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단호박 주의(속이 답답해질 수 있음)
한마디: 트위터에 휴덕 선언하고 연성에 올인하는 나란 덕후 그런 덕후ㅠ 내 일상 없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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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이 자신을 보고 표정을 굳히자, 커크는 눈을 크게 떴다. 주먹까지 쥔 것을 보니 자신을 불편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벌칸인 스팍이 저 정도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커크는 차츰 스팍을 설득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를 불러낸 것조차 잘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 화가 난 것일지도 몰라. 아니면 나를 이미 칸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고 있는지도.
그런 스팍과 대화해야 하다니. 커크는 이를 악물고 애써 웃었다.
"앉아."
"용무를 말씀하십시오."
"스팍.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로봇 같다. 일단 앉아."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몰랐지만, 커크는 일단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안 그래도 낮에 칸의 혈청을 맞고 온 터라 몸이 잘 제어되지 않았다. 또 애꿎은 의자를 부수거나 스팍에게 맞아야 하는 일은 없기를. 커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사담입니까?"
"아니야.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나에 대한 보고서 때문이야."
커크의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던 스팍이 그 말에 고개를 곧추세웠다.
"보고서에 대한 의견은 받을 수 없습니다."
"스팍, 들어봐. 내 말을 들어보라고."
"함장님의 상태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위험합니다."
위험? 내가 위험하다고? 커크는 숨을 삼켰다. 스팍이 말한 것은 '그의 상태'였지만, 커크의 귀에는 '위험'하다는 단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팍의 말은 자신 또한 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스팍. 아니야. 난 괜찮아."
"칸의 혈청에 대한 적절한 대체물이 마련될 때까지, 함장님은 직무를 내려놓으실 것을 권합니다."
대체 스팍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나보고 함장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거지? 커크는 이제 심지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끝없는 현기증이 밀려왔다. 몸 속의 피가 제멋대로 뛰놀고 치솟는 것 같았다. 통제, 통제해야 해. 커크는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임무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스타플릿은 새 함장을 임명하는 대신 이대로 임무 수행을 명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팍은 뒤에 어떤 말을 덧붙여야 좋을지 잠깐 고민했다. 커크의 표정이 시시각각 어두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스팍은 커크가 안정을 취하고 쉬기를 원했다. 그것이 커크에게 필요한 것이라 판단했고 커크 또한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스타플릿에 정확한 보고서를 보내는 일 또한.
커크는 그런 스팍의 생각을 알 리가 없었다. 설혹 알았다 해도,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커크에게 '함장'의 자리가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스팍이 이해할 수 없듯이.
'함장'이라는 자리는 커크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세상에 자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였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였다. 이 너른 우주에서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 엔터프라이즈의 의자, 그 자리 말이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말은 커크에게 '너는 더이상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혹은 '너는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자격이 없어'라든지.
동시에 자신이 '함장'이라는 것은 임시 함장으로써 800명의 생명을 구한 아버지 조지 커크와의 연결점이었고 아버지 대신 자신을 지지하고 믿어주었던 크리스토퍼 파이크 함장과의 연결점이었다. 더이상 세상에 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커크는 우주가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함장의 자리는 놓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함장으로써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이 커크가 생각하는 '함장'이었다.
커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스팍이 일어났다. 칸의 혈청으로 인한 부작용일까. 스팍은 대처 방법을 떠올렸다. 커크를 다시 자기 손으로 기절시키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했다. 커크가 정말 칸과 같은 힘을 가지게 되었다면,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스팍이 급히 물었다.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커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함장으로써의 자격을 의심받았다. 그것도 스팍에게. 그에게서 또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두려웠다.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힘이 또 무언가를 부수고, 스팍의 생각에 확신을 심어줄까 두려웠다. 커크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함장이야. 함장이라고... 함장이어야만 해.
"괜...찮아."
"닥터 맥코이를 부를까요?"
"괜찮다니까!!"
커크가 소리를 질렀다. 아차 싶었다. 미리 컵에서 손을 뗀 탓에 아무것도 부수지는 않았지만,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가는 스팍에게 함장의 자격이 없네 통제권을 빼앗겠네 그런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커크는 급히 덧붙였다.
"진짜, 괜찮아. 헤이, 이것봐. 괜찮아 보이지?"
간신히 손을 내리고 활짝 웃어보였다. 스팍은 의뭉스럽게 그런 커크를 바라보았다.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반대되는 행동을 종종 보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커크는 특히 심했다. 닥터 맥코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솔직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인간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오해와 반목, 싸움이 있었는지 알고도 그러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징이겠지. 스팍은 커크에게 긍정하는 대신 무정하게 대답했다.
"벌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상태는 불안정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휴식을 추천합니다."
커크의 웃음이 멈췄다. 심장이 날카로운 것으로 베여나간 것처럼 아팠다. 제발.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제발. 커크는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둘 모두 스팍에게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치겠지. 커크는 이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난 괜찮다니까......."
제발, 믿어줘. 믿을 수 없겠지만, 제발 좀! 커크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억지로 웃었다. 온 힘을 다해서.
"충분히 쉬었어, 스팍. 맞다. 우리 3D 체스나 할까? 예전에는 많이 했잖아?"
"마무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스팍......."
커크가 거진 울상을 지으며 스팍을 불렀다. 그 부름에 스팍은 흠칫 놀랐다. 그의 힘없는 목소리가 또다시 그 장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이건 비논리적이야. 스팍은 눈썹을 세웠다. 더 이상 커크와 한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부른 의도는 명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라는 것이겠지. 그래서 스타플릿의 검열을 피하고, 자신의 상태를 숨긴 채 임무를 수행하려는 목적일 터였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처럼 울며 매달릴 수도 있겠지. 내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어. 스팍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한다면 더욱더 커크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입증하는 꼴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스팍 본인에게도 과히 좋지 않은 기분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칸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보고서는 직접 결재해 올리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팍 또한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쿼터를 나왔다. 커크는 문이 닫히자마자 입을 부여잡았다. 뜨거운 것이 속에서 치솟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의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만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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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맥코이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나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함장 제임스 커크에게 모욕을 준 일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졌으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죽일 수조차 없었다. 자신을 죽이면 그들의 함장도 죽는다. 세상에 이런 농담이 어디 있지? 칸은 마음껏 조소했다.
"팔."
순순히 팔을 내밀자 맥코이는 그의 팔에 바늘을 꽂았다. 이전과 다르게 큰 원형의 통과 연결되어 있었다. 피를 비축해둘 셈인가 보군. 그 의미는 여전히 제임스 커크의 알레르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겠지. 칸이 말을 건넸다.
"날 죽이고 싶나?"
"닥쳐."
정말로 죽이고 싶겠지. 제임스 커크뿐만 아니라 칸 자신에게 죽임당한 많은 사람들의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칸은 정말로 즐거웠다.
"그럼 죽여."
"엿같은 새끼."
"아. 못 하겠군. 그랬다간 짐이 죽지."
맥코이가 폭발했다. 그가 구금실의 칸을 향해 소리를 쳤다.
"개새끼야, 감히 짐이라고 부르지 마!!"
즉시 칸이 손을 벌려 다가온 맥코이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맥코이가 그의 팔을 떼어내려 발버둥쳤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칸의 손아귀 힘이 점점 강해졌다.
"컥...!!"
구금실이 있는 덱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맥코이뿐이었기에 도움을 요청할 보안 요원들도 주변에 없었다. 손에서 PADD와 통신기 모두 놓친 바람에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다. 맥코이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개자...식......."
"네 함장을 데려와. 요구사항이 있다."
"미...쳤......."
구금실 뒤편에서 붉은 불빛이 번쩍였다. 다행스럽게도 구금실을 감시하던 엔지니어부에서 그 광경을 보고 보안 요원들을 급파한 것이었다. 그들이 문 앞에 나타난 것을 보자 칸은 그대로 손을 놓았다. 바닥에 떨어진 맥코이가 기침을 토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켈록! 하아, 미친 놈... 하아..."
"다음에 그를 데려오지 않으면, 닥터, 부러진 목뼈를 스스로 맞춰야 할 거야."
용건은 끝이라는 듯 칸이 몸을 돌렸다. 보안 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맥코이가 일어섰다. 그는 세 번째 손가락을 높이 세우며 그의 피가 담긴 통을 들었다. 이걸로 한 달 동안 여기 내려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보안 요원들과 와야겠지만.
맥코이는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커크를 칸에게 데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는 보안 요원들과 엔지니어부에게서 오늘 일은 못 본 것으로 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또한 최대한 빨리 목의 자국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부 덱으로 걸음을 옮겼다. 리제너레이터 한 방이면 끝이었다. 한 방이면.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단호박 주의(속이 답답해질 수 있음)
왜 다음편 없죠?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작가 나와 아 내가 작가구나 나새기 글써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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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일주일이 지났다.
칸은 여전히 통제 하에 있었다. 그를 만날 수 있는 건 피를 채혈하는 닥터 맥코이뿐이었고, 구금실에는 그 외 모든 선원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스콧이 이중삼중으로 보안을 설치한 덕택에 구금실의 문을 여는 코드 또한 수시로 변경되었다.
커크는 그 일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함장일을 하겠다며 내려왔다가 스팍에 의해 의무실로 끌려갔다. 리제너레이터로 물리적인 상처는 금방 나았지만, 심리적인 충격이 있을 거라는 맥코이의 소견에 따라서였다. 커크는 그 날의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입 하나 뻥긋하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의 크루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함선은 하나의 작은 세상이었다.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일종의 닫힌 사회. 말인즉슨 외부로 이 일이 새어나가지만 않는다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조용히 있는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기실 세상은 제임스 커크가 죽었다 살아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사람들은 커크가 칸에 의해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했다는 식으로 알고 있었다.
칸의 피의 효능을 세간에 알리기 꺼려했던 스타플릿의 조치였다. 그리고 커크의 예의 '알레르기' 사건이 발생했고 그들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전에 부랴부랴 그들을 5년 탐사 임무에 보내버린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도록.
그런 식으로 이번 일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칸이라는 중범죄자(그는 이미 재판을 받았었다)를 태운 엔터프라이즈는 스타플릿에 정기적으로 칸의 상태와 커크의 상태를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고, 바로 그 건 때문에 장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함장 제임스 T. 커크를 제외하고.
"현재 상태를 그대로 보고하는 건 짐을 잡아가라고 광고하는 꼴이야. 그건 안돼."
맥코이가 펼친 반대 의견을 스팍이 반박했다.
"하지만 보고를 올린다면 함장님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고려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허위로 작성할 수 없어."
맥코이가 인상을 썼다. 수석 군의관과 부함장의 논쟁이 시작되자 나머지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입을 다물었다.
"정신 나갔어? 짐은 함장직도 박탈당하고 저 칸처럼 모르모트 신세가 될 거라고! 아니면 같이 얼음과자가 되든지!"
"엔터프라이즈의 함장 자리는 종신직이 아니니 그건 관계없는 일이야. 그리고 캡틴 커크는 칸과 달리 범죄 사실이 없으니 그런 형을 받을 가능성도 현저히 낮지. 닥터 맥코이."
"그래서 지금 짐을 칸과 같은 취급을 하겠다는 거야?!"
"내 발화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 같군."
"그래서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너희들 다 뭐하고 있냐?"
컨퍼런스실에 모여있던 장교들이 깜짝 놀라 일어섰다. 커크가 입구에 기대서서 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었다.
"나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자리인데 내가 빠지면 섭하지."
"관찰 자료와 기록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해당 대상인 함장님은 보고 작성 과정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
"누가 그래?"
커크가 손에 쥐고 있던 사과를 베어물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확실히 일주일, 아니 이전보다 훨씬 밝아진 분위기에 다들 내심 안도했다. 커크가 우울해하고 있던 탐사 초기 동안은 정말이지 엔터프라이즈 내에 어두침침한 안개가 낀 것처럼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원흉이 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 또한 제임스 커크임이 틀림없었기에, 맥코이는 더더욱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내가 나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면 되겠네."
커크가 모니터를 보려 하자 스팍이 그를 제지했다.
"안됩니다."
"왜 안돼? 너 방금 보고서 내자며? 내가 잘못 들었나?"
"당신의 보고서는 객관성과 타당성이 불충분할 가능성이 83%입니다."
"또 시작이군. 내 경험상 보고서에 관해서라면, '절대로 벌칸을 믿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겠어."
"벌칸에 대한 신뢰도와 보고서에는 아무 상관 관계가 없습니다."
그 순간, 키들거리며 웃던 커크의 손에서 사과가 큰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강한 힘으로 사과를 짜부라뜨린 것 같았다. 그의 손에서 사과가 줄줄 흘러내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아무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커크가 애써 입을 다문 채 서서히 손을 내렸다. 칸과 같은 힘이 생겼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공공연하게 입증한 꼴이었다. 컨퍼런스실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너 검사 좀 하자."
맥코이가 급히 커크를 컨퍼런스실 밖으로 끌어냈다. 그는 한참을 걸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복도에서 커크를 몰아세웠다.
"제정신이야?"
"언제나처럼, 제정신이지."
부글부글 끓는 속을 투다다다 뱉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맥코이가 커크의 양 어깨를 잡았다.
"너 지금 네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는 있는 거지?"
"누구보다 잘 알지."
커크가 맥코이의 손을 떼어내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잠깐 밝았던 그의 표정이 지금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직 5년이라는 여유가 있어. 그 이후에 내 상태를 알게 된 스타플릿에서 내게 무슨 처분을 내리든, 난 상관 없다고. 그러니 그 전까지는 살고 싶어. 본즈. 죽고싶지 않아."
"짐...."
"그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죽음의 위기를 경험해왔잖아? 그 일주일을 5년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한들 무슨 상관이야.. 젠장, 그 계산은 스팍이 잘할거야. 어쨌든. 5년. 본즈. 듣고 있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남은 5년 동안 내가 살아있도록 도와줘."
나로써, 제임스 커크로써. 그의 마지막 말에 맥코이는 그저 울고싶어졌다.
저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칸 때문이라면,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대에게 감사할 일만 늘어나는 꼴이었다. 정말이지 답도 없고 길도 없는 더러운 세상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주에는 이런 시련만 가득한지. 맥코이는 여느 때처럼 우주를 원망했다.
"내 목숨이 일주일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5년 남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하더라고."
커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멍청한 새끼. 맥코이는 속으로 욕설을 삼키며 생각했다.
일주일이고 5년이고 개뿔, 몇십년 동안 끈질기게 살도록 해주마. 내가 네 알레르기 문제를 해결해서, 징징거리며 이제 그만 일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함장석에 엉덩이 붙이고 살게 해주마. 칸 없이도 살게 해준다고. 시발 이 짐 커크 개새끼야.
"그러니까 내 말은, 보고서에 '아무 이상 없다'라고 써야 한다는 뜻인데......."
커크가 더러워진 손을 바지에 슥슥 닦으며 중얼거렸다. 니비루 때처럼 스팍이 또 개인 보고서를 올려버리면, 사정을 봐줄 만한 사람도 더이상 없고, 어쨌든 그래. 그러니까 보고서는 하나만 올라가야 해. 문제 없다는 걸로. 듣고 있어, 본즈?
"듣고 있어. 요는 스팍만 설득하면 된다는 거 아냐."
"그렇지."
"그걸 나더러 하라고?"
"그렇지."
"그냥 나가서 죽으라고 하지?"
아, 본즈, 커크가 그에게 매달렸다. 이번에는 맥코이가 매정하게 그를 밀어냈다.
"이 엔터프라이즈에서 유일하게 스팍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너야."
커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일주일 동안 스팍은 공적인 업무가 아니라면 자신과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사적인 대화도 없었고 이전에는 조금 있었는지도 모르는 '우정(Friendship)'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커크는 자신이 죽음에서 깨어난 자리에 스팍과 맥코이가 서 있던 것을 기억했다. 스팍은 그렇게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던 자신의 옆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스팍은 자신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왜? 모를 일이었다. 짐작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을 질문해서 확인사살당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커크는 자신의 마음에 더는 상처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스팍은 나와 별로 대화하고 싶지않은 것 같던데."
"웃기지 마. 그 스팍이?"
"진짜로."
"그 때......."
맥코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은 엔터프라이즈 내에서 암묵적인 금기에 가까웠다. 그는 입을 몇 번 벌렸다가 그냥 다물었다. 그리고 커크의 등을 두들겼다.
"아냐. 둘이 얘기해봐."
칸은 내게 맡기고. 맥코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 나 원 참. 이제 말도 마음대로 못하고. 여전히 입맛이 쓴 맥코이였다.
커크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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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쿼터로 와."
마치 일주일 전처럼, 커크가 통신기로 스팍을 불렀다. 스팍은 작성하고 있던 보고서를 한 번 보고는 빠르게 대답했다.
"업무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0시에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와."
스팍은 그의 말 끝에 어떤 단어가 붙을지 100%의 확률로 예상할 수 있었다.
"명령이야."
제임스 커크. 그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함장이라는 자신의 권한을 남용했고 그것은 사적인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전까지 자신이 만났던 상관들에 비하면 함장이라는 명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스팍은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고 또 이해했다. 물론 처음 함장이 되었을 때보다는 자신의 책임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속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런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에게 권위가 있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평소에 크루들과 한담을 나누거나 농담을 하고 킬킬거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철없는 생도 그 자체였다. 그런 주제에 적을 맞이하거나 함장석에 앉는 순간이 오면 갑자기 가벼운 태도를 싹 지우고 진중한 모습이 된다. 인간이 본래 여러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스팍은 그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일정한 태도를 보일 수 없는 것인가. 비효율적이다. 스팍은 그렇게 판단했었다.
스팍이 커크의 쿼터 앞에 섰다. 가볍게 노크를 하고 자신임을 밝히자 문이 열렸다. 딱 일주일 전처럼, 의자에 앉아서 컵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커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반갑게 웃으며 손짓했다.
아,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자신이 커크를 의도적으로 피했던 이유가.
그의 눈을 볼 때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칸의 밑에서 신음하던 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땀에 젖은 얼굴, 꺼져가는 목소리, 눈물이 잔뜩 고인 채 흔들리는 눈동자. 쓰러져서 힘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짐-.
그리고 칸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거기서 스팍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칸을 다시 보게 된다면 턱을 날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건 합당한 분노야. 스팍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광경을 떠올리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었지만, 떠올릴 때마다 의도치 않게 치고 올라오는 일로지컬한 '감정 그 자체'는 통제하기 어려웠다. 감정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스팍은 자신도 절반은 인간이니만큼 감정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모욕했던 커크에게 분노했던 그때처럼. 그러니 '분노'라는 감정은 충분히 논리적이었다.하지만 잦은 감정은 절반의 벌칸에게 그리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올 터였다.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15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커크텀 주의, 앵슷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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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이 거칠게 커크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커크가 흐느끼듯 신음을 흘렸다. 그는 두 번째로 혼절한 뒤 깨어난 참이었다. 커크는 저항할 의지조차 잃은 채였고 칸은 그런 커크를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몸을 기울였다.
"아-, 캡틴. 저걸 봐."
커크의 머리칼을 쥐고 칸이 속삭였다. 커크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금실 포스 필드 너머에 스팍이 서 있었다. 그는 양손을 꽉 말아쥔 상태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어. 대단하지. 함장을 걱정하는 마음이 여기, 내 가슴에까지 느껴져."
"스팍......."
커크의 입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칸은 땀과 눈물, 피로 지저분해진 커크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을 본 스팍의 눈썹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칸은 다시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 캡틴은 내 혈액 덕분에 지금 살아있어. 감사를 받을만한 일 같은데."
"그에는 감사를 표하지. 하지만 네가 현재 진행 중인 행위와 함장님의 생명 유지는 아무 상관성이 없어. 당장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한다."
"왜, 내 것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불만인가?"
"함장님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은 네 혈액에 포함된 특정 성분이다. 정액은 관련 없는 물질이지. 넌 지금 내게서 감정적인 반응을 유도하고 있을 뿐이야."
스팍이 다시 입을 열었다. 커크에게 하는 말이었다.
"함장님. 잠금을 해제해 주십시오. 바로 저 자를 제압하고 당신을 구출할 수 있습니다."
커크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칸이 커크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뒤에서 그를 안아 자신의 팔 안에 가두었다. 커크의 어깨에 자신의 턱을 올리며 속삭이는 그는 마치 악마 같았다.
"캡틴, 캡틴 커크. 넌 이미 나와 같아. 우월함을 얻는 과정 중에 있지."
"함장님.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네 피, 네 혈관을 타고 흐르는 그걸 느껴보라고."
"함장님. 거기서 나오셔야 합니다."
"짐-."
칸의 한 마디에 스팍이 그대로 얼굴을 굳혔다. 주먹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커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스팍. 네가..."
"안됩니다."
"...임시 함장을 맡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 마지막... 명령일지도 몰라."
"함장님!"
칸의 손이 커크의 입을 덮었다. 커크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웅웅거렸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잔뜩 젖어 희푸른 그의 두 눈동자만 애처로이 빛났다.
"명령을 받았으면."
스팍이 칸을 죽일듯한 기세로 노려보았다. 칸은 여유롭게 그 눈빛을 받아쳤다.
"따라."
바닥에 초록색 피가 똑, 똑 떨어졌다. 스팍의 주먹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칸이 자신의 말을 끝맺었다.
"-'임시 함장'."
-
스팍이 브릿지에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홀로 들어온 그가 말없이 걸어가 함장석에 앉자 곳곳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엔터프라이즈, 임시 함장 스팍이다. 우리는 현재 진행 중이던 탐사 임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함장 제임스 T. 커크의 신병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한다. 엔지니어부는 구금실을 여는 것을, 의료부는 현재 방법 외에 제임스 커크 함장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 이상."
그의 옆에 서 있던 맥코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찾아내라'고? 말은 쉽지!"
"칸이 죽어도 함장님이 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해."
"뭐 어쩌라고. 칸 그 자식의 몸에서 피를 모조리 뽑아놓기라도 할까?"
"가능하다면. 해."
스팍의 단호한 대답에 맥코이가 입을 다물었다. 한숨을 쉬던 그는 곧 스팍의 손에 묻어있는 초록 핏자국을 발견했다.
"스팍, 손!"
"......."
"...손 이리 내."
맥코이는 스팍이 내민 손의 상처에 리제너레이터를 들이밀었다. 손톱 자국을 보니 주먹을 세게 쥐어 생긴 상처가 틀림없었다. 이래뵈도 반은 인간이 맞군. 한숨을 쉬는 맥코이였다.
상처를 치료받으며 스팍은 내심 자신이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함장에게 굴욕을 주는 것을 보고 일어난 반응, 그것은 정당한 분노였다. 그는 나의 함장이기 때문에. 내가 지켜야 했고 지켜야 하는 함장이기 때문에. 그리고 제임스 커크의 말마따나, '친구'이기 때문에.
하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을 때는 바로 특정한 한 순간이었다.
바로 칸이 커크를 향해 '짐'이라고 불렀을 때였다. 동일한 단어인데 닥터 맥코이가 짐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달랐다. 자신도 아주 가끔 그러한 호칭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가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기 때문에 부를 따름이었다. 그런데 칸 누니엔 싱. 그가 뭐라고 제임스 커크에게 서로가 친밀한 관계인 것처럼 '짐'이라고 부르는 거지? 더군다나 커크에게 고통을 준 그가? 심지어 한 번 커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자가?
답이 없는 질문들이 속에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가 커크의 물기어린 얼굴을 쓰다듬었을 때, 또는 커크의 입을 막아 그의 눈동자만 도록도록 굴리고 있었을 때, 그 순간들마다 무언가 껄끄러운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을 기억했다. 심지어 칸이 커크를 범하고 있는 그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불쾌감이 알알이 차올라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도 떠올랐다. 이렇게 토할 것처럼 역겨울 데가. 몸을 떨던 스팍은 이 모든 감정을 자신의 함장을 모욕한 것에 대한 합당한 분노로 돌렸다.
-
"크으..."
커크는 일어서서 걷기는커녕 제대로 앉아있을 수조차 없었다. 칸이 뒤에서 안은 팔을 풀지 않았기에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었을 뿐, 그대로 기절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기력이 쇠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약 2시간 정도. 칸에게 유린당한 시간이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다만 커크는 깨어난 이후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148시간마다 맞아야 하는 혈청을 혈관 속에 직접 주사하는 대신 식도를 통해 흘려보냈기에 흡수되는 것도 더 느릴 터였다. 커크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스팍들이 구금실 보안을 해제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15분쯤? 빠르면 10분? 그동안 칸의 집중을 흐트러놓아야 했다.
"칸......."
커크가 가까스로 단어를 내뱉었다. 칸은 반응하지 않았다. 띄엄띄엄 커크가 말을 이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야.... 스타플릿의 복수를 막은 일... 원망하는 거야...? 아니면......."
"이제 와서 나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건가. 짐?"
"그렇게 부르지... 마."
칸이 커크의 뒤통수에 대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감싸듯이 그러쥐었다.
"길고 너무나 오래된 얘기지. 기억할 필요도 없어. 중요한 건, 우월한 존재가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거다. 그게 곧 법칙이고 세상의 진리지."
커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지구 역사학, 20세기의 끄트머리. 우성학이 대두된 이후 초인들이 나타나 지구의 4분의 1을 점령했던 시기. 인종 전쟁, 세계 대전으로 불리던 파괴와 학살의 시대. 증강 인간(혹은 강화 인간)이라 알려져 있는 이 칸 누니엔 싱과 72명은 전쟁이 막을 내린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었을 것이다. 혹은, 다시 깨어날 날을 기다리며 스스로를 가두었던 거겠지.
"그건 완전히 무의미한 싸움이었어..."
"과연 그럴까? 불완전하지만, 너 또한 우리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데."
"......."
자신과 같은 존재, 우월한 존재가 하나 더 늘어난다, 라.
칸으로서는 사실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시 72명의 동료를 깨워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계획은 아직까진 없었다. 그들이 지하 깊숙이에 처박혀 있다 해도, 어쩌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그러니 아무 방법도 없는 지금은 그저 잠깐의 여흥을 즐길 시간이라 생각했을 뿐. 혼란을 느끼고 있는 이 작은 존재를 손아귀에 쥔 채로 말이다.
멍하니 구금실 밖을 살피던 커크의 눈에 작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푸른 셔츠, 스팍이었다. 커크는 바쁘게 뛰기 시작한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칸의 말에 집중했다. 칸은 허탈하게 웃었다.
"스타플릿이 네게 내릴 처분이 더 기대되는군. 함께 지하에 처박힐 가능성이 높아. 짐. '함께'."
칸이 강조했다.
"엿이나 처먹어."
커크가 대답했다.
순간 구금실의 보안이 해제되었다. 갑작스레 문이 열리며 나는 소리에 칸은 벌떡 일어났고 멀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팍이 그를 향해 페이저를 쏘았다. 그가 쓰러진 사이 뛰어든 보안요원이 커크를 부축해 나왔다. 페이저를 살상용으로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칸은 5초 후에 눈을 떴다. 하지만 그는 커크가 나간 것을 보고도 별반 당황하지 않았다.
"다시 보안 걸어. 스콧 소령. 최상위 코드로."
스팍이 통신을 보내자 구금실이 다시 굳게 닫혔다. 커크는 스팍 앞에 서서 히죽 웃었다. 한없이 반가운 표정이었다.
"하! 올 줄 알았다니...까......."
"짐!!"
그는 그대로 스팍을 향해 쓰러져버렸다.
"닥터! 간호사!"
커크를 품에 안고 스팍이 옆을 돌아보았다. 구금실 안에서 칸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17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커크텀 주의, 유혈(?), 앵슷 주의
-
"계획을 말해."
"없다고 했을텐데."
구금실 안에는 칸이 서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서 있는 것은 스팍이었다. 그는 눈썹 한쪽을 치켜뜨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함장님의 신체에 일어난 현상을 설명해."
"나의 가족이 되는 과정 또는 열등한 쓰레기가 되는 과정이지."
"의미가 불분명하군."
칸이 나직이 비웃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다시 자신의 선원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정기적으로 피를 뽑히는 일, 그것뿐이었다. 자신이 거부한다 해서 거부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제임스 커크의 생명 유지 장치와 다름없었고 제임스 커크는 자신의 피를 통해 시한부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것조차도 우스운 일이었는데, 이제는 더 웃기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제임스 커크가 칸과 같은 유전자 조작 인간으로 변해가다니!
"혈청의 성분만으로는 몸의 유전자 전체가 변화하는 것이 불가능해. 무슨 방법을 쓴 거지?"
"열등한 것은 제거되기 마련이지. 우월한 피로는 불가능한 게 없어. 잡종 벌칸."
칸의 눈동자에 경멸과 조롱의 빛이 떠올랐다. 스팍은 담담히 그 눈빛을 받아냈다.
"그를 보고 싶군."
-
커크는 의무실 베드에 묶여서 누워 있었다. 그는 혼미한 정신으로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날 죽여, 본즈... 날 죽이라고......."
옆에서 하이포를 들고 있던 본즈가 욕설을 내뱉었다.
"닥쳐, 짐. 시간이 다 되서 그런 거니까, 조금만 참아."
"아냐... 안돼. 그 혈청은......."
"이게 널 살리는 거라고. 빌어먹을, 가만히 좀 있어!"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 커크가 몸부림을 쳤다. 더 혈청을 맞는다면 칸처럼 될 것이 분명했다. 커크는 절대로 그런 자식과 같은 종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놈의 피로 연명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은 삶이라고 할 수 없었다! 기생체, 흡혈귀, 괴물, 뭐든지, 뭐가 됐든지 간에, 끔찍했다!!
커크가 몸을 뒤틀자 그를 잡아맨 침대가 세게 흔들렸다. 간호사들이 전부 달라붙었다.
"치워.......!"
커크를 묶었던 줄이 끊어졌다. 맥코이가 그에게 달겨들었다.
"짐!!"
커크의 손에 의해 맥코이는 멀리 날아갔다. 간호사들 또한 나가떨어졌다.
급히 메디컬 베이에서 달려나온 커크는 죽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뚜렷하게 떠올랐다.
"기대대로군."
칸의 말에 커크가 눈을 치켜떴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칸이 편하게 앉아 있었다. 커크는 함장의 권한으로 구금실 포스 필드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에서 다시 벽이 닫혔다.
"컴퓨터. 구금실 보안 레벨을 최고로 올려."
함장 이외의 권한으로는 구금실을 열 수 없도록 조치하고, 커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 게다가 칸과 같은 힘도 얻었으니, 이 힘으로 칸을 두들겨 팬다면 적어도 원없이 다시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크는 얼굴을 굳히며 칸에게 말했다.
"네놈처럼은 되지 않을 거다."
"여전히 지능은 열등하군."
커크가 고함을 지르며 칸에게 달려들었다. 그를 쫓아 크로노스에 갔을 때처럼 그에게 주먹을 날리고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 칸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젠장...! 젠장!! 네가... 네가 뭐라고!!"
그것이 더 화가 났다. 그가 아파하는 모습이라도 보인다면 기분이 풀릴 텐데. 미안하다는 사과라거나 반성하는 모습 따위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저 내가 고통스러웠던 만큼 그도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는데.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 그 죽음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데.
칸을 깨우고 협박했던 마커스 제독은 그에 의해 죗값을 치뤘고, 칸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냉동된 채 지하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파이크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죽임을 당했어야 했지? 살인자 칸은 여기에 멀쩡히 살아 있다. 빌어먹게도 자신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원망의 대상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 그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끔찍했다.
"죽어버려!!"
그래야 나도 죽을 수 있어.
칸을 집어던진 커크가 숨을 헐떡거렸다. 벽에 세게 부딪친 뒤 바닥에 떨어진 칸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커크는 눈을 깜빡였다. 타임아웃이 다가오고 있었다. 칸의 혈청을 주입받지 않으면, 곧 죽겠지. 하지만 칸의 혈청을 주입받으면, 칸과 같은 족속이 되겠지. 어느 쪽이든 끌리진 않았지만 죽는 쪽이 마음이 더 편한 것만은 분명했다.
커크가 비틀거리자 칸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놔, 새끼야...!!"
그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한 칸이 중얼거렸다.
"혈청. 받지 않았군."
"그래, 자식아. 이제 자유로워질거야....... 뒈질 거라고. 네놈 따위한테 도움 받지 않아..."
칸이 손을 들어 자신의 팔을 세게 그었다. 금방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커크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뭐야......!"
"먹어."
"미친 새끼...! 꺼져!!"
커크의 등이 구금실 벽에 부딪혔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황급히 주변을 더듬었지만,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커크는 혼미한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하며 미친듯이 중얼거렸다.
"미친 놈... 미친 자식...!"
칸이 커크를 붙잡았다. 커크는 온 힘을 다해 칸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미 기력이 빠진 상태였다. 커크가 있는 힘껏 고개를 돌려 그를 거부하자 칸은 별수 없다는 듯 입에 자신의 피를 머금었다.
"혈청으로 분리할 필요 없어. 이걸로 충분해."
"날 죽게 내버려 둬...!!!"
커크가 발버둥치자 칸이 커크의 두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커크의 머리채를 뒤로 잡아당겼다. 커크의 목이 젖혀졌다.
"커헉, 놔...! 제발...!!"
칸은 자신의 입을 커크의 입으로 가져갔다. 검붉은 피가 커크의 입으로 쏟아졌다. 커크는 그것을 삼키지 않으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칸의 피가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비참함과 무력감에 못이겨 눈물이 나왔다. 칸은 무자비하게 자신의 피를 커크의 목구멍에 부어넣었다. 기침이 나왔지만, 칸은 자신의 팔에서 피를 빨아들일 때 빼고는 그것을 멈춰주지도 않았다.
"하아, 하악, 켈록! 켈록!!"
커크가 피를 도로 토해낼 지경이 되어서야 칸은 잠시 멈췄다. 커크의 얼굴은 피와 눈물로 범벅된 상태였다.
"하아, 하아, 하아... 개새끼......."
"일부는 소화될테니 어차피 충분하지 않아."
"날, 날... 왜...!"
커크의 모든 말을 무시하고 칸이 손을 뻗었다. 그는 커크의 버클을 잡아 풀었다. 축 늘어져 있던 커크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칸의 손을 쳐냈다. 이제 칸이 정말로 미친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이 개자식이...!!"
"제임스 커크."
"닥쳐, 지금 당장...! 떨어져...!! 컴퓨터! 문을-."
칸이 커크를 잡아 눌렀다. 그의 무릎 아래 깔린 커크가 지지 않겠다는 듯 몸부림을 쳤다. 다시 소리를 지르려는 커크의 귀에 대고 칸이 속삭였다.
"캡틴. 지금 문을 열면 너와 나 중에 누가 먼저 나갈 것 같나?"
"크으......!"
"선원들을 아끼지 않나? 결정해. 이 안에서 내가 네 선원들을 죽이는 모습을 바라볼 건지, 아니면나를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갈 건지."
커크가 욕설을 내뱉었다. 어느 쪽이든 개같은 결론이잖아...!
"왜 날-."
"아-. 왜 널 살려두는지는 묻지도 마. 네가 비참하게 살아가는 게 나의 복수니까. 그러니 살아서, 내 앞에서, 죽는 것보다 끔찍한 삶을 살아. 캡틴 제임스 커크. Shall we begin?"
칸이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커크의 바지를 잡아내렸다. 뒤늦게 달려온 맥코이와 스팍, 다른 선원들이 구금실 밖에서 그 광경을 망연자실하게 보고 있었다. 우후라는 입을 가렸고 술루는 표정을 굳혔다. 연락을 받은 기관실에서 최선을 다해 구금실 보안을 해킹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모두 여기서 나가. 함선 운항에 차질이 생겨."
스팍이 명령을 내렸다. 선원들이 망설이며 그곳을 벗어났다. 마지막으로 나간 것은 맥코이였다. 그는 스팍을 향해 빈정거렸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나 보지? 냉혈한 개자식아."
스팍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먹을 쥔 그의 손등 위로 초록 힘줄이 튀어 나왔다. 그의 시선은 한 곳에 못박혀 있었다. 구금실 안에 쓰러져 있는 제임스 커크와 그의 위에 올라타 허리를 움직이는 칸.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NC-ALL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커크텀 주의, 제가 칸에 영업당했다고 합니다
-
"팔."
맥코이의 말에 칸이 말없이 팔을 뻗었다. 그는 이전에도 갇혔던 바 있던 엔터프라이즈 내의 구금실 안에 서 있었다. 맥코이는 그의 팔에서 여느 때와 같이 채혈을 했다. 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벌칸보다 더한 놈. 맥코이는 그를 그렇게 평했다. 칸 누니엔 싱, 스타플릿에 복수를 계획하고 다수의 고위 장교를 살해했으며 엔터프라이즈를 폭파 직전까지 몰고 갔던 인물. 깊은 지하 창고에 냉동되었던 그를 다시 꺼내야 했던 건 다름아닌 제임스 커크 때문이었다.
칸의 혈청으로 간신히 살아났던 커크는 깨어난 지 일주일 후 다시 쓰러졌다. 예기치 못했던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허둥지둥하던 스타플릿과 엔터프라이즈는 차선책으로 다시 칸의 혈청을 주입했고, 커크는 바로 깨어났다.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지만, 일주일마다 그 일이 반복되었다. 커크가 함장으로써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 칸의 혈액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5년 임무를 포기하거나 칸을 데리고 다니거나 둘 중의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엔터프라이즈는 칸 누니엔 싱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 부담을 진다는 전제 하에 그를 함선에 태웠다.
그의 대접은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실험쥐처럼 구금실에 갇혀 있다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공급받았고, 엄중한 보안 과정 중에 채혈을 했다. 칸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소할 뿐이었다.
"너희도 다를 바 없군."
입닥쳐, 맥코이가 읊조렸다. 엔터프라이즈의 선원 모두가 칸을 꺼렸다. 잠깐 엔터프라이즈에 탔다고는 하지만, 커크를 위협하고 마커스 제독을 살해하던 그의 모습은 배신감 그 자체였다. 결국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그들의 함장이던 커크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었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는 유전자 조작으로 다시 태어난 증강인간이었다. 지능, 힘, 모든 것이 인간의 기준을 가볍게 상회했다. 본질적으로 인간이나 인간이지 않은 자와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네 함장도 얄궂은 운명이야."
"닥치라고 했어."
"원한다면."
자신의 아버지와 같았던 크리스토퍼 파이크를 죽인 칸, 그가 자신의 생명줄이라니. 커크 또한 몇 번이고 이 빌어먹을 관계에 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차라리 그냥 죽을까 싶기도 했다. 그의 혈청을 주입받지 못하면 그의 삶은 7일, 148시간으로 제한된다. 시한폭탄과 같은 삶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번 죽음을 경험했던 커크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원래 죽었어야 할 자였다. 커크는 다른 모든 희생자들에도 불구하고, 공연히 살아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원수나 다름없는 칸을 태워야 하는 엔터프라이즈 선원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부터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어쨌든 살인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커크가 칸을 피하는 이유였다. 감사? 개나 줘버려.
"그의 동태는?"
"변함없어."
"그래."
맥코이는 커크가 칸을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커크가 칸의 혈청 없이도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루종일 실험과 연구를 하며 메디컬 베이를 떠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없어도 탐사는 순조로웠다. 모든 대원들이 그런 맥코이를 배려해주었고 커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맥코이를 찾던 커크는 구금실까지 내려왔다. 맥코이가 칸의 피를 채혈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커크는 텅 비어있는 복도를 보고 당황했다. 그러다 의자에 앉아있던 칸과 눈이 마주쳤고, 그는 급작스레 맞닥뜨린 상황에 미간을 찌푸렸다.
"Captain."
커크는 대답없이 몸을 돌렸다. 칸과의 대화가 전혀 유익하지 않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배운 바였다.
"겉보기엔 멀쩡하군."
칸의 말에 커크는 걸음을 멈췄다. 어쩌면.
칸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면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숨겨진 계획이 있든지 간에 자신과 엔터프라이즈가 이용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커크는 다시 몸을 돌려 투명한 포스 필드를 사이에 두고 칸의 앞에 섰다.
"또 뭘 숨기고 있어? 개자식아. 말해."
"보는 바와 같이, 아무것도.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단지 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지. 아닌가? 너희들이 데려왔잖나."
"나를 이렇게 만든 게 네 의도였을지도 모르지."
"오, 캡틴. 난 널 방사능 코어에 처넣은 적이 없어."
"나였든 아니면 누구든. 네 피를 주입하게 만들어서, 이렇게 함선에 타게 해서 결국 네 목적을 이루려는지 어떻게 알아."
칸이 명백한 비웃음이 담긴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게 하찮은 것을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나. 캡틴. 내 혈청이 네 뇌는 제대로 복구하지 않은 모양이군."
"닥쳐."
커크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네놈 자식 없이도 살아갈 방법을 찾을 거야. 그래서 널 다시 얼음으로 돌아가게 해주겠어."
"'부디' 그래주시지."
"반드시. 반드시 내가 널-."
결의를 다지는 커크를 보는 칸의 눈에 잠깐 이채가 어렸다.
"캡틴. 당신의 태도가 내 마음을 바꿨어. 정보를 하나 알려주지. 흥미로울 거야."
"뭐?"
"당신이 내 혈청을 맞은 일자로부터 98일 뒤. 약 이틀 뒤겠지. 그때 다시 날 찾게 될 거야."
칸의 말에 커크가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으름장을 놓고 협박을 해도 칸은 입을 열지 않았다. 커크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그때부터 입을 굳게 다문 채, 맥코이가 찾아올 때까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금실 앞에서 칸을 노려보고 있는 커크를 발견하고 맥코이가 급히 달려왔다.
"짐? 대체 왜 여기 있어?"
커크는 마지막으로 칸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냐.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러 왔어. 이만 갈게."
"그래, 가봐."
맥코이는 커크를 전송하고 칸을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 또한 커크의 것만큼이나 좋지 않았다.
-
칸과의 대화 이후 이틀 내내 커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한 내용을 함부로 함선의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들을 걱정시키느니, 커크는 스스로 해결하는 편을 택했다.
"스팍. 내 쿼터로 와."
"알겠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된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스팍이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스팍은 벌칸이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적절한 힘으로 상황을 통제하리라. 커크는 컵을 만지작거리며 개인 쿼터에 앉아 있었다.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스팍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앉아."
스팍이 커크의 말에 따라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재차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그냥. 얘기나 하자고 불렀어."
"사적인 용무군요."
"그렇지. 그간 이렇게 이야기할 시간도 별로 없었잖아. 안 그래?"
스팍이 커크의 말을 부정했다.
"함장님은 함교에서도 충분히 사적인 대화를 하고 계십니다."
"어쨌든. 단둘이 말이야."
"인정합니다. 이런 시간은 약 2개월 만이군요."
"그래, 그래."
커크가 스팍의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자신도 목이 타는지 물 몇 컵을 연거푸 들이키는 커크였다.
이런저런 사담이 오고갔고, 어느새 시각은 2300에 가까워졌다. 스팍이 몸을 일으켰다.
"더이상 용건이 없으시면 저는 가보겠습니다."
커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앉아."
"함장님?"
"명령이야."
커크는 얼굴을 숙이고 있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스팍은 커크의 명령에 따라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커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팍은 커크의 손이 하얗게 된 채 의자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상치 않았다. 스팍이 벌떡 일어나 커크에게 다가갔다.
"함장님의 신체에 이상이 있다면 닥터 맥코이를 부르겠습니다."
"부르지 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명백히 함장님의 몸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판단됩니다."
"내 몸이...."
커크가 쥐고 있던 의자가 부숴졌다. 스팍이 놀라 일어섰다. 커크는 몸을 떨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커크는 몸을 움직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스팍, 날 잡아."
"함장님?"
"아니, 차라리 날 기절시켜."
"무슨-."
"빨리!!"
스팍이 커크에게 다가왔다. 명령에 의문을 느꼈지만, 그는 커크의 말에 따라 너브 핀치를 시도하려 했다.
그 순간 커크가 스팍의 팔을 잡아 그를 벽에 집어던졌다.
"!"
"내, 내가 한 게-!!"
몸을 일으킨 스팍이 다시 커크에게 다가왔다. 커크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팍은 그제서야 커크의 힘이 인간의 것을 상회해서, 칸의 것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칸이 계획한 것이 이것이었나? 스팍은 잠깐의 추론을 멈추고 다시 커크를 제압하려 시도했다.
"아악!!"
커크가 비명을 질렀다.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때처럼, 칸이 너브 핀치를 당하고도 기절하지 않았던 것처럼, 커크 또한 너브 핀치를 당하면서도 몸이 그것에 저항하고 있었다. 스팍은 적은 가능성의 추론이 점차 기정사실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주의: 이미 커플! 앵슷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으앙 난 꽁냥질이 쓰고 싶었는데 너무 어렵다 아ㅣ싸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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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가 마지막으로 침대를 뒤집어 엎으며 두 손을 들었다. 요란한 소리에 바닥에 손을 대고 있던 스팍이 고개를 들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방 안의 모든 가구를 뒤엎고 뒤졌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그들은 완전하게 갇힌 상태였다. 커크가 뒤집어둔 침대에 걸터앉았다. 스팍은 그의 앞에 다가갔다.
"벽과 바닥, 천장 모두 합금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제 말은-."
"부술 수 없다는 거겠지.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함장님. 엔터프라이즈에서 우리를 찾을 확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금방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 순간 천장에 설치된 구멍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커크와 스팍 모두 동시에 그것을 올려다 보았다.
"'시간 내'에 찾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데?"
스팍은 잠시 계산한 후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방의 면적과 물이 쏟아지는 속도, 엔터프라이즈의 지휘 상태를 고려했을 때 우리가 구조될 확률은 37.29%입니다. 함장님."
"산 채로? 아니면 그거 혹시 익사한 시체를 발견할 확률이야?"
"전자입니다."
"엿이나 먹어. 젠장."
커크의 욕설에 스팍이 입을 다물었다. 커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추론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커크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그랬다. 대부분의 경우 커크는 자신의 '어떤' 부분 때문에 화가 나곤 했고, 자신은 그것을 알 수 없어서 곤혹스러웠다. 그것을 커크에게 물어도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사실 스팍은 커크의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그것을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 연애에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까지는.
스팍은 생각을 정리하고 탈출하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곳이 완전한 밀실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분명 환풍구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물을 들이붓는 것 자체가 밀실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좀 닥쳐봐. 생각 좀 하게."
스팍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커크는 말을 내뱉자마자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생각? 생각 따위 할 것도 없었다. 구출되든지, 여기서 죽든지였다. 내가 빌어먹게도 좋은 운을 타고났다면 아마 죽지는 않겠지. 아니면 죽고도 또 살아나든지. 또, 또. 커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앞에 얌전히 서 있는 스팍이 신경쓰여서 짜증이 났다.
흘낏 그를 보자 무릎까지 차오른 물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대로 서 있는지, 그것조차 화가 났다.
"대체 왜 날 찾아왔어?"
"함장님은 함교를 40시간 동안 비우고 계셨습니다."
"젠장할. 그런데 왜 네가 왔냐는 말이야!!"
커크가 스팍에게 호통을 쳤다. 판에 박힌 대답이 나올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소리라도 내지 않으면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스팍은 단호한 자세로 서서 커크를 마주 보았다.
"제가 온 것이 함장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스팍의 대답에 커크는 심장이 펄떡거린 채 목구멍에 콱 박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숨통을 조여들게 했다. 커크는 물을 헤치고 저벅저벅 걸어와 스팍의 멱살을 잡았다. 당장이라도 주먹이 튀어나가기 직전이었다.
"안 내려올 거였으면 그냥 거기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튀어내려왔냐고."
"함장님이 화가 나신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내가 그걸 일일히 설명해야 하냐고!!!"
커크가 스팍을 잡아당겼다. 둘의 얼굴이 닿을 듯 가까워졌다. 스팍이 커크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여전히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
"예.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하, 커크가 한숨을 내쉬며 스팍의 멱살을 쥔 손을 놓았다. 하지만 스팍은 커크의 손을 놓지 않았다. 커크의 눈빛이 날선 것마냥 파르라니 빛났다.
"놔."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전부."
"놓으라고 했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저는 들어야 합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스팍은 마인드 멜드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그것을 통해 마음을 확인한다 해도, 커크가 불쾌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그는 커크를 존중했고 커크가 싫어할 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그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했다면 시정할 의향도 충분히 있었다.
"어디서부터? 방사능 코어에서 죽었던 내가 살아난 것? 아니면, 폭발하는 니비루의 화산 속에서 너를 살린 것? 그것도 아니면, 너와 내가 위원회에서 처음 만난 것? 글쎄.너무 많아서 모르겠는데."
"짐!"
스팍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과 그의 관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들이었다.
커크는 스팍의 부름에 그를 똑바로 올려보았다. 커크는 자신의 말이 서서히 스팍에게도 동요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쨌든, 네로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그는 이런 것에 꽤 소질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고 상처를 헤집는 일이라면야.
"이거 놔. 명령이야."
커크의 마지막 말에 스팍은 힘없이 팔을 내렸다. 커크는 스팍의 표정을 보고 자신의 말이 그에게 끼친 영향을 어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엔 심장이 덜컥 멈춘 기분이었다. 병신같은. 커크는 속으로 끝없이 자신을 저주했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어. 아니었다고. 젠장!!
물이 허리께를 적셨다. 두 남자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차오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경이 복잡했다. 커크는 머리를 흔들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냐, 젠장, 스팍... 스팍. 내가 하려던 말은......."
"아닙니다. 함장님. 이해했습니다."
뭘 이해해? 커크가 깜짝 놀라 스팍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저를 더 이상 교제 상대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것으로 곤란한 일은 더이상 없을 겁니다. 함장님."
"뭐?"
시발, 도대체 뭘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빌어처먹을 결론이 튀어나오는 건데? 커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스팍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전혀 문제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 멍청한 자식아!!"
"!!"
커크는 결국 그를 벽으로 몰아세웠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말들은 한도 끝도 없이 넘쳐나는데, 도저히 이 홉고블린을 이해시킬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커크는 씩씩대며 숨을 골랐다.
스팍은 스팍 나름대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상황은 원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함장님이 왜 화를 내시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도저히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함장-."
커크가 스팍을 바라보며 눈썹을 모았다.
"정말 나를 사랑하긴 했어?"
"......."
"대답해."
제발, 커크가 쥐어짜듯이 덧붙였다. 스팍은 현재의 상황이 정말로 비논리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예."
스팍의 긍정에 커크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그 미미한 반응에 스팍 또한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완전히 안심하기엔 물이 더 빠른 속도로 쏟아지고 있었다. 물의 높이는 그들의 목까지 올라왔다.
"지금도 사랑해?"
"예."
스팍은 이전보다 더 빠르게 대답했다. 커크의 턱까지 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가 입을 오물거렸다.
"그런데-."
"짐. 가구를 붙잡아."
"왜-."
"어서."
스팍이 한 손으로 커크를 잡고, 한 손으로는 주변에 떠다니는 가구의 잔해를 잡아당겼다. 커크 또한 헤엄을 치며 스팍을 꽉 붙잡았다. 그는 끝맺지 못한 말을 이으려 하고 있었다.
"왜- 날 혼자 내버려뒀어?"
물살에 흔들리는 커크의 눈동자가 그와 마찬가지로 흔들거렸다. 스팍은 할말을 찾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짐......."
"다른 여자랑 잤어. 매일 밤. 화도 안 나?"
"짐, 나는..."
그들은 천장에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물이 이 방을 가득 채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너를 혼자 둔 게 아냐."
"그럼?"
나는 너를 믿었어. 스팍이 대답과 함께 커크를 끌어당겼다. 커크는 가만히 있었다.
"...스팍."
잠시 후에 그 또한 힘있게 스팍을 안았다.
물 위에서 흔들리며 서로를 안은 채, 커크가 조용히 물어왔다. 산소가 부족해지고 있었다.
"스팍?"
"말해."
"우리 결국 죽는걸까."
"82.7%의 확률로."
커크가 웃었다.
"그거 알아? 나라다 호에 공격할 때보다 낮은 확률이야. 그거."
"적어도 너를 두 번 죽게 하진 않을 테니까."
"하아, 이번에는 내가 이해가 안 가는데."
물이 거의 천장까지 차오르자 커크가 아예 물 속으로 들어갔다. 스팍 또한 깊이 잠수했다.
볼을 잔뜩 부풀리고 스팍을 향해 손짓하는 커크가 보였다.
스팍은 그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커크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스팍이 커크의 얼굴을 잡아 입을 맞추었다. 스팍의 의도를 알아차린 커크가 발버둥쳤다.
스팍의 손이 커크의 손목을 꽉 쥐었다. 커크가 몸부림을 치든 말든 스팍은 커크에게 자신의 숨을 전달했다.
한참 후 입을 떼자, 화가 난 듯한 커크의 얼굴이 보였다. 이번만큼은 커크가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커크가 입을 벌리며 고함을 치는 듯 했다. 공기들이 방울지며 떠올라 멀어져 갔다.
흐려져가는 의식 사이로 커크의 입술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
"흐어-!!"
커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분명 낯익은 장소였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메디 베이.
아, 살았구나. 커크는 눈을 비볐다. 살아났다는 기쁨에 앞서 스팍이 걱정되었다. 자신보다 먼저 정신을 잃었으니 더 위급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기억하는 한 끝까지 스팍에게 숨을 불어넣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커크는 급히 가림막을 젖히며 소리를 쳤다.
"본즈! 간호사!"
"짐."
놀랍게도 옆에 스팍이 있었다. 심지어 말끔한 파란 복장을 착용한 상태였다. 커크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스팍..?"
그는 대답하지 않고 가림막을 다시 쳤다. 그리고 몸을 숙였다.
"짐."
"스팍."
"그때도 말했지만. 다시는, 다시는 네가 죽으려고 노력하지 않기를 바라."
"스팍. 난 내 일등 항해사를 잃을 수 없었어."
"난 내 함장을 잃었었지. 그리고 또 잃을 뻔 했어."
커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 마음은 우리 둘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동의해, 스팍이 긍정하며 커크를 내려다보았다. 살짝 감긴 눈 위로 부드러운 속눈썹이 드리워져 있었다. 스팍의 눈길을 의식한 커크가 짖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내 숨을 돌려줘야겠어. 키스해 줘."
"명령이라면."
스팍이 고개를 숙였다. 긴 호흡 교환이 이루어졌다.
=
으아 끝~!!!!!!
꽁냥 리퀘를 받았는데 꽁냥은 전체의 1%되네요^^
죄송합니다......ㅇ<-< 제가 노래 가사에 꽂혀서 이런 되도않는 연성물을......
대충 생략된 부분은 저 상인 아저씨가 엔터프라이즈를 꿀꺽 하려다 걸려서 붙잡혔다~ 이 정도면 되겠네요.
커크로부터 사적인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함선 내 함장의 부재는 길수록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재는 24시간을 넘어 40시간에 접어들고 있었다.
스팍은 커뮤니케이터를 들어 다시 연락을 시도했다.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스팍의 신경이 곤두섰다. 공적인 업무 외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울려대던 커뮤니케이터였다. 그런 제임스 커크 함장이 메세지도 않고, 자신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않는다?
무언가 일이 생긴 것이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닥터 맥코이. 스팍이다. 함장님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당신이라 들었어. 함장님은 어디에 계시지?"
커뮤니케이터에서 불편한 기색이 흘러나왔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술집 바닥에 퍼져 있겠지."
"함장님께서 기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알콜을 섭취하도록 내버려둔 건가? 수석 군의관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군."
맥코이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참 빨리도 걱정한다. 그렇게 걱정할 거면 왜 진작 따라 내려가지 않았나?"
"당신이 그의 오랜 친구이니 그를 제대로 돌보리라 생각했을 뿐이야. 그런데 내 생각이 틀린 것 같군."
"틀렸지. 아주 제대로."
이를 갈듯이 대답하는 맥코이의 말에 스팍이 고개를 기울였다.
"닥터 맥코이. 부연 설명을 요구한다."
"거절한다. 네가 커크 자식 찾아와."
"지금 내게 명령을 내리는 건가?"
잠시 동안 대답이 없었다. 스팍이 재차 닥터 맥코이?, 하고 부르자 그제야 맥코이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부탁'하는 거다."
"받아들이지."
스팍은 통신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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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가 마지막으로 들렀다던 술집에 도착한 스팍은 취객들을 샅샅히 훑었다. 낯익은 금발은 보이지 않았다. 커크를 찾는데만 집중하던 스팍의 귀에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벌칸이다. 벌칸.
멸종위기라던? 몇 년 전에 모행성이 산산조각나서....
그 엔터프라이즈의 부함장인가 봐.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관 없었다. 우선 순위는 따로 있었다.
"제임스 T. 커크 함장님을 찾고 있다."
바텐더가 컵을 닦던 행동을 멈추고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도 제법 당황한 표정이었다.
"누구요?" "스타플릿 소속 대령 제임스 T. 커크. 그는 현재 이곳에 정박중인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그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그 책임은 전부 이 장소와 이곳에 있던 생명체들이 지게 될 것이다. 이제 다시 묻지. 제임스 T. 커크 함장은 어디에 있나?"
스팍의 위협적인 말에 바텐더들이 허둥지둥 움직였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건대 전후 사정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스팍은 그제서야 커크가 이곳에서 자신이 함장임을 숨겼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고급스러운 장식이 달린 옷을 입은 마른 남자가 뒤에서 나왔다. 행색을 보아하니 사장인 모양이었다.
"누구를 찾으신다고요, 아니, 그전에, 당신은 누구쇼?"
"스타플릿 소속 중령 스팍이다."
"그래서 우리 중령님께서 누구를 찾으신다굽쇼?"
"정정하지. 신장 185cm, 금발에 숏컷, 밝은 파란 눈의 인간 남자를 찾고 있다."
그가 딱 소리를 냈다. 바텐더들 또한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이 주변 술집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남자였다. 엔터프라이즈가 정박한 이후에 나타났으니 어림짐작으로 그 선원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개망나니가 함장이었을 줄이야!
"첨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랬슈. 지미는 내 집에 있네."
그의 말에 스팍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안내를 요청하지."
"협조하지 않는다면?"
"스타플릿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면 군법회의에-."
스팍의 말에 그가 주황색 안경을 치켜들며 킬킬 웃었다.
"농담이네. 어서 가지."
그의 안내를 받아 스팍은 고급스러운 대저택으로 들어섰다. 23세기, 우주정거장조차 개인 사유재산으로 건설할 수 있을만큼 부를 축적한 우주적 상인들이 존재하는 시기였다. 이 상인도 그러한 종류인 것 같았다. 이 우주 정거장은 마치 작은 도시 또는 작은 성과 같았다.스팍이 정원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대단히 흥미롭군."
"하! 이거 벌칸에게 칭찬을 다 듣다니, 나도 살만큼 산 기분이군."
"이 정거장 전체가 절반은 대지, 절반은 기계로 건설되어 있다. 이만큼 유기적인 시스템은 찾기 힘들지."
"그 함장 나리보다 백 배는 똑똑하신 것 같구만."
웃던 그는 곧 스팍을 하얀 문 앞으로 인도했다. 이 뒤에 계시네, 하고 손짓하고는 그가 멀어졌다. 스팍이버튼을 누르자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은 잘 꾸며진 방이었다. 그의 취향대로 화려한 색의 가구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와 대비되게 하얀 침대 위에는-.
커크가 있었다.
스팍이 성큼성큼 다가가 커크를 흔들어 깨웠다.
"함장님. 일어나십시오."
커크는 피곤한 듯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끙끙거리며 몸을 틀었고 그제야 스팍은 이불 근처에 묻어있는 여자의 립스틱 자국을 발견했다. 스팍은 그 순간 커크가 다른 여자와 잤음을 100% 확신했지만, 그저 눈썹을 치켜올리며 커크를 세게 잡아 돌릴 뿐이었다.
"함장님. 함교를 비운지 42시간이 지났습니다. 돌아오셔야 합니다."
"좀만 더 잘래..."
"제임스 커크 함장님.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보충했습니다."
"조금만..."
"일어나십시오. 이제 함선에 돌아가야 합니다."
"조금만 더... 응? 메이......."
커크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자 스팍은 가볍게 실랑이하던 것을 멈추고 손을 내렸다.
"알콜로 인한 효과가 잔존하므로 기상 여부와 상관없이 함선으로 모시겠습니다."
스팍이 이불을 걷어제치자 커크가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드로즈 한 장만 걸친 채였다.
"스팍?!! 너 여길 어떻게...!"
"술이 깬 것 같으니 스스로 옷을 입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함장님."
"스팍!! 어떻게 날 찾았냐니까!!"
커크의 말에 스팍이 고개를 기울이고는 의문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있던 술집에서 흔적을 찾았습니다. 그게 중요합니까?"
"젠장......."
명백히 '바람피는 현장'을 들킨 꼴이 된 커크는 조심스럽게 스팍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뒷짐을 지고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스팍은 아무것도 모를지도 모른다. 여자는 이미 나간 뒤였고 흔적이랄 것도 없었다. 커크는 다만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문 채로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었다.
"그, 크흠. 스팍?"
"말씀하시지요."
"나 찾아서 내려온 거야?"
"그렇습니다."
커크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함장님께서 함선을 오래 비우시면 선원들에게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나아졌던 기분은 다시 한없이 떨어졌다.
"말이나 못하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해하지마."
"함장님?"
옷을 다 입은 커크가 스팍의 앞에 섰다. 한껏 빈정거리는 표정이었다.
"너한테 뭘 더 바라겠어. 그치?"
"무엇에 동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말하기 싫다."
커크의 말에 스팍이 목을 꼿꼿이 세웠다. 좋지않은 기분이 엄습했다. 그의 감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예전과 같았지만, 달라진 커크의 태도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40시간 동안 조용한 커뮤니케이터, 새 메세지가 들어오지 않는 PADD, 그리고 충분히 기분이 나쁜 듯 보이는 커크. 스팍은 납득할 수 없었다.
"함장님."
앞장서서 걸어가는 커크의 등에 대고 스팍이 그를 불렀다.
"함장님의 태도가 이전과 다릅니다."
다른 이성과 자리를 함께한 것을 포함해서. 스팍은 말을 삼켰다. 커크가 자유분방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커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그 믿음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내가 뭐가 다른데?"
"......."
커크가 역으로 질문해온 덕택에 스팍은 잠깐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어디에서부터 이야기해야할지 모호했다.
"정확히는, 42시간 전부터입니다."
"아- 그만." 커크가 그의 말을 끊었다. "길게 말하는 거 질려. 내가 뭐가 다른데? 그것만 말해."
"저를......."
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팍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커크의 행동으로 보면 분명한 사실이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추측을 기정사실화할 추가 사항을 얻기 전까지 성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커크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스팍을 돌아보지도 않고 버튼을 눌렀다.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차라리 다시 여자를 안고 히히덕거리며 놀고 싶었다. 지금은, 정말이지 지금은, 스팍을 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왜 이래 이거?"
"제가 수동으로 열겠습니다."
스팍이 나서서 기계를 조작해보기도 하고 벌칸의 괴력으로 문을 두들겨 보기도 했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스팍은 자신이 너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정박되어 있는 엔터프라이즈 호와, 비어있는 함교, 함장과 부함장 모두 부재중인 상황. 어쩐지 너무 쉽게 자신을 함장에게로 인도했다 싶었다. 그걸 이제야 생각하다니! 그 남자의 짓이 분명했다.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야."
스팍의 말에 커크가 동의하며 주변을 살폈다.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화려한 방에는 창문조차 없었다. 커크는 마지막 희망으로 커뮤니케이터를 열었다. 먹통이었다. 방해 전파까지 깔아둔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커크가 욕설을 내뱉으며 벽을 내리쳤다.
엔터프라이즈는 지난 탐사로 파손된 물품과 약품을 보급받기 위해 FE-X5 우주정거장에 정박중이었다. 단순히 필요한 물품을 전송해 올릴 수도 있었지만, 작은 행성 위에 개척된 우주 정거장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다는 함장의 사적인 이유로 며칠의 여유가 주어진 것이었다. 그 이유야 어찌됐든 다수의 선원들이 그 결정을 쌍수들고 환영했다.
"난 정말 이 '땅'이 밟고 싶었어."
지상에 내려서자마자 맥코이의 입에서 감상이 튀어나왔다. 다른 선원들의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함선을 지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모두 정거장 내 도시로 내려왔다. 뿔뿔히 흩어져 가는 선원들을 바라보며 커크가 입을 열었다.
"열심히 밟아. 한달만이던가?"
"세달만이다. 지난 탐사에만 참여했어도."
커크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자신은 전혀 그 일에 책임이 없다는 듯 태평한 표정이었다.
"스팍은?"
"틀렸어. 네가 해도 안 되던 걸 내가 어떻게 끌어내냐?"
"후."
맥코이의 말에 커크가 잠깐 풀이 죽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반수 이상의 선원이 함선을 비우고 함장까지 함교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등 항해사마저 함선에서 내린다면 응급 상황에 대비할 수 없음은 확실했다. 스타플릿 규정상 최소한 두 명이 함교에 남아 있어야 원활한 점검과 통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스팍은 비상시 함교가 비어 있어 함선이 위험에 처했던 역대 기록들을 줄줄이 읊으며 커크의 입을 다물게 했고, 결국 함교에 스팍과 우후라, 체콥만 남겨둔 채 내려온 것이었다.
커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정박중일 때는 다른 프로토콜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렇게 말하지 그랬나?"
"그땐 생각이 안 났어."
"잘났다. 난 약품 확인하러 병원에 갈 거야. 넌 알아서 놀아라."
"술집 같이 안 가?"
"연락해."
"그래."
멀어져가는 맥코이의 등을 보며 커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1500시였다. 확실히, 술을 들이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커크는 팔을 쭉 뻗고 걸음을 옮겼다.
"이쁜이들이나 많았으면 좋겠다."
제임스 T. 커크는 그런 시간에 구애받는 남자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
함교는 한산했다. 엔터프라이즈 전체가 한적했고 오히려 쓸쓸한 분위기를 풍겼다. 우후라와 스팍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체콥은 죽을 맛이었다. 자신이 왜 나머지 선원들을 따라 내려가지 못했는지 과거의 자신이 미워질 지경이었다. 세 명 밖에 없는 함교에서 이제 와 내려가고 싶다고 말하기엔 이미 늦은 것 같았고 부함장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체콥은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가 함교에 돌아온다면 그걸 구실로 교대할 수 있을텐데.
그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후라가 나직하게 스팍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은 안 내려가요?"
스팍이 의외라는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체콥 또한 앞을 보고 있었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몇 번이나 언급한 것 같지만, 내가 내려갈 필요성이 없고 함교에는 늘 최소한의 인원이 상주하고 있어야 해."
"...당신은 정말 하나도 변한 게 없네."
"발화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군."
교제하던 시절에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지성이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팍이 눈썹을 비뚜름히 올렸다. 우후라는 늘 직언을 했고 사실을 가감없이 표현할 줄 알았다. 생도일 때도 그러했고, 통신장교가 된 이후에도 그러했다. 칸의 사건 이후에 자신의 마음 향방을 알게 된 때조차 그녀는 깔끔하게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둘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녀는 미련조차 갖지 않는 유능한 여자였다. 우후라가 벌칸이었다면, T'pring이 죽지 않았다면, 커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녀와 본드를 맺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은 결국 0%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내려가야 할 이유가 있나?"
"스스로 생각해 보시죠."
"난 그 방식이 편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커크가 종종 스팍을 대하던 방식이었다. 편리성을 들어 표현하긴 했지만 분명하게는 껄끄러운 방법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는 속시원히 말해주는 법이 없었다. 그는 스팍이 스스로 깨닫기를 원했다. 그리고 보통은 감정적인 문제거나, 인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스팍은 그런 과정을 거쳐 이번에도 그런 종류의 것이리라 짐작했다.
"이젠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동의할 수 없군. 적어도 당신과 교제할 때는 그런 일이 현저히 적었어."
이번에는 우후라가 눈꼬리를 올릴 차례였다. 그녀가 아무리 지성과 이성으로 철벽을 두른 여성이라 해도 기분까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벌칸이 아니었다.
"비교대상이 되는 건 기분 나쁘네요."
"객관적인 사실을 비교한 거야. 경험적 사실은 절대적이지."
"감정은 상대적이에요."
"내가 현재의 연인인 제임스와 과거의 연인인 우후라 당신을 비교한 것이 당신에게 감정적인 불쾌감을 일으켰다면, 그것에 대해 사과하지."
우후라가 말을 잃고 입을 다문 사이에, 스팍이 덧붙였다.
"한 가지. 혹시 나와 교제한 경험이 함교에서 일하는데 심리적인 방해가 되는지 알아두고 싶군. 그건 곤란해."
거기까지 들었을 때 체콥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기요!!! 조는-, 조는 내료가도 될까요? 내려갈게요."
"아냐. 괜찮아. 그냥 있어. 체콥."
"이 이상 함교에 빈 자리가 생기는 건 비상 상황에 대한 위험성을 13.5%포인트 더 증가시켜. 자리에 있기를 권하지. 소위."
"네......."
체콥은 벌떡 일어난 것이 무색하게 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자신의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위험이 더 큰 것 같다고 생각하며, 체콥은 커뮤니케이터를 들었다. 그 똑똑한 머리로도 이 자리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술루....... 저 좀 구해주세요......."
-
맥코이가 커크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다. 양 팔에 우주 각계의 미녀 아가씨들을 끼고 그녀들이 흘려주는 술을 받아마시는 모습에 맥코이는 혀를 찼다.
"저것도 함장이라고......."
"어어! 왔어!! 야아아-, 이것봐. 내 친구 투덜쟁이 왔다. 술 따라줘. 얼른!"
"워, 됐어. 짐. 안 돌아갈 거야?"
"며칠 걸릴건데 뭘. 나도 보는 눈 없이 오랜만에 좀 놀아보자......."
새끼, 스팍이 신경 안 쓴다고 살판 났구만. 맥코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바에 앉아 잔을 홀짝였다. 저런 꼴을 보아하니 짐 커크는 결혼을 해도 오래 못 갈 위인이었다. 자신과는 다른 이유로 말이다. 새삼 허전한 왼손 약지를 보자 맥코이도 술이 고파졌다. 조안나, 우리 조는 한 8살쯤 되었겠지. 학교는 잘 다니려나. 파멜라가 알아서 잘 하겠지.
서러운 속에 독한 술을 몇 잔 들이붓고 나서야 커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옆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옆구리에는 눈이 돌아가게 예쁜 아가씨를 끼고 있었다. 그녀도 거하게 취했는지 계속 커크의 얼굴과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허이구. 자알 한다."
맥코이의 한숨 섞인 소감에 커크가 비식 웃었다. 그도 여자의 허리를 쓸고 있었다.
"나 오늘 안 들어갈래."
"스팍이 찾을텐데?"
"찾으라 그래."
"자식아. 그럼 나 혼자 가라고?"
"가. 가버려. 아니면 친구 소개해줘?"
커크가 뒤를 향해 무어라고 소리쳤다. 기가 막히게 예쁜 검은 머리의 여자가 비틀거리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젠장. 필요없어. 간다."
"가든지."
맥코이는 남은 술을 한 모금에 털어넣고 일어섰다. 그 와중에 맥코이의 근처까지 다가온 여자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받아주었다. 고마워요, 그녀의 웅얼거림에 맥코이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시시피 주립 의대 퀸카였던 파멜라와 아주 닮은 얼굴이었다.
"나는......."
무어라 궁색한 말을 내뱉으려던 맥코이의 입이 여자의 입술에 덮혔다. 맥코이는 눈을 깜빡였다. 커크가 그 모습을 보고 낄낄거렸다. 그랬다. 커크는 파멜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 너머로 커크가 웃는 모습을 보자 맥코이는 커크가 꾸민 것임을 알아차렸다.
"너-."
"당신 잘 생겼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고향별에서 기다리는 부인이라도 있나?"
"......."
맥코이는 대답없이 커크를 노려보았다. 그는 이미 등을 보이고 멀어지는 중이었다.
그가 다시 커크를 본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
"우주정거장 아가씨들을 창녀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거짓말."
여자가 커크의 코를 부드럽게 밀었다. 커크는 흐흥거리며 그 손에 코를 비볐다.
"이렇게 예쁜걸. 내 눈의 별, 내 품의 꽃."
"흥. 뱃사람들은 다 똑같아. 귀에 달콤한 파도 소리를 들려주고선 다시 훌쩍 떠나 버리지."
그 미모와 매력이 그를 자극한다. 더불어 잘생긴 자신과 여러모로 잘 맞으리라 짐작하곤 하는데, 대부분은 그 생각이 맞다. 정말 답이 없는, 예를 들어 성격이 개차반이거나 골이 비었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더라도, 어쨌든 사랑을 나누는 데는 그리 많은 요소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 없다.
차가운 여자:
자신을 냉대하는 이성일수록 그는 앞서와는 다른 종류의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이를테면 '정복'이나 '도전' 욕구라고 정의될 수 있다. 자신을 무시하는 상대에게 그는 더 큰 성적 자극과 때려눕히고픈 심리를 느끼곤 했다. 그것이 그가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이유였다. 그 차가움이 뜨거운 차가움으로 돌아올 때까지.
다가오는 여자:
어느 모로 보나 최상의 조건이다. 자신의 잘난 용모나 목소리, 성적인 매력이 어필하는 바를 스스로도 잘 알기에 그런 이성에게는 당당하게 마주 다가간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고 나면, 뭐,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됐다. 이게 다다.
아니.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제임스 커크가 사랑하는 이유는 별 거 없다. '사랑받기 위해서' 그는 사랑한다. '사랑'을 건네면 '사랑'이 돌아오니까. 그 때문에 그는 몇 번 노력해보고 자신이 준 만큼 사랑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만 둔다. 그가 포기하지 않을 때는 확신이 있을 때 뿐이다. 그의 눈빛과 행동, 언사에서 느껴지는 작은 사랑의 흔적이라도 있다면 그는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적당한' 기준이 없다. 대신 어릴 때부터 발달시켜온 사랑에 대한 '센서'만큼은 탁월하다. 그것은 일종의 감각이며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후천적 본능이다. 그의 이런 발달에는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만) 어머니의 방임과 삼촌의 학대가 큰 역할을 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에서 애정과 원망을 동시에 발견하며, 아버지의 부재를 피부로 경험하고, 자신의 가치를 결정짓는 온갖 종류의 욕설을 들은 다음에, 제임스 커크는 기대도 미련도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자신의 외모가 사랑을 '구걸'하는 데 꽤 쓸모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부터 그는 그것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든 여자를 즐겁게 해 주면, 여자는 자신을 마음껏 사랑해주었다. 어머니와는 달랐다. 제임스 커크는 점차 사랑받는 법을 배워갔다. 여자들은 단순했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에는 모두가 똑같았다. 그는 그녀를 만족시키고, 그녀는 그를 만족시켰다. win-win이었다.
쾌락, 자극, 사랑, 기쁨, 행복.
청년 제임스 커크의 인생은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쾌한 척 농담을 던지는 법도 배웠고, 목표한 여자를 넘어뜨리기 위해 강한 척 하는 법도 배웠다. 가끔은 임자 있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진짜로 강해져야 할 필요도 있었다. 상대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거나 행동에서 심리를 짐작하는 일은 장난 수준도 되지 않았다. 제임스 커크는 그렇게 예리해졌고, 똑똑해졌고, 강해졌고, 사랑스러워졌다.
그 모든 행동과 말이 전부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해도,
커크는 후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맥코이와 자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맥코이는 서른 세 살의 애 딸린 유부남이었고 (동시에 이혼한 싱글이었지만) 그 때까지 남자와는 한 번도 자본 적 없는 스트레이트였다. 물론 스트레이트였던 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젊은 자신이 더 적응하기 쉬울 거란 이유에서 커크는 순순히 응낙했다.
하지만 커크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금세 깨달았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맥코이가 젤을 꺼내고 있었다. 그게 뭐야? 라는 질문에 맥코이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엄마의 마음."
무슨 개소리냐고 물었지만 신통한 반응은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맥코이는 정말로 커크를 위해서 수많은 책과 자료를 뒤졌고, 완벽주의라는 자신의 성향답게 모든 준비를 해온 상태였다. 그것을 커크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
아마도, 맥코이가 자신의 뒤에 손가락을 집어넣었을 때.
"자, 잠깐만! 나 이거 적응 안되는데...!"
"참아."
이제까지 맛본 적 없는 미묘한 기분이었다. 빨아들여질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쾌감. 이질적인 것을 몸 안에 받아들이는 감각. 커크는 가려울 정도로 근질거리는 느낌에 뒤로 물러났다. 갑작스레 겁이 났다.
"보... 본즈. 나, 잠깐, 잠깐, 마음의 준비가."
"진정해. 아들."
"어, 엄마. 이거 생각보다 이상-."
커크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를 진정시키던 맥코이가 다시금 그를 찌른 탓이었다. 커크가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몸이 굳어 잘 되지 않았다. 맥코이는 한 손으로 그런 커크를 쓰다듬기도 하고, 토닥여 주기도 했다.
"가만히 있어, 가만히."
"흐으......."
커크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냈다.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원. 맥코이는 속으로 혀를 차며 그곳을 문질렀다. 부드러운 젤 덕분에 커크의 뒤를 풀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맥코이는 잠시 후 손가락 하나를 더했다. 바로 반응이 왔다.
"아으으.... 뭐, 야...."
"젠장, 앓는 소리 좀 그만해. 이렇게 해둬야 안전하대."
"안전이고 자시고...."
커크가 힘겹게 입을 다물자 맥코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벌써 이 정도로 서는 거야?
"빌어먹을.... 야, 진짜 기분 이상해."
"아무렴."
이상하기도 하겠지. 맥코이가 우물거렸다. 그는 사실 걱정하고 있었다. 이혼한 이후로 남과 관계를 맺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혼자서 해결해오곤 했기에 커크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그닥 없었다. 하지만 비록 남자이고, 빌어먹을 애새끼 같은 커크일지언정,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역으로 자신이 뒤를 내줘야 할 터였다. 그건 정말이지 두려웠다. 보통의 남자에게 가장 무서운 건 그런 거였다.
"아흑...!"
생각없이 손가락을 찔러넣다가 커크의 신음에 맥코이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 소리를 듣자 조금 자신이 생겼다.
"짐. 네가 도와줄 게 좀 있는데."
"..말해..."
맥코이의 요청을 받은 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커크는 맥코이의 것을 잡고 비비기 시작했다. 맥코이는 오랫만에 맞이하는 그 아찔한 감각에 잠깐 탄식을 뱉었다. 그 모습을 본 커크가 아예 자신의 것과 맥코이의 것을 함께 비벼댔다. 차츰 그들의 사이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아...!"
누구의 것인지 모를 감탄사에 뒤이어, 맥코이가 커크의 팔을 붙잡아 멈췄다.
"기다려."
"응??"
"젠장, 기다리라고...!"
커크가 왜? 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맥코이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의 눈을 피했다. '중년 남성 중 절반, 발기 부전으로 고통...' 이라는 헤드라인이 떠올랐다. 맥코이는 무척이나 억울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남자에겐 안 서는 건가? 어쩌지? 커크는 벌써.......
"본즈."
커크가 몸을 기울여 왔다. 맥코이는 흠칫하며 그를 안았다. 커크의 뜨거운 숨이 목덜미에 훅 끼쳐왔다. 맞댄 가슴도 무척이나 뜨거웠다. 몸으로 따지자면, 커크의 몸이 더 근육으로 탄탄하게 다져져 있어서 맥코이는 자신이 더욱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커크와 자신은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만 두자. 못하겠다. 맥코이가 커크를 밀어내려고 할 때였다.
"윽! 뭐해?!"
커크가 이를 세워 맥코이의 목을 물었다. 깜짝 놀란 그의 귀에 대고 커크가 웅얼거렸다.
"예열."
맥코이가 대답할 새도 없이 커크가 자신이 문 곳을 핥았다. 핥고, 빨고, 자국을 남겼다. "아." 맥코이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 커크의 혀가 고양이처럼 맥코이의 목을 쓸었다. 맥코이의 팔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제임스 커크. 레이디 킬러. 빈말이 아니었다. 맥코이는 왜 많은 여자들이 커크에게 열광했는지 알 것 같았다.
커크는 맥코이의 가슴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반짝이는 길을 만들며 내려가던 그의 혀는 맥코이의 아랫배에서 한참을 머물렀고 그곳에서는 상당히 거친 키스 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맥코이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맥코이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커크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남자랑은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개를 숙였다. 맥코이의 것이 눈앞에 있었다. 커크는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핥았다.
"아...!" 반응이 있었다. 커크는 그것을 입에 집어넣고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맥코이의 신음 소리가 커졌다. 커크의 이가 스칠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떨어지는 것처럼 아찔했다. 맥코이는 커크의 머리칼을 붙잡았다. 더, 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커크는 입 속에서 열심히 혀를 놀리고 밖에서는 맥코이의 것을 비벼주었다. 맥코이가 부르르 떨었다. 충분했다. 넘치도록 충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맥코이가 커크의 머리를 잡아 떼어냈다.
"하아, 아......."
커크가 물기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자신도 처음 하는 일을 해서인지 호흡을 정돈할 수가 없었다. 맥코이는 그 모습이 더없이 유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그는 한숨쉬듯 입을 열었다.
"다리 벌려."
"으, 으응?"
맥코이는 한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거칠게 커크의 다리를 열었다. 침대 헤드에 기댄 커크가 어색하게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커크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맥코이가 다가갔다.
"무섭냐, 우리 아들?"
커크는 머뭇거렸지만 단호하게 도리질을 했다. 그리고 맥코이에게 팔을 뻗었다.
"엄마아."
"오냐."
커크를 안아올린 맥코이가 자신의 위에 그를 앉혔다. 그 순간 커크는 난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고통과 쾌감에 맥코이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몸이 꿰뚫리는 기분이었다. 그의 손톱이 살을 파고들자 맥코이는 더 세게 커크에게 들어갔다.
"아아아...!"
커크가 남자치고는 매력적인 교성을 내뱉었다. 게다가 맥코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를 끌어당기고, 빨아들였다. 그 조여드는 힘에 맥코이는 홀릴 것 같았다. 입으로 가쁜 숨을 내쉬듯이 아랫입도 벅찬 호흡을 시작했다. 커크는 제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그 쾌감에 쾌감을 더했다. 맥코이 또한 그와 함께 허리를 쳐댔다.
"흐, 아흐, 으으, 어, 어엄, 마아, 아흣...!"
"아아...!!"
두 사람의 신음과, 더운 공기와, 찔꺽거리는 소리,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 침대 헤드와 침대가 들썩이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찼다. 그 이상의 쾌락은 없었다.
"어, 엄, 마아...!"
커크가 엄마를 부를 때마다 맥코이는 다 큰 자식같은 커크를 범한다는 죄책감에, 그리고 그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부른다는 질투심에, 더 강하게 그에게 돌진했다. 커크가 맥코이의 등을 할퀴었지만 맥코이는 멈추지 않았다. 나쁜 아이에게는 벌을 주어야지. 종국에는 지친 커크가 그의 앞에서 부르르 떨며 속삭였다.
"아, 아아, 자, 잘못, 했어요..."
"우리 아가. 뭘, 응? 뭘, 잘못했지?"
"어, 엄마... 엄마, 미워, 했어......"
맥코이가 인상을 쓰고 허리를 쳐올렸다. 커크는 기쁨과 고통이 섞인 비명을 질렀다. 자괴감 섞인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 말에 맥코이는 남아있는 힘을 다했고, 결국 커크의 안에 사정했다. 이혼 이후 쌓였던 해묵은 감정들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기억의 잔재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이젠 끝났다는 듯 맥코이의 움직임이 멈추자 커크가 헐떡거리며 늘어졌다. 그는 거진 엉엉 울고 있었다. 맥코이는 얼룩진 커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얼굴조차 사랑스러워서, 눈물을 닦아주고 싶지 않았다.
한편 커크는 절정의 순간에 토해놓은 고백이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도 잊어버리도록 묻어둔 속마음들이었다. 원망, 분노, 그리고 포기.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비어 있기에 채우기를 갈망했다. 사랑을 흉내내는 수많은 다른 것들로. 그것은 마치 깊은 우물에 한 바가지씩 물을 떠 넣는 것 같았다. 물론 그도 우물이 그것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은 영영 말라 있을 터였다.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고개 들어봐."
커크가 들은 척도 않자 맥코이가 억지로 그의 턱을 잡아 올렸다.
"......."
그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단단히 깨물고 있었다. 커크는 팔을 들어 슥슥,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나, 하윽. 괜찮아."
"웃기시네."
"진짜로......."
괜찮다던 커크는 맥코이가 움직이자마자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맥코이가 웃으며 비꼬았다.
"어디가 괜찮은데?"
커크는 대답하지 못했다.
맥코이가 커크의 엉덩이를 잡아 끌어당겼다. 커크는 다시 헐떡이며 맥코이의 팔을 세게 쥐었다.
"아...!"
"아파?"
"아, 아니, 흐으, 아니야..."
언제나 자신을 고생시키던 커크가 연약하고 깊숙한 곳을 점령당하고 약해진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요놈, 맛 좀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