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SF(스타트렉 리부트)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R(15세)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스릴 주의
한마디: 난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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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가 브릿지에 도착했을 때, 스팍은 평소처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커크는 아무렇지않게 그를 한 번 봐준 후 함장석에 털썩 앉아 그동안의 보고를 받았다. 스타플릿으로부터의 별다른 지시는 없었다. 두 남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를 대했다.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이유에서 그런 것에 능했다: 스팍은 커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커크는 스팍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루하다시피 긴 항해가 이어졌다. 체코프가 하품을 하다가 PADD를 떨어뜨려 큰 소리가 난 것이 유일한 소란이었다. 그는 서둘러 PADD를 줍고 술루의 눈치를 살폈다. 술루는 운항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거기에 당연히 뒤따라야 할 커크의 놀림이 없자, 넌지시 뒤를 본 체코프는 눈을 크게 떴다.
커크가 턱을 괸 채 졸고 있었다.
체코프는 술루를 찔렀다. 그리고 눈짓으로 커크를 가리켰다. 술루는 그를 보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많이 피곤하신가봐.
술루의 입모양에 체코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커크는 이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었다. 또 자신을 희생해 크루들의 목숨과 지구를 구한 영웅이었고,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친우였다. 더욱이 칸 등의 일로 고생하면서도 자기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엔터프라이즈 내에서 이 제임스 커크를 친애하고 아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정작 커크 본인은 그것을 잘 몰랐지만.
"좀 이쓰묜 교대인데요. 깨워드료야 하지 않으까요?"
체코프가 속삭였다. 이에 술루가 그를 부를까 말까 망설이던 사이 스팍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히익."
체코프가 자세를 바로했다. 술루 또한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함장님은 걱정할 필요 없겠어."
"네에."
체코프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스팍이 커크 곁에 든든하게 서 있었다.
함장님. 함장님. 몇 번의 부름에 커크가 곧 눈썹을 찡그렸다. 괴로운 표정이었다.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스팍은 그런 커크에게 손을 뻗는 대신 좀더 높은 톤으로 그를 불렀다.
"함장님?"
"아."
번쩍 눈을 뜬 커크가 주변을 확인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를 짚은 그에게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잠깐 잤네.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휴식을 권고합니다. 함장님. 그리고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셔야 합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커크는 손을 저으며 일어났다. 스팍도 교대 시간이라 그를 따라 터보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커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쿼터로 갈 거지?"
스팍이 긍정하자 커크는 선심쓰듯 그의 쿼터가 있는 층의 버튼을 눌러주었다. 약 30초 동안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서로 앞으로 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커크는 스팍 몰래 메디컬 베이에 가려 했고, 스팍은 중요한 일 때문에 뉴벌칸에 연락을 하려 했다. 상대방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었다.
곧 문이 열리고 스팍이 내렸지만, 커크는 내리지 않았다.
"난 식당 들렀다 갈거야."
스팍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커크가 말을 던졌다. 그리고 문을 닫아버렸다. 스팍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의 머릿속에서 질문거리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쿼터에 들어선 스팍은 PADD를 조작했고 뉴벌칸과 통신이 연결되었다. 잠깐의 연결음 후에 모니터 너머에 나타난 것은 또다른 벌칸, 사렉이었다.
"아버지."
"스팍."
-
"바로 왔어? 안 피곤해?"
커크가 메디컬 베이에 들어서자 맥코이가 달려나왔다.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 나 때문에 주름만 늘었네. 너도 얼른 편해져야 할 텐데. 커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안 피곤해. 빨리 처리하자. 그놈의 임상실험인지 뭔지."
"하기 전에 몇 가지 점검 좀 할 거야. 스팍은? 오고 있어?"
맥코이의 질문에 커크가 못 들은 척 목을 긁었다. 아, 실험 끝나면 샤워해야겠다. 어쩐지 덥네. 누가 봐도 대답을 회피하는 그 모습에 맥코이가 커크의 어깨를 잡았다.
"짐 커크. 임마. 스팍한테 말했어, 안했어?"
"말하는 거 까먹었어. 그런데 말했어도 안왔을걸."
"이 머저리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하려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커크를 본 맥코이는 결국 그의 등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커크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 주제에 얼굴을 찡그리며 화내는 시늉을 했다. 하여간 말 안 듣는데도 탁월한 함장이었다. 맥코이가 혀를 찼다. 그리고 그에 대한 커크의 답변은 더 가관이었다.
"'무슨 일 생기면'? 스팍이 내 대신 함선을 이끌어야지."
"안돼. 못 들어가. 너희 둘 다 시프트 없을 때로 다시 시간 잡아."
기가 차서 맥코이는 아예 PADD를 집어넣어 버렸다. 그리고 준비해두었던 하이포와 약품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커크는 눈을 크게 뜨고 맥코이에게 매달렸다. 낮에 있던 일만 해도 쪽팔려 죽겠는데, 다시 스팍을 부른다고? 칸이 내게 어떻게 모욕을 주고 창피하게 만들지 감도 안 오는데? 죽어도 스팍은 안돼!
"아, 네가 있잖아. 본즈. 그놈이 설치면 수퍼 하이퍼 울트라 짱짱쎈 하이포로 엿먹여버려."
"여전히 촌스러운 아이오와식 표현이구나. 좀 커라, 꼬맹아(Grow up, kiddo). 안돼. 안된다고. 스팍 불러."
"아... 본즈. 진짜. 스팍한테 그런 모습 보여주기 싫어."
커크가 우거지상을 했다. 반쯤은 본심이었다. 심지어 스팍은 칸이 자신을 범하는 그 순간 그 자리에도 함께 있었다. 아무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지만, 커크 본인은 그것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아마도, 평생.
"뭐?"
"내 말은, 환자 취급 당하기 싫다고. 얼른 멀쩡하게 나아서 짜잔(Ta-da)하고 나타날거야."
맥코이의 얼굴이 슬슬 풀리자, 이때라는 듯 커크가 구차하게 덧붙였다. 결국 언제나처럼 맥코이는 커크에게 졌다.
"...지금 상태부터 점검할 거야. 솔직히 대답해. 요즘 몸 상태에 변화는 없어?"
"아무것도. 멀쩡해."
"수면 문제는?"
"꿈도 안 꾸고 잘 자."
"식사는?"
"제시간에 꼬박꼬박. 엄마. 이제 가봐도 돼요?"
어깨를 으쓱 들어올린 그는 몸을 돌렸다. 맥코이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안돼. 마지막으로, 성 문제는?"
"트라우마로 내가 발기부전이라도 될까봐 걱정해주는 거야? 친절한 의사선생님이네. 문제 없어. 아까도-."
"됐다 됐어. 그럼 가자."
맥코이가 하이포와 PADD를 가방에 넣었다. 칸의 연구실은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보안이 이중 삼중으로 걸려 있는 그의 연구실 문 앞에서, 커크는 심호흡을 하며 침을 삼켰다. 벌써부터 목이 탔다. 그런 그를 맥코이가 걱정어린 눈으로 보았다. 그는 손을 뻗어 커크의 등을 가만히 두들겨 주었다. 커크가 움찔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진짜 괜찮지?"
"진짜 괜찮아."
CMO의 권한으로 맥코이가 연구실 잠금을 해제했다. 잠금 장치의 붉은 빛이 푸른 빛으로 바뀌었고,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커크는 두 눈에 힘을 주었다. 그가 맞서 싸울 상대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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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확인하겠다. '사랑'에 대해서 말인가?"
"긍정합니다(Positive). 당신께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숙련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 경험 또한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사료되기에 조언을 청합니다."
"스팍. 지금 네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교제 상대가 아닌 진정한 상대를 지칭한다. 내 추론이 맞는가?"
아버지와 아들, 사렉과 스팍. 두 벌칸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대화는 급속도로 무게를 더해갔다.
"긍정합니다. 논리적인 과정을 거쳐 나온 결론입니다."
"내게서 어떤 조언을 원하는가. 아들이여."
스팍이 뒷짐을 진 채 목을 꼿꼿이 세웠다.
"상대로부터 저의 상태와 동일한 '사랑'을 획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렉이 벌칸 특유의 날선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문했다.
"'사랑'을 '획득'한다고 말했는가?"
"예."
"'네 상태와 동일한'?"
"예."
스팍의 흔들림 없는 태도에 사렉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스팍. 몇 가지를 더 확실히 할 필요성이 있다. 네가 말하는 상대란 인간인가?"
"긍정합니다."
"그녀를 시각적으로 볼 때 '사랑'의 감정이 발생하는가?"
스팍이 그의 말을 정정했다.
"'그'입니다."
"음."
사렉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틈을 타 스팍이 덧붙였다.
"시각적으로 볼 때뿐 아니라 목소리를 들어도 그의 모습이 뇌내에서 재현되고, 그의 부재시에도 제 신체상의 문제가 아닌 심리적인 통증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의 증상이 아닙니까?"
"스팍."
"예."
"그와 멜드했는가?"
"긍정합니다."
갑자기 마인드멜드라니? 잠깐 의아한 표정을 떠올리며 스팍이 대답했다. 사렉은 깊은 한숨을 내쉬듯 한 단어를 내뱉었다.
"'본딩' 가능성을 계산해보기 바란다."
급작스레 찬물을 맞은듯 스팍의 눈썹 끝이 올라갔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제대로 해석되었다.
'잔뜩 울상이 되어 키보드를 두들기는 체코프와 난처하게 웃는 술루, 눈가를 휘면서 소리없이 웃는 우후라까지, 자신의 눈으로 보듯 선명하게 보였다.'
ㅡ스팍이 본 것은 커크의 시선이었다.
'그는 현재 욕구를 충족하고 싶지만, 어떠한 이유에선가 그것을 스스로 제어하고 있었다. 스팍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커크의 턱을 가볍게 밀어올렸다.'
ㅡ스팍은 커크의 욕구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본딩이라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연결로서 시각과 청각 등을 포함한 감각이 일부 공유되는 상태였다. 이것은 벌칸들 간에 주로 맺고 있는 링크에 비해서 더 정도가 강했는데, 바로 이러한 텔레파시적 능력 덕분에 벌칸은 인간들과 달리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데 긴 말이 필요치 않았다. 상대방이 느끼는 것을 본인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었다. 특히 본딩이 된 상대방과는 감정의 양방향적 교류가 일어나므로 필연적으로 커크의 변화무쌍한 감정이 스팍에게도 흘러왔을 터였다. 따라서 3주간 경험했던 이상 지각과 이성적이지 않았던 자신의 행동이 모두 설명되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커크에게 가졌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본딩' 상태에 의한 것이었던가?
스팍의 눈동자에서 미미한 혼란이 일어났다. 사렉은 자신의 아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너와 유아기 본드를 맺었던 T'pring은 사망했고, 이후 너는 교제하던 인간 여성과도 본드를 맺지 않았다. 네 경험과 기간에 비추어 볼 때 성인이 된 이후의 본드는 처음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본딩 당시 멜드가 정신적인 성관계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는가?"
"...긍정합니다."
"아직 육체적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면 완전히 본딩되지 않았을 터. 우려할 필요는 없다."
스팍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진하게 우러나오는 메세지에, 사렉은 결국 그에게서 도출될 대답을 예상하면서도 간결하게 물었다.
"했는가(Di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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