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설정덕후 주의
한마디: 너무 오랜만에 써서 문체가 바뀐 느낌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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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두려움, 공포, 체념, 자괴감.
이 모든 것들이 커크에게서 느껴지는 감정들이었다. 스팍은 함장석에 앉은 채 팔걸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스팍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전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초점은 허공을 응시하듯 어딘가 흐려져 있었다.
스팍은 본드를 통해 전해지는 모든 감각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였다. 커크의 쿼터에서 쫓겨난 즉시 스팍이 행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으니 정신적 연결인 본드가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스팍은 자신이 빈 그릇이라도 된 것처럼 커크의 감정을 마음 안에 가득 받아들였다. 그가 느끼는 것을, 그가 경험하는 것을 자신도 경험하고 싶었다. 그게 커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자 칸을 감시하는 방법이었다. 스팍은 자신이 벌칸이란 사실에 이렇게 감사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스팍은 몇 가지 사실을 추가로 알아낼 수 있었다.
첫 번째. 현재 커크는 불안정한 수면 상태에 들어갔다는 것.
두 번째. 아직까지는 칸이 커크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것.
세 번째. 커크에게 계획이-.
"부함장님. 스타플릿 본부로부터의 연락입니다."
우후라의 보고에 스팍의 생각이 끊어진 실처럼 뚝 멎었다. 스팍은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우후라를 바라보았다. 비록 비논리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지언정, 임무에까지 소홀할 수는 없었다.
"메시지 내용은?"
"행성 연방에 가입을 원하는 아레비크 종족과 협상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아레비크 대표의 위치는 베타 우르세 섹터. 정확한 좌표는 수신중입니다."
"술루 중위. 현재 위치에서 베타 우르세 섹터까지 걸리는 시간은?"
스팍의 질문에 술루가 빠르게 대답했다.
"아광속으로 약 4시간 걸립니다."
"진로를 그쪽으로 돌리도록."
"아예, 부함장님."
때맞춰 모든 메시지를 수신한 우후라가 좌표를 읊어주었고, 술루는 스팍의 명령에 따라 엔터프라이즈의 기수를 틀었다. 함장이 위기에 빠진 이 마당에 임무까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스타플릿에서 엔터프라이즈에게 어떤 처분을 할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스팍은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돈했다.
아레비크라면 행성 연방 가입을 꾸준히 거절했던 카다시안의 친척뻘 되는 종족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와서 연방 가입을, 그것도 먼저 요청하고 나섰다? 스팍은 차근차근 그들의 의도를 추리했다. 숨겨진 의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행성 연방에 가입함으로써 그들이 얻게 될 이득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현재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칸을 커크에게서 떼어놓는 일-.
스팍이 보이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추리 과정 중에 커크와 칸에 대한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도대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제까지는 없었던 일이었다. 즉, 비논리적인 일이었다.
스팍은 팔걸이를 힘주어 잡았다. 이렇게 감정에 휘둘리다간 두 가지 모두 그르칠 게 분명했다. 현실적으로 동시에 두 일을 해결할 수 없는 이상, 한 가지를 먼저 끝내고 다른 한 가지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먼저 해결할 것인가.
스팍은 커크의 일과 스타플릿의 명령을 저울질했다. 자신을 쌀쌀맞게 내보내던 커크의 얼굴이 떠올랐다. 절로 주먹이 쥐어졌지만, 자신을 대신해 그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장교가 없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게 더 효율적일까. 그 생각에 도달하자 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스팍은 마음 대신 머리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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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댱님께서 함교에……. 에에??"
체코프의 가감없는 놀람에 함교의 전원이 터보 리프트 입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곳을 바라본 모두가 체코프와 같은 심정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커크와 칸이 나란히 서 있었다. 커크가 입은 지휘부의 노란 셔츠와 칸이 입은 검은색 공용 셔츠는 지나치게 서로를 각인시켰다. 노란색과 검은색이 보색이라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철천지 원수와 같은 관계를 가진 두 사람이 아무런 경계도 없이 함께 있다는 것이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엔터프라이즈의 크루 일부는 이것이 벤젠스 호와 맞설 때의 꿈을 꾸는 것인가 싶어 눈을 비비기도 했다.
차라리 과거였다면.
차라리 이게 꿈이라면 좋았을텐데.
스팍과 커크는 속으로 동시에 읊조렸다. 누구의 생각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스팍은 그것이 과도하게 확장한 본드의 영향인지 본인의 생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커크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후라. 전 채널을 열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우후라가 급히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터치 몇 번에 순식간에 엔터프라이즈 전체의 채널이 열렸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임무에 집중하고 있던 크루들이 잠깐 손을 놓고 귀를 기울였다.
"중대 발표가 있다."
커크가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팍이 함장석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기에, 스팍은 그것을 막고자 했다. 엔터프라이즈 전체에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임무를 앞둔 상황에서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함장님. 규정상 장교들과의 상의 없이는-."
커크가 스팍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스타플릿 규약 3번에 의거하여 함장의 우선명령권을 발동한다. 지금 이 시간부로 칸 누니엔 싱은 엔터프라이즈의 비정규 크루로 등록되며, 임시로 과학부에 배속된다. 근무지는……."
커크가 말을 흐리는 사이 그 공백을 메우듯 카강,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음의 진원지로 향했다. 캐롤 마커스였다. 벌떡 일어난 캐롤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서 자신의 PADD를 주워들었다. 그녀는 PADD를 두 팔로 껴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캐롤의 눈동자는 명백한 혼란과 혐오가 뒤섞인 채 커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함장님. 부서-, 부서 이동을 요청합니다."
"…승인한다. 캐롤 마커스 중위는 기술부로 부서를 이전한다. 엔지니어실로 이동해 스콧 소령에게 새 임무를 배정받도록."
캐롤은 함장에게 대답하는 것도 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 자리에 한시도 있고싶지않은 듯 빠른 속도였다. 캐롤이 터보 리프트를 향해 다가서자, 커크는 칸 앞을 가리고 서서 그녀와 칸이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캐롤은 이에 감사를 표하지도 않고 빠르게 리프트 안에 들어섰다.
리프트의 문이 닫히기 직전, 커크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원망의 빛을 읽었다. 캐롤과 커크는 함께 벤젠스 호에서 칸이 그들을 배신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함께 칸이 마커스 제독을 죽이는 것을 봐야만 했다. 마커스 제독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 또한 누군가의 아버지였다. 캐롤 마커스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칸은 캐롤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듯, 캐롤이 큰 눈 가득히 커크를 비난했다. 문이 닫히자 커크는 그것을 애써 잊으려는 듯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입맛이 무척이나 썼다. 그래도 명령은 끝마쳐야 했다.
"…마침 자리가 하나 비었네."
커크의 말이 함교의 허공을 황망하게 떠돌았다. 그 말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칸마저도.
"칸 누니엔 싱은 함교로 배치된다. 그의 임무는 과학 부서의 전반적인 임무와 동일하며,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은 기각한다. 발표를 종료한다."
커크 아웃,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우후라가 채널을 닫았고 함교에는 숨막히는 침묵이 자리했다. 누구도 그 상황에서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유일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사람은-
"젠장(Dammit). 저게 뭔 빌어먹을 개소리야!"
메디컬 베이에서 달려나온 맥코이와,
"울 함장님 병이 나았다더니 쌩구라 아녀? 저런 미친 짓을 다 허고."
엔지니어실의 스콧뿐이었다.
양쪽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현처럼 함교에 긴장이 가득 찼다. 움직이는 사람조차 없었다. 결국 그 현 위에 손가락을 얹은 사람은, 모든 책임과 위계질서의 꼭대기에 있는 함장 제임스 커크였다.
"배정된 자리로 가. 칸."
커크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칸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커크는 스팍과 칸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날카로운 눈빛 교환을 감지했다. 스팍이 이동하지 않는 한 칸은 움직이지 않을 태세였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네 자리로 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스팍."
커크의 말에 스팍은 생애 처음으로 항명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끊어질듯 말듯 아슬아슬한 선 위에서, 스팍은 스스로를 억눌렀다. 임무가 우선이었다.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였다. 칸은 자신이 흔들릴 것을 계산하고 이런 구도를 꾸며냈을 가능성도 있었다. 스팍은 주먹을 세게 쥐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커크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칸 또한 순순히 몸을 돌려 캐롤의 자리로 향했다. 칸이 의자에 앉자 양 옆에 앉은 크루들이 주춤거리며 몸을 사리는 게 보였다.
그렇게 상황이 정돈되고 나서야 커크는 함장석에 앉을 수 있었다. 거친 운동을 하고 난 것처럼 온몸이 피곤했다. 하지만 함장의 직책은 그가 피곤해질 겨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커크는 부러 눈을 세게 짓눌러 비비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항로가 어제와 다른 것 같은데. 술루?"
"…스타플릿 본부로부터 받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베타 우르세 섹터로 향하는 중입니다. 함장님."
잠깐 호흡을 놓친 술루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커크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명령 내용은?"
함교가 조용해졌다. 보통 때라면 커크의 명령에 즉시 답했을 스팍이 입을 열지 않자, 마지못해 술루가 말을 이었다.
"…아레비크 종족과의 연방 가입 협상입니다."
"협상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여전히 스팍은 대답하지 않았다. 술루는 이미 포기한 모양인지 커크에게 망설임없이 답했다.
"아레비크 대표가 있는 중립 행성까지 도착하는데 남은 시간은 28분이며, 협상 개시 시각까지는 33분이 남아있습니다."
"얼마 남지도 않았네. 전략은?"
술루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명백히 스팍을 향하여 한 말이었다. 스팍은 언제나 커크에게 이성과 논리에 기초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협상 측면에서는 전략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