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오오오오오오망한 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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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묻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입을 맞추지도 못했다. 맥코이는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사람처럼 즉시 그 자리에서 도망쳐나왔다. 놀란 가슴이 벌렁거리고 숨이 엇박으로 날고 들었다. 


거실의 찬 벽에 등을 기대고 미끄러지듯 주저앉은 후에야, 맥코이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안 돼요'라고? 왜? 어째서? 


맥코이는 속으로 외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째서냐니, 레너드 맥코이. 제정신이야? 맥코이는 단 한순간을 참지 못했던 자신을 비난하고 꾸짖었다. 스팍에게서 벗어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그에게, 또 무슨 상처를 주려고 했던 거야? 


맥코이가 얼굴을 감싸쥐고 이를 악물었다. 문은 열린 채였으나 커크가 나오는 낌새는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눈을 뜰 정도라면 분명 깨어있던 거겠지. 그러면 언제부터 깨어있었던 것일까. 왜 자는 척을 했을까. 왜, 왜. 


맥코이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다 비참해졌다. 늦게 귀가한 것, 짐이라고 부른 것, 모두 자신의 탓일지 몰랐다. 어쩌면 그래서 화가 난 것일까. 목에 돌을 하나씩 하나씩 매다는 기분이었다. 민망함과 부끄러움, 미안함이 뒤섞여 그를 볼 낯이 없었다. 


타박타박, 커크가 슬리퍼를 끌며 걸어나왔다. 한참을 자책하던 맥코이는 그 소리에 흠칫하며 고개를 수그렸다. 미안해. 미안해. 맥코이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커크는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괜찮아요. 


커크가 양손을 내밀어 맥코이의 볼을 감쌌다. 일렁이는 갈색 눈동자 한 쌍과 반은 푸르고 반은 검은 눈이 마주쳤다. 다시 그를 대면하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너무 가까웠다. 불현듯 스팍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마.' 


커크의 입에서 나올 말이 두려워졌다. 맥코이는 힘없이 팔을 뻗어 커크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그를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었다. 맥코이는 할 수 없었다. 


꼬맹아....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요. 당신이 원한다면. 


커크는 무릎을 꿇고 맥코이 앞에 다가앉았다. 그가 가까이 달라붙자 현기증이 났다. 맥코이는 팔을 내저으며 커크를 피하려 했다. 등 뒤가 단단한 벽이라 그 행동에 큰 의미는 없었다. 맥코이는 눈을 깜빡이다 그저 커크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더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만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맥코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커크의 하얀 손가락이 물감을 찍어 그림을 그리듯 맥코이의 입술을 섬세하게 쓸었다. 손가락은 천천히 내려가다 맥코이가 입고 있는 셔츠의 목 부분에 걸렸고, 커크는 그 상태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말캉한 혀가 입술에 닿았을 때 맥코이는 말 그대로 아찔함을 느꼈다. 커크는 고양이처럼 할짝이며 맥코이의 얼굴을 혀로 쓸기 시작했다. 맥코이는 눈을 감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되는대로 내뱉었다. 


왜... 왜 아까는... 안 된다고 했어? 


맥코이의 목을 간지럽히던 커크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맥코이는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커크의 눈이 잠깐, 기억의 우물에 빠져들었다. 커크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짧게 토해냈다. 


왜냐하면, 결국 당신도 나를 버리게 될 테니까. 


찬물을 맞은듯 맥코이가 굳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맥코이는 커크의 양 손을 잡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약속할게. 절대 너 안 버려. 정말이야. 

다들 그렇게 말했어요. 똑같이. 그리고 하나같이 나를 떠났죠. 


커크는 다시 무덤덤하게, 조금은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당신도, 그래도 괜찮아요. 원하는 게 그거라면 얼마든지. 나는 괜찮아요. 

아냐. 안 괜찮아.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냐. 

나를 원하잖아요? 원하는 건 가져요. 참지 말아요. 난 그래서 만들어진 거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 제발 좀... 


목이 메였다. 토해낼 수 없는 무언가가 걸려서. 맥코이는 그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 투명하고 깊은 검은색 눈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자신의 폐부 깊숙한 곳을 찔러대서, 자꾸 어딘가를 아프게만 해서, 그에게 감히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커크의 말은 사실이었다. 맥코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참고 있었다. 맥코이는 치밀어오르는 욕망을 숨기기 위해 눈을 감았다. 


내가 또 뭔가 잘못했어요? 


커크가 맥코이의 눈가를 쓸었다.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 그 온기가 사무치도록 다정했다. 덕분에 맥코이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아무것도. 

그렇지만도 않아요. 


커크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들어봐요. 세 번째 주인님은 내게 이 상처를 주었고, 네 번째 주인님은 눈을 고쳐주었어요. 여섯 번째 주인님은 나를 악마라고 불렀어요. 여덟 번째 주인님은 커크라는 이름을 주었어요. 시작은 달랐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았어요. 모두 나를 안았고, 모두 나를 버렸어요.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면, 왜 나를 버렸죠? 


세찬 단어의 소나기가 피부를 때렸다. 맥코이는 그저 입을 벌렸다. 커크가 멍하니 있는 맥코이의 목에 매달려 속삭였다. 


말해봐요. 당신은 언제 나를 버릴 건가요? 나랑 잔 후에? 아니면 그 전에?

제발.... 믿어줘. 난 너를 버리지 않을게. 약속해. 


맥코이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떨리는 손을 들어 커크의 앞머리를 넘겨주면서, 조금이라도 확신있고 안정적으로 보이려 노력하면서,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것 말고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거의 본능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거짓말. 


커크는 맥코이에게 안긴 채 눈을 반쯤 뜨고 그의 귓바퀴를 핥았다. 차오르는 자극에 맥코이는 고개를 돌려 커크에게서 벗어나려 노력하면서도, 그를 안은 손은 놓지 않았다. 맥코이가 애원했다. 


믿어줘. 제발. 내가 어떻게 해야겠어? 뭘 원해? 


커크가 고개를 움직여 맥코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기 인형과 비슷한 그 무표정과 무감정에 이제는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맥코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커크의 입이 벌어졌다. 


날 안아요.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