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에 질린 커크가 몇 번이고 빌었지만, 그는 용서하지 않았다. 커크의 마음속이 절망으로 가득 찼다. 이젠 정말로 되돌릴 수 없었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다 잘못했어, 커크는 소용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애원했다. 답없이 떨리는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왔다. 칸은 커크의 등을 짓누르며 그의 간청을 무시했다.
이미 늦었어. 내가 엔터프라이즈를 폭파시키기 전에 날 막을 방법을 찾아.
난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칸, 제발. 그러지 마…….
아아. 제임스. 생각해.
칸이 커크의 귀에 입술을 붙였다. 커크의 숨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ㅡ넌 나만큼 똑똑하잖아.
(You are as clever as I am.)
함장님, 위험합니다. 물러서십시오.
아냐. 스팍.
커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스팍은 페이저를 세게 쥐었다. 커크 때문에 칸을 조준할 수가 없었다.
지금 물러서야 할 건 너야.
스팍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함장님. 왜 제게 페이저를 겨누시는 겁니까?
(Captain. Why are you taking aim at me with a phaser?)
스팍. 너 또 날 감시했어? 본드로?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때까지도 스팍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커크의 마음은 변함없을 거라고. 자신이 그를 이해하는 만큼 그도 자신을 이해하리라고. 몇 번이고 부딪치고 싸웠지만, 결국 서로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고. 벌칸으로서 논리와 이성을 신봉하는 만큼, 스팍은 제임스 T. 커크를 믿었다.
본드 끊어.
아니, 믿었었다. 그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스팍이 끝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커크의 얼굴은 여전히 섬뜩하리만치 희푸르고 평온했다. 그 무신경한 모습에 더 분노라는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커크가 이럴 리가 없었다. 이건 자신의 커크가 아니었다. 스팍은 거칠게 항변했다.
지금 그 의미를 인지하고 발화하는 중입니까? 본드는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짐, 저는 벌칸에 대한 당신의 이해력을 의심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