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단호박 주의(속이 답답해질 수 있음)
한마디: 트위터에 휴덕 선언하고 연성에 올인하는 나란 덕후 그런 덕후ㅠ 내 일상 없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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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이 자신을 보고 표정을 굳히자, 커크는 눈을 크게 떴다. 주먹까지 쥔 것을 보니 자신을 불편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벌칸인 스팍이 저 정도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커크는 차츰 스팍을 설득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를 불러낸 것조차 잘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 화가 난 것일지도 몰라. 아니면 나를 이미 칸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고 있는지도.
그런 스팍과 대화해야 하다니. 커크는 이를 악물고 애써 웃었다.
"앉아."
"용무를 말씀하십시오."
"스팍.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로봇 같다. 일단 앉아."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몰랐지만, 커크는 일단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안 그래도 낮에 칸의 혈청을 맞고 온 터라 몸이 잘 제어되지 않았다. 또 애꿎은 의자를 부수거나 스팍에게 맞아야 하는 일은 없기를. 커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사담입니까?"
"아니야.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나에 대한 보고서 때문이야."
커크의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던 스팍이 그 말에 고개를 곧추세웠다.
"보고서에 대한 의견은 받을 수 없습니다."
"스팍, 들어봐. 내 말을 들어보라고."
"함장님의 상태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위험합니다."
위험? 내가 위험하다고? 커크는 숨을 삼켰다. 스팍이 말한 것은 '그의 상태'였지만, 커크의 귀에는 '위험'하다는 단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팍의 말은 자신 또한 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스팍. 아니야. 난 괜찮아."
"칸의 혈청에 대한 적절한 대체물이 마련될 때까지, 함장님은 직무를 내려놓으실 것을 권합니다."
대체 스팍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나보고 함장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거지? 커크는 이제 심지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끝없는 현기증이 밀려왔다. 몸 속의 피가 제멋대로 뛰놀고 치솟는 것 같았다. 통제, 통제해야 해. 커크는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임무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스타플릿은 새 함장을 임명하는 대신 이대로 임무 수행을 명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팍은 뒤에 어떤 말을 덧붙여야 좋을지 잠깐 고민했다. 커크의 표정이 시시각각 어두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스팍은 커크가 안정을 취하고 쉬기를 원했다. 그것이 커크에게 필요한 것이라 판단했고 커크 또한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스타플릿에 정확한 보고서를 보내는 일 또한.
커크는 그런 스팍의 생각을 알 리가 없었다. 설혹 알았다 해도,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커크에게 '함장'의 자리가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스팍이 이해할 수 없듯이.
'함장'이라는 자리는 커크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세상에 자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였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였다. 이 너른 우주에서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 엔터프라이즈의 의자, 그 자리 말이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말은 커크에게 '너는 더이상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혹은 '너는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자격이 없어'라든지.
동시에 자신이 '함장'이라는 것은 임시 함장으로써 800명의 생명을 구한 아버지 조지 커크와의 연결점이었고 아버지 대신 자신을 지지하고 믿어주었던 크리스토퍼 파이크 함장과의 연결점이었다. 더이상 세상에 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커크는 우주가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함장의 자리는 놓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함장으로써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이 커크가 생각하는 '함장'이었다.
커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스팍이 일어났다. 칸의 혈청으로 인한 부작용일까. 스팍은 대처 방법을 떠올렸다. 커크를 다시 자기 손으로 기절시키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했다. 커크가 정말 칸과 같은 힘을 가지게 되었다면,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스팍이 급히 물었다.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커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함장으로써의 자격을 의심받았다. 그것도 스팍에게. 그에게서 또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두려웠다.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힘이 또 무언가를 부수고, 스팍의 생각에 확신을 심어줄까 두려웠다. 커크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함장이야. 함장이라고... 함장이어야만 해.
"괜...찮아."
"닥터 맥코이를 부를까요?"
"괜찮다니까!!"
커크가 소리를 질렀다. 아차 싶었다. 미리 컵에서 손을 뗀 탓에 아무것도 부수지는 않았지만,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가는 스팍에게 함장의 자격이 없네 통제권을 빼앗겠네 그런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커크는 급히 덧붙였다.
"진짜, 괜찮아. 헤이, 이것봐. 괜찮아 보이지?"
간신히 손을 내리고 활짝 웃어보였다. 스팍은 의뭉스럽게 그런 커크를 바라보았다.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반대되는 행동을 종종 보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커크는 특히 심했다. 닥터 맥코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솔직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인간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오해와 반목, 싸움이 있었는지 알고도 그러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징이겠지. 스팍은 커크에게 긍정하는 대신 무정하게 대답했다.
"벌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상태는 불안정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휴식을 추천합니다."
커크의 웃음이 멈췄다. 심장이 날카로운 것으로 베여나간 것처럼 아팠다. 제발.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제발. 커크는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둘 모두 스팍에게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치겠지. 커크는 이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난 괜찮다니까......."
제발, 믿어줘. 믿을 수 없겠지만, 제발 좀! 커크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억지로 웃었다. 온 힘을 다해서.
"충분히 쉬었어, 스팍. 맞다. 우리 3D 체스나 할까? 예전에는 많이 했잖아?"
"마무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스팍......."
커크가 거진 울상을 지으며 스팍을 불렀다. 그 부름에 스팍은 흠칫 놀랐다. 그의 힘없는 목소리가 또다시 그 장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이건 비논리적이야. 스팍은 눈썹을 세웠다. 더 이상 커크와 한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부른 의도는 명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라는 것이겠지. 그래서 스타플릿의 검열을 피하고, 자신의 상태를 숨긴 채 임무를 수행하려는 목적일 터였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처럼 울며 매달릴 수도 있겠지. 내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어. 스팍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한다면 더욱더 커크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입증하는 꼴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스팍 본인에게도 과히 좋지 않은 기분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칸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보고서는 직접 결재해 올리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팍 또한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쿼터를 나왔다. 커크는 문이 닫히자마자 입을 부여잡았다. 뜨거운 것이 속에서 치솟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의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만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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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맥코이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나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함장 제임스 커크에게 모욕을 준 일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졌으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죽일 수조차 없었다. 자신을 죽이면 그들의 함장도 죽는다. 세상에 이런 농담이 어디 있지? 칸은 마음껏 조소했다.
"팔."
순순히 팔을 내밀자 맥코이는 그의 팔에 바늘을 꽂았다. 이전과 다르게 큰 원형의 통과 연결되어 있었다. 피를 비축해둘 셈인가 보군. 그 의미는 여전히 제임스 커크의 알레르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겠지. 칸이 말을 건넸다.
"날 죽이고 싶나?"
"닥쳐."
정말로 죽이고 싶겠지. 제임스 커크뿐만 아니라 칸 자신에게 죽임당한 많은 사람들의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칸은 정말로 즐거웠다.
"그럼 죽여."
"엿같은 새끼."
"아. 못 하겠군. 그랬다간 짐이 죽지."
맥코이가 폭발했다. 그가 구금실의 칸을 향해 소리를 쳤다.
"개새끼야, 감히 짐이라고 부르지 마!!"
즉시 칸이 손을 벌려 다가온 맥코이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맥코이가 그의 팔을 떼어내려 발버둥쳤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칸의 손아귀 힘이 점점 강해졌다.
"컥...!!"
구금실이 있는 덱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맥코이뿐이었기에 도움을 요청할 보안 요원들도 주변에 없었다. 손에서 PADD와 통신기 모두 놓친 바람에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다. 맥코이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개자...식......."
"네 함장을 데려와. 요구사항이 있다."
"미...쳤......."
구금실 뒤편에서 붉은 불빛이 번쩍였다. 다행스럽게도 구금실을 감시하던 엔지니어부에서 그 광경을 보고 보안 요원들을 급파한 것이었다. 그들이 문 앞에 나타난 것을 보자 칸은 그대로 손을 놓았다. 바닥에 떨어진 맥코이가 기침을 토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켈록! 하아, 미친 놈... 하아..."
"다음에 그를 데려오지 않으면, 닥터, 부러진 목뼈를 스스로 맞춰야 할 거야."
용건은 끝이라는 듯 칸이 몸을 돌렸다. 보안 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맥코이가 일어섰다. 그는 세 번째 손가락을 높이 세우며 그의 피가 담긴 통을 들었다. 이걸로 한 달 동안 여기 내려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보안 요원들과 와야겠지만.
맥코이는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커크를 칸에게 데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는 보안 요원들과 엔지니어부에게서 오늘 일은 못 본 것으로 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또한 최대한 빨리 목의 자국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부 덱으로 걸음을 옮겼다. 리제너레이터 한 방이면 끝이었다. 한 방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