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15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커크텀 주의, 앵슷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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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이 거칠게 커크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커크가 흐느끼듯 신음을 흘렸다. 그는 두 번째로 혼절한 뒤 깨어난 참이었다. 커크는 저항할 의지조차 잃은 채였고 칸은 그런 커크를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몸을 기울였다.
"아-, 캡틴. 저걸 봐."
커크의 머리칼을 쥐고 칸이 속삭였다. 커크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금실 포스 필드 너머에 스팍이 서 있었다. 그는 양손을 꽉 말아쥔 상태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어. 대단하지. 함장을 걱정하는 마음이 여기, 내 가슴에까지 느껴져."
"스팍......."
커크의 입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칸은 땀과 눈물, 피로 지저분해진 커크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을 본 스팍의 눈썹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칸은 다시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 캡틴은 내 혈액 덕분에 지금 살아있어. 감사를 받을만한 일 같은데."
"그에는 감사를 표하지. 하지만 네가 현재 진행 중인 행위와 함장님의 생명 유지는 아무 상관성이 없어. 당장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한다."
"왜, 내 것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불만인가?"
"함장님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은 네 혈액에 포함된 특정 성분이다. 정액은 관련 없는 물질이지. 넌 지금 내게서 감정적인 반응을 유도하고 있을 뿐이야."
스팍이 다시 입을 열었다. 커크에게 하는 말이었다.
"함장님. 잠금을 해제해 주십시오. 바로 저 자를 제압하고 당신을 구출할 수 있습니다."
커크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칸이 커크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뒤에서 그를 안아 자신의 팔 안에 가두었다. 커크의 어깨에 자신의 턱을 올리며 속삭이는 그는 마치 악마 같았다.
"캡틴, 캡틴 커크. 넌 이미 나와 같아. 우월함을 얻는 과정 중에 있지."
"함장님.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네 피, 네 혈관을 타고 흐르는 그걸 느껴보라고."
"함장님. 거기서 나오셔야 합니다."
"짐-."
칸의 한 마디에 스팍이 그대로 얼굴을 굳혔다. 주먹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커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스팍. 네가..."
"안됩니다."
"...임시 함장을 맡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 마지막... 명령일지도 몰라."
"함장님!"
칸의 손이 커크의 입을 덮었다. 커크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웅웅거렸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잔뜩 젖어 희푸른 그의 두 눈동자만 애처로이 빛났다.
"명령을 받았으면."
스팍이 칸을 죽일듯한 기세로 노려보았다. 칸은 여유롭게 그 눈빛을 받아쳤다.
"따라."
바닥에 초록색 피가 똑, 똑 떨어졌다. 스팍의 주먹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칸이 자신의 말을 끝맺었다.
"-'임시 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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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이 브릿지에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홀로 들어온 그가 말없이 걸어가 함장석에 앉자 곳곳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엔터프라이즈, 임시 함장 스팍이다. 우리는 현재 진행 중이던 탐사 임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함장 제임스 T. 커크의 신병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한다. 엔지니어부는 구금실을 여는 것을, 의료부는 현재 방법 외에 제임스 커크 함장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 이상."
그의 옆에 서 있던 맥코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찾아내라'고? 말은 쉽지!"
"칸이 죽어도 함장님이 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해."
"뭐 어쩌라고. 칸 그 자식의 몸에서 피를 모조리 뽑아놓기라도 할까?"
"가능하다면. 해."
스팍의 단호한 대답에 맥코이가 입을 다물었다. 한숨을 쉬던 그는 곧 스팍의 손에 묻어있는 초록 핏자국을 발견했다.
"스팍, 손!"
"......."
"...손 이리 내."
맥코이는 스팍이 내민 손의 상처에 리제너레이터를 들이밀었다. 손톱 자국을 보니 주먹을 세게 쥐어 생긴 상처가 틀림없었다. 이래뵈도 반은 인간이 맞군. 한숨을 쉬는 맥코이였다.
상처를 치료받으며 스팍은 내심 자신이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함장에게 굴욕을 주는 것을 보고 일어난 반응, 그것은 정당한 분노였다. 그는 나의 함장이기 때문에. 내가 지켜야 했고 지켜야 하는 함장이기 때문에. 그리고 제임스 커크의 말마따나, '친구'이기 때문에.
하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을 때는 바로 특정한 한 순간이었다.
바로 칸이 커크를 향해 '짐'이라고 불렀을 때였다. 동일한 단어인데 닥터 맥코이가 짐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달랐다. 자신도 아주 가끔 그러한 호칭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가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기 때문에 부를 따름이었다. 그런데 칸 누니엔 싱. 그가 뭐라고 제임스 커크에게 서로가 친밀한 관계인 것처럼 '짐'이라고 부르는 거지? 더군다나 커크에게 고통을 준 그가? 심지어 한 번 커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자가?
답이 없는 질문들이 속에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가 커크의 물기어린 얼굴을 쓰다듬었을 때, 또는 커크의 입을 막아 그의 눈동자만 도록도록 굴리고 있었을 때, 그 순간들마다 무언가 껄끄러운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을 기억했다. 심지어 칸이 커크를 범하고 있는 그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불쾌감이 알알이 차올라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도 떠올랐다. 이렇게 토할 것처럼 역겨울 데가. 몸을 떨던 스팍은 이 모든 감정을 자신의 함장을 모욕한 것에 대한 합당한 분노로 돌렸다.
-
"크으..."
커크는 일어서서 걷기는커녕 제대로 앉아있을 수조차 없었다. 칸이 뒤에서 안은 팔을 풀지 않았기에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었을 뿐, 그대로 기절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기력이 쇠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약 2시간 정도. 칸에게 유린당한 시간이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다만 커크는 깨어난 이후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148시간마다 맞아야 하는 혈청을 혈관 속에 직접 주사하는 대신 식도를 통해 흘려보냈기에 흡수되는 것도 더 느릴 터였다. 커크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스팍들이 구금실 보안을 해제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15분쯤? 빠르면 10분? 그동안 칸의 집중을 흐트러놓아야 했다.
"칸......."
커크가 가까스로 단어를 내뱉었다. 칸은 반응하지 않았다. 띄엄띄엄 커크가 말을 이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야.... 스타플릿의 복수를 막은 일... 원망하는 거야...? 아니면......."
"이제 와서 나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건가. 짐?"
"그렇게 부르지... 마."
칸이 커크의 뒤통수에 대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감싸듯이 그러쥐었다.
"길고 너무나 오래된 얘기지. 기억할 필요도 없어. 중요한 건, 우월한 존재가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거다. 그게 곧 법칙이고 세상의 진리지."
커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지구 역사학, 20세기의 끄트머리. 우성학이 대두된 이후 초인들이 나타나 지구의 4분의 1을 점령했던 시기. 인종 전쟁, 세계 대전으로 불리던 파괴와 학살의 시대. 증강 인간(혹은 강화 인간)이라 알려져 있는 이 칸 누니엔 싱과 72명은 전쟁이 막을 내린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었을 것이다. 혹은, 다시 깨어날 날을 기다리며 스스로를 가두었던 거겠지.
"그건 완전히 무의미한 싸움이었어..."
"과연 그럴까? 불완전하지만, 너 또한 우리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데."
"......."
자신과 같은 존재, 우월한 존재가 하나 더 늘어난다, 라.
칸으로서는 사실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시 72명의 동료를 깨워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계획은 아직까진 없었다. 그들이 지하 깊숙이에 처박혀 있다 해도, 어쩌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그러니 아무 방법도 없는 지금은 그저 잠깐의 여흥을 즐길 시간이라 생각했을 뿐. 혼란을 느끼고 있는 이 작은 존재를 손아귀에 쥔 채로 말이다.
멍하니 구금실 밖을 살피던 커크의 눈에 작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푸른 셔츠, 스팍이었다. 커크는 바쁘게 뛰기 시작한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칸의 말에 집중했다. 칸은 허탈하게 웃었다.
"스타플릿이 네게 내릴 처분이 더 기대되는군. 함께 지하에 처박힐 가능성이 높아. 짐. '함께'."
칸이 강조했다.
"엿이나 처먹어."
커크가 대답했다.
순간 구금실의 보안이 해제되었다. 갑작스레 문이 열리며 나는 소리에 칸은 벌떡 일어났고 멀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팍이 그를 향해 페이저를 쏘았다. 그가 쓰러진 사이 뛰어든 보안요원이 커크를 부축해 나왔다. 페이저를 살상용으로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칸은 5초 후에 눈을 떴다. 하지만 그는 커크가 나간 것을 보고도 별반 당황하지 않았다.
"다시 보안 걸어. 스콧 소령. 최상위 코드로."
스팍이 통신을 보내자 구금실이 다시 굳게 닫혔다. 커크는 스팍 앞에 서서 히죽 웃었다. 한없이 반가운 표정이었다.
"하! 올 줄 알았다니...까......."
"짐!!"
그는 그대로 스팍을 향해 쓰러져버렸다.
"닥터! 간호사!"
커크를 품에 안고 스팍이 옆을 돌아보았다. 구금실 안에서 칸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커크텀 주의, 유혈(?), 앵슷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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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말해."
"없다고 했을텐데."
구금실 안에는 칸이 서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서 있는 것은 스팍이었다. 그는 눈썹 한쪽을 치켜뜨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함장님의 신체에 일어난 현상을 설명해."
"나의 가족이 되는 과정 또는 열등한 쓰레기가 되는 과정이지."
"의미가 불분명하군."
칸이 나직이 비웃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다시 자신의 선원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정기적으로 피를 뽑히는 일, 그것뿐이었다. 자신이 거부한다 해서 거부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제임스 커크의 생명 유지 장치와 다름없었고 제임스 커크는 자신의 피를 통해 시한부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것조차도 우스운 일이었는데, 이제는 더 웃기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제임스 커크가 칸과 같은 유전자 조작 인간으로 변해가다니!
"혈청의 성분만으로는 몸의 유전자 전체가 변화하는 것이 불가능해. 무슨 방법을 쓴 거지?"
"열등한 것은 제거되기 마련이지. 우월한 피로는 불가능한 게 없어. 잡종 벌칸."
칸의 눈동자에 경멸과 조롱의 빛이 떠올랐다. 스팍은 담담히 그 눈빛을 받아냈다.
"그를 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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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는 의무실 베드에 묶여서 누워 있었다. 그는 혼미한 정신으로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날 죽여, 본즈... 날 죽이라고......."
옆에서 하이포를 들고 있던 본즈가 욕설을 내뱉었다.
"닥쳐, 짐. 시간이 다 되서 그런 거니까, 조금만 참아."
"아냐... 안돼. 그 혈청은......."
"이게 널 살리는 거라고. 빌어먹을, 가만히 좀 있어!"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 커크가 몸부림을 쳤다. 더 혈청을 맞는다면 칸처럼 될 것이 분명했다. 커크는 절대로 그런 자식과 같은 종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놈의 피로 연명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은 삶이라고 할 수 없었다! 기생체, 흡혈귀, 괴물, 뭐든지, 뭐가 됐든지 간에, 끔찍했다!!
커크가 몸을 뒤틀자 그를 잡아맨 침대가 세게 흔들렸다. 간호사들이 전부 달라붙었다.
"치워.......!"
커크를 묶었던 줄이 끊어졌다. 맥코이가 그에게 달겨들었다.
"짐!!"
커크의 손에 의해 맥코이는 멀리 날아갔다. 간호사들 또한 나가떨어졌다.
급히 메디컬 베이에서 달려나온 커크는 죽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뚜렷하게 떠올랐다.
"기대대로군."
칸의 말에 커크가 눈을 치켜떴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칸이 편하게 앉아 있었다. 커크는 함장의 권한으로 구금실 포스 필드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에서 다시 벽이 닫혔다.
"컴퓨터. 구금실 보안 레벨을 최고로 올려."
함장 이외의 권한으로는 구금실을 열 수 없도록 조치하고, 커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 게다가 칸과 같은 힘도 얻었으니, 이 힘으로 칸을 두들겨 팬다면 적어도 원없이 다시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크는 얼굴을 굳히며 칸에게 말했다.
"네놈처럼은 되지 않을 거다."
"여전히 지능은 열등하군."
커크가 고함을 지르며 칸에게 달려들었다. 그를 쫓아 크로노스에 갔을 때처럼 그에게 주먹을 날리고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 칸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젠장...! 젠장!! 네가... 네가 뭐라고!!"
그것이 더 화가 났다. 그가 아파하는 모습이라도 보인다면 기분이 풀릴 텐데. 미안하다는 사과라거나 반성하는 모습 따위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저 내가 고통스러웠던 만큼 그도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는데.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 그 죽음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데.
칸을 깨우고 협박했던 마커스 제독은 그에 의해 죗값을 치뤘고, 칸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냉동된 채 지하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파이크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죽임을 당했어야 했지? 살인자 칸은 여기에 멀쩡히 살아 있다. 빌어먹게도 자신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원망의 대상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 그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끔찍했다.
"죽어버려!!"
그래야 나도 죽을 수 있어.
칸을 집어던진 커크가 숨을 헐떡거렸다. 벽에 세게 부딪친 뒤 바닥에 떨어진 칸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커크는 눈을 깜빡였다. 타임아웃이 다가오고 있었다. 칸의 혈청을 주입받지 않으면, 곧 죽겠지. 하지만 칸의 혈청을 주입받으면, 칸과 같은 족속이 되겠지. 어느 쪽이든 끌리진 않았지만 죽는 쪽이 마음이 더 편한 것만은 분명했다.
커크가 비틀거리자 칸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놔, 새끼야...!!"
그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한 칸이 중얼거렸다.
"혈청. 받지 않았군."
"그래, 자식아. 이제 자유로워질거야....... 뒈질 거라고. 네놈 따위한테 도움 받지 않아..."
칸이 손을 들어 자신의 팔을 세게 그었다. 금방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커크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뭐야......!"
"먹어."
"미친 새끼...! 꺼져!!"
커크의 등이 구금실 벽에 부딪혔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황급히 주변을 더듬었지만,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커크는 혼미한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하며 미친듯이 중얼거렸다.
"미친 놈... 미친 자식...!"
칸이 커크를 붙잡았다. 커크는 온 힘을 다해 칸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미 기력이 빠진 상태였다. 커크가 있는 힘껏 고개를 돌려 그를 거부하자 칸은 별수 없다는 듯 입에 자신의 피를 머금었다.
"혈청으로 분리할 필요 없어. 이걸로 충분해."
"날 죽게 내버려 둬...!!!"
커크가 발버둥치자 칸이 커크의 두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커크의 머리채를 뒤로 잡아당겼다. 커크의 목이 젖혀졌다.
"커헉, 놔...! 제발...!!"
칸은 자신의 입을 커크의 입으로 가져갔다. 검붉은 피가 커크의 입으로 쏟아졌다. 커크는 그것을 삼키지 않으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칸의 피가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비참함과 무력감에 못이겨 눈물이 나왔다. 칸은 무자비하게 자신의 피를 커크의 목구멍에 부어넣었다. 기침이 나왔지만, 칸은 자신의 팔에서 피를 빨아들일 때 빼고는 그것을 멈춰주지도 않았다.
"하아, 하악, 켈록! 켈록!!"
커크가 피를 도로 토해낼 지경이 되어서야 칸은 잠시 멈췄다. 커크의 얼굴은 피와 눈물로 범벅된 상태였다.
"하아, 하아, 하아... 개새끼......."
"일부는 소화될테니 어차피 충분하지 않아."
"날, 날... 왜...!"
커크의 모든 말을 무시하고 칸이 손을 뻗었다. 그는 커크의 버클을 잡아 풀었다. 축 늘어져 있던 커크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칸의 손을 쳐냈다. 이제 칸이 정말로 미친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이 개자식이...!!"
"제임스 커크."
"닥쳐, 지금 당장...! 떨어져...!! 컴퓨터! 문을-."
칸이 커크를 잡아 눌렀다. 그의 무릎 아래 깔린 커크가 지지 않겠다는 듯 몸부림을 쳤다. 다시 소리를 지르려는 커크의 귀에 대고 칸이 속삭였다.
"캡틴. 지금 문을 열면 너와 나 중에 누가 먼저 나갈 것 같나?"
"크으......!"
"선원들을 아끼지 않나? 결정해. 이 안에서 내가 네 선원들을 죽이는 모습을 바라볼 건지, 아니면나를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갈 건지."
커크가 욕설을 내뱉었다. 어느 쪽이든 개같은 결론이잖아...!
"왜 날-."
"아-. 왜 널 살려두는지는 묻지도 마. 네가 비참하게 살아가는 게 나의 복수니까. 그러니 살아서, 내 앞에서, 죽는 것보다 끔찍한 삶을 살아. 캡틴 제임스 커크. Shall we begin?"
칸이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커크의 바지를 잡아내렸다. 뒤늦게 달려온 맥코이와 스팍, 다른 선원들이 구금실 밖에서 그 광경을 망연자실하게 보고 있었다. 우후라는 입을 가렸고 술루는 표정을 굳혔다. 연락을 받은 기관실에서 최선을 다해 구금실 보안을 해킹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모두 여기서 나가. 함선 운항에 차질이 생겨."
스팍이 명령을 내렸다. 선원들이 망설이며 그곳을 벗어났다. 마지막으로 나간 것은 맥코이였다. 그는 스팍을 향해 빈정거렸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나 보지? 냉혈한 개자식아."
스팍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먹을 쥔 그의 손등 위로 초록 힘줄이 튀어 나왔다. 그의 시선은 한 곳에 못박혀 있었다. 구금실 안에 쓰러져 있는 제임스 커크와 그의 위에 올라타 허리를 움직이는 칸.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커크텀 주의, 제가 칸에 영업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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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맥코이의 말에 칸이 말없이 팔을 뻗었다. 그는 이전에도 갇혔던 바 있던 엔터프라이즈 내의 구금실 안에 서 있었다. 맥코이는 그의 팔에서 여느 때와 같이 채혈을 했다. 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벌칸보다 더한 놈. 맥코이는 그를 그렇게 평했다. 칸 누니엔 싱, 스타플릿에 복수를 계획하고 다수의 고위 장교를 살해했으며 엔터프라이즈를 폭파 직전까지 몰고 갔던 인물. 깊은 지하 창고에 냉동되었던 그를 다시 꺼내야 했던 건 다름아닌 제임스 커크 때문이었다.
칸의 혈청으로 간신히 살아났던 커크는 깨어난 지 일주일 후 다시 쓰러졌다. 예기치 못했던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허둥지둥하던 스타플릿과 엔터프라이즈는 차선책으로 다시 칸의 혈청을 주입했고, 커크는 바로 깨어났다.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지만, 일주일마다 그 일이 반복되었다. 커크가 함장으로써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 칸의 혈액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5년 임무를 포기하거나 칸을 데리고 다니거나 둘 중의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엔터프라이즈는 칸 누니엔 싱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 부담을 진다는 전제 하에 그를 함선에 태웠다.
그의 대접은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실험쥐처럼 구금실에 갇혀 있다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공급받았고, 엄중한 보안 과정 중에 채혈을 했다. 칸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소할 뿐이었다.
"너희도 다를 바 없군."
입닥쳐, 맥코이가 읊조렸다. 엔터프라이즈의 선원 모두가 칸을 꺼렸다. 잠깐 엔터프라이즈에 탔다고는 하지만, 커크를 위협하고 마커스 제독을 살해하던 그의 모습은 배신감 그 자체였다. 결국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그들의 함장이던 커크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었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는 유전자 조작으로 다시 태어난 증강인간이었다. 지능, 힘, 모든 것이 인간의 기준을 가볍게 상회했다. 본질적으로 인간이나 인간이지 않은 자와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네 함장도 얄궂은 운명이야."
"닥치라고 했어."
"원한다면."
자신의 아버지와 같았던 크리스토퍼 파이크를 죽인 칸, 그가 자신의 생명줄이라니. 커크 또한 몇 번이고 이 빌어먹을 관계에 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차라리 그냥 죽을까 싶기도 했다. 그의 혈청을 주입받지 못하면 그의 삶은 7일, 148시간으로 제한된다. 시한폭탄과 같은 삶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번 죽음을 경험했던 커크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원래 죽었어야 할 자였다. 커크는 다른 모든 희생자들에도 불구하고, 공연히 살아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원수나 다름없는 칸을 태워야 하는 엔터프라이즈 선원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부터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어쨌든 살인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커크가 칸을 피하는 이유였다. 감사? 개나 줘버려.
"그의 동태는?"
"변함없어."
"그래."
맥코이는 커크가 칸을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커크가 칸의 혈청 없이도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루종일 실험과 연구를 하며 메디컬 베이를 떠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없어도 탐사는 순조로웠다. 모든 대원들이 그런 맥코이를 배려해주었고 커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맥코이를 찾던 커크는 구금실까지 내려왔다. 맥코이가 칸의 피를 채혈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커크는 텅 비어있는 복도를 보고 당황했다. 그러다 의자에 앉아있던 칸과 눈이 마주쳤고, 그는 급작스레 맞닥뜨린 상황에 미간을 찌푸렸다.
"Captain."
커크는 대답없이 몸을 돌렸다. 칸과의 대화가 전혀 유익하지 않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배운 바였다.
"겉보기엔 멀쩡하군."
칸의 말에 커크는 걸음을 멈췄다. 어쩌면.
칸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면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숨겨진 계획이 있든지 간에 자신과 엔터프라이즈가 이용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커크는 다시 몸을 돌려 투명한 포스 필드를 사이에 두고 칸의 앞에 섰다.
"또 뭘 숨기고 있어? 개자식아. 말해."
"보는 바와 같이, 아무것도.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단지 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지. 아닌가? 너희들이 데려왔잖나."
"나를 이렇게 만든 게 네 의도였을지도 모르지."
"오, 캡틴. 난 널 방사능 코어에 처넣은 적이 없어."
"나였든 아니면 누구든. 네 피를 주입하게 만들어서, 이렇게 함선에 타게 해서 결국 네 목적을 이루려는지 어떻게 알아."
칸이 명백한 비웃음이 담긴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게 하찮은 것을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나. 캡틴. 내 혈청이 네 뇌는 제대로 복구하지 않은 모양이군."
"닥쳐."
커크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네놈 자식 없이도 살아갈 방법을 찾을 거야. 그래서 널 다시 얼음으로 돌아가게 해주겠어."
"'부디' 그래주시지."
"반드시. 반드시 내가 널-."
결의를 다지는 커크를 보는 칸의 눈에 잠깐 이채가 어렸다.
"캡틴. 당신의 태도가 내 마음을 바꿨어. 정보를 하나 알려주지. 흥미로울 거야."
"뭐?"
"당신이 내 혈청을 맞은 일자로부터 98일 뒤. 약 이틀 뒤겠지. 그때 다시 날 찾게 될 거야."
칸의 말에 커크가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으름장을 놓고 협박을 해도 칸은 입을 열지 않았다. 커크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그때부터 입을 굳게 다문 채, 맥코이가 찾아올 때까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금실 앞에서 칸을 노려보고 있는 커크를 발견하고 맥코이가 급히 달려왔다.
"짐? 대체 왜 여기 있어?"
커크는 마지막으로 칸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냐.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러 왔어. 이만 갈게."
"그래, 가봐."
맥코이는 커크를 전송하고 칸을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 또한 커크의 것만큼이나 좋지 않았다.
-
칸과의 대화 이후 이틀 내내 커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한 내용을 함부로 함선의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들을 걱정시키느니, 커크는 스스로 해결하는 편을 택했다.
"스팍. 내 쿼터로 와."
"알겠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된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스팍이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스팍은 벌칸이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적절한 힘으로 상황을 통제하리라. 커크는 컵을 만지작거리며 개인 쿼터에 앉아 있었다.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스팍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앉아."
스팍이 커크의 말에 따라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재차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그냥. 얘기나 하자고 불렀어."
"사적인 용무군요."
"그렇지. 그간 이렇게 이야기할 시간도 별로 없었잖아. 안 그래?"
스팍이 커크의 말을 부정했다.
"함장님은 함교에서도 충분히 사적인 대화를 하고 계십니다."
"어쨌든. 단둘이 말이야."
"인정합니다. 이런 시간은 약 2개월 만이군요."
"그래, 그래."
커크가 스팍의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자신도 목이 타는지 물 몇 컵을 연거푸 들이키는 커크였다.
이런저런 사담이 오고갔고, 어느새 시각은 2300에 가까워졌다. 스팍이 몸을 일으켰다.
"더이상 용건이 없으시면 저는 가보겠습니다."
커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앉아."
"함장님?"
"명령이야."
커크는 얼굴을 숙이고 있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스팍은 커크의 명령에 따라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커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팍은 커크의 손이 하얗게 된 채 의자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상치 않았다. 스팍이 벌떡 일어나 커크에게 다가갔다.
"함장님의 신체에 이상이 있다면 닥터 맥코이를 부르겠습니다."
"부르지 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명백히 함장님의 몸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판단됩니다."
"내 몸이...."
커크가 쥐고 있던 의자가 부숴졌다. 스팍이 놀라 일어섰다. 커크는 몸을 떨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커크는 몸을 움직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스팍, 날 잡아."
"함장님?"
"아니, 차라리 날 기절시켜."
"무슨-."
"빨리!!"
스팍이 커크에게 다가왔다. 명령에 의문을 느꼈지만, 그는 커크의 말에 따라 너브 핀치를 시도하려 했다.
그 순간 커크가 스팍의 팔을 잡아 그를 벽에 집어던졌다.
"!"
"내, 내가 한 게-!!"
몸을 일으킨 스팍이 다시 커크에게 다가왔다. 커크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팍은 그제서야 커크의 힘이 인간의 것을 상회해서, 칸의 것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칸이 계획한 것이 이것이었나? 스팍은 잠깐의 추론을 멈추고 다시 커크를 제압하려 시도했다.
"아악!!"
커크가 비명을 질렀다.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때처럼, 칸이 너브 핀치를 당하고도 기절하지 않았던 것처럼, 커크 또한 너브 핀치를 당하면서도 몸이 그것에 저항하고 있었다. 스팍은 적은 가능성의 추론이 점차 기정사실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