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SF(스타트렉 리부트)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R(15세)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스릴 주의, 앵슷 주의, 유혈 주의
한마디: 스팍이 고민하는 사이 본즈랑 칸이랑 커크랑 쿵짝쿵짝할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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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프라이즈 생활은 어때? 아늑하지?"
연구실에 들어선 제임스 커크가 칸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칸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듯 한껏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커크의 시선은 연구실 끝에 가 닿았다. 칸이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수갑을 늘어뜨리고 있던 칸은 물끄러미 그런 커크를 돌아보았다. 유령과 같은 얼굴에 떠오른 짙은 녹색 눈동자, 그 안에는 심연만이 가득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블랙홀이었다. 그는 짧게 대답하며 일어섰다.
"덕분에."
뒤따라 들어온 맥코이가 다시 문의 보안 장치를 걸었다. 연구실 중앙에는 의자와 링겔 걸이, 이동용 선반 등이 늘어서 있었다. 마치 고문을 위해 마련된 전기의자 같다는 생각을 하며, 커크가 한 걸음을 내딛었다.
"허튼 짓은 생각않는 게 좋을 거야. 밖에 보안 요원들이 줄을 서 있거든."
커크의 허세에도 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의자를 가리키며 짧게 말했다.
"앉아."
빌어먹을. 사형대에 앉는 기분이군. 커크는 목이 졸리는 기분을 느끼며 결국 그의 말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칸이 옆에서 시험관을 꺼내는 사이 맥코이가 다가와 그에게 트라이코더를 들이밀었다. 커크는 이에 눈살을 찌푸렸다.
"본즈. 치워."
"널 위한 거야(For you). 계속 체크해야 돼."
그때 칸이 커크의 팔에 링겔 바늘을 꽂아넣었다. 칸의 손이 닿자 커크는 조그맣게 움찔거렸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그대로 몸을 돌린 칸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이 지금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칸이 안다면,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발톱을 드러내리라.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커크가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잠깐 몸을 돌린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방에서 기록을 위한 PADD를 꺼내고 있었다. 그 순간 칸의 낮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두렵나?"
깜짝 놀란 커크가 팔걸이를 세게 부여잡았다.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지만, 눈에 띄게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커크는 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칸은 용액 샘플을 주사기에 주입하는 중이었다. 착각인가? 혹은 칸이 자신을 놀리는 것인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커크는 이를 악물었다.
다가온 맥코이가 다시 트라이코더를 들이밀었다. 커크는 진정하려고 노력했으나 한 번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난 괜찮다. 난 아무렇지 않다. 난 두렵지 않다....
그때 삐빗, 소리가 났다. 맥코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트라이코더를 살펴보았고 칸이 이를 설명하듯 툭 말을 내뱉었다.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분비가 급증하는군."
"본즈, 꺼!"
"갑자기 왜 이러지?"
"그거 끄라고!"
커크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트라이코더 개새끼! 칸은 거기에 또 설명을 덧붙였다.
"심박수 112. 흥분 상태야."
"설마, 짐?"
급기야 커크는 맥코이에게서 트라이코더를 빼앗아 전원을 꺼버렸다. 맥코이와 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커크는 불편한 침묵 속에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결국 지쳤다는 듯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자신이 그토록 숨기려고 했던, 자신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들키고 말았다. 이제 칸의 손아귀에서 또 놀아나겠지. 내가 아직 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테니까. 커크는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짐."
맥코이가 그답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커크를 불렀다. 커크는 가만히 눈을 떴다. 맥코이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맺힌 걱정이 여실히 보였다. 커크는 그런 눈동자를 보는 것 또한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픈 마음이 절절히 전해져왔기 때문에. 커크는 다시 눈을 감았다. 맥코이가 작게 속삭여왔다.
"괜찮아? 필요한 게 있으면 내게 말해(What can I do for you)."
"진정제."
내가 저놈을 보지 못하고 저놈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순간에서 벗어나게 해줘. 본즈.
"짐. 진정제는 주겠지만....... 일단 저게 널 확실히 치료할 거라는 보장은 없어. 알지?"
"상관없어. 빨리."
"네가 일어났을 때 최대한 빨리 결과를 볼 수 있도록 할게."
커크는 눈을 감은 채 힘없이 손짓했다. 어서, 어서.
결국 맥코이는 커크에게 진정제를 투약했다. 그의 거칠던 호흡이 점점 고르게 변했다. 커크는 금세 의식을 잃고 축 늘어졌다. 맥코이는 그가 앞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의자를 기울여 커크의 몸을 고정했다.
"....... 한숨 자."
맥코이는 긴 숨을 토해내고 몸을 돌렸다. 칸이 무정하게 그런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났다.
"이런 게 즐겁겠지? 네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을 보는 게. 이 악마같은 자식아."
"닥터.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사실 이런 건 즐거운 축에도 들지 않아."
칸이 맑은 핏빛 용액이 담긴 주사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링겔 용액에 주입하려 했다. 맥코이가 그의 수갑을 붙잡아 그 움직임을 막았다. 칸의 무감정한 시선과 맥코이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부딪쳤다.
"그게 짐을 잘못되게 한다면 톡톡히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아-, 닥터. 짐은 분명 나을거야. 장담하지. 그는 강하거든."
그래서 더 무너뜨리는 재미가 있지. 칸은 조소하며 그의 링겔에 붉은 용액을 투입했다. 투명한 물에 잉크가 퍼지듯, 붉은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 색은 마치 순수한 피처럼 붉었다. 온전히 붉게 변한 용액은 이윽고 관을 따라 서서히 커크의 팔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맥코이는 숨을 죽이고 연신 트라이코더를 들여다보았다. 칸은 조용히 커크를 주시했다.
그의 시야 끝에 걸린 커크는 의식없이 늘어져 있었다.
-
스팍은 여전히 눈썹을 세운 채 사렉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우리의 많은 형제와 자매들을 상실한 이후, 생존한 벌칸들도 본드와 링크의 강제 단절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동의합니다. 제게 남아있던 미약한 링크 또한 다수 사라졌습니다."
"그렇다. 더불어 장기간 본딩하지 않았던 네 상태에 나는 우려를 표했었다. 네가 '사랑'이라는 감정과 '본드'를 착각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렉의 말에 스팍이 고개를 삐뚜름히 기울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제 의사를 번복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본딩된 이종의 상대와 함께 업무에 임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드를 끊어내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사렉이 눈썹을 세웠다.
"아들이여. 그것 또한 논리적인 판단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굉장히 감정적이며 비논리적인 인간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도 하나, 제 개인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명확합니다."
"본딩된 상태를 감정으로 착각할 정도라면, 그 착각에도 역시 타당한 이유가 있을 터. 추론 과정에서 빠뜨린 것은 없는가?"
스팍은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본딩된 이후의 자기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본래의 자신과 너무 달랐다. 그것이 '본드' 때문이든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이든 어쨌든,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팍은 그런 것이 불편했다.
커크 또한 그런 자신을 거절하지 않았는가. 그는 분명 자신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부담스럽게 여긴다면 차라리 본딩되기 전의 상태가 더 나았다. 스팍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빠뜨린 변수는 없습니다."
"스팍."
"말씀하십시오."
"너는 그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렉의 말은 스팍의 마음 속에 숨어있던 불씨에 불을 피웠다. 벌칸에게 두려움이라니! 동시에 깊숙한 의표를 찔린 기분이었다. 스팍은 방어적으로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근거없는 추론은 삼가주십시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이만 통신을 종료하겠습니다."
"스팍. 그렇다면 스스로 대답하라. 왜 그와 마인드멜드를 했는가? 왜 그와 관계를 했는가? 서로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면, 어째서 네 주관대로 본드를 끊으려 하는가?"
스팍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렉은 그것 보라는 듯 그를 빤히 보며 인사를 건넸다.
"통신을 종료하겠다. 장수와 번영을."
-
커크는 눈을 번쩍 떴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은 것은 자신에게 진정제를 주겠다던 맥코이의 목소리였다. 자신은 여전히 칸의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덜컥 불안해진 커크는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본즈! 레너드 맥코이! 어디 있어? 본즈!! 장난치지 말고 나와!"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의자 뒤로 넘어간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게 뭐야...!"
커크는 그제야 자신의 손목에 구속구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칸이 하고 있던 그것이었다. 커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게 뭐 빌어먹을...?!"
"'본즈'? 닥터를 부르는 건가?"
공포가 번개처럼 커크의 등줄기를 훑어내렸다. 자신의 등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칸의 목소리가 그렇게 섬짓하게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커크는 덜덜 떨리는 이를 악물며 간신히 말했다. 보이지 않으니 두려움이 더했다.
"본즈 어딨어."
"그 떽떽거리는 닥터라면 급한 환자를 돌보러 갔지."
본즈가 날 두고 갔을 리 없어. 커크는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 급한 환자라면, 갈 수도 있겠지... 목숨이 달렸다든가. 본즈는 대단하신 의사니까. 커크는 걱정을 덜어내려 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그 순간 뒤에서 다가온 칸의 손이 커크의 목을 감쌌다. 깜짝 놀란 커크는 헉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칸은 점점 팔을 뻗어 커크를 뒤에서 안았다. 낯익고 불쾌한 그 느낌에 커크는 미칠 것 같았다. 그의 입김이 뒤통수에서 느껴질 때쯤 긴장은 극도에 달했다. 그리고 마침내 칸의 입술이 커크의 귀와 부딪혔다. 그는 엄청난 비밀이라도 말해주듯이 낮게 속삭였다.
"자기 목뼈를 스스로 맞춰야 했거든."
"!! 칸...!!"
커크가 얼굴을 구기며 몸부림쳤다. 칸은 그대로 의자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의자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던 커크는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뚜벅뚜벅 걸어온 칸은 그대로 커크의 팔을 밟았다.
그가 비명소리를 내지 않자, 칸은 그의 팔을 더 세게 짓밟았다. 커크는 잇가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았다. 대신 띄엄띄엄 욕설을 내뱉었다.
"죽여...버릴 거야.... 개자식."
칸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를 의자에서 빼내어 바닥에 쓰러뜨렸다. 뒤통수가 얼얼했지만 커크는 칸을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칸은 그의 위에 올라탄 채 한 손으로는 그의 수갑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커크의 뺨을 어루만졌다.
"나쁜 소식 하나에 좋은 소식 하나. 짐. 마음껏 기뻐해도 좋아. 네 병이 나았더군."
"닥쳐."
"무슨 의미인지 아직도 모르겠나?"
칸이 그대로 손톱을 세워 그의 턱과 목을 긁어내렸다. 붉은 피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지만 회복되는 기미는 없었다. 커크는 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미약하게 신음했다. 그제야 모든 것이 피부에 확 와 닿았다.
"다시 내가 널 인질로 가졌다는 의미야."
"그냥 날 죽여......."
"그건 안돼."
칸이 다시 커크의 얼굴을 쓸었다. 그의 입술에, 눈가에, 볼에 붉은 길이 생겼다. 눈물로도 그것을 지우진 못했다.
"네 목숨을 걸고 다시 엔터프라이즈와 게임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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