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장면이 많음 -> 한 화에 우겨넣음 -> 전개가 들쭉날쭉; 

퇴고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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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가 처음으로 뭔가를 요구했다. 맥코이는 그 사실에 감동하면서도 그 내용에 전율했다. 커크는 맥코이를 끌어안고 가슴에 볼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안아줘요. 


맥코이는 미약하게 몸을 떨었다.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동상처럼 굳어있는 맥코이의 허벅지를 커크가 천천히 쓸어올렸다. 


내 말 듣고 있어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커크의 말대로 그와 잔다면, 자신과 스팍이 결국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몸은 그를 원했다. 그를 잃었던 시간만큼 더욱더 그를 원했다. 되찾은 그를 안고 싶었다. 어쩌면, 스팍에게 크게 화를 냈던 것도 자신이 가질 수 없던 것을 그가 먼저 가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신뢰의 대가가 섹스라니, 농담이라면 잔인한 농담이었다. 참을 수 없을만큼 가볍고 지독한 장난. 제임스 커크 그 자체였다. 맥코이는 선택을 해야만 했고, 그 선택은 아마 지금까지 해온 것 중에 가장 큰 무게를 가지게 될 터였다. 
슬금슬금 다가오던 커크의 손이 사타구니를 스쳤을 때, 맥코이는 결심을 내렸다. 그는 커크를 밀어내고 벌떡 일어섰다. 

이건 아니야. 

확신보다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말을 되내며, 맥코이가 물러났다. 커크는 미미하게 상처받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가지 마세요. 
잠깐 바람 쐬고 올게. 먼저 자. 알았지? 
가지 마세요. 
금방 올 거야. 걱정말고. 
가지 마세요. 
다녀올게. 

아귀가 맞지않아 삐그덕대는 퍼즐 조각처럼 두 사람의 대화도 기묘한 방식으로 어긋났다. 그것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질주하는 자동차였다. 달리면 달릴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거리가 벌어지기만 하는 무한의 두 직선이었다. 

맥코이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멀리 갈 수도 없었다. 만약 커크가 집을 나간다면 붙잡아야만 했다. 맥코이는 촌스러운 빛을 점점이 뿌리는 가로등에 기대어 이마를 짚었다. 

술이 고팠다. 



맥코이는 날이 밝은 뒤에야 집에 들어갔다. 커크는 보이지 않았지만, 식탁에 차려진 단촐한 아침이 커크가 아직 집 안에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맥코이는 반쯤 안도하고 반쯤 후회했다. 무난해 보이던 관계는 껍질을 벗겨내고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허상이었다. 원점이었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사람들은 여러가지 반응을 보인다. 문제에 덤벼들어 부딪치거나, 문제를 못 본 척 외면하거나, 혹은 문제로부터 도망치거나. 다수의 사람들이 양 극단을 피해 중도를 택한다. 과거를 덮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넓은 길이었고, 쉬운 길이었다. 맥코이 또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침 고마워. 

맥코이가 식사를 마치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문을 반쯤 열어둔 커크의 귀에까지 들리도록. 

다녀올게. 

대답은 없었다. 맥코이는 커크를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그가 혼자 잘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때보다도 더 마음이 무거운 이유를, 맥코이는 부러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미적지근하게, 또는 아슬아슬하게 하루가 지나갔다. 하루, 이틀, 사흘. 커크는 다시 그 일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맥코이 또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커크와 맥코이는 금요일마다 외식을 했고 토요일마다 장을 봤다. 커크는 가구도 많지 않은 집을 매일 깨끗이 청소했다. 빨래와 아침 준비 또한 커크의 몫이었다. 맥코이는 커크가 하는 일에 한 번도 토를 달지 않았다. 서로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게 자신들의 해야 하는 일인 양 굴었다. 

눈 때문에 이발하러 갈 수 없는 커크를 위해 맥코이는 손수 가위를 잡기까지 했다. 제딴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커크의 머리는 들쭉날쭉해졌다. 맥코이는 미안하다고 말했고 커크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맥코이는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커크는 맥코이의 면도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맥코이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은 면도마저 그에게 맡겨버렸다. 커크는 칼을 쓰는 구식 방법 외에는 몰랐고 맥코이는 몇 번이고 칼을 소독한 후에야 사용을 허락했다. 몇 번 면도기의 사용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밤마다 하얀 거품에 젖은 커크의 손이 맥코이의 턱을 매만졌다. 서늘한 칼날이 느긋하게 입가를 노니는 것을 느끼고 있노라면, 맥코이는 그대로 커크의 손에 입을 맞추고 싶어지는 마음을 참아야만 했다. 



오늘은 커크의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맥코이는 병원에서 그것을 혼자 볼 생각이었다. 


오후 7시. 맥코이는 일을 마무리하고 검사결과를 가져온다는 사람을 기다렸다. 정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죠. 

맥코이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모니터에 못박혀 있었다. 화면 속의 커크는 침실을 정돈하고 있었고, 맥코이는 그런 커크를 지켜보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때문에 들어온 사람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닥터 맥코이. 

팽팽한 실처럼 높은 톤. 그 목소리를 알아들은 맥코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스팍이었다.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