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SF(스타트렉 리부트)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R(15세)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야동(?) 주의
한마디: 일주일에 한 편 쓴다더니... 나 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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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은 다시 한 번 시계를 보았다. 1100. 디지털 시계의 화면이 무정하게 빛났다. 시프트 시간 동안 잡생각을 떨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스로와 약속한 그 시간이 끝나자마자 스위치를 켠 듯 다시 커크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그는 왜 정시에 브릿지에 나오지 않는 거지? 긴 탐사로 인해 피로한가? 그의 평소 수면 습관과 시간, 탐사의 고된 정도를 고려했을 때 그가 아직 수면상태일 가능성은 56.3%였다. 임무를 수행하도록 쿼터에 있을 그를 깨워야 한다.
1101. 스팍은 커뮤니케이터를 집어들었다. 동시에 터보 리프트의 문이 열리며 커크가 어슬렁 어슬렁 들어왔다.
"함장님."
스팍이 벌떡 일어서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커크는 눈을 비비며 함장석에 몸을 날렸다. 팔걸이에 반쯤 기댄 채로 커크가 전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별일 없었지?"
"예. 탐사 보고서는 오전 중에 스타플릿에 제출했습니다."
"좋아, 좋아."
커크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끄으으하아아암, 하고 무방비하게 입을 벌리는 모습에 스팍은 순간 그 입을 가려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예의없고 품위없는 행동은 여전히 거슬렸다. 함장이라면, 브릿지에 있는 크루를 고려해서 그런 행동은 자제해 주었으면. 스팍은 입을 여는 대신 눈썹을 꿈틀였다.
그런 스팍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커크는 자신의 옆에 선 스팍을 장난스럽게 올려다보았다.
"계속 나 보고 있을 거야?"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좋아?"
"......."
스팍은 대답없이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의 진담과 농담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그의 두 번째 질문에 스스럼없이 '예'라고 대답할 뻔한 자신을 다스리며 그는 자리에 앉았다. 푸른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는 그의 귀로 커크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히카루, 지난번에 채집한 식물들은 어때? 잘 커?"
"물론이죠. 성장이 안정 궤도에 접어들면 영양촉진제를 주입할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엔터프라이즈에서 싱싱한 유기농 과일이 태어난단 얘기지! 야호!"
커크는 아이처럼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했다. 술루는 작게 웃었고, 옆에 있던 체코프가 끼어들었다.
"미숫또 술루, 그고 저도 주시묜 안됨니까?"
술루가 흔쾌히 대답하려는 찰나 커크가 정색했다. 손가락까지 까딱이는 폼이 제법이었다.
"안돼, 안돼. 파벨. 엔터프라이즈 내의 모든 생산물은 함장님에게 귀속된다는 규칙 몰라?"
커크의 말에 체코프와 술루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체코프는 벙찐 채였고 술루는 난처한 얼굴로 커크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반쯤 미소가 섞여 있었다. 이미 커크의 농담을 알아차린 표정이었다.
"구론 거 처음 듣는데요...!"
"함장님. 저도 처음 듣는데요."
"당연하지. 방금 내가 만들었으니까."
체코프가 러시아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내뱉었다. '또야! 또 속았어!' 같은 느낌이어서 커크는 킬킬 웃었다. 그러면서도 짐짓 얼굴을 굳혀 겁을 주는 커크였다.
"파벨 체코프. 방금 그거 욕이지? 상관에 대한 모욕은 군령 아무개 호에 의거하여 너를 군법회의에-."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벌칸의 예민한 청력은 수많은 정보를 잡아낼 수 있었다. 스팍은 모니터에 집중하며 브릿지의 광경을 머릿속에 그렸다. 잔뜩 울상이 되어 키보드를 두들기는 체코프와 난처하게 웃는 술루, 눈가를 휘면서 소리없이 웃는 우후라까지, 자신의 눈으로 보듯 선명하게 보였다.
평화로웠다.
-
식사를 위해 내려가던 길이었다. 커크와 스팍은 하얀 복도를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탐사지까지 한참 남았는데 진짜 아무 계획 없어?"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명상으로 충분합니다."
"재미없긴."
커크는 잠시 입을 삐죽였지만, 다시 이것저것 사소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스팍은 복도 끝에서 무언가를 감지하고 조용히 걸음을 멈췄다. 커크는 혼자 떠들며 몇 걸음 걸어가더니 나중에야 그를 돌아보았다.
"밥 먹고 온실에 가보려고 하는데-. 어. 왜?"
"거슬리는 게 있군요."
스팍이 청력을 돋우자 거친 호흡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곧 두 사람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탕비실에서 크루 둘이 몰래 사랑이라도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프트 중이 아니라면 그런 그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함내 연애를 금지하는 규정은 존재하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특히나 5년의 탐사 임무 동안 연애를 일절 금지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 불보듯 뻔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팍은 금방 커크의 옆에 다가갔다. 커크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한테 아무것도 아닌 게 어딨어?"
"불분명한 소리를 들었는데, 자세히 들으니 평범한 소리라고 판단되었습니다."
"무슨 평범한 소리?"
커크는 집요하게도 물어왔다. 스팍은 대답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걸었다. 커크는 잠깐 한 곳을 노려보더니 바로 스팍을 따라잡았다. 그는 스팍의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너 돌직구가 특기잖아. 갑자기 왜 그래?"
"제 발화 방식이 직설적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모든 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행위 중인 남녀의 소리를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인간의 예의에 위배되는 행위일 텐데요. 스팍은 눈을 깜빡였다. 이럴 때는 벌칸끼리의 의사소통이 그리워지곤 했다. 인간보다 세 배나 뛰어난 정신 감응 능력은 얼마나 효율적인가.
"애들이 섹스라도 하고 있든?"
커크가 피식 웃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 또한 알아챈 모양이었다. 스팍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그러니까- 그들 사이에 있었던, 그 이후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그 일이 연상되었다. 입을 다문 두 남자 사이에서 다소 복잡하고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일을 정리할 필요도 먼지를 털어낼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탓이다.
스팍은 그것이 예외적인 현상이라 여겼다: 연인 간의 섹스가 아니므로. 하지만 커크가 원한다면 자신은 거절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가 무엇을 원하든지 말이다. 자신은 커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요구하는 것이 단순히 성관계 뿐이라 해도 따를 의향이 있었다.
커크는 그것이 충동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극도의 트라우마적 상황에 있었던 자신이 스팍을 몰아붙였고, 그에게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성관계를 강요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가 용서했다 해도 자신이 미안한 것은 미안한 거였다. 그러니 그런 일은 다시 발생하면 안 된다. 커크는 다짐했었다.
"구경하러 가야지~."
스팍은 커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그를 붙잡았다. 그에게 어깨를 잡힌 커크가 그를 빤히 보았다.
"무슨 말씀입니까? 구경이라뇨?"
"보러 간다고. 재밌잖아."
스팍은 순간 진심으로 커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재미? 하는 게 아니라? 보는 게? 그걸? 어째서? 왜?
"너도 같이 볼래? 가자."
커크가 키들거리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스팍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커크에게 끌려온 스팍은 주변을 살폈다. 엔터프라이즈 내부를 모니터링하는 모니터실이었다. 모니터실을 지키던 크루를 내보낸 커크가 몇 번 컴퓨터를 조작하더니 이내 그들을 찾아냈다. 그는 악동처럼 킬킬대며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의무부의 니나랑 기술부의 브라이언이야. 신흥 커플 탄생이네!"
커크가 박수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스팍은 커크처럼 웃을 수 없었다.
"크루들의 사생활을 이렇게 몰래 지켜보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닙니다. 함장님."
"좀 봐줘라. 실황 포르노는 아카데미 이후로 오랜만인데."
"함장님. 사생활 보호는 자유 헌장의 두 번째 권리이자 의무로 중요한 것이며......."
스팍이 길게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커크는 들은 척도 않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았다. 어찌나 집중하는지 스팍마저 결국은 입을 다물고 말았을 정도였다. 스팍은 언제고 의무부의 니나라는 크루와 기술부의 브라이언이라는 크루를 만난다면 그들에게 성행위는 개인 쿼터에서 하라는 권고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팍이 모니터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커크를 보았다. 그는 손을 꽉 쥔 채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인간들의 관계 장면을 시청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흥분이 되는가- 싶어서 스팍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벌칸에게는 7년마다 돌아오는 폰 파라는 특이한 기간이 있어서 대개 그 시기에 정해진 상대방(보통은 약혼자)과 관계를 하곤 했다. 물론 폰 파, 일명 짝짓기철이 아니어도 관계는 가능했지만, 그 시기가 아니고서는 감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벌칸은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스팍은 말없이 커크를 주시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계속해서 모니터의 빛이 일렁였고, 그가 침을 삼킬 때마다 목울대가 느지막히 움직였다. 모니터 화면보다 그런 커크의 부분 부분이 더 신경이 쓰였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다. 스팍은 이것 또한 이전에 경험한 적 없었던 감정의 새로운 효과겠거니 판단했다. 커크가 그들을 보는 것마냥 스팍은 커크를 주시했다. 그의 표정과 신체 하나 하나 시야에 가득 담고 싶었다.
"아......"
이윽고 커크가 진득하게 탄식을 뱉었다. 끝난 모양이었다. 스팍은 시계를 보며 지금이라도 서두른다면 식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일어서서 커크 또한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먼저 가."
하지만 커크는 그의 기대와 달리 고개를 저었다. 스팍은 다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커크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시프트가 늦은 시각까지 있습니다. 식사하지 않는다면 건강에 지장이 있을 겁니다."
"이걸 봤더니 배가 하나도 안 고프네? 너 혼자 가."
"함장님."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팍은 인간 남성의 생리적인 현상에 대해 잠시 떠올렸고, 정상적으로 흥분했을 때의 증상과 현재 커크의 반응을 비교했을 때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팍이 재차 입을 열었다.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응."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분명한 거짓을 말하는 커크를 보자,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을 돌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스팍은 힘주어 뒷짐지고 재차 물었다.
"그럼 일어나 보십시오."
"...나 놀리는 거야? 그런 건 언제 배웠냐."
장난스레 말하긴 했지만 커크는 사실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3주 전처럼 그를 유혹할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그때 그것으로 충분했다. 스팍은 자신을 거절하지 않았고 그게 그의 우정의 증표였다. 자신도 멀쩡하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했다. 지금까지 잘 해왔듯이, 이제 와서 그를 걱정시킬 수는 없었다.
"빨리 가라니까."
혼자 해결하게. 빨리 가. 이 고블린 자식아! 평소에는 잘만 가더니!! 커크는 속으로 끓이며 외쳤다.
"짐."
스팍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단어 선택에 커크는 흠칫 떨었다. 그의 목소리를 더 듣는다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건 곤란했다. 자신이 또 스팍의 손을 갈구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를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저와 당신 사이에 마무리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스팍이 성큼 다가섰다.
그 인기척에 놀라 커크가 벌떡 일어났다. 뒤돌아선 채. 급속도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무리하지 못한' 이야기라는 게 무엇일까. 나를 원망하는 걸까? 내 책임을 묻는 걸까? 커크는 그가 뭐라고 이야기하든 이성적으로 스팍에게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 이야기는 묻어두고 없었던 일 셈 치고 싶었다.
"나, 난 다 끝난 것 같은데?"
커크가 스팍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스팍이 그를 붙잡았다.
"3주 전에 있었던 일 말입니다."
스팍의 말이 들리자마자 커크가 그의 팔을 뿌리쳤다. 그 명백한 거절에 스팍은 다시 그를 붙잡지 못했다.
"나중에 얘기해."
커크가 그대로 달려나갔다. 스팍은 내민 손을 거두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커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모니터 한 쪽에 시선이 갔다. 빨간 테두리에 Lab이라 표시된 카메라였다. 다른 채널과 바꿀 수 없게 되어있는 특별 감시 모니터였다.
칸. 칸이 거기에 있었다.
스팍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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