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본즈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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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이란 무엇일까. 상실이란 또 무엇일까. 스팍은 침묵을 씹으며 골똘히 사고했다. 몇 번이나 입 안에서 굴리고 핥아 차츰 원형이 되어가는 작은 사탕처럼, 그런 감각에 무뎌질 수 있을까. 그는 잃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고향, 어머니, 완전한 벌칸으로서의 삶- 혹은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삶, 있었을지도 모르는 친구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되찾은 것. 제임스 커크.
스팍은 떠올렸다. 그가 자신을 거절했을 때 얼마나 상실감에 시달렸던가를. 그리고 얼마나 큰 절망감이 자신을 잡아먹었는지를.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몇 번, 벌칸에게 있어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는 감정 표출도 여러 번.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스팍은 끊임없이 내면의 자신에게 자문을 구했다.
자신은 그를 사랑한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한다. 그렇다면 만약-.
그가 본인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의 의사에 따라 그를 사랑하는 것을 중지해야 하는가. 혹은, 나의 의사에 따라 계속 그를 사랑해야 하는가.
스팍은 점차 복잡해지는 질문에 짧게 숨을 토하고 입을 다물었다. 스팍은 과학자였지 독심술사가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을 토대로 예상되는 부차적 사실을 예측할 뿐, 그의 심리와 생각을 완전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종족적 특징 (이자 장점) 중 하나인 본드였는데 이제는 그것조차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무능력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때마침 터보 리프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만 가득찬 발걸음 소리가 브릿지를 울리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왜 부르셨습니까, 잘나신 부함장님?"
"개별적으로 얘기하지."
스팍과 맥코이는 자리를 이동했다. 여전히 한쪽 눈썹을 심하게 찡그리고 틱틱대는 맥코이는 일전 커크와 칸의 일로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맥코이 또한 커크의 친우이니만큼, 칸의 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스팍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타개하는데 도움을 요청해도 되겠지.
"칸이 현재 함장님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니, 칸을 제압하기 위해 전략을 짤 것을 제안한다."
"그럼 왜 장교급 회의를 소집하지 않고?" 맥코이가 팔짱을 낀 채 되물었다.
"그가 의심할 가능성이 높아. 함장님을 배제하고 최소의 인원으로 진행한다. 먼저 가능한 플랜에는 3가지가-."
맥코이가 스팍의 말을 끊었다.
"잠깐! 짐 없이 진행하겠다고? 그거 월권 행위인 건 알지? 걸어다니는 규정집 양반아?"
"그 호칭에 대해서는 넘어가도록 하지. 현재 함장님께서는 1순위 위협인 칸에 의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야. 부함장인 내게 권한이 있어."
"이 머저리 같은-."
맥코이는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그 또한 복잡하게 생각하는 듯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내려가서 짐이랑 무슨 얘기 했어? 아니, 애초에 왜 너같은 고블린이 실종되었던 건데?"
"함장님과 칸이 내려오도록 의도적으로 행동했어. 저곳에 칸을 두고 이 별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함장님께서는 내 계획에 동의하지 않으셨고-, 결국 마인드멜드를 통해 그가 협박당한 사실과 칸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음을 일부 알아냈지. 이것으로 의문점이 충분히 해소되었다면 플랜에 대해 다시 설명하겠어."
맥코이가 입을 떡 벌렸다. 스팍은 그 반응에 다소의 의아함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동의하지 않았다고?"
"칸을 두고 간다는 내 계획에 찬동하지 않으셨다. 또한 마인드멜드도 거부하셨지."
"그런데, 너, 방금 그 마인드멜드인지 뭔지 했다고 말했잖아."
스팍이 긍정했다. 전혀 아무런 문제점을 찾지 못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지. 그가 자의로 내게 허락할 일은 확률적으로 일어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해야만 했어. 닥터 맥코이. 이해하지 못하나? 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함장님을 차지하고 있어. 당신이 좋아하는 문학적 비유를 예로 들자면 그를 '잠식'하고 있지. 함장님은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맥코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었다. 스팍은 그제야 그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분노를 파악하고 멈칫했다.
"스팍!! 이 생각없는 자식아!"
"그 호칭은 부적절해. 나는 충분히 사고하고 거듭 고려하여-."
"아. 그래? 그럼 이 병신아!!!"
스팍이 이에 대한 항변을 할 새도 없이 맥코이가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네가 한 짓이랑 칸이 한 거랑 뭐가 달라?? 마인드멜드라고 했어? 어? 그 정신융합인지 뭔지, 그걸로 머리를 들쑤셔 대면 짐이 좋아라~ 하면서 받아줄 것 같아? 아무리 본인이 지금 위태로운 상황에 있다 해도, 그걸 네가 나서서 해결해 준다고 하면, 짐 커크 그 자존심만 센 자식이 감사해 할 것 같냐고!"
내심 찔리면서도 스팍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나중에는 감사하겠지. 일단 나는 그의 연인이니, 그를 책임질 의무가 있어."
"의무 좋아하시네. 네가 주장하는 건 권리야. 네 마음대로 할 권리."
결국은 스팍이 인상을 썼다. 맥코이 또한 스팍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모두 그를 위해서야."
"그런 말로 포장하지 마." 맥코이가 거진 으르렁거렸다.
"1차적으로 엔터프라이즈를 위해서고, 2차적으로 그를 위해서야."
"그만하라고. 너 진짜 짐 커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한숨을 내쉬며 맥코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 반응에 스팍 또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이에 못지 않은 질투가 치솟았다. 맥코이가 커크의 오랜 친우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주먹은 이해하지 못했다.
쾅, 하고 스팍이 컨퍼런스실의 책상을 내리쳤다.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실금이 뻗어나갔다.
"모른다. 스타플릿 아카데미에서 그를 만나기 전의 일들은 알지 못해. 그가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해. 하지만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알아. 그가 나를 사랑한- 사랑했다는 것도."
스팍의 감정 표출에 맥코이가 놀랐는지 팔짱을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상은 풀지 않은 채였다. 스팍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도 놀라웠으나 그가 그렇게까지 감정에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맥코이 또한 스팍이 진심으로 커크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말았다. 방법이 너무도 틀렸을 뿐.
"하지만 그가 나를 거절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아. 나의 어떤 행동이 그를 화나게 했는지 말해주지도 않아. 닥터 맥코이. 나는 이런 방식 밖에는 알지 못해."
"그를 존중해(Respect him)."
맥코이가 툭, 던졌다. 짧은 두 단어가 순간 제대로 맞물리지 않았다. 스팍이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를 존중해. 닥터 맥코이. 함장으로써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아니, 그냥! 그냥 그의 의사를 존중하라고. 솔직히 말할게. 내가 봐도 그놈이 멍청하고, 답이 없고,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긴 해. 규칙도 밥먹듯이 어기고."
옳은 말이군, 스팍이 긍정했다. 맥코이는 그런 스팍에게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 녀석도 그것밖에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너랑 똑같다고. 쌍으로 멍충한 자식들아. 그 녀석이 뭔가 제대로 못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그게 제임스 커크야. 바보같이 탐사에 내려가서 심심하면 다쳐오는 게 이해가 안 가? 그게 제임스 커크야.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 스팍이 입을 다물었다.
"젠장, 내가 대체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빌어먹을. 짐이 생각이 없어 보여도, 생각하고 고로 존재하는[각주:1] 하나의 인간이야. 아무리 그를 위해서라고 해도 기분 나쁜 일은 기분 나쁜 거야. 알아들어?"
스팍은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쩌면, 입을 열지 못하는 건지도 몰랐다. 스팍은 미간을 모으고 곰곰히 생각했다. 맥코이의 말이 일부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분명 자신의 잘못도 존재했으며, 커크의 잘못도 있었다. 그것은 둘이 차근차근 이야기하며 풀어나가야 할 일이리라.
맥코이는 씩씩대며 모든 속을 풀어내고는 쳇, 하며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땀이 났다. 자신도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 못한 주제에 잔소리라니, 그럴 자격이 되나 싶었지만 커크나 스팍이 이런 식으로 어긋나는 건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파멜라는, 나는 파멜라에게 잘 했던가. 이런 것을 진작에야 알았다면 그런 식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긴 한숨을 내쉰 맥코이가 스팍을 돌아보았다. 스팍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 있었고 여느 때보다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에 걱정이 된 맥코이가 짐짓 투덜거리며 물었다.
"알고 나니까 무섭냐? 고맙다는 인사는 됐어. 분명 금방 화해할 수-."
"맥코이."
"응?"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스팍이 양 주먹을 세게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맥코이가 의사의 직감으로 급히 다가가 스팍을 살폈다. 저체온인 벌칸의 특징상 땀은 흘리지 않았지만, 땀구멍이 있었다면 땀을 줄줄 흘릴 것 같은 모양으로 스팍이 이상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본드가 다시 연결됐어……." 스팍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본드? 뭐?"
"현재 칸이 함장님과 관계하고 있고, 나는 정신적 연결로 그걸 느낄 수 있어. 맥코이.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참아야 하나? 이 상황을 존중해야 해? 조언을 요구한다."
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아직까진 1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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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을 올려보낸 뒤, 커크는 회의실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든 스팍이 읽어낼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결국 커크는 될 수 있는 한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커크는 가만히 앉아 테이블을 두드렸다. 사실 스팍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칸을 제압하고 그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해결할 방법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걸로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칸의 혈청에 의해 그와 같은 증강 인간이 된 커크는 수만 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시한 폭탄, 생체 인식 기술, 더티 밤, 칸이 마음만 먹으면 엔터프라이즈는 그 순간 우주의 먼지로 화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칸이 자신이 죽는 즉시 엔터프라이즈가 폭발하도록 설정했다면? 혹은 일정 시간마다 패스코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폭발하는 폭탄이라면? 자신의 생체 정보로만 해제할 수 있는 자폭 알고리즘을 해킹해 넣었다면? 커크는 칸이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명민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가 했던 말 그대로 '그만큼 똑똑했다'.
때문에 스팍과 같이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커크는 여전히 칸이 무엇을 위해 자신을 치료했고 자신에게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단번에 엔터프라이즈를 인질로 잡아 모두를 죽이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커크가 아는 칸은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일종의 게임에 불과했고 여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은 무언가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어떠한 한 가지 이유. 그것 때문에 그는 엔터프라이즈에 남아 있기 원했다. 동시에 그게 바로 커크가 알지 못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삐빅, 소리를 내며 회의실 문이 열렸다. 커크는 고개를 돌려 인물을 확인했다.
"끝났다."
뚜벅뚜벅 걸어들어온 것은 칸 혼자였다. 아레비크 대표는커녕 평화유지군조차 따라붙지 않았다. 흉흉한 바람소리만 통로를 채우다 무정하게 닫히는 문에 의해 복도로 쫓겨났다. 칸의 손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고, 얼굴은 표정 없는 유령처럼 희었다. 단지, 묵직하게 젖은 듯 보이는 스타플릿 공용 셔츠만 지독히도 검었다. 커크는 그런 칸과 눈이 마주친 순간 모든 정황을 알아차렸다. 커크가 한숨을 쉬며 다시 엔터프라이즈에 연락을 넣었다.
"남은 보안 요원들과 나, 칸을 빔업시켜줘. 협상은 결렬됐어."
아예, 캡틴. 그에게 대답하는 술루의 목소리를 들으며 칸이 입술 끝을 미묘하게 일그러뜨렸다.
"버릇없는 강아지는 챙겼나 보군."
"네가 알 바 아냐. 협상 결렬에 대한 변명이나 해보시지." 커크가 딱딱하게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금색 빛이 두 사람의 몸을 휘감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그 빛무리 사이에서, 칸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정당방위였어."
-
아레비크 대표와 그들의 일행은 카다시안의 도망자들이었다. 그들은 카다시안에서 훔쳐온 듀테륨 운반 셔틀을 이용해 행성 연방을 속이려 했고, 일단 행성 연방과의 협상 하에 연방 소속이 되면 카다시안의 추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추적을 피하지 못한다 해도 일단 협상이 체결되는 순간 동맹으로서의 효과가 발휘된다. 그럼 행성 연방은 꼼짝없이 카다시안과 전면전을 펼치게 되는 것이었다. 협상은 결렬되어야 마땅했다.
-라고, 스팍이 보고했다. 커크는 별 이견 없이 그대로 상부에 보고하라 지시했다. 그 외의 대화는 없었다.
"제 시프트에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터보 리프트로 향하던 스팍을 커크가 불러세웠다. 스팍은 희미한 희망을 갖고 그를 돌아보았다. 한바탕 하고 헤어졌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커크는 마치 실드를 내린 듯 견고하게 자신의 생각을 방어하고 있었다. 본드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커크가 어떻게 자신의 정신을 차단하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동시에, 화가 나기도 했고 억울하기도 했다. 이것 또한 칸의 영향이 틀림없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시프트 변경됐어. 확인해."
커크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스팍은 씁쓸한 감정을 갈무리하며 PADD를 들어 교대 시간표를 확인했다. 캐롤의 부서 이동과 칸의 전입으로 인한 브릿지 멤버들의 시프트 변경이 있었다. 가장 먼저 자신과 커크, 칸의 시프트를 훑어본 스팍은 입을 굳게 다물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기존에 동일한 시간대였던 커크와 스팍의 시프트가 변경되고 칸과 커크가 완전히 동일한 시간대로 붙어 있었다. 칸은 (심지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어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였다. 커크는 그런 칸을 제어할 수 있는 게 자신뿐이라 여겼다. 그래서 커크는 칸을 감시하는 동시에 브릿지 멤버들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서라도 시프트를 변경한 것이었지만, 스팍은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커크가 어떤 의도로 변경했는가를 알았기에 더 격렬하게 분개했다.
"함장님."
"이의는 받지 않아."
스팍이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커크가 딱 잘라 말했다.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느껴지지 않는 커크의 얼굴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스팍은 조용히 그의 곁에 서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대화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그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내면의 벌칸은 그 어떤 해답도 제시해주지 못했다.
"의자 지켜."
설상가상으로 바뀐 시프트대로라면 곧 칸과 커크가 자리를 비울 차례였다. 커크가 일어섰고 스팍은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커크와 칸이 돌아올 때까지, 아니, 두 사람이 어디로 갈지, 혹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무슨 일을 할지, 자신이 아무것도 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답답했다. 게다가 본드가 먹히지 않으니 직접 표현해야 했다. 스팍은 자신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커크는 의외라는 듯 스팍을 돌아보았다. 스팍은 애써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아무렇지 않게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상관 말라거나 왜 그런 걸 묻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은 것에 스팍은 안도했다. 그 사이에 커크와 칸은 터보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마치 바람이 손아귀를 빠져나가듯, 건조한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듯 그를 보내야만 한다는 사실에 스팍은 진한 무력감을 느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스팍."
"예?"
터보 리프트가 닫히기 전, 커크가 그를 불렀다. 스팍은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커크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이전에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무슨 일-."
"내 명령 잊지 마."
문이 닫혔다. 잠깐 살아났던 심장도 그만, 죽어 버렸다.
-
엔터프라이즈에는 약 800여명의 크루를 위한 쿼터가 준비되어 있었다. 게스트용 쿼터도 충분했고, 하다못해 중도 하차한 크루들의 빈 자리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칸이나 커크나 다른 공간을 고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커크가 자신의 쿼터를 열었고 칸이 자연스럽게 뒤따라 들어왔다. 불을 켜고 짧게 한숨을 쉰 커크가 책상으로 걸어가는 도중, 뒤에서 삐빅거리며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커크가 돌아보며 물었다.
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뭇 긴장한 커크가 재차 입을 열었다.
"뭐냐니까? 왜 잠궈. 누가 올지도 모르는데."
"누구." 칸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커크는 그 단어 하나만으로 칸이 불쾌한 상태라는 것을 파악했다. 마치 어린 시절 귀가하는 삼촌의 목소리만 듣고도 그날 헛간에 숨어야할지 소파에 앉아있을지를 결정했던 것처럼, 커크는 본능과도 같은 감각으로 칸의 기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커크는 가까스로 표정을 바꿔 유하게 대답했다.
"아냐. 내가 잘못 생각했어. 아무도 안 올 거야."
하지만 상대방이 어떠한 감정 상태인지 안다고 해서 이에 대처할 방법조차 아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공식을 알아도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답을 낼 수 없듯이. 외국어를 읽을 줄 알아도 의미를 모르면 해석할 수 없듯이. 커크는 칸이 얼굴에 비릿한 미소를 띄우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이 잘못 말했음을 깨달았다.
"제임스. 닥터에게 털어놓으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나?"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
"기관실장이 뭐라도 찾아내길 기대하면서?"
"!"
다 틀렸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칸이 천천히 걸어왔다. 아직 포기하긴 일렀다. 커크는 끝까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밀 점검이 필요해서 그랬어. 폐기된 연료봉이 상당하다기에-."
"그런데." 칸이 그의 말을 잘랐다.
칸의 손이 커크의 머리에 닿았다. 커크는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것만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왜 그렇게 떨고 있지?"
칸이 커크의 머리를 느긋하게 쓰다듬었다. 커크는 이 낯익은 분위기를 알았다. 폭풍이 치기 직전의 고요함. 잔잔함. 그리고 일말의 부드러움. 칸이 번개처럼 자신을 몰아붙이기 전에, 아주 잠깐 허용하는 순간의 평화. 미칠 것 같은 공포를 뒤덮어 본모습을 가리우는 여유.
커크는 더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칸……." 커크가 토해냈다.
칸이 기다렸다는 듯 커크의 머리칼을 잡고 뒤로 세게 잡아당겼다. 그 통에 고스란히 드러난 커크의 목선을 그가 입술로 천천히 쓸었고, 커크는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커크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칸은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다. 커크가 늘어져 있던 손을 들어올려 칸의 허리를 안았다.
"믿어줘……."
커크는 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라면 정말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무슨 짓이든. 칸을 껴안은 채 커크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아 다리와 다리가 맞닿자 칸도 그의 머리카락을 잡았던 손을 놓아 주었다. 커크는 칸의 반응에 미약한 기쁨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네 말이 맞아. 우월해지니까 이제야 알겠어. 다른 자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을."
이에 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커크가 하반신을 더욱 붙이며 칸의 가슴에 볼을 부볐다. 거짓 애정을 가득 담아.
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응원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전 아마추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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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공기와 호흡과 시간이 멈췄다. 실제로 멈추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스팍은 커크가 자신을 거부했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스팍이 커크의 얼굴에 손을 붙인 채로 가만히 있자 커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더, 단호하게.
"하지 마."
커크의 차가운 목소리가 스팍의 심장을 한 움큼 베어냈다. 커크는 손을 들어 스팍의 팔을 떼어내려 했지만, 스팍은 버티고 서서 굳은 얼굴로 커크를 내려다보았다. 커크가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로 커크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가 만약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견을 표시할 리가 없었다.
"칸이 당신을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당신과 칸을 이곳으로 불러냈고, 저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이곳에 남겨두고 갈 생각입니다. 스타플릿에는 그가 임무수행 중 실종되었다고 보고하면 됩니다."
"너 제정신이야?" 커크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언제나 정상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스팍을 향해 커크가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뭐? 네가 날 불러냈어? 일부러 연락을 끊은 것도, 전부 다 네 계획이었어?"
"그렇습니다(Indeed).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너, 너또 날 감시한 거야? 본드로?"
올 것이 왔다. 스팍은 감지했다. 하지만 그에게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도 스팍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커크의 마음은 변함없을 거라고. 자신이 그를 이해하는 만큼 그도 자신을 이해하리라고. 자신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이 남자는 알아채 주리라고. 몇 번이고 부딪치고 싸웠지만, 결국 서로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고. 벌칸으로서 논리와 이성을 신봉하는 만큼, 스팍은 제임스 T. 커크를 믿었다.
"본드 끊어."
아니, 믿었었다. 그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스팍이 끝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커크의 얼굴은 섬뜩하리만치 희푸르고 평온했다. 그 무신경한 모습에 더 분노라는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커크가 이럴 리가 없었다. 이건 자신의 커크가 아니었다. 스팍은 거칠게 항변했다.
"지금 그 의미를 인지하고 발화하는 중입니까? 본드는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짐, 저는 벌칸에 대한 당신의 이해력을 의심할 수밖에-."
"그만."
커크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그의 표정에서는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아무 생각도. 스팍은 그 매정한 모습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소름이 온몸에 돋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공포와 닮아 있었다. 심장이 조여들었다.
"짐이 아냐. '함장님'이지(Not Jim. 'Captain')."
짧은 단어들이 스팍의 영혼을 잔인하게 할퀴었다. 딛고 선 땅이 그대로 무너져버리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공허한 느낌이었고, 벌칸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기 직전처럼 심장이 멎는 위기감이었다. 아니, 사실 그 심장은 이미 블랙홀에 의해 사라졌다. 참을 수 없을만큼의 허전함에 스팍은 가까스로 입을 열어 숨을 토해냈다.
"함장님……."
"네 계획은 불허해. 새로운 명령을 내리겠어. 가장 빠르게 본드를 끊어."
안 됩니다. 스팍은 속으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커크가 마음으로 들어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커크는 마음을 닫은 듯 완고하게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다. 스스로 생각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그 막막한 단절감에 손끝이 저릿해져 왔다. 얼굴로 피가 쏠렸다.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스팍은 애써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그것을 감당했다.
"함장님. 제 계획은 다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당신과 엔터프라이즈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위협을 제거하려는 것뿐입니다. 어째서 그를 두둔하시는 겁니까?"
커크는 답하지 않았다.
"함장님. 대답해주십시오."
스팍이 재차 요구했지만, 커크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스팍은 그의 턱을 잡아 돌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커크가 이렇듯 멋대로 행동할 때마다 고통을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었다. 언제나.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왜 참아야 하지?
"스팍…?!"
스팍은 커크의 위에 반쯤 올라탄 채로 커크의 입을 막았다. 의자에 앉아있던 커크가 다급히 발버둥치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의자만 달각거리며 비명을 지를 뿐 아무 소용도 없었다. 스팍이 눈을 감고 커크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커크는 눈을 크게 떴다.
마인드 멜드가 시작되었다.
-
접속-. 스팍은 마인드 멜드를 두 개체의 양자접속, 즉 동기화와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벌칸들은 그것을 정신적 성관계라 여기기도 했으나 스팍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닥터 맥코이라면 맛깔스러운 표현을 던져주었겠지만, 스팍은 그런 묘사를 쓰는데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으로만 사물과 사건을 설명해낼 수 있었다. 어쨌든 스팍은 커크의 머릿속에 일명 '접속'했을 때 강한 거부반응을 경험했다.
스팍은 아랑곳하지 않고 커크의 머릿속을 뒤졌다. 서랍을 뒤지듯 기억들을 끄집어 내고, 책을 펼치듯 하나하나 헤집었다. 그리고 결국은 칸과 대화한 내용부터 그와 잔 부분까지 모조리 읽어냈다. 역시, 라는 마음이 들었다. 본인은 꿈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칸이 탈출했음을, 진작부터,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커크는 칸에 대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그를 증오했고, 동정했고, 혐오했다. 마치 자기 자신을 대하듯이. 물론 커크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예민한 감수성 탓만은 아니었다. 칸이 커크에게 속삭여댄 말들이 그의 안에 명령어처럼 자리잡았고, 뿌리를 내린 것이리라. 그 결론에 이르자 스팍은 다시금 분노했다.
칸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
"그만해!!"
커크의 외침에 스팍은 순식간에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커크가 온 힘을 다해 스팍을 뿌리쳤고, 강제로 중지된 마인드 멜드 때문에 스팍은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커크도 융합되다 만 기억 때문에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 하나는 명백했다. '실망'이었다. 스팍은 자신의 동의 없이 마인드 멜드를 행했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기억을 가져갔다. 자신을 감시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함장님." 스팍이 한 걸음 다가왔다.
"다가오지 마."
이젠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힘들었다. 커크는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에 대한 실망과 스팍에게서 마지막으로 전해진 감정인 분노, 제 감정도 아닌 것과 실제 자신의 분노가 뒤섞여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커크는 이를 부딪치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칸이 엔터프라이즈를 폭파시키겠다고 협박했어. 난 그걸 막을 방법을 찾을 때까지 무슨 짓이든 할 거고. 그 이후에 칸을 생명유지장치에 처넣을 거야."
스팍이 이에 뭐라 답을 하기도 전에 커크가 싸늘하게 웃었다.
"아, 마인드 멜드로 다 봤겠지? 괜히 얘기했네."
"함……."
"네 도움은 필요없어. 여기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올라가."
커크가 즉시 커뮤니케이터를 들었다. 스팍 중령 빔업시켜, 라고 딱딱하게 내뱉는 어투에 스팍은 그저 입을 벌린 채 커크를 바라보았다. 화를 내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자신이 분명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칸을 고문하는 방법도 있었다. 물론 커크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반대하겠지만, 그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칸은 커크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괴롭힌 남자였고 그렇다면 그가 어떤 고통을 받든지 커크는 개의치 않아야 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아니면 정말로-.
스팍은 자신의 몸 주변에 나타난 황금색 빛무리를 보면서 주먹을 세게 쥐었다. 정말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 추론이 떠올랐다. 커크는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몸을 돌린 채였다. 스팍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당신은 칸을-."
공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와, 순간의 적막, 눈부신 빛에 감싸여 스팍은 전송실에 내려섰다.
"-좋아하는 겁니까."
텅 빈 회의실 안, 커크가 주먹을 들어 눈가를 거칠게 비볐다. 방향 잃은 대답이 헛되이 허공을 떠돌았다.
언제부터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 쟈니 스톰은 알지 못했다. 한바탕 치기어린 불꽃을 피워 시가지를 달구던 중이었는지, 혹은 자신을 제압하기 위해 그 열기를 뚫고 나타난, 성실함으로 점철된 검은 수트를 입은 그를 처음 보았을 때였는지, 아무튼지간에 자신의 마음에 불씨가 튄 그 순간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불은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속에 불을 붙인 남자의 이름은 필립 J. 콜슨이었다. 그마저도 가르쳐줄 이유가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하던 것을 며칠이고 졸라 알아낸 것이었다. 에이전트 콜슨에서 미스터 콜슨으로, 미스터 콜슨에서 콜슨으로, 콜슨에서 필로 상대방을 규정짓는 어휘가 바뀌기까지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콜슨은 여전히 그를 휴먼 토치라 불렀다)
그에 대한 마음은, 비유하자면 프로메테우스가 훔쳐낸 신의 불 같았다. 일반적인 불과 다르다는 점에서 그랬다. 쟈니는 그것을 그 이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어릴 때 누나가 들려주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불이 이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홀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자신의 몸에서 뿜어내는 불이 평범한 불이라면,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이 불은 불의 태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겁고 강렬했다. 물리적인 뜨거움을 느끼지 않는 쟈니에게 그것은 일종의 고통이었다.
"아저씨. 나 안 보고 싶었어?"
오랜만에 쉴드 본부에 온 콜슨을 향해 쟈니가 손을 뻗었다. 수트 재킷을 벗는 것을 도와주려 했지만, 콜슨은 여느 때처럼 그의 손을 거절하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보고 싶었습니다."
쟈니는 입을 비죽이며 콜슨의 옆을 맴돌았다. 콜슨은 최근 '버스'에서 개인 팀을 이끌고 있었기에 본부에 오는 상황이 많지 않았다. 일명 어벤져스 사건 이후로 그는 명예의 전당 (즉, 순직자 명단)에 올라 있었고, 레벨 7 이상의 에이전트들만 그가 부활해서 비밀스런 일들을 처리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다. 레벨 6이었던 에이전트 콜슨이 개인 팀을 갖고 통솔권을 소유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어벤져스 사건의 몫이 컸는데, 희생된 자신의 삶과 한정판 캡틴 트레이딩 카드를 대신해 디렉터 퓨리가 그에게 준 것이라고, 알음알음 소문이 떠돌았다. 사건의 경위가 어떠하건 간에 쟈니는 그 '버스'가 콜슨을 자신에게서 빼앗아간 기분이 들어 그닥 즐겁지 않았다.
"아저씨. 아저씨."
"왜 부릅니까. 휴먼 토치."
넥타이를 풀어낸 콜슨은 여전히 쟈니를 돌아보지 않았다. 쟈니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한 것 없는 그 태도에 안정감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콜슨은 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니, 지금쯤은 알 터다. 그는 자신을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더 가깝게 두었으나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쟈니는 늘상 벽 안에서 넘실거리는 불길을 참고 또 참아왔다.
한 번은 그 불을 고스란히 쏟아내었다가 (문자 그대로) 콜슨에게 단단히 애 취급을 받고 말았다. 결국 철이 덜 들었다는 이유로 콜슨의 가까이에 있을 수 있는 특권은 얻어냈지만, 동시에 콜슨에게 제 감정을 표출할 기회는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래서 쟈니는 부러 콜슨에게 아이처럼 굴곤 했다. 그가 자신을 더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어른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보아주고 싶은 마음도 때론 가닥없는 불꽃처럼 솟아올라서, 쟈니는 그 양가적인 감정을 도통 정돈시킬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담배 피웠으면 좋겠다."
그제야 콜슨이 쟈니를 돌아보았다. 눈을 크게 뜬,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에게 주목하는 그 얼굴을 보고 쟈니는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성공했다, 먹혔다, 라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담배에 불 붙여주고 싶어서."
쟈니가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들어 불꽃을 피웠다. 그리고는 라이터처럼 손가락을 까딱여 담배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했다. 콜슨은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을 띄우며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제 심장뿐 아니라 폐도 망가뜨리고 싶은 모양이군요."
담담한 콜슨의 말에 쟈니는 화들짝 놀라 불을 꺼트렸다.
"그런 거 아냐!"
"휴먼 토치."
딱딱한 훈계조의 말투가 들리면 쟈니는 꼼짝 못하고 꼬리를 말곤 했다. 쟈니가 주눅든 표정을 짓자, 콜슨은 무언가 말을 더 하려는 듯 쟈니를 바라보다가 결국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잔소리를 꼭 하고 지나가던 타이밍에 여느 때와 같은 그것이 없자 외려 쟈니가 더 몸이 달아 콜슨을 붙들었다.
"잘못했어. 나는 그저, 그냥, 내가 아저씨한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나 싶어서......."
"그냥 여기 있어주면 됩니다. 그걸로 충분해요."
"그걸로 될 리가.... 그걸로 될 리가 없잖아! 나는 내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난 아저씨한테...!"
철없는 아이로 남고 싶지 않아. 쟈니가 꿀꺽 말을 삼켰다. 목구멍을 할퀴고 내려가는 말은 불을 삼킨듯 뜨거웠고, 잿물마냥 살을 녹였다.
"휴먼 토치. 당신은 당신의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제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해야할 일을 하면 됩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콜슨이 뱉는 문장 하나 하나가 화인처럼 마음 속에 새겨졌다. 결국-, 결국은, 말하지 못할 테지. 쟈니는 울컥 솟아오르는 심정을 또다시 참았다. 이런 콜슨마저 좋아했기에, 이런 그에게 내쳐지고 싶지 않았기에, 여느 때처럼 쟈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콜슨은 손을 뻗어 쟈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이 너무도 다정하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쟈니는 그의 손을 잡아 천천히 자신의 볼로 가져갔다. 따뜻하고 거친 그의 손으로 얼굴을 부볐다. 이번에는 콜슨도 뿌리치지 않았다.
쟈니가 눈을 감았고, 콜슨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 또한 쟈니와 같이 마지막 문장을 삼킨 터였다. 차마 그에게는 하지 못할 말을. 잔인한 말을.
요 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커크 그리고 스팍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 위: 19금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 의: 스타트렉 리부트 기반, 다크니스 스포주의
한마디: 오늘부터 폭풍연재
-
"회의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휴식 시간이야? 10분, 그 정도밖에 안 지났어! 말이나 돼? 그쪽이 숨기는 게 있겠지!"
복도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가는 커크를 따라 맥코이도 걸음을 빨리했다. 커크는 즉시 리프트에 탑승했고, 우후라는 빠르게 앞서 일어난 일들을 요약해서 보고했다.
"휴식을 요청한 것은 저희 측입니다."
"뭐?" 커크가 눈을 황망하게 떴다.
"스팍 중령님께서 휴식을 요청하셨고, 보안 회선으로 아레비크의 저의를 간파했다고 말씀하신 후 통신이 두절되었습니다. 긴급 보안 프로토콜에 따른 연락이 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함장님."
2차 협상 재개까지 3분 남았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커크의 귀에 직접 들어왔다. 리프트의 문이 열리자마자 술루가 벌떡 일어섰지만, 커크는 손을 저어 술루를 다시 의자에 앉으라고 지시했다. 커크는 그 와중에도 흘깃 칸을 살폈다. 그는 변함없는 얼굴로 자리에 앉아 커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직접 간다. 칸이 나와 동행해. 프로토콜대로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 즉시 중립 행성 전체에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고 지원을 보내. 알겠지, 술루? 믿는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술루 또한 다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크로노스에서 스팍과 커크가 칸을 찾기 위해 내려갔을 때 대신 함장의 자리에 앉았던 것처럼 결연한 표정이었다. 모두가 분주히 손을 움직였고, 칸은 벌떡 일어서서 커크를 향해 다가왔다. 커크의 뒤에 서 있던 맥코이만이 머리를 저으며 그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함장과 부함장이 모두 내려가는 건 규율 위반이라고 스팍이 누누히 말했을텐데?"
"내가 언제나 그 반대에 반대했던 거 알잖아."
커크가 씁쓸하게 웃고 칸과 함께 리프트에 들어섰다. 맥코이는 그런 커크를, 도저히 붙잡을 수 없었다.
-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규약 3조라고?"
커크는 칸의 말에 내심 찔렸으나 아무렇지 않게 리프트의 문을 노려보았다. 칸이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한 바였다. 그는 브릿지에서는 함장인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주었으나, 단둘이 있으면자신의 이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만약 그가 마음을 바꿔 브릿지에서조차 자신을 압박하려 든다면-. 아마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엔터프라이즈가 그의 손아귀에 빠졌다는 사실을. 커크는 자신이 칸에게 다시 한 번 이용당하는 그러한 장면을 다시는 크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예민하게 구는 건 네 쪽이지. 난 스타플릿 규약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 협상은 나 혼자로도 충분해."
하지만, 칸이 운을 뗐다. 커크는 칸이 내뱉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심장 깊숙한 곳을 여지없이 찔러왔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것을 간파했다. 그가 직접 말했던 대로.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넌 그가 걱정되서 달려가는 게 아닌가?"
때마침 리프트의 문이 열렸다. 커크는 칸에게 대답하지 않고 빠르게 걸어나가 전송기 위치에 섰다. 스콧이 레버를 잡고 있었다. 칸은 얼굴에 미묘한 표정을 띄운 채 커크의 옆에 나란히 섰다.
"2분 남았슈. 함장 나리."
"말할 시간도 아까워. 전송해."
"몸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목적이 협상이 아닌 것 같으니까, 라는 스콧의 말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
스팍의 예상대로였다. 커크는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둘의 생각이 반쯤 공유되고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칸을 데리고 중립 행성으로 내려왔고, 아레비크 종족들의 앞에 섰다. 스팍 또한 본드를 통해 커크가 어떻게 협상을 진행할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1차 협상자와 다르군."
가벼운 갑옷을 걸친 아레비크 종족 대표가 커크와 칸을 맞이했다. 회의장 안에는 종족 대표를 비롯해 한 명의 보좌관, 그를 호위하는 군인 두 명과 중립 행성 소속의 중개자- 이를테면 평화유지군이 회의장을 지키고 서 있었다. 카다시안 계통이라는 아레비크 종족은 일반적인 카다시안과 마찬가지로 휴머노이드 종족이었으며, 안면에 돌기가 솟아있는 게 특징이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죠. 전 행성 연방 스타플릿 소속 엔터프라이즈의 함장 제임스 T. 커크고 이쪽은 부관인 과학자 칸입니다."
"우리의 협상 조건을 듣자마자 휴식을 요청한 뒤 협상자를 바꿔 내보낸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군. 커크 함장."
"그쪽이 신경쓸 필요는 없는 문제입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행성 연방 가입이죠. 심지어 듀테륨을 제공하겠다고. 그렇다면 우리로부터 정말 원하는 게 뭡니까?"
커크의 예리한 질문에 칸이 눈썹을 움직였다. 듀테륨이라면 원자로, 특히 워프 코어에 필수적인 물질이었다. 워낙 희소하여 대량으로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 고가치의 물질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것을 행성 연방에 제공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동시에, 믿기 힘든 제안이었다.
"말했다시피 평화와-."
"평화와 동맹으로서의 안전 보장. 그것뿐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대표님. 행성 연방은 연방 전체의 안전을 위해 가입 당사 종족을 검증할 의무가 있습니다. 듀테륨 저장고를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제안을 의심한다는 뜻이었다. 다소 무례한 커크의 말에 아레비크 종족 대표가 불쾌한 듯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커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좋다."
대표가 몸을 일으키자 커크와 칸 또한 일어섰다. 커크는 칸의 어깨를 짚었다.
"칸이 직접 확인할 겁니다."
그들이 동의하고 앞장섰다. 칸은 뒤에서 커크의 멱살을 끌어당기고 속삭였다.
"날 사지로 몰아넣는군. 제임스."
"알아서 살아남아."
커크의 대꾸에 칸이 피식 웃었다. 그들의 제안 자체가 거짓이라면, 지금 안내하는 것 또한 함정일 가능성이 높았다. 원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협상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면 협상하러 내려온 자들 일부를 죽이고 카다시안으로 돌아가면 끝이었다. 그들이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은 한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부디 살아있는 그를 찾길 바라지."
"네 시체 정도는 수거해줄게."
칸이 비꼬자 커크가 맞받아쳤다. 곧 칸은 그들을 따라 어딘가로 향했고, 대표와 보좌관을 비롯하여 평화유지군도 모두 자리를 비웠다. 그들은 회의장 밖에서 통로를 지킬 터였다. 홀로 남은 커크는 즉시 커뮤니케이터를 열었다.
"스카티. 혹시 점검 다시 할 수 있어?"
"뭐라굽쇼?"
"중요한 일이야. 칸이 엔터프라이즈에 무슨 짓을 해뒀는지 모르는데, 잘못하면 폭발할지도 몰라."
커뮤니케이터 너머로 스콧이 길게 욕설을 쏟아붓는 소리가 들렸다. 커크는 잠시 커뮤니케이터를 멀찍이 들고 있다가 다시 가까이했다.
"어, 스카티?"
"니미럴 칸이 그 짓을 할 때꺼정 뭘 한거요! 대체!!"
"...풀점검 다시 하고, 알아낼 때까진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엔진인지 워프 코어인지 뭔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커크가 커뮤니케이터를 닫고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스팍 또한 어딘가에서 멀쩡히 있으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도 본드 때문이겠지. 칸도 내보냈고 스콧에게 명령도 내렸으니 이제 스팍을 찾는 일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째서 갑자기 모습을 감춘 걸까. 그것도 안전 요원들도 모두 데리고. 그가 알아냈다는 아레비크의 저의는 무엇일까. 그는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커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마음속의 질문에 분명한 대답이 들려왔다.
"저는 여기 있습니다."
스팍의 목소리였다. 커크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어느새 회의실 안에 들어왔는지, 스팍이 자신의 옆에 꼿꼿이 선 채 뒷짐을 지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모습에 걱정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커크는 활짝 웃었다.
"스팍!!"
커크가 벌떡 일어나자 스팍이 그의 어깨를 눌러 강제로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팔걸이를 짚은 채 몸을 기울였다. 졸지에 스팍의 팔 안에 갇힌 커크는 의아한듯 이게 뭐냐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상태로 점점 스팍의 얼굴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커크는 천천히 표정을 굳혔다. 스팍의 손이 마인드 멜드를 하려는 것처럼 자신에게 다가왔다.
스팍은 커크와 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칸이 없는 지금이 기회였고 이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기실 본드로는 완전한 것을 볼 수 없었다.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불완전한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마인드 멜드가 필수였다. 스팍에게는 지금 당장, 그것이 필요했다. 그것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커크의 장난스런 말에 스팍이 어이 없다는 듯 커크를 돌아봤어. 커크는 히죽 웃으며 혀를 내밀었지.
농담이야. 숨 쉬어도 돼.
스팍이 한숨을 쉬자 커크는 그제서야 스팍의 목을 놔주었어. 스팍은 흐트러진 책을 다시 정리해 들었지.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짐, 당신은 적절한 사고과정 없이 말을 내뱉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주의를 해야 해?
당신의 그런 행동 양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당신을 오해할지도 모릅니다.
오해받으면 어때서? 난 상관없는데.
짐.
스팍이 또 생각없이 말을 내뱉고 있는 커크에게 주의를 주었지. 커크는 다시 혀를 베- 하고 보이면서 주머니에 쑥 손을 집어넣었어. 영락없는 동네 개구쟁이 꼬마로 보였지. 스팍이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자 커크는 그 옆에서 스팍을 맴돌면서 함께 걸어갔어.
스팍. 너는 왜 그렇게 어른처럼 굴어?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나는 교육을 못 받았으니까, 어른이 될 수 없는 거야?
어른이라는 단어는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체가 성장하기 때문에, 짐 당신도 물리적 의미에서는 결국 어른이 됩니다.
그럼 다른 의미에서는?
커크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스팍이 눈썹을 꿈틀였지. 정말이지 인간의 일곱살 꼬마들은 호기심이 많았어. 질문이 봄날 개울물처럼 콸콸, 도통 멈추지를 않았지.
미래의 일은 변수가 많아 제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한 번 해봐. 스팍.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여느 때처럼 스팍이 졌어. 스팍은 푹 한숨을 내쉬고는 그 자리에 멈춰섰지. 아직은 계산에 숙달되어 있지 않아서, 걸어가면서 동시에 계산까지 하는 건 무리였어. 그래서 스팍은 제자리에 선 채로 눈썹을 모으고 고심했지. 커크도 사뭇 진지하게 그런 스팍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어.
곧 계산이 끝났지.
당신이 어른이 될 확률은 50%입니다. 짐.
에잉? 그게 뭐야. 이상해. 어른이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커크가 인상을 썼어. 스팍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책을 안아들고 걸음을 옮겼지. 커크가 소리를 지르며 기를 쓰고 쫓아왔어. 명백히 불만인 표정이었지.
스팍! 뭐야, 설명해줘!
설명해줘도 지금의 당신으로선 이해할 수 없으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치사해!!!
사실 계산은 간단했지. 스팍은 옆에서 쨍알대는 커크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속으로 중얼거렸어.
당신은 분명 어른이 될 겁니다.제가 곁에 있는 한.
어른 스팍이 자고 있는 어른 커크의 눈가를 쓸어줬어. 커크는 살짝 움찔거리고 말았지. 잘 때는 정말이지 세상 모르고 자는 커크였어. 어릴 때와 똑같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