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응원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전 아마추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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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공기와 호흡과 시간이 멈췄다. 실제로 멈추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스팍은 커크가 자신을 거부했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스팍이 커크의 얼굴에 손을 붙인 채로 가만히 있자 커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더, 단호하게.
"하지 마."
커크의 차가운 목소리가 스팍의 심장을 한 움큼 베어냈다. 커크는 손을 들어 스팍의 팔을 떼어내려 했지만, 스팍은 버티고 서서 굳은 얼굴로 커크를 내려다보았다. 커크가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로 커크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가 만약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견을 표시할 리가 없었다.
"칸이 당신을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당신과 칸을 이곳으로 불러냈고, 저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이곳에 남겨두고 갈 생각입니다. 스타플릿에는 그가 임무수행 중 실종되었다고 보고하면 됩니다."
"너 제정신이야?" 커크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언제나 정상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스팍을 향해 커크가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뭐? 네가 날 불러냈어? 일부러 연락을 끊은 것도, 전부 다 네 계획이었어?"
"그렇습니다(Indeed).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너, 너또 날 감시한 거야? 본드로?"
올 것이 왔다. 스팍은 감지했다. 하지만 그에게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스팍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커크의 마음은 변함없을 거라고. 자신이 그를 이해하는 만큼 그도 자신을 이해하리라고. 자신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이 남자는 알아채 주리라고. 몇 번이고 부딪치고 싸웠지만, 결국 서로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고. 벌칸으로서 논리와 이성을 신봉하는 만큼, 스팍은 제임스 T. 커크를 믿었다.
"본드 끊어."
아니, 믿었었다. 그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스팍이 끝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커크의 얼굴은 섬뜩하리만치 희푸르고 평온했다. 그 무신경한 모습에 더 분노라는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커크가 이럴 리가 없었다. 이건 자신의 커크가 아니었다. 스팍은 거칠게 항변했다.
"지금 그 의미를 인지하고 발화하는 중입니까? 본드는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짐, 저는 벌칸에 대한 당신의 이해력을 의심할 수밖에-."
"그만."
커크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그의 표정에서는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아무 생각도. 스팍은 그 매정한 모습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소름이 온몸에 돋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공포와 닮아 있었다. 심장이 조여들었다.
"짐이 아냐. '함장님'이지(Not Jim. 'Captain')."
짧은 단어들이 스팍의 영혼을 잔인하게 할퀴었다. 딛고 선 땅이 그대로 무너져버리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공허한 느낌이었고, 벌칸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기 직전처럼 심장이 멎는 위기감이었다. 아니, 사실 그 심장은 이미 블랙홀에 의해 사라졌다. 참을 수 없을만큼의 허전함에 스팍은 가까스로 입을 열어 숨을 토해냈다.
"함장님……."
"네 계획은 불허해. 새로운 명령을 내리겠어. 가장 빠르게 본드를 끊어."
안 됩니다. 스팍은 속으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커크가 마음으로 들어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커크는 마음을 닫은 듯 완고하게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다. 스스로 생각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그 막막한 단절감에 손끝이 저릿해져 왔다. 얼굴로 피가 쏠렸다.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스팍은 애써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그것을 감당했다.
"함장님. 제 계획은 다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당신과 엔터프라이즈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위협을 제거하려는 것뿐입니다. 어째서 그를 두둔하시는 겁니까?"
커크는 답하지 않았다.
"함장님. 대답해주십시오."
스팍이 재차 요구했지만, 커크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스팍은 그의 턱을 잡아 돌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커크가 이렇듯 멋대로 행동할 때마다 고통을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었다. 언제나.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왜 참아야 하지?
"스팍…?!"
스팍은 커크의 위에 반쯤 올라탄 채로 커크의 입을 막았다. 의자에 앉아있던 커크가 다급히 발버둥치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의자만 달각거리며 비명을 지를 뿐 아무 소용도 없었다. 스팍이 눈을 감고 커크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커크는 눈을 크게 떴다.
마인드 멜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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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스팍은 마인드 멜드를 두 개체의 양자접속, 즉 동기화와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벌칸들은 그것을 정신적 성관계라 여기기도 했으나 스팍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닥터 맥코이라면 맛깔스러운 표현을 던져주었겠지만, 스팍은 그런 묘사를 쓰는데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으로만 사물과 사건을 설명해낼 수 있었다. 어쨌든 스팍은 커크의 머릿속에 일명 '접속'했을 때 강한 거부반응을 경험했다.
스팍은 아랑곳하지 않고 커크의 머릿속을 뒤졌다. 서랍을 뒤지듯 기억들을 끄집어 내고, 책을 펼치듯 하나하나 헤집었다. 그리고 결국은 칸과 대화한 내용부터 그와 잔 부분까지 모조리 읽어냈다. 역시, 라는 마음이 들었다. 본인은 꿈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칸이 탈출했음을, 진작부터,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커크는 칸에 대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그를 증오했고, 동정했고, 혐오했다. 마치 자기 자신을 대하듯이. 물론 커크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예민한 감수성 탓만은 아니었다. 칸이 커크에게 속삭여댄 말들이 그의 안에 명령어처럼 자리잡았고, 뿌리를 내린 것이리라. 그 결론에 이르자 스팍은 다시금 분노했다.
칸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
"그만해!!"
커크의 외침에 스팍은 순식간에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커크가 온 힘을 다해 스팍을 뿌리쳤고, 강제로 중지된 마인드 멜드 때문에 스팍은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커크도 융합되다 만 기억 때문에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 하나는 명백했다. '실망'이었다. 스팍은 자신의 동의 없이 마인드 멜드를 행했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기억을 가져갔다. 자신을 감시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함장님." 스팍이 한 걸음 다가왔다.
"다가오지 마."
이젠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힘들었다. 커크는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에 대한 실망과 스팍에게서 마지막으로 전해진 감정인 분노, 제 감정도 아닌 것과 실제 자신의 분노가 뒤섞여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커크는 이를 부딪치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칸이 엔터프라이즈를 폭파시키겠다고 협박했어. 난 그걸 막을 방법을 찾을 때까지 무슨 짓이든 할 거고. 그 이후에 칸을 생명유지장치에 처넣을 거야."
스팍이 이에 뭐라 답을 하기도 전에 커크가 싸늘하게 웃었다.
"아, 마인드 멜드로 다 봤겠지? 괜히 얘기했네."
"함……."
"네 도움은 필요없어. 여기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올라가."
커크가 즉시 커뮤니케이터를 들었다. 스팍 중령 빔업시켜, 라고 딱딱하게 내뱉는 어투에 스팍은 그저 입을 벌린 채 커크를 바라보았다. 화를 내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자신이 분명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칸을 고문하는 방법도 있었다. 물론 커크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반대하겠지만, 그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칸은 커크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괴롭힌 남자였고 그렇다면 그가 어떤 고통을 받든지 커크는 개의치 않아야 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아니면 정말로-.
스팍은 자신의 몸 주변에 나타난 황금색 빛무리를 보면서 주먹을 세게 쥐었다. 정말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 추론이 떠올랐다. 커크는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몸을 돌린 채였다. 스팍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당신은 칸을-."
공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와, 순간의 적막, 눈부신 빛에 감싸여 스팍은 전송실에 내려섰다.
"-좋아하는 겁니까."
텅 빈 회의실 안, 커크가 주먹을 들어 눈가를 거칠게 비볐다. 방향 잃은 대답이 헛되이 허공을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