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의 천재 레너드 호레이쇼 맥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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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가자. 어디로든 떠나자. 

어느새 맥코이는 커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커크는 저항 없이 차가운 벽에 등을 대고 섰다. 맥코이의 손이 커크의 셔츠 안으로 들어가 가슴을 훑어올렸고, 그의 입술은 커크가 말 한마디 못할 정도로 키스를 퍼부었다. 커크는 맥코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떠나요? 
그래. 둘이서. 
당신이랑 나랑? 
그래. 너랑 나랑 단둘이서. 
그럼, 먼저 나랑 자요. 

맥코이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우울하게 거절을 뱉어냈다. 

안 돼. 
왜요? 
맥코이는 커크의 눈에 다시 키스했다. 커크는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대답이 없자 그는 다시 물었다. 
왜요? 


맥코이는 커크의 눈에 촉, 촉 거듭 입을 맞추었다. 커크는 눈을 뜨지 못하는 대신 입을 벌렸다. 왜요?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이번만은 맥코이도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너를 안은 사람들이 모두 너를 떠났다고 말했지. 
네. 
나는 너와 자지 않을 거야. 
네? 
너를 떠나지도 않을 거야. 


궁색한 변명이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커크의 몸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자신의 신념과 의지였다. 그는 커크와 자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커크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커크는 불안정했고, 그의 신체에 특정 자극을 가한다는 것은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컸다. 특히나 잠자리는 명실공히 큰 자극 중 하나일 터였다. 그러니 정말 필요한 게 아니라면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맥코이는 이 대화로 인해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을 유혹-그것은 정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하던 커크의 모습을 회상했다. 그때는 거의 넘어갈 뻔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고한 결심이 선 상태였다. 


맥코이는 다시 키스하려다 벌어진 커크의 눈을 보고 섬짓함에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타이르듯 말했다. 눈 감아도 돼. 커크는 하얀 얼굴과 검은 눈동자로 답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아냐. 짐. 나는 너를 사랑해. 
그럼 왜 나를 안지 않아요? 


짐, 짐. 그의 이름을 부르는 맥코이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맥코이는 두 손으로 커크의 얼굴을 감싸쥐고 그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나는 너를 지켜주고 싶어. 늘 네 곁에 있고 싶어. 같이 자는 것만이 사랑한다는 증거는 아니야. 


맥코이의 심정과는 다르게 커크의 목소리는 점점 단조로워졌다. 표정은 여전히 백지처럼 비어 있었고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나한텐 그래요. 


짧은 대꾸에서 맥코이는 서글픔을 느껴야만 했다. 커크가 자신만을 바라보게 하면서, 맥코이는 재차 강조했다. 


사랑해. 정말로. 자는 것 외엔 뭐든지 해줄게. 말만 해. 원하는 거라도 있어? 같이 우주로 나갈까? 보고 싶은 게 있어? 가고 싶은 곳은? 아니면-. 
괜찮아요. 


괜찮기는. 맥코이는 목구멍에 턱 걸리는 무언가를 애써 삼켰다. 한참 그를 달래보기도 하고 명령조로 말해보기도 했지만 소용 없었다. 커크는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저 이대로 삶을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걸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바로 그거라고.

 
덕분에 맥코이는 전전긍긍하며 그날부터 커크의 시중 아닌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어렵지는 않았다. 커크는 불평하지도,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맥코이가 그런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퇴근하며 사과 한 봉지를 사들고 온다거나 함께 외식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게 전부였다. 


그들의 삶은 계속되었다. 


아마도, 스팍이 그 집에 찾아온 날까지. 


맥코이는 병원에 출근한 뒤였고 커크는 홀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요즘은 구하기도 힘든 종이책이었다. 맥코이의 배려였지만, 커크는 짤막한 감사를 표할 뿐 크게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사실 커크는 드러내어 감정 표현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쨌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는 이른 오후였고 맥코이의 퇴근 시간과는 거리가 있었다. 베란다로 비치는 햇살을 받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커크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들어선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녀오셨어요. 


입버릇과도 같은 인사를 끝까지 말하고 난 뒤에야, 커크는 그가 맥코이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스타플릿 정복을 갖춰입은 스팍은 현관에 서서 집 안을 구석구석 주시하다가 (그가 찾는 것은 감시카메라였다) 커크의 목소리에 그를 돌아보았다. 


스팍은 짧게 목례했다. 


데리러 왔습니다.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