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발견한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술집이었지. 스팍은 주의깊게 커크를 살폈어. 아무리 외출 중이라 해도 신분이 생도인 이상 문제에 휘말리면 그대로 영창행이야. 스타플릿 아카데미는 사관학교였고 소속 학생들은 군인 겸 학생이기 때문이지. 커크도 그런 사실 정도는 본즈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알고 있었어.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조심해도 달려오는 자동차는 피할 수 없듯이, 이상한 놈들이 꼬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지. 커크가 금발에 이쁘장하게 생긴 탓도 있지만 혼자 있는 이상 쉬운 표적으로 보이는 건 당연한 거야. 커크도 그걸 알아서 본즈가 없으면 나오지를 않았어. 그런데 본즈는 실습 때문에 바빠서 얼굴도 보기 힘들었고, 연이어 계속되는 스팍의 압박으로 커크는 매우 술이 고팠어. 그러니까 어쩌면, 커크가 그런 사고를 당하게 된 건 스팍 탓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거야.
혼자 술을 퍼마시던 커크에게 남자 하나가 다가갔지. 스팍은 그게 커크의 동료인지 낯선 사람인지 알 수 없었어. 다만 그가 커크와 몇 마디를 나눈 후에 커크가 꺼지라는 듯 그를 향해 셋째 손가락을 날리는 것을 보고 추측을 할 뿐이었지. 그 남자는 커크에게 욕을 먹고서 그 자리를 떠나려는 제스처를 취했어. 커크도 다시 술에 집중했지.
아니, 하려고 했지. 그 남자가 갑자기 덤벼들어 커크를 때려눕히기 전까지는. 술집에서는 흔하디 흔한 싸움판이 벌어졌지. 단지 커크가 그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 빼면. 그 남자는 커크에게 주먹질을 했지만, 커크는 그저 막거나 피할 뿐이었어. 커크도 알고 있었거든. 생도로써 일반인과 싸움이 벌어지면, 책임은 생도에게 귀속돼. 일반인을 때리면 그대로 영창행이지. 정당방위고 뭐고 없어. 생명을 위협당하는 정도만 아니면 군인은 폭력을 휘두를 수가 없어. 파이크와 본즈가 커크에게 명심하라고 외출할 때마다 말하곤 했기에 그도 기억하고 있었지.
스팍은 그런 그를 지켜보며 내심 놀랐어. 완전 멍청이는 아니었군. 하면서. 하지만 한참을 맞기만 하니까 커크 성정에 그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지. 결국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뭐라 한 마디 하니까 커크가 도끼눈을 뜨고 덤벼들어. 그의 턱에 단 한 번 주먹을 날렸을 뿐인데, 구석에 있던 네 다섯명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서 다가와. 그의 동료였던 모양이지. 커크도 슬슬 눈치를 살펴. 이거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하지만 한 걸음 걷기도 전에 그들이 와서 커크를 붙잡아. 더 큰 싸움판이 벌어져. 스팍은 그 시점에 끼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스타플릿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잠깐 시선을 떼고 말아.
커크 혼자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결국 잠시 후에 축 늘어진 커크를 끌고 그들이 나가. 그게 목적이었던 모양이야. 통화를 끊은 스팍은 술집 주인에게 물어 그들을 쫓아가지. 길이 음침한 공터로 통하는 걸 보고 스팍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직감해. 그가 서둘러 갔을 때, 이미 커크는 그들에게 붙잡혀서 바지가 벗겨진 채였어.
스팍은 즉시 그 자리에 끼어들어 그들을 정리하지. 일단 커크는 학생이었고, 교관은 생도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막을 의무가 있었어. 일반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필요도 없었지. 그가 벌칸이라는 것은 외형만 보고도 모두가 알았으니까. 스팍이 그들을 논리적인 말로 위협하자 다들 설설 기면서 꽁무니를 빼. 한 대 맞은 남자도 도망치지.
커크는 바닥에서 바르작대다가 몸을 일으켜. 그리고 스팍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지. 스팍 또한 그에게 그 이상 손댈 마음은 없었어. 커크는 옷을 제대로 갖춰입고 일어나서, 한 마디 툭 던져.
과제 때문에 쫓아왔습니까?
긍정하지.
하, 고마워 죽겠네.
커크는 감사인지 욕설인지 모를 것을 투덜거리자 스팍이 덧붙이지.
오늘 내가 목격한 사건을 보고하면 생도는 외출시 규정을 어긴 것으로 처리되어 7일간 영창에 가야 해.
그래서 보고하실 겁니까?
스팍은 대답하지 않아. 대신 딴 소리를 하지.
생도는 격투술에도 소질이 없는 것 같더군.
어쩌라고요.
내가 내주는 과제에 추가로 격투술 훈련을 받는다면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커크가 멍하니 스팍을 쳐다봐. 스팍은 커크가 함장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점 대신 그를 잘 교육시키면 제대로 된 함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에 집중하기로 하지. 아이돌을 키우는 매니저처럼 말야. 어차피 지휘부에 있는 이상 함장이 되는 게 기정 사실이라면 특별 훈련을 통해 그를 함장답게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일 거였어. 스팍은 생각을 끝내고 그에게 선고하듯 지시하지.
매일 1800시, 체육관으로 오도록.
이런 미친? 커크는 울고 싶었어. 그 비인간적인 과제도 계속되는 데다가 저 고블린 새끼랑 하루에 몇 시간씩 부대끼며 훈련까지 해야 돼. 하루의 반 이상을 저 스팍에게 소모하는 꼴이었지. 하지만 훈련을 거절한다면? 영창에 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지. 영창에 가면 수업도 못 들어서 낙제를 할 거고, 군적에도 남겠지. 그럼 함장이 되기는커녕 브릿지에도 못 가고 지상직에 머무를 거야. 파이크도 실망하겠지. 결국 커크는 울며 겨자먹기로 스팍의 명령을 받아들여.
커크가 본즈에게 스팍에 대한 욕을 늘어놓는 날이 늘어났어. 사실은 매일. 본즈를 볼 때마다 스팍 욕을 했다는 편이 더 정확할 거야.
내가 도대체 언제 찍힌 걸까? 생각해봐. 본즈. 그 자식은 나를 싫어하는 게 틀림없어.
야 머저리야. 이 스타플릿의 절반이 네 안티거든.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
네가 네 죄를 알렸다. 나 실습있어서 가본다. 내일 봐.
본즈에게 욕을 해도 달라질 건 없었지. 커크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체육관으로 가.
격투술 훈련은, 엄밀히 말하면 정규 수업 과정인 격투술과는 또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었지. 스팍과 일대일로 진행했으니까. 보통은 커크가 덤비면 스팍이 제압하는 식이었어. 그렇게 상대방의 급소나 제압 방법을 가르쳐주곤 했지.
오늘은 내가 적이라고 상정하고 막아봐.
커크는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에게 대들거나 투덜거렸다간 과제가 늘어날지도 몰라서 가만히 있었지. 결국 하얀 매트 위에 나란히 서서 훈련을 시작했어. 커크는 스팍이 덤비면 어떤 방법으로 그를 제압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 그런데 씨발, 힘이 3배나 센 놈을 무슨 수로 제압해. 절로 욕이 나왔지.
준비됐나?
스팍이 그에게 묻자마자, 커크가 입을 열었어.
교관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질문해.
벌칸도 약점이 있기는 있습니까?
스스로 찾아보길 바라지.
스팍의 대답에 커크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체육관 문을 가리켜.
어? 파이크 교관님!
스팍이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어. 아무도 없었지. 아니, 이런 고전적이고 약은 수를 쓰다니...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커크가 뒤에서 자신에게 덤벼드는 게 느껴졌지. 스팍이 팔을 휘둘렀지만 커크는 날래게 몸을 빼고 그에게 다리를 걸어 그대로 바닥에 눕혔지. 커크는 스팍 위에 엎드린 채 싱글 웃었어.
잘 했죠?
커크 생도.
예?
그 순간 스팍이 그의 팔을 잡고 몸을 세게 밀었어. 그 기세에 몸이 그대로 돌아갔지. 커크는 비명도 못 지르고 뒤집혔지. 말 그대로 세상이 뒤집히는 기분이었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위치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지. 있는 힘껏 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스팍이 단단히 붙잡고 있었기에 그것도 안 됐어.
잘못한 점을 짚어주지. 첫 번째. 나는 그런 교란 방식을 가르치지 않았어.
예...?
두 번째. 끝까지 방심하지 말았어야 해.
.......
세 번째....
스팍은 거기서 말을 멈추었지. 커크는 잔뜩 주눅든 채로 스팍을 올려다보았어. 스팍의 표정은 하얗고 무감정했지. 하지만 접촉하고 있는 커크의 피부에서 그의 감정, 혹은 생각이 밀려들어오고 있었어. 스팍은 그것에 중독된 듯, 멈출 수가 없었지. 커크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스팍의 눈치를 살폈어. 스팍은 가까스로 말을 마무리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