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편에서 완결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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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는 눈만 깜빡일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질적인 눈동자들을 향해, 스팍이 물러서지 않고 재차 강조했다. 그의 눈빛도 단호하게 빛났다. 


당신을 모시러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커크는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시했다. 

열 번째 주인님이에요? 
...아닙니다. 

이전의 그라면 커크의 대답에 가슴 한 구석을 저미는 서글픔을 느꼈겠지만, 지금의 스팍은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이 콜리나르였고 그것이 스팍이 선택한 결과였다. 스팍은 담담하게 오해를 정정해주었다.


여덟 번째입니다. 10913. 

스팍이 스스로를 지칭한 단어와 자신을 호칭한 단어에, 커크는 눈을 크게 떴다. 그 번호는 확실히, 커크에게 특정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스팍은 이에 아랑곳않고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제가 알던, 이 세계의 제임스 T. 커크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플릿을 비롯하여 지구 전체에는 당신이 그 사람인 것으로 되어 있으며 저는 그런 당신을 보호하고 책임질 의무를 지닙니다. 

스팍은 잠깐 숨을 쉬었다. 해야할 말, 그에게 주지시켜야 할 정보들이 많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충분할지는 미지수였다. 스팍은 감시 카메라를 곁눈질하며 뒷짐지었던 팔을 풀어 그에게 내밀었다. 

일전에 제 불찰으로 발생했던 사고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시는 그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시간이 없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이동하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리 오십시오. 

커크는 드물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파를 세게 쥔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명확했다. 커크의 혼란을 감지한 스팍이 덧붙였다. 

닥터 레너드 맥코이는 당신의 주치의로서 일주일에 한 번씩 당신을 방문할 것입니다. 또한 그는 당신을 임시로 보호하고 있었을 뿐 정식 책임자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커크가 희미하게 울상을 지었다. 

인사하고 가게 해주세요. 

이번에는, 스팍의 눈썹이 눈에 띄게 꿈틀거렸다. 



스팍이 커크를 찾아온 그 시각에 공교롭게도 레너드 맥코이는 수술중이었다. 한 수술이 끝나고 쉴 틈도 없이 다음 환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의사가 다루는 것은 환자의 목숨이다. 수술 중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았다간 한 인생이 지상과 저승을 오가는 것이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있는 맥코이는 아무리 머릿속에 짐 커크 두 단어가 가득 차 있어도 환자를 대할 때면 잠시 그를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곤 했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워낙 간사해서, 삶의 이곳저곳에서 뜬금없이 생각이 툭 튀어오르곤 한다. 그리곤 꼬리를 물고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수면에 떨어진 물방울이 다시 옆으로 튀어 동그란 파문을 퍼뜨리듯이. 

맥코이는 환자의 흉부를 열어젖히며 커크의 몸 안에 있는 서로 다른 커크의 유품들을 떠올렸고 환자의 조각난 다리뼈를 맞추며 커크의 하얗고 얇은 종아리를 떠올렸다. 

지금의 커크는 이를테면, 이미 부서진 유리를 투명한 테이프로 이어붙여 놓은 상태였다. 테이프의 접착력이 약해지거나 더한 충격이 가해진다면 산산조각날 운명이었다. 

하지만 맥코이는 커크를 쉽게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될 수 있는 한 그의 신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되, 그를 낫게 만들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가 (의사로서) 매일 하는 일처럼, 맥코이는 속으로 끊임없이 되내었다. 

내가 널 치료해줄게(I will cure you). 

수술을 끝마친 맥코이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개인 사무실로 들어왔다. 커크를 보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된 지 오래였다. 터치 키보드에 암호를 입력하자 집 안의 정경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가 당신에게 숨긴 것이 있습니다. 


스팍이 입을 열었다. 커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스팍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당신의 신체가 붕괴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그가 말한 적이 있습니까? 추론컨대 말하지 않았을 것 같군요. 그 이유로 제가 당신을 데려가는 겁니다. 그는 당신이 알아야만 할 사실을 숨겼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신체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저는 적정하고 윤리적인 방법을 통해 당신의 생명을 유지할 방법을 강구할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

제가 당신을 고칠 겁니다(I will fix you). 
제가 또 뭔가를 잘못했나요? 


커크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물었다. 

스팍의 시선이 카메라와 시계를 차례로 오갔다. 끝나지 않을 선문답이다. 스팍은 판단했다. 이미 인식 체계가 고정된 그에게 무언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스팍은 지치지 않고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 닥터 맥코이가 잘못한 것입니다. 저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장소에 온 것이며, 원한다면 그와 함께할 수 있는 하루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하루요? 
예. 단, 맥코이에게 저에 대한 것이나, 떠나는 것에 대한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저와 이야기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십시오. 그는 분명 막으려 할 겁니다. 당신과 맥코이 두 사람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만약 그를 더 오랫동안 보기 원한다면, 제 말을 따르십시오. 
네. 


커크는 고개를 끄덕였고, 스팍은 그것으로 일단 물러났다. 예상보다 커크가 순순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스팍이 알고 있던 예전의 커크와는 또 미묘하게 달랐다는 뜻이었다. 맥코이와 한동안 지낸 탓이겠지. 스팍은 문을 나서며 목례했다. 

내일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스팍의 시선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커크는 인사도 잊은 채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Posted by 카레우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