 자기 일에 충실히 임하고 있었다.
커크는 결국 몸을 일으켜 터보 리프트로 향했다. 체코프를 불러 함장석을 지키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리프트 벽에 몸을 기댄 커크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야??"
커크의 거친 반응에 스팍은 자신의 모든 가정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느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커크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사실은 두 개일 수 없었다: 팩트는 언제나 하나였다. 즉 가능성은 둘이었다. 자신이 옳고 커크가 틀렸든가, 커크가 옳고 자신이 틀렸든가. 스팍이 차분하려고 애쓰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이해합니다. 당신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상대와 관계를 했든지-."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데? 너 혹시 나 감시해?"
커크가 답답하다는듯이 말해왔다. 스팍의 마음이 불안으로 차올랐다. 대화 중에 뭔가가 맞지 않고 삐그덕거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함장님? 저는 사실 확인을 하려던 것뿐입니다. 예와 아니오로 대답해주십시오."
맥코이의 말마따나 커크 스스로도 자신이 꿈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난 꿈이 명백히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도대체 스팍은 뭘 보고, 뭘 알고 이렇게 연락을 해온걸까?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날 감시하는 걸까?
커크는 떨리는 손을 들어 PADD를 확인했다. 혹시나 지난 일이 정말 꿈이 아니라면.... 현실이라면.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커크가 버튼 몇 개를 터치해 모니터실과 연결된 화면을 불러왔다. 칸의 감금실이 비쳤다. 칸은 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들이닥친 안도감에, 커크가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야......."
그의 힘없는 목소리에 스팍이 주먹을 쥐었다. 거짓말이었다. 스팍은 두 번째 사실도 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했다.
"함장님. 그렇다면 왜 그때 저의 도움을 거절하셨습니까?"
"무슨......."
"당신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을 도와드리겠다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그것을 해소했습니다. 왜입니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까?"
커크 또한 스팍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뭐? 하고 되묻자, 스팍은 더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저는 안 되는지 질문하고 있는 겁니다."
"뭐가 안돼?"
"당신의 성욕을 해소하는 상대 말입니다."
미쳤어. 커크가 입을 벌렸다. 스팍이 지금 왜 그것에 집착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이렇듯 자신을 추궁할 때마다, 그와 자신과의 거리가 급속도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커크는 먹먹한 목구멍에서 간신히 말을 끌어올렸다.
"괜찮다고 했잖아...!"
"다른 사람과 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안 했다고!!"
"거짓말 마십시오."
스팍의 단호한 말에 커크는 포기했다. 그리고 될 대로 대라 하고 내뱉어 버렸다.
"씨발, 그래. 했다. 했어."
스팍의 눈썹 끝이 치솟았다. 사실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해도 그가 이렇게 나오니 더없이 불쾌했다.
"칸이랑."
커크가 통신을 끊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스팍의 손에 있던 통신기가 부서졌다.
예수의 12제자 중 도마(Thomas). 부활한 예수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그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