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살의 주의
한마디: 이렇게 나는 스팍칸을 찍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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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은 통신을 받은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보고서 문제를 잘 해결했다 싶었더니 또 시작이었다. 스팍은 도저히 자신의 상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함장이라면 자신의 목숨도 중한 줄을 알아야 했다. 모름지기 함장이란 함선 전체를 책임지고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제임스 커크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자살 행위는 지양하는 편이 나았다.
더욱이 그는 한 번 죽었던 사람이 아닌가. 방사능 코어의 문 앞에서 느꼈던 절망감. 벌칸 모성이 블랙홀에 먹혀 사라질 때의 상실감. 어머니를 손 끝에서 잃었을 때의 좌절감.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자신의 혈관 속을 거세게 흘러다녔다. 스팍은 눈썹을 찡그렸다. 제임스 커크. 당신을 다시 죽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으므로.
스팍은 좀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차분히 호흡하며 커크가 칸을 만나러 갈 이유를 추론해 보았다. 닥터 맥코이의 소견에 따르면 커크가 아무 목적도 없이 칸을 만나러 갈 리는 없었다. 그를 만나서 대화해야 할 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었다.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에 대한 추궁이라든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모색이라든가.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가 직접, 홀로 내려갈 필요는 없었다. 스팍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역시 비논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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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짐."
칸의 단어 선택에 커크는 얼굴을 찌푸렸다. 주먹을 쥐고 있는 손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구금실 앞에는 도착했으나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커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칸과 눈을 마주쳤다. 칸은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태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예상보다 빠르군."
"네놈이 내 군의관을 위협했잖아."
그건 위협이라고 볼 수 없지. 칸이 비웃었다. 커크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귓가에서 속삭이던 그때의 칸이 떠올라 견디기가 힘들었다. 몸이 바짝 긴장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빨리 요구사항을 듣고 판단할 생각이었다. 그와 오래 있을 생각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요구사항을 말해."
"좋아. 먼저 네 신체의 반응에 대한 유전적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다. 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커크가 명백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대가 없이 선의를 행할 리 없었다.
"네가 왜 그런 일을?"
"대신 나를 포로 대신 과학부서의 크루로 대우하는 게 조건이야."
"미친......."
칸의 말에 커크가 중얼거렸다. 그가 엔터프라이즈 내의 포로로써 함께 타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부담인데, 심지어 죄수복을 벗기고 선원으로써의 신분을 달라고?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커크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들을 가치도 없는 요구야. 할 말 끝났으면 가보겠어."
"끌리지 않는가 보군."
"물론. 내가 살고 싶었다면 어느 정도는 솔깃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별로 남은 인생에 뜻이 없거든."
커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겠답시고 맥코이를 위협한 게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 어쨌든 칸은 구금실에 수감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그는 무력했다. 자신을 위해 피를 뽑히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더 이기적으로 생각해보니 그를 얼려둔 채 필요할 때만 깨워서 피를 뽑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커크는 칸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인도적 대우 또한 필요 없었다.
"그런 대답을 기대했지."
하지만 칸의 말에 커크는 안색을 달리했다. 그를 앞에 두고는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웃기지 마."
"짐.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나?"
"안 궁금해."
"네 굴욕적인 모습을 보는 거지. 절대로 안 하리라 생각했던 일을 하게 될 때. 그것도 스스로. 표정이 볼만할거야."
칸이 웃었다. 그 모습에 다시 기분이 나빠진 커크는 다시는 그와 대화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스팍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커크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젠장......."
스팍은 성큼성큼 다가와 커크의 앞에 섰다. '함장님'이라 부르는 말도 없었다. 그의 표정은 이제까지 커크가 본 어느 표정보다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커크는 자연스레 움츠러드는 가슴을 펴고 먼저 입을 열었다.
"스팍. 여기서 나-."
"칸과 대화하셨습니까?"
스팍이 커크의 말을 잘랐다. 그 냉정한 태도에 커크는 태연히 그를 대하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커크는 목을 세우고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군요."
칸은 아무 반응도 없이 스팍과 커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스팍은 그런 칸의 모습이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커크에게 집중하며 불쾌한 감정을 가라앉히려 했다. 하지만 마주 보고 있는 커크마저 순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난 함장이야. 내 마음대로 함선 어디든 가고,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어."
"닥터 맥코이는 분명 당신에게 안정을 취하라는 처방을 했고 저 또한 휴식을 권고했습니다. 장교가 의견을 제시할 경우 당신은 그것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듣지 않을 권리도 있지."
커크의 말에 스팍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곧 말을 이었다. 그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뭐가 됐든 그로부터 합리적인 설명을 들어야 머릿속의 논리가 이어질 것 같았다. 커크와 칸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알아야만 했다. 자신이 보지 못한 곳에서 어떤 식으로 칸이 커크에게 말했을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스팍에게 조바심을 일으켰다. 자신에게 있어서 '모르는 것'은 비논리적이었다. 그리고 비논리적인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목적으로 개별적인 행동을 취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기 싫다면?"
"함장님. 저 자는 당신을 강간했습니다. 그런 자를 왜 만나러 온 겁니까?"
커크가 입술을 깨물었다. 스팍의 노골적인 말이 가슴을 베어내다 못해 푹푹 찔렀다. 다시 현기증이 났다. 이 함선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위로해주지 못했다. 커크는 숨가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커크 또한 이 상황을 도저히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커크는 이를 악물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마음까지 산 채로 찢겨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듣든지."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출구를 향했다. 스팍이 재차 함장님, 하고 불렀지만, 그는 단호하게 멀어졌다. 그의 노란 옷이 보이지 않게 되자 스팍은 서서히 시선을 옮겼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비논리적인 감정에 대한 또다른 분노가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그는 드디어,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저기 있는 칸 때문이라고.
"함장을 그렇게 보내도 되나?"
세심하게 신경이라도 써주는 듯한 말투였다. 스팍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커크가 죽은 후 지구까지 쫓아내려가 싸우던 그때와 같이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다만 커크가 눈앞에서 사라진 덕분에 온전히 감정을 제어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스팍은 무정하게 대답했다.
"너와는 관계없는 사항이야. 한 가지만 묻지. 함장님과 무슨 대화를 했지?"
"내게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한 거라면 안됐군. 나도 대답할 마음이 없어."
"엔터프라이즈에는 만약을 대비해서 적은 종류지만 충분한 대인 무기가 탑재되어 있어."
"나를 고문할 텐가?"
"필요하다면."
스팍의 눈에 칸의 조소하는 얼굴이 들어왔다. 스팍은 이성적으로 칸을 고문할 수 있는 138가지의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중에서 최단 시간 내에 활성화 가능한 것은 42가지였다. 포로의 인도적 대우 조항 같은 건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칸이 이 엔터프라이즈에 타고 있다는 사실은 스타플릿의 고위 간부와 엔터프라이즈 소속 선원들만 알고 있었고, 그 말은 이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간에 5년 뒤 칸을 살려 보내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정식 포로조차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