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꼬로로로로로로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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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평소였다면 마땅히 이견이 튀어나올 차례였다. 그가 협상보다 탐사를 선호하긴 해도 중요한 임무에는 무조건 자신이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곤 했기에 (원체 나서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브릿지 멤버들은 커크가 응당 자신도 간다며 반박을 하리라 예상했다.
"그럼 그렇게 해."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스팍은 이를 예상한 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장교들의 놀란 눈을 뒤로 한 채 터보 리프트로 향했다. 입술을 깨물던 커크는 그런 스팍의 등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규정에 따라 보안 요원 두 명과 함께 가."
"알겠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규정을 잘 따르셨습니까, 라고 반박하고 싶은 것을 애써 참은 스팍이 고개를 돌렸다. 커크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져왔다. 스팍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커크가 자신을 따라 협상 자리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칸을 브릿지에 남겨둘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칸을 이 엔터프라이즈에 둘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칸에 대한 확실한 안전 장치가 보장되지 않는 한, 커크는 칸을 자신의 시야 안에 가둬둘 속셈이었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체제였다. 커크는 칸과 같은 공간에 있는 한 그가 엔터프라이즈를 위협하는 것을 본인이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칸 또한 회심한 죄인의 연기를 한다 해도 커크가 있는 상황에서는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비유하자면 두 사람은 서로의 심장에 총을 겨누고 있는 상태였다.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든 두 사람은 죽을 터였고, 그 말인즉슨 서로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한 적어도 양측 모두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스팍은 리프트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 둘의 관계를 떼어놓을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짐!!"
리프트의 문이 열리자마자 맥코이가 튀어나왔다. 그는 바로 앞에 서 있는 스팍과 어깨를 세게 부딪혔지만, 사과할 생각조차 못하고 잠깐 스팍을 본 후 다시 몸을 돌려 커크에게로 달려왔다. 스팍은 그를 무시하고 터보 리프트에 탔다. 평소라면 스팍 또한 맥코이에게 함장에 대한 예우를 지키라고 잔소리를 했을 터였다. (스팍은 맥코이가 커크와 절친한 사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그를 편하게 대하는 것을 탐탁찮아 했다) 하지만 왜인지- 정말 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평소와 너무 달랐다.
칸의 존재라는 명백한 사실이 그만큼 이 엔터프라이즈의 대기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리라. 그리고 스팍은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쾌'했다. '정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엔터프라이즈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서,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스팍은 터보 리프트에서 내리자마자 보안 요원 두 명을 대동하고 트랜스 포터에 올라섰다. 일단은 임무가 먼저였다.
"얘기 좀 하지?"
한편, 브릿지에는 화를 꾹 참고 내뱉은 맥코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크루들은 함장과 수석 의료 장교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폈고, 칸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맥코이는 그런 칸을 곁눈질하며 재차 그를 독촉했다.
"짐. 너 검진이 필요해. 지금 당장."
"닥터 맥코이. 지금 임무중인 거 안 보여? 그리고 분명 며칠-."
며칠 전에 검진 받았는데, 라는 커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맥코이는 칸이 보지 않는 사이에 빠르게 커크의 목에 하이포를 놓았고 커크는 짧은 외침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본즈!!"
"시야는? 발열 증상은? 내 말은 들려? 함내에 안도리안 감기가 도는 거 알지? 너, 알레르기, 있잖아."
"너 진짜……."
얼굴을 잔뜩 찡그린 커크가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벌써부터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커크는 필사적으로 칸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칸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의심이라도 할까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커크는 부러 멀쩡한 척 하며 맥코이를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잠깐 자리를 비울 테니까, 술루가 의자를 맡아.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내게 연락하고."
"아예, 함장님."
술루가 벌떡 일어나 커크의 자리에 앉았다. 술루는 커크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칸을 시야에서 떼어놓지 않았고, 칸은 터보 리프트로 이동하는 커크와 맥코이를 끝까지 주시했다. 맥코이는 그런 칸을 애써 무시하며 커크의 어깨를 부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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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참 더럽게 못한다. '너, 알레르기, 있잖아'? 제정신이야??"
커크의 목소리가 고조되자 맥코이가 이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다. 메디컬 베이까지 갈 겨를이 없어 근처의 컨퍼런스 룸으로 자리를 옮긴 참이었다. 맥코이는 가져온 약물을 하이포에 집어넣었다.
"너야말로 제정신이야?? 칸을 뭐 어쩌고 어째?? 미쳤어??"
맥코이가 다시금 커크의 목에 하이포를 박다시피 꽂았고, 커크는 책상에 앉은 채 비명을 질렀다.
"아, 좀 살살 해!"
"이 하이포로 널 죽일 수 있었으면 진작 죽였을 거다. 어떻게 저 새끼를 꺼내놓을 수가 있어? 아니, 도대체 어떻게 저놈이 감히 네 옆에서, 멀쩡하게 이 엔터프라이즈를 돌아다닐 수 있냐고!!"
"내가- 내가 허락했으니까."
커크가 마지못해 답했다. 맥코이가 허탈한 표정으로 커크를 바라보자 그는 그 눈길을 피해버렸다.
"규약 3조……."
"규약 3조?"
맥코이가 반문하자 커크는 입술을 깨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즈. 제발. 조금만 참아. 내가 다 해결할게."
"이게 참으란다고 될 일이야? 이 빌어먹을 꼬마야!? 함선 전체가 캐롤이 도망치듯 떠나는 걸 보고 들었다고! 그리고 그거 알아? 우리 메디컬 베이에는 칸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어!!"
"젠장, 나도 알아!! 안다고!!"
결국 커크가 소리를 질렀다. 자신 또한 칸에 의해 아버지와 같던 파이크를 잃었다. 게다가 그런 칸의 혈청에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하기까지 했다. 또 칸에게 성폭행 비슷한 것을 당했으며, 이후에는 칸에게 자의로 몸을 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칸은 자신을 '가족'이라 칭하며 한껏 우애를 과시했다…….
커크는 이 칸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5년 임무가 끝나기 전에 칸이 엔터프라이즈에 만들어둔 위험을 제거하고 그를 냉동 튜브에 처넣는 것만이 길이었는데, 그 길조차 어느 방향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알긴 뭘 알아. 그리고 규약 3조에 의한 우선명령권? 그게 말이 돼? '임박한 몰살 위기 상황에서-'."
"'-스타플릿의 함장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크루들을 보호할 권한을 가진다'."
맥코이가 스타플릿 일반 규약의 열두 번째 문장을 읊자, 커크가 그 끝을 마무리했다. 소리내어 말하는 중에 커크가 어떤 의도로 그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차린 맥코이는 결국 이를 악물었다. 기실 커크는 중대 발표를 하는 중에 넌지시 암호를 보낸 것이었다. 모든 크루에게, 이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크루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오냐. 이제야 알아먹었다. 스타플릿에서 제대로 공부한 놈이라면 이게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건 이해하겠지. 그런데 그게 뭐? 해결할 방법은 있어? 칸이 대체 어떤 식으로 너를 협박했는데?"
"내 목숨 하나라면 당연히 걸 수 있지만, 855명이나 되는 목숨을 걸고 그 게임을 하라고? 못 해."
칸과 커크는 상대방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자동차였다. 치킨 게임이란 20세기, 미국의 갱들이 주도권을 다투며 벌였던 '사망유희'였다. 끝까지 방향을 틀지 않는 자가 게임의 승리자였고 결국 방향을 틀어 목숨을 모면한 자는 겁쟁이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양측 모두 방향을 틀지 않는다면?
결과는 둘 모두의 죽음이었다. 때문에 커크는 크루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처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었다.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겁쟁이가 되든 칸에 의해 놀아나든 상관 없었다. 그렇다고 또 마커스가 했던 것과 같이, 칸이 지금 자신에게 하는 것과 같이, 72명의 목숨을 걸고 칸을 협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들과 똑같은 존재가 되겠지. 그것은 싫었다. 그것만이 커크가 지키고 싶은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짐. 대체 칸이 어떻게 널 협박한 거야. 말해."
맥코이가 커크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지만, 커크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결국 맥코이가 반 협박조로 입을 열었다. 벼룩 예방용 백신 기억하지? 그 또한 스팍과 마찬가지로 커크를 칸과 갈라놓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쓸 심산이었다. 진정제나 백신이나 뭐든 주사해 커크를 혼수상태로 만들어 두면 그 사이에 스팍이 칸을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커크보다도 맥코이가 스팍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나한테 한 번만 더 그 빌어먹을 걸 주사했다간-." 커크가 인상을 팍 썼다.
그 순간 커크의 커뮤니케이터가 울렸다. 잠시 서로를 주시한 끝에, 커크가 커뮤니케이터를 열었다.
"커크다. 협상은?"
"함장님, 긴급 상황입니다! 중립 행성에 내려간 협상팀과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깜짝 놀란 커크가 책상에서 뛰어내렸다. 커뮤니케이터로 전해지는 우후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보안 프로토콜은? 협상 진행중에? 스팍은?"
"협상 휴식 시간 중에 아레비크의 저의를 간파했다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보안 요원뿐 아니라, 스팍 중령님으로부터도……. 모든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2차, 2차 협상 재개까지는 앞으로 5분 남았습니다……."
커뮤니케이터를 들고 있던 커크의 손뿐 아니라, 커크의 얼굴마저도 하얗게 질렸다.
치킨 게임. 국제정치학에서 사용하는 게임 이론 중 하나로,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