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팬픽
Dirty BlooD 3
종 류: 시리어스(serious), 앵슷(angst), 스릴러(thriller)
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아직까진 15금
-
스팍을 올려보낸 뒤, 커크는 회의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든 스팍이 읽어낼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결국 커크는 될 수 있는 한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커크는 가만히 앉아 테이블을 두드렸다. 사실 스팍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칸을 제압하고 그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해결할 방법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걸로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칸의 혈청에 의해 그와 같은 증강 인간이 된 커크는 수만 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시한 폭탄, 생체 인식 기술, 더티 밤, 칸이 마음만 먹으면 엔터프라이즈는 그 순간 우주의 먼지로 화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칸이 자신이 죽는 즉시 엔터프라이즈가 폭발하도록 설정했다면? 혹은 일정 시간마다 패스코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폭발하는 폭탄이라면? 자신의 생체 정보로만 해제할 수 있는 자폭 알고리즘을 해킹해 넣었다면? 커크는 칸이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명민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가 했던 말 그대로 '그만큼 똑똑했다'.
때문에 스팍과 같이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커크는 여전히 칸이 무엇을 위해 자신을 치료했고 자신에게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단번에 엔터프라이즈를 인질로 잡아 모두를 죽이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커크가 아는 칸은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일종의 게임에 불과했고 여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은 무언가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어떠한 한 가지 이유. 그것 때문에 그는 엔터프라이즈에 남아 있기 원했다. 동시에 그게 바로 커크가 알지 못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삐빅, 소리를 내며 회의실 문이 열렸다. 커크는 고개를 돌려 인물을 확인했다.
"끝났다."
뚜벅뚜벅 걸어들어온 것은 칸 혼자였다. 아레비크 대표는커녕 평화유지군조차 따라붙지 않았다. 흉흉한 바람소리만 통로를 채우다 무정하게 닫히는 문에 의해 복도로 쫓겨났다. 칸의 손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고, 얼굴은 표정 없는 유령처럼 희었다. 단지, 묵직하게 젖은 듯 보이는 스타플릿 공용 셔츠만 지독히도 검었다. 커크는 그런 칸과 눈이 마주친 순간 모든 정황을 알아차렸다. 커크가 한숨을 쉬며 다시 엔터프라이즈에 연락을 넣었다.
"남은 보안 요원들과 나, 칸을 빔업시켜줘. 협상은 결렬됐어."
아예, 캡틴. 그에게 대답하는 술루의 목소리를 들으며 칸이 입술 끝을 미묘하게 일그러뜨렸다.
"버릇없는 강아지는 챙겼나 보군."
"네가 알 바 아냐. 협상 결렬에 대한 변명이나 해보시지." 커크가 딱딱하게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금색 빛이 두 사람의 몸을 휘감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그 빛무리 사이에서, 칸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정당방위였어."
-
아레비크 대표와 그들의 일행은 카다시안의 도망자들이었다. 그들은 카다시안에서 훔쳐온 듀테륨 운반 셔틀을 이용해 행성 연방을 속이려 했고, 일단 행성 연방과의 협상 하에 연방 소속이 되면 카다시안의 추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추적을 피하지 못한다 해도 일단 협상이 체결되는 순간 동맹으로서의 효과가 발휘된다. 그럼 행성 연방은 꼼짝없이 카다시안과 전면전을 펼치게 되는 것이었다. 협상은 결렬되어야 마땅했다.
-라고, 스팍이 보고했다. 커크는 별 이견 없이 그대로 상부에 보고하라 지시했다. 그 외의 대화는 없었다.
"제 시프트에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터보 리프트로 향하던 스팍을 커크가 불러세웠다. 스팍은 희미한 희망을 갖고 그를 돌아보았다. 한바탕 하고 헤어졌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커크는 마치 실드를 내린 듯 견고하게 자신의 생각을 방어하고 있었다. 본드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커크가 어떻게 자신의 정신을 차단하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동시에, 화가 나기도 했고 억울하기도 했다. 이것 또한 칸의 영향이 틀림없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시프트 변경됐어. 확인해."
커크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스팍은 씁쓸한 감정을 갈무리하며 PADD를 들어 교대 시간표를 확인했다. 캐롤의 부서 이동과 칸의 전입으로 인한 브릿지 멤버들의 시프트 변경이 있었다. 가장 먼저 자신과 커크, 칸의 시프트를 훑어본 스팍은 입을 굳게 다물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기존에 동일한 시간대였던 커크와 스팍의 시프트가 변경되고 칸과 커크가 완전히 동일한 시간대로 붙어 있었다. 칸은 (심지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어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였다. 커크는 그런 칸을 제어할 수 있는 게 자신뿐이라 여겼다. 그래서 커크는 칸을 감시하는 동시에 브릿지 멤버들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서라도 시프트를 변경한 것이었지만, 스팍은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커크가 어떤 의도로 변경했는가를 알았기에 더 격렬하게 분개했다.
"함장님."
"이의는 받지 않아."
스팍이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커크가 딱 잘라 말했다.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느껴지지 않는 커크의 얼굴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스팍은 조용히 그의 곁에 서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대화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그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내면의 벌칸은 그 어떤 해답도 제시해주지 못했다.
"의자 지켜."
설상가상으로 바뀐 시프트대로라면 곧 칸과 커크가 자리를 비울 차례였다. 커크가 일어섰고 스팍은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커크와 칸이 돌아올 때까지, 아니, 두 사람이 어디로 갈지, 혹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무슨 일을 할지, 자신이 아무것도 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답답했다. 게다가 본드가 먹히지 않으니 직접 표현해야 했다. 스팍은 자신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커크는 의외라는 듯 스팍을 돌아보았다. 스팍은 애써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아무렇지 않게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상관 말라거나 왜 그런 걸 묻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은 것에 스팍은 안도했다. 그 사이에 커크와 칸은 터보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마치 바람이 손아귀를 빠져나가듯, 건조한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듯 그를 보내야만 한다는 사실에 스팍은 진한 무력감을 느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스팍."
"예?"
터보 리프트가 닫히기 전, 커크가 그를 불렀다. 스팍은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커크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이전에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무슨 일-."
"내 명령 잊지 마."
문이 닫혔다. 잠깐 살아났던 심장도 그만, 죽어 버렸다.
-
엔터프라이즈에는 약 800여명의 크루를 위한 쿼터가 준비되어 있었다. 게스트용 쿼터도 충분했고, 하다못해 중도 하차한 크루들의 빈 자리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칸이나 커크나 다른 공간을 고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커크가 자신의 쿼터를 열었고 칸이 자연스럽게 뒤따라 들어왔다. 불을 켜고 짧게 한숨을 쉰 커크가 책상으로 걸어가는 도중, 뒤에서 삐빅거리며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커크가 돌아보며 물었다.
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뭇 긴장한 커크가 재차 입을 열었다.
"뭐냐니까? 왜 잠궈. 누가 올지도 모르는데."
"누구." 칸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커크는 그 단어 하나만으로 칸이 불쾌한 상태라는 것을 파악했다. 마치 어린 시절 귀가하는 삼촌의 목소리만 듣고도 그날 헛간에 숨어야할지 소파에 앉아있을지를 결정했던 것처럼, 커크는 본능과도 같은 감각으로 칸의 기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커크는 가까스로 표정을 바꿔 유하게 대답했다.
"아냐. 내가 잘못 생각했어. 아무도 안 올 거야."
하지만 상대방이 어떠한 감정 상태인지 안다고 해서 이에 대처할 방법조차 아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공식을 알아도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답을 낼 수 없듯이. 외국어를 읽을 줄 알아도 의미를 모르면 해석할 수 없듯이. 커크는 칸이 얼굴에 비릿한 미소를 띄우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이 잘못 말했음을 깨달았다.
"제임스. 닥터에게 털어놓으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나?"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
"기관실장이 뭐라도 찾아내길 기대하면서?"
"!"
다 틀렸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칸이 천천히 걸어왔다. 아직 포기하긴 일렀다. 커크는 끝까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밀 점검이 필요해서 그랬어. 폐기된 연료봉이 상당하다기에-."
"그런데." 칸이 그의 말을 잘랐다.
칸의 손이 커크의 머리에 닿았다. 커크는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것만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왜 그렇게 떨고 있지?"
칸이 커크의 머리를 느긋하게 쓰다듬었다. 커크는 이 낯익은 분위기를 알았다. 폭풍이 치기 직전의 고요함. 잔잔함. 그리고 일말의 부드러움. 칸이 번개처럼 자신을 몰아붙이기 전에, 아주 잠깐 허용하는 순간의 평화. 미칠 것 같은 공포를 뒤덮어 본모습을 가리우는 여유.
커크는 더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칸……." 커크가 토해냈다.
칸이 기다렸다는 듯 커크의 머리칼을 잡고 뒤로 세게 잡아당겼다. 그 통에 고스란히 드러난 커크의 목선을 그가 입술로 천천히 쓸었고, 커크는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커크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칸은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다. 커크가 늘어져 있던 손을 들어올려 칸의 허리를 안았다.
"믿어줘……."
커크는 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라면 정말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무슨 짓이든. 칸을 껴안은 채 커크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아 다리와 다리가 맞닿자 칸도 그의 머리카락을 잡았던 손을 놓아 주었다. 커크는 칸의 반응에 미약한 기쁨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네 말이 맞아. 우월해지니까 이제야 알겠어. 다른 자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을."
이에 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커크가 하반신을 더욱 붙이며 칸의 가슴에 볼을 부볐다. 거짓 애정을 가득 담아.
"그들과 우리는 달라. 내게는… 네가 가족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칸이 그제야 속삭였다.
"응." 커크가 기쁘게 답했다.
칸의 손이 이에 응답하듯 커크의 등허리를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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