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R(15세)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키스 주의
한마디: 드디어 삼각관계가 시작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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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뜩 정신이 들었다. 커크는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쿼터가 온통 어두웠다. 내가 언제 불을 껐던가? 아리송했다. 누워있던 커크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옆에 선 누군가가 그를 붙잡아 다시 눕혔다.
"본즈?"
커크가 물었지만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커크는 문득 온몸을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눈을 깜빡였다. 설마, 또 악몽이야? 그 잠깐 사이에 또 잠들어서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지독하다.
커크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극한 긴장 때문에 지친 몸이 금방 잠들었을 테고, 또다시 악몽이 시작된 것일 터였다. 커크는 몰려오는 피곤과 절망감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제 좀 그만둬...."
그림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커크의 손목을 잡았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것이 보였다. 커크는 그 순간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고통에 놀라 신음을 뱉었다.
그때의 악몽과 똑같았다. 여러날의 악몽과 동일했다. 다시 회복되지 않는 자신의 몸을 확인하고, 자신을 유린하면서, 엔터프라이즈를 끝으로 몰아가는 꿈. 자신의 크루가 한 명 한 명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꿈. 칸은 정말이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에게 악몽을 선사했던 것이었다.
커크는 그에게 손을 잡힌 채 다시 중얼거렸다.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만둬...."
"무엇을?"
"이런 것. 모든 것. 뭐든지 할게.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서 나가버려...."
칸이 그의 손을 내려놓았다. 커크는 잠깐 안도하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꿈들은 모두 그에게 고문과 같았다.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말을 늘어놓는 것 뿐이었다. 반항을 해도 애원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무자비한 칸 앞에서, 커크는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보는 게 꿈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 꿈은 모든 것이 파괴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기에.
"버티기 힘들어.... 제발."
"제임스 커크."
"제발."
칸이 손을 뻗었다. 커크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그 손은 놀랍게도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내 가족과 같아. 나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내 피로 살아가고 있지. 그리고 이젠 나와 동일하게 우월해. 내가 널 아끼지 않을 이유가 있나?"
"우으......."
의외의 말에 커크가 말을 멈췄다. 이건 다른 종류의 악몽인가? '가족'이라고? 칸이 다시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난 널 파괴하지 않아. 대신 하등한 것들을 말살하지."
안돼, 커크가 탄식하듯 토해냈다. 결국은 변하지 않았다. 결과는 모두의 죽음이었다. 견딜 수 없었던 커크는 몸을 일으켜 칸의 손에 매달렸다. 그의 손이 구세주라도 되는 것마냥, 붙들고 애원했다.
"죽이지 마. 아무도. 제발, 제발......."
다시 울음이 터져나왔다. 커크는 정말이지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꿈이라 해도 반복된 실패와 절망과 슬픔은 자신을 심적으로 나약하게 만들었고, 절벽의 끝으로 몰아갔다. 커크는 자신이 어린아이와 같다고 느꼈다: 무력하고 무능했다. 커크는 칸의 손이 자신을 뿌리치는 것을 느끼고 다시금 절망했다. 그는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정말 뭐라도 할 수 있었다.
"쉬- 울지 마."
다정하면서도 칼날같이 단호한 목소리에 커크는 눈물을 삼켰다. 참으려고 애썼다. 무서웠고, 그저 무서웠다. 다시 칸의 손이 다가오자 커크는 목을 움츠리고 눈을 꽉 감았다. 그는 꿈 속에서 자신이 울 때마다 뺨을 올려붙이곤 했다.
"눈 떠."
그의 말에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그게 설령 꿈이라 해도. 커크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칸의 손은 명백히 자신의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커크는 그의 손이 언제 자신을 그대로 내칠지 몰라 두려워하며 떨었다.
칸이 그의 턱을 잡아 올렸다.
"방금 전에 '뭐든지 한다'고 했나?"
"응, 응. 그러니까 제발...."
"그럼 일어나."
커크가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침대에서 내려와 칸의 앞에 서자 칸이 말을 이었다.
"벗어."
그래, 어차피 다 꿈이니까. 커크는 기계적으로 그의 말에 따랐다. 셔츠를 벗으려는 찰나 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냐. 벗지 마."
커크는 그 말에도 순종했다. 그리고 칸이 손을 뻗어 자신을 끌어안아도 반항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동했을 때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이미 절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이 자신의 셔츠 속으로 들어와 가슴을 지분거려도, 자신의 등을 아프게 긁어내려도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았다.
서서히 달아오른 칸이 자신을 벽으로 밀었다. 그가 자신에게 이를 들이댔을 때, 커크는 그가 자신을 더 쉽게 탐할 수 있도록 목을 기울여주기까지 했다. 커크 또한 칸의 애무에 자극받고 있었다. 이것은 기실 다른 악몽과는 달랐다. 그는 막무가내로 자신을 범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커크는 그런 생각에 도달한 자기 자신에게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뭐지? 이것을 뭐라고 설명하지?
악몽의 결말이 달라졌다는 게 무슨 뜻이지?
"아......."
생각이 끊어진 커크가 결국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칸이 자신의 몸을 부여잡고 목에 잡아먹을듯이 키스를 퍼붓는 것이 좋아서, 그리고 그 좋다는 느낌에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쳐서, 커크는 머리를 털었다.
하지만 안될 건 뭐야?
불쑥 솟아오른 생각에 꼬리를 물고 결정적인 생각이 이어졌다.
어차피 나는 깨끗하지 않잖아(already dirty).
무기력하게 떨어져 있던 커크의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망설이던 손은 더없이 조심스럽게 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칸은 잠깐 놀란 듯 움직이지 않았으나 곧 커크가 인도하는 대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강하게 키스했다. 키스라는 것을 강약으로 따질 수 있다면, 그랬다. 그는 강하고 세게 커크의 입을 침략했다.
그의 혀가 커크의 치열을 훑고 입천장을 내밀하게 긁어냈다. 어쩔 줄 모르고 굳어있는 커크의 혀를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어울려 춤을 추듯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는 입술을 빨아당기고 깨물어서 커크가 멀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칸은 숨이 막힐 때까지 그의 입을 삼키고 또 삼켰다. 한참이나 굶주렸던 것처럼.
틈 없이 밀착된 두 남자의 다리가 끊임없이 서로를 파고들었다. 서서히 달라붙는, 비비는, 피어오르는 그것에 커크는 도무지 아찔함을 견딜 수 없었다. 꿈이라기엔 너무도 강렬했다. 반쯤 이성이 날아간 커크가 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칸은 멈추지 않았다.
종국에는 호흡이 가빠진 커크가 간신히 그를 떼어내고 입을 열었다.
"하아, 칸, 칸......."
"왜."
"이거, 전부 다 꿈이지...?"
칸이 다시 입을 맞춰오며 속삭였다.
"그래. 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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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타클라 교도소로 가는 여정은 지난했다. 범죄자들은 기절한 채 창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엔터프라이즈의 보안 요원 두 명은 심심한지 셔틀 내부를 둘러보다가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스팍은 커크를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잘 참아내고 있었다.
그는 사실 요 며칠 사이에 본딩된 커크로부터 들어오는 감정이나 감각을 조절하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자신이 커크 앞에서 비논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그러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사건이 만약 임무 중에 발생한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따라서 본드의 영향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더라도 (게다가 그는 벌칸이기에 정신적인 측면은 인간인 커크보다 훨씬 예민했다) 적응하거나 무뎌지게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커크로부터 들어오는 감각을 구분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했다. 스팍은 그가 수면할 때마다 절망과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브릿지에서는 다소 즐거웠고, 식사 시간에는 약간 우울했다. 이러한 것들을 절대적인 수치로 계량화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스팍은 현 시점에서 당혹스러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커크로부터 전해지는 느낌은 '쾌감'이었다. 스팍은 낯선 이 감각에 놀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려 했지만, 곧 자신이 임무 중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임무 중에 정신이 팔리는 것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스팍은 인내심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엔터프라이즈에 통신을 보냈다.
"여기는 스팍. 엔터프라이즈, 응답하라."
술루의 답신이 왔다.
"여기는 엔터프라이즈. 말씀하시길."
"현재 순항중이다. 4시간 뒤면 자르타클라 교도소에 도착한다. 함장님은?"
"피로하다며 들어가셨습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습니까, 부함장님?"
"부정한다(Negative). 프로토콜대로 다시 연락하겠다."
통신을 끊고 스팍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수면 상태에 들어간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이 패턴은 뭐지? 스팍은 궁금증을 키워갔다. 커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그는 마뜩찮았다. 엔터프라이즈가 자신을 데리러 오는 것을 기다리느니 최대한 빨리 셔틀을 구해서 돌아가리라. 그리고 확인하리라. 다만 지금은 임무에 집중해야 할 때다.
스팍이 결심하고 마음을 비우려던 찰나에 다시 통신이 들어왔다.
"스팍이다. 그쪽 신원을 밝히도록."
"여기는 맥코이다. 스팍, 혹시 짐한테 연락 받았어?"
커크의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스팍은 다시금 머릿속이 온통 커크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부정한다. 무슨 일이지?"
"임상 테스트를 한 지 딱 148시간이 지났는데, 짐 이 자식이 자기 쿼터에 콕 박혀있겠다고 했거든."
그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세상에! 스팍은 조종간을 힘주어 잡았다. 임상 테스트, 그 결과에 따라 칸의 처리가 결정되는데. 어떻게 그것을 잊고 있을 수가 있지? 스팍은 자기 자신에게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었다.
"닥터. 그에게 가서 확인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그렇잖아도 지금 연락중인-. 어. 메세지가 왔는데......."
뭔가 삐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맥코이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스팍은 그를 다그쳤다.
"뭐라고 왔지?"
"'치료되었다'? 이렇게만 왔는데. 정말 완전히 나은 건가?"
"닥터 맥코이. 직접 가서 확인할 것을 요청한다. 제대로 치료되었다면 당장 칸을 붙잡아 넣어."
"그건 곤란해. 완전히 치료되었는지도 알 수 없고, 만약 이게 주기만 늘어나거나 다른 부작용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칸은 지금 이 상태로 놔둬야 해."
"그러니까 지금 가서 확인할 것을 요청......."
스팍은 그 순간 자신의 정신에 들이닥친 감각에 하마터면 조종간을 놓칠 뻔했다. 그리고 그 감각을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감각과 대조한 스팍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은 약 4주 전 그와 잤을 때 느꼈던 그것과 동일했다. 틀릴 리가 없었다.
"스팍? 상황 발생인가? 무슨 일이야?"
"확인은....... 메세지 발신이 가능한 정도라면 양호한 것으로 판단된다. 함장님께서 다시 연락하실 때까지 기다려. 이곳은 문제없다. 통신을 종료한다."
스팍은 그 순간 이성적으로 그가 성관계 중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될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자신의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성과 감정이 양립했다. 당장에라도 조종간을 돌려 엔터프라이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속으로 강렬한 질문과 생각을 던졌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명백한 증거였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그를 추궁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함장님. 제임스 커크. 짐. 지금 다른 상대와 관계중인 겁니까? 제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제 도움은 거절했으면서? 당신이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건 곤란하군요. 저와 본딩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당신의 쾌감이 제게 전달되어 오는 데다가,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확률이 50%를 넘어가는 현재 질투라는 감정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스팍이 조종간을 부서져라 쥐었다. 이따위 임무에 나오는 게 아니었다. 아니, 커크를 눈에서 떼어놓는 게 아니었다.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R(15세)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앵슷 주의, 근거없는 임무 주의
한마디: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 좀 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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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테스트를 한 후로 6일이 지났다. 그동안 엔터프라이즈는 커크의 주도 하에 성공적으로 한 행성의 탐사를 마쳤고, 한 행성의 멸망을 구했으며, 한 행성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수십억 개의 별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우주는 지구를 닮아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듯이 별 또한 태어나서 죽어갔다. 그 수많은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이 바로 엔터프라이즈의 일이었다.
함장 일지를 기록한 커크는 팔을 쭉 뻗었다. 불안의 씨앗이 슬그머니 싹을 틔우려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최초의 '부활' 이후, 그의 삶은 7일을 주기로 탄생과 죽음을 반복해왔다: 두 번째 기회의 대가는 그만큼 혹독했다. 맥코이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제의 임상 테스트의 결과 또한 7일째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했다. 결과는 기대하지 말라 했다. 커크는 벌칸이 아니었기에 정확한 확률을 계산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는 알았다. 낫거나, 낫지 않거나였다. 낫는다면 칸을 다시 냉동시켜 창고에 처넣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었고, 낫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삶과 다를 바 없이 7일마다의 시한부 삶을 영위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불안했다.
악몽의 그림자가 그의 발밑에서 끈질기게 그를 따라다녔다. 그 꿈이 현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칸이라는 이름의 블랙홀에 삼켜지는 엔터프라이즈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게 커크의 악몽이 끝나지 않은 이유였다. 커크는 여전히 칸의 꿈을 꿨다. 그에게 삼켜지고 짓밟히는 꿈을. 스팍의 따스한 위로도 그것을 물리치진 못했다.
"그러니까 함장님, 점검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0시간만 주셔. 누누히 말했지만 우리 아가씨도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수? 증말 함장님은 말이요, 내가 엔터프라이즈에 있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이 말씀이요. 이 엔티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어? 아주 그냥 막 때 빼고 광 내고 선 보러 나온 아가씨처럼 말끔하게 겉부터 속까지 싸악 정비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우주에 몇이나 있겄어? 그것도 하루 내에? 어? 동의하쥬?"
커크는 스콧의 통신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정말로 이런 소소한 것들이 행복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하루를 빛과 어둠으로 분절하여 살고 있는 듯했다. 혹은, 삶과 죽음으로.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순간에 더 즐겁게 웃고 행복하게 지냈다.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커크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절대적으로 동의해. 그러니까 스카티, 이렇게 기도하라고. 엔진 점검 중에 절체절명의 긴급 구조요청 신호 같은 걸 받지 않도록 말야. 그리고 난 결혼 전야의 신부님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첫날밤 기대해도 돼?"
"말도 마슈. 화끈쌔끈불끈하게 해드릴 테니까."
"마음에 든다. 당장 시작해."
커크는 통신을 종료하고 함장석에 기댔다. 엔터프라이즈는 소행성의 바다 건너 별의 잔해가 뿌려진 우주 한 구석에 정지해 있는 상태였다. 우주는 물리적인 바다가 아닌 탓에 해류가 흐르지 않았지만, 커크는 모든 엔진을 끄고 우주 공간에 두둥실 떠 있는 것이 마치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는 해수욕을 특히 좋아했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고 물 위에 떠 있으면 파도가 자신을 쓰다듬곤 했다. 그들은 친근했고, 다정했다. 언제고 임무 중에 수영을 할 수 있는 행성에 가면 좋겠다. 커크는 막연히 바다를 그렸다.
스팍은 그런 커크를 바라보며 함께 바다에 대한 생각을 했다. 바다, 큰 물, 무질서하고 규정되지 않은 혼란의 집합. 스팍이 나고 자란 벌칸은 혹독하고 뜨거운 행성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광막한 대지와 붉은 사막뿐이어서, 눈씻고 찾아봐도 바다 따위는 없는 세계였다. 스타플릿에 근무하며 지구의 바다에 가볼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스팍은 바다를 봄으로써 얻을 효용이 없다며 거절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스팍은 바다를 보고 싶었다. 커크가 원하는 바다란 어떤 곳일까. 어떤 느낌일까. 그가 느끼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다. 현재로서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날 이후로 스팍과 커크의 관계는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스팍은 아직까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커크가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질투'라는 감정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아 우정보다는 사랑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그것이 '본드'로 인해 증폭된 효과에 불과하다면? 커크는 자신에게 아무런 감정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그 사실을 고한다면? 현재까지 그들이 가졌던 관계조차 어그러질 수 있었다.
위험 부담이 크다. 스팍은 그렇게 판단했다. 더군다나 커크는 칸, 부작용, 연이은 사건으로 인해 예민한 상태였다. 거기에 자신까지 고민거리로 떠넘겨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스팍은 자신이 인간보다 훨씬 인내심이 강하고 절제할 수 있는 벌칸이란 사실에 감사했다.
"함장님."
우후라가 커크를 돌아보았다. 생각 속의 바다를 수영하던 커크가 멍하니 대답했다.
"어?"
"근처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시그널을 잡았습니다."
"꼭 이런 식이지."
점검 시작한지 10분도 안 됐는데 도움 요청? 영화도 이것보단 낫겠다. 투덜거리던 커크가 목소리를 높였다.
"발신자의 소속과 요청 내용은?"
우후라가 집중하는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이런 일에 아주 탁월했고 그만큼 함장의 명령에도 빨리 대답할 수 있었다. 시그널 감도를 조정한 우후라가 확신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르타클라 교도소장으로부터의 요청입니다. 수감 예정인 범죄자들을 호송 중에 셔틀을 탈취당했다고 하는군요."
"셔틀을?"
커크가 턱을 긁적이며 고민했다. 지금 막 점검에 들어간 엔터프라이즈는 모든 엔진이 정지되어 이동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셔틀들은 사출구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었고 더러는 고속 워프가 가능한 신형 셔틀도 있었다.
"셔틀 대 셔틀로 한 판 떠보자고. 호송용이라면 공격과 방어 장비가 충분히 갖춰져 있을 거야. 우리도 페이저 챙겨서 간다. 셔틀 두 대에 백병전 가능한 크루들 세 명씩 선별해서 덱4로 보내. 나도 간다."
커크의 말이 끝나자 스팍이 벌떡 일어서서 다가왔다. 커크가 히죽 웃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잘 지키고 있어."
"아뇨. 제가 갑니다."
"그럼 같이 가."
"안됩니다. 함장님은 지난 임무에서 돌아오신지 8시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스팍의 말에 커크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내 엉덩이가 좀 가볍거든. 아니, 그보다 너 내 운전 솜씨 기억 안나? 기막히게 멋졌잖아!"
"쉬십시오. 함장님의 안위를 고려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때 스팍의 마음을 확인한 탓인지 그의 말이 그렇게 고깝게 들리지는 않았다.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던 그 말의 확장이겠지. 커크는 부끄러운 마음에 괜시리 스팍의 시선을 피하며 턱을 긁었다.
"생각해주니 고맙긴 한데......."
"그럼 대신 제가 가겠습니다."
술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코프는 당황한 눈으로 그를 곁눈질했다. 술루를 따라 일어설까 말까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커크는 체코프가 결심하기 전에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브릿지에 그마저 없으면 굉장히 심심할 터였다.
"물론! 둘이라면 믿을 수 있지. 무사히 다녀와. 다쳐서 오면 징계 먹일거야."
"함장님. 규정상 부상은 징계 항목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내가 5초 전에 신설했어. 행운을 빈다."
터보 리프트 앞에서 커크가 웃으며 그들을 전송했다. 스팍과 술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프트의 문이 닫혔다.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그 임무가 또다른 문제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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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에 있던 간수들이 모두 죽었다고?"
커크의 질문에 스팍이 다시 답했다.
"예. 그래서 현재 다섯 명의 범죄자들을 교도소로 인도할 방법을 모색중입니다."
"니요타, 교도소장으로부터의 답신은?"
"현재 워프 가능한 셔틀이 없다고 합니다."
"사람을 보낼 수 없다는 뜻이네. 뭐 어쩔 수 없지."
터보 리프트가 열리며 술루가 들어왔다. 커크는 한 손에 커뮤니케이터를 든 채로 다른 손을 들어 그에게 인사했다. 그가 타고 나갔던 셔틀의 다른 크루들 또한 모두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커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스팍, 수고스럽겠지만 네가 그 셔틀을 몰아서 교도소까지 가줘야겠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이 셔틀의 워프 최대속도와 거리를 계산했을 때 약 8시간 걸립니다."
"생각보다 머네. 추가로 필요한 건?"
"제가 이 셔틀을 운전해서 가면 다시 엔터프라이즈에 돌아올 방법이 전무합니다."
스팍의 말에 커크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엔터프라이즈가 너를 데리러 갈게."
-
스팍은 교도소에 범죄자들을 인도하러 떠났고, 엔진 점검은 11시간 뒤면 끝날 예정이었다. 커크가 스콧을 닦달한 덕분에 그것도 두 시간이 줄어든 것이었다. 모든 게 평소와 같았고 별다른 문제 없이 흘러갔다. 커크의 7일 주기를 셈하는 시계가 1시간이 남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커크는 그 기다림의 불안함을 견딜 수 없어 자신의 쿼터로 향했다. 거기까지 부득불 쫓아오겠다던 맥코이는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겠다며 메디컬 베이로 쫓아보낸 참이었다. 만약에 대비해 칸의 혈청이 담긴 하이포도 탁상 곁에 놓여 있었다. 낫거나, 낫지 않거나, 그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서 커크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든 준비를 해두면 그 긴장도 조금은 줄어들곤 했다.
"스팍이 같이 있었다면 좋았을걸...."
커크는 침대에 앉아 다리를 끌어당겼다. 자신을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 한 명이나마 있다는 것으로도 기뻤다. 그렇게 말해줬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러니까, 커크도 사실은 스팍이 소중하고 좋았다. 가끔은 말이 안 통하는 게 답답했지만, 마냥 좋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친구였다. 본즈와는 달랐지만, 어쨌든 둘 모두 소중했다. 커크는 그렇게 스팍의 이름을 중얼거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R(15세)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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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스팍이 고민하는 사이 본즈랑 칸이랑 커크랑 쿵짝쿵짝할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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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프라이즈 생활은 어때? 아늑하지?"
연구실에 들어선 제임스 커크가 칸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칸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듯 한껏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커크의 시선은 연구실 끝에 가 닿았다. 칸이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수갑을 늘어뜨리고 있던 칸은 물끄러미 그런 커크를 돌아보았다. 유령과 같은 얼굴에 떠오른 짙은 녹색 눈동자, 그 안에는 심연만이 가득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블랙홀이었다. 그는 짧게 대답하며 일어섰다.
"덕분에."
뒤따라 들어온 맥코이가 다시 문의 보안 장치를 걸었다. 연구실 중앙에는 의자와 링겔 걸이, 이동용 선반 등이 늘어서 있었다. 마치 고문을 위해 마련된 전기의자 같다는 생각을 하며, 커크가 한 걸음을 내딛었다.
"허튼 짓은 생각않는 게 좋을 거야. 밖에 보안 요원들이 줄을 서 있거든."
커크의 허세에도 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의자를 가리키며 짧게 말했다.
"앉아."
빌어먹을. 사형대에 앉는 기분이군. 커크는 목이 졸리는 기분을 느끼며 결국 그의 말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칸이 옆에서 시험관을 꺼내는 사이 맥코이가 다가와 그에게 트라이코더를 들이밀었다. 커크는 이에 눈살을 찌푸렸다.
"본즈. 치워."
"널 위한 거야(For you). 계속 체크해야 돼."
그때 칸이 커크의 팔에 링겔 바늘을 꽂아넣었다. 칸의 손이 닿자 커크는 조그맣게 움찔거렸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그대로 몸을 돌린 칸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이 지금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칸이 안다면,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발톱을 드러내리라.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커크가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잠깐 몸을 돌린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방에서 기록을 위한 PADD를 꺼내고 있었다. 그 순간 칸의 낮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두렵나?"
깜짝 놀란 커크가 팔걸이를 세게 부여잡았다.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지만, 눈에 띄게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커크는 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칸은 용액 샘플을 주사기에 주입하는 중이었다. 착각인가? 혹은 칸이 자신을 놀리는 것인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커크는 이를 악물었다.
다가온 맥코이가 다시 트라이코더를 들이밀었다. 커크는 진정하려고 노력했으나 한 번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난 괜찮다. 난 아무렇지 않다. 난 두렵지 않다....
그때 삐빗, 소리가 났다. 맥코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트라이코더를 살펴보았고 칸이 이를 설명하듯 툭 말을 내뱉었다.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분비가 급증하는군."
"본즈, 꺼!"
"갑자기 왜 이러지?"
"그거 끄라고!"
커크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트라이코더 개새끼! 칸은 거기에 또 설명을 덧붙였다.
"심박수 112. 흥분 상태야."
"설마, 짐?"
급기야 커크는 맥코이에게서 트라이코더를 빼앗아 전원을 꺼버렸다. 맥코이와 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커크는 불편한 침묵 속에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결국 지쳤다는 듯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자신이 그토록 숨기려고 했던, 자신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들키고 말았다. 이제 칸의 손아귀에서 또 놀아나겠지. 내가 아직 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테니까. 커크는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짐."
맥코이가 그답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커크를 불렀다. 커크는 가만히 눈을 떴다. 맥코이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맺힌 걱정이 여실히 보였다. 커크는 그런 눈동자를 보는 것 또한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픈 마음이 절절히 전해져왔기 때문에. 커크는 다시 눈을 감았다. 맥코이가 작게 속삭여왔다.
"괜찮아? 필요한 게 있으면 내게 말해(What can I do for you)."
"진정제."
내가 저놈을 보지 못하고 저놈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순간에서 벗어나게 해줘. 본즈.
"짐. 진정제는 주겠지만....... 일단 저게 널 확실히 치료할 거라는 보장은 없어. 알지?"
"상관없어. 빨리."
"네가 일어났을 때 최대한 빨리 결과를 볼 수 있도록 할게."
커크는 눈을 감은 채 힘없이 손짓했다. 어서, 어서.
결국 맥코이는 커크에게 진정제를 투약했다. 그의 거칠던 호흡이 점점 고르게 변했다. 커크는 금세 의식을 잃고 축 늘어졌다. 맥코이는 그가 앞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의자를 기울여 커크의 몸을 고정했다.
"....... 한숨 자."
맥코이는 긴 숨을 토해내고 몸을 돌렸다. 칸이 무정하게 그런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났다.
"이런 게 즐겁겠지? 네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을 보는 게. 이 악마같은 자식아."
"닥터.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사실 이런 건 즐거운 축에도 들지 않아."
칸이 맑은 핏빛 용액이 담긴 주사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링겔 용액에 주입하려 했다. 맥코이가 그의 수갑을 붙잡아 그 움직임을 막았다. 칸의 무감정한 시선과 맥코이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부딪쳤다.
"그게 짐을 잘못되게 한다면 톡톡히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아-, 닥터. 짐은 분명 나을거야. 장담하지. 그는 강하거든."
그래서 더 무너뜨리는 재미가 있지. 칸은 조소하며 그의 링겔에 붉은 용액을 투입했다. 투명한 물에 잉크가 퍼지듯, 붉은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 색은 마치 순수한 피처럼 붉었다. 온전히 붉게 변한 용액은 이윽고 관을 따라 서서히 커크의 팔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맥코이는 숨을 죽이고 연신 트라이코더를 들여다보았다. 칸은 조용히 커크를 주시했다.
그의 시야 끝에 걸린 커크는 의식없이 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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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은 여전히 눈썹을 세운 채 사렉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우리의 많은 형제와 자매들을 상실한 이후, 생존한 벌칸들도 본드와 링크의 강제 단절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동의합니다. 제게 남아있던 미약한 링크 또한 다수 사라졌습니다."
"그렇다. 더불어 장기간 본딩하지 않았던 네 상태에 나는 우려를 표했었다. 네가 '사랑'이라는 감정과 '본드'를 착각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렉의 말에 스팍이 고개를 삐뚜름히 기울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제 의사를 번복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본딩된 이종의 상대와 함께 업무에 임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드를 끊어내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사렉이 눈썹을 세웠다.
"아들이여. 그것 또한 논리적인 판단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굉장히 감정적이며 비논리적인 인간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도 하나, 제 개인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명확합니다."
"본딩된 상태를 감정으로 착각할 정도라면, 그 착각에도 역시 타당한 이유가 있을 터. 추론 과정에서 빠뜨린 것은 없는가?"
스팍은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본딩된 이후의 자기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본래의 자신과 너무 달랐다. 그것이 '본드' 때문이든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이든 어쨌든,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팍은 그런 것이 불편했다.
커크 또한 그런 자신을 거절하지 않았는가. 그는 분명 자신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부담스럽게 여긴다면 차라리 본딩되기 전의 상태가 더 나았다. 스팍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빠뜨린 변수는 없습니다."
"스팍."
"말씀하십시오."
"너는 그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렉의 말은 스팍의 마음 속에 숨어있던 불씨에 불을 피웠다. 벌칸에게 두려움이라니! 동시에 깊숙한 의표를 찔린 기분이었다. 스팍은 방어적으로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근거없는 추론은 삼가주십시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이만 통신을 종료하겠습니다."
"스팍. 그렇다면 스스로 대답하라. 왜 그와 마인드멜드를 했는가? 왜 그와 관계를 했는가? 서로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면, 어째서 네 주관대로 본드를 끊으려 하는가?"
스팍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렉은 그것 보라는 듯 그를 빤히 보며 인사를 건넸다.
"통신을 종료하겠다. 장수와 번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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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는 눈을 번쩍 떴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은 것은 자신에게 진정제를 주겠다던 맥코이의 목소리였다. 자신은 여전히 칸의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덜컥 불안해진 커크는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본즈! 레너드 맥코이! 어디 있어? 본즈!! 장난치지 말고 나와!"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의자 뒤로 넘어간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게 뭐야...!"
커크는 그제야 자신의 손목에 구속구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칸이 하고 있던 그것이었다. 커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게 뭐 빌어먹을...?!"
"'본즈'? 닥터를 부르는 건가?"
공포가 번개처럼 커크의 등줄기를 훑어내렸다. 자신의 등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칸의 목소리가 그렇게 섬짓하게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커크는 덜덜 떨리는 이를 악물며 간신히 말했다. 보이지 않으니 두려움이 더했다.
"본즈 어딨어."
"그 떽떽거리는 닥터라면 급한 환자를 돌보러 갔지."
본즈가 날 두고 갔을 리 없어. 커크는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 급한 환자라면, 갈 수도 있겠지... 목숨이 달렸다든가. 본즈는 대단하신 의사니까. 커크는 걱정을 덜어내려 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그 순간 뒤에서 다가온 칸의 손이 커크의 목을 감쌌다. 깜짝 놀란 커크는 헉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칸은 점점 팔을 뻗어 커크를 뒤에서 안았다. 낯익고 불쾌한 그 느낌에 커크는 미칠 것 같았다. 그의 입김이 뒤통수에서 느껴질 때쯤 긴장은 극도에 달했다. 그리고 마침내 칸의 입술이 커크의 귀와 부딪혔다. 그는 엄청난 비밀이라도 말해주듯이 낮게 속삭였다.
"자기 목뼈를 스스로 맞춰야 했거든."
"!! 칸...!!"
커크가 얼굴을 구기며 몸부림쳤다. 칸은 그대로 의자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의자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던 커크는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뚜벅뚜벅 걸어온 칸은 그대로 커크의 팔을 밟았다.
그가 비명소리를 내지 않자, 칸은 그의 팔을 더 세게 짓밟았다. 커크는 잇가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았다. 대신 띄엄띄엄 욕설을 내뱉었다.
"죽여...버릴 거야.... 개자식."
칸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를 의자에서 빼내어 바닥에 쓰러뜨렸다. 뒤통수가 얼얼했지만 커크는 칸을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칸은 그의 위에 올라탄 채 한 손으로는 그의 수갑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커크의 뺨을 어루만졌다.
"나쁜 소식 하나에 좋은 소식 하나. 짐. 마음껏 기뻐해도 좋아. 네 병이 나았더군."
"닥쳐."
"무슨 의미인지 아직도 모르겠나?"
칸이 그대로 손톱을 세워 그의 턱과 목을 긁어내렸다. 붉은 피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지만 회복되는 기미는 없었다. 커크는 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미약하게 신음했다. 그제야 모든 것이 피부에 확 와 닿았다.
"다시 내가 널 인질로 가졌다는 의미야."
"그냥 날 죽여......."
"그건 안돼."
칸이 다시 커크의 얼굴을 쓸었다. 그의 입술에, 눈가에, 볼에 붉은 길이 생겼다. 눈물로도 그것을 지우진 못했다.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R(15세)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스릴 주의
한마디: 난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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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가 브릿지에 도착했을 때, 스팍은 평소처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커크는 아무렇지않게 그를 한 번 봐준 후 함장석에 털썩 앉아 그동안의 보고를 받았다. 스타플릿으로부터의 별다른 지시는 없었다. 두 남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를 대했다.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이유에서 그런 것에 능했다: 스팍은 커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커크는 스팍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루하다시피 긴 항해가 이어졌다. 체코프가 하품을 하다가 PADD를 떨어뜨려 큰 소리가 난 것이 유일한 소란이었다. 그는 서둘러 PADD를 줍고 술루의 눈치를 살폈다. 술루는 운항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거기에 당연히 뒤따라야 할 커크의 놀림이 없자, 넌지시 뒤를 본 체코프는 눈을 크게 떴다.
커크가 턱을 괸 채 졸고 있었다.
체코프는 술루를 찔렀다. 그리고 눈짓으로 커크를 가리켰다. 술루는 그를 보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많이 피곤하신가봐.
술루의 입모양에 체코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커크는 이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었다. 또 자신을 희생해 크루들의 목숨과 지구를 구한 영웅이었고,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친우였다. 더욱이 칸 등의 일로 고생하면서도 자기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엔터프라이즈 내에서 이 제임스 커크를 친애하고 아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정작 커크 본인은 그것을 잘 몰랐지만.
"좀 이쓰묜 교대인데요. 깨워드료야 하지 않으까요?"
체코프가 속삭였다. 이에 술루가 그를 부를까 말까 망설이던 사이 스팍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히익."
체코프가 자세를 바로했다. 술루 또한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함장님은 걱정할 필요 없겠어."
"네에."
체코프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스팍이 커크 곁에 든든하게 서 있었다.
함장님. 함장님. 몇 번의 부름에 커크가 곧 눈썹을 찡그렸다. 괴로운 표정이었다.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스팍은 그런 커크에게 손을 뻗는 대신 좀더 높은 톤으로 그를 불렀다.
"함장님?"
"아."
번쩍 눈을 뜬 커크가 주변을 확인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를 짚은 그에게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잠깐 잤네.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휴식을 권고합니다. 함장님. 그리고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셔야 합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커크는 손을 저으며 일어났다. 스팍도 교대 시간이라 그를 따라 터보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커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쿼터로 갈 거지?"
스팍이 긍정하자 커크는 선심쓰듯 그의 쿼터가 있는 층의 버튼을 눌러주었다. 약 30초 동안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서로 앞으로 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커크는 스팍 몰래 메디컬 베이에 가려 했고, 스팍은 중요한 일 때문에 뉴벌칸에 연락을 하려 했다. 상대방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었다.
곧 문이 열리고 스팍이 내렸지만, 커크는 내리지 않았다.
"난 식당 들렀다 갈거야."
스팍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커크가 말을 던졌다. 그리고 문을 닫아버렸다. 스팍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의 머릿속에서 질문거리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쿼터에 들어선 스팍은 PADD를 조작했고 뉴벌칸과 통신이 연결되었다. 잠깐의 연결음 후에 모니터 너머에 나타난 것은 또다른 벌칸, 사렉이었다.
"아버지."
"스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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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왔어? 안 피곤해?"
커크가 메디컬 베이에 들어서자 맥코이가 달려나왔다.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 나 때문에 주름만 늘었네. 너도 얼른 편해져야 할 텐데. 커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안 피곤해. 빨리 처리하자. 그놈의 임상실험인지 뭔지."
"하기 전에 몇 가지 점검 좀 할 거야. 스팍은? 오고 있어?"
맥코이의 질문에 커크가 못 들은 척 목을 긁었다. 아, 실험 끝나면 샤워해야겠다. 어쩐지 덥네. 누가 봐도 대답을 회피하는 그 모습에 맥코이가 커크의 어깨를 잡았다.
"짐 커크. 임마. 스팍한테 말했어, 안했어?"
"말하는 거 까먹었어. 그런데 말했어도 안왔을걸."
"이 머저리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하려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커크를 본 맥코이는 결국 그의 등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커크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 주제에 얼굴을 찡그리며 화내는 시늉을 했다. 하여간 말 안 듣는데도 탁월한 함장이었다. 맥코이가 혀를 찼다. 그리고 그에 대한 커크의 답변은 더 가관이었다.
"'무슨 일 생기면'? 스팍이 내 대신 함선을 이끌어야지."
"안돼. 못 들어가. 너희 둘 다 시프트 없을 때로 다시 시간 잡아."
기가 차서 맥코이는 아예 PADD를 집어넣어 버렸다. 그리고 준비해두었던 하이포와 약품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커크는 눈을 크게 뜨고 맥코이에게 매달렸다. 낮에 있던 일만 해도 쪽팔려 죽겠는데, 다시 스팍을 부른다고? 칸이 내게 어떻게 모욕을 주고 창피하게 만들지 감도 안 오는데? 죽어도 스팍은 안돼!
맥코이의 얼굴이 슬슬 풀리자, 이때라는 듯 커크가 구차하게 덧붙였다. 결국 언제나처럼 맥코이는 커크에게 졌다.
"...지금 상태부터 점검할 거야. 솔직히 대답해. 요즘 몸 상태에 변화는 없어?"
"아무것도. 멀쩡해."
"수면 문제는?"
"꿈도 안 꾸고 잘 자."
"식사는?"
"제시간에 꼬박꼬박. 엄마. 이제 가봐도 돼요?"
어깨를 으쓱 들어올린 그는 몸을 돌렸다. 맥코이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안돼. 마지막으로, 성 문제는?"
"트라우마로 내가 발기부전이라도 될까봐 걱정해주는 거야? 친절한 의사선생님이네. 문제 없어. 아까도-."
"됐다 됐어. 그럼 가자."
맥코이가 하이포와 PADD를 가방에 넣었다. 칸의 연구실은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보안이 이중 삼중으로 걸려 있는 그의 연구실 문 앞에서, 커크는 심호흡을 하며 침을 삼켰다. 벌써부터 목이 탔다. 그런 그를 맥코이가 걱정어린 눈으로 보았다. 그는 손을 뻗어 커크의 등을 가만히 두들겨 주었다. 커크가 움찔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진짜 괜찮지?"
"진짜 괜찮아."
CMO의 권한으로 맥코이가 연구실 잠금을 해제했다. 잠금 장치의 붉은 빛이 푸른 빛으로 바뀌었고,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커크는 두 눈에 힘을 주었다. 그가 맞서 싸울 상대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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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확인하겠다. '사랑'에 대해서 말인가?"
"긍정합니다(Positive). 당신께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숙련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 경험 또한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사료되기에 조언을 청합니다."
"스팍. 지금 네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교제 상대가 아닌 진정한 상대를 지칭한다. 내 추론이 맞는가?"
아버지와 아들, 사렉과 스팍. 두 벌칸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대화는 급속도로 무게를 더해갔다.
"긍정합니다. 논리적인 과정을 거쳐 나온 결론입니다."
"내게서 어떤 조언을 원하는가. 아들이여."
스팍이 뒷짐을 진 채 목을 꼿꼿이 세웠다.
"상대로부터 저의 상태와 동일한 '사랑'을 획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렉이 벌칸 특유의 날선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문했다.
"'사랑'을 '획득'한다고 말했는가?"
"예."
"'네 상태와 동일한'?"
"예."
스팍의 흔들림 없는 태도에 사렉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스팍. 몇 가지를 더 확실히 할 필요성이 있다. 네가 말하는 상대란 인간인가?"
"긍정합니다."
"그녀를 시각적으로 볼 때 '사랑'의 감정이 발생하는가?"
스팍이 그의 말을 정정했다.
"'그'입니다."
"음."
사렉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틈을 타 스팍이 덧붙였다.
"시각적으로 볼 때뿐 아니라 목소리를 들어도 그의 모습이 뇌내에서 재현되고, 그의 부재시에도 제 신체상의 문제가 아닌 심리적인 통증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의 증상이 아닙니까?"
"스팍."
"예."
"그와 멜드했는가?"
"긍정합니다."
갑자기 마인드멜드라니? 잠깐 의아한 표정을 떠올리며 스팍이 대답했다. 사렉은 깊은 한숨을 내쉬듯 한 단어를 내뱉었다.
"'본딩' 가능성을 계산해보기 바란다."
급작스레 찬물을 맞은듯 스팍의 눈썹 끝이 올라갔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제대로 해석되었다.
'잔뜩 울상이 되어 키보드를 두들기는 체코프와 난처하게 웃는 술루, 눈가를 휘면서 소리없이 웃는 우후라까지,자신의 눈으로 보듯선명하게 보였다.'
ㅡ스팍이 본 것은 커크의 시선이었다.
'그는 현재 욕구를 충족하고 싶지만, 어떠한 이유에선가 그것을 스스로 제어하고 있었다. 스팍은자기도 모르게손을 뻗어 커크의 턱을 가볍게 밀어올렸다.'
ㅡ스팍은 커크의 욕구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본딩이라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연결로서 시각과 청각 등을 포함한 감각이 일부 공유되는 상태였다. 이것은 벌칸들 간에 주로 맺고 있는 링크에 비해서 더 정도가 강했는데, 바로 이러한 텔레파시적 능력 덕분에 벌칸은 인간들과 달리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데 긴 말이 필요치 않았다. 상대방이 느끼는 것을 본인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었다. 특히 본딩이 된 상대방과는 감정의 양방향적 교류가 일어나므로 필연적으로 커크의 변화무쌍한 감정이 스팍에게도 흘러왔을 터였다. 따라서 3주간 경험했던 이상 지각과 이성적이지 않았던 자신의 행동이 모두 설명되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커크에게 가졌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본딩' 상태에 의한 것이었던가?
스팍의 눈동자에서 미미한 혼란이 일어났다. 사렉은 자신의 아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너와 유아기 본드를 맺었던 T'pring은 사망했고, 이후 너는 교제하던 인간 여성과도 본드를 맺지 않았다. 네 경험과 기간에 비추어 볼 때 성인이 된 이후의 본드는 처음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본딩 당시 멜드가 정신적인 성관계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는가?"
"...긍정합니다."
"아직 육체적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면 완전히 본딩되지 않았을 터. 우려할 필요는 없다."
스팍은대답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진하게 우러나오는 메세지에, 사렉은 결국 그에게서 도출될 대답을 예상하면서도 간결하게 물었다.
요약: 엔터프라이즈에 구금된 채로 5년 임무에 함께하는 칸, 그리고 스팍과 커크 사이의 위험한 삼각관계
수위: R(15세)
커플링: 스팍커크, 칸커크, 스팍커크칸(?)
주의: 다크니스 스포주의, 스릴 주의, 앵슷 주의
한마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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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까지 달려갈 여유가 없던 커크는 현재 플로어의 화장실로 향했다. 자신을 붙잡던 스팍이 생각나 자꾸 뒷덜미가 켕겼다. 그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날 경멸했을까? 내가 한심했을까? 끝나지 않았다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속으로 무수한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커크는 아쉬움 짙은 한숨을 뱉으며 찬물로 세수를 했다.
사실은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싶었다. 자신과 본즈처럼, 스팍과도 더 친해지고 싶었다. 함교에서 다른 크루와 낄낄대듯이 스팍도 그 자리에서 소외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다하는 그를 이끌고 모니터실로 갔었다. 뭐,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걸 보면서 친해지곤 하니까.
고맙고 미안했다. 스팍은, 스팍에게는. 예전의 커크였다면 그가 뭐든 간에 원나잇을 즐기고 나서 미련 없이 보냈을 터였다. 하지만 스팍은 달랐다. 그를 그렇게 쉽게 대할 수는 없었다. 왜? 왜일까? 그가 나의 일등 항해사이기 때문에? 몇 번이나 생사고락을 함께했기 때문에?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이기 때문에? 아냐. 그는 본즈와는 달라. 무언가 달라.
커크는 입술을 씹으며 거울을 보았다. 입가에 붉은 피가 맺혔다가, 금방 사라졌다.
스팍은 커크가 달려나간 이유를 나름대로 추리하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칸을 보았기 때문일까? 그 확률은 50%였다. (보았거나, 보지 않았거나) 그 사실과 관계없이 그가 흥분한 것은 명백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성인 남성은 자위를 하거나 성관계를 통해 욕구를 해결하지 않는가? 그것이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면, 일등 항해사가 함장을 돕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제임스 커크의 본래 성미대로 거칠게 처리했다가는 어떤 피해가 날지 몰랐다. 스팍은 그런 위험부담보다는 경험이 있는 자신이 그를 돕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사랑'을 배제하고서도 충분히 가능한 결론이었다.
커크는 화장실에 있었다. 세면대를 붙잡고 서 있는 그의 등을 보며 스팍이 화장실의 문을 닫았다. 그 소리에 커크가 고개를 돌렸다.
"스팍?!"
그는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뭐야? 쫓아왔어?? 속으로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경험하며, 커크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 노력했다.
"어- 화, 화장실 쓰러 온 거지?"
난 다 썼어, 어, 나갈게. 황급히 그를 지나쳐 가려는 커크를 스팍이 막아섰다. 커크는 심장이 덜컥 멈추는 것 같았다.
"왜?"
스팍의 시선을 피하는 자신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한심하고 멍청했다. 이유를 묻는 목소리마저 형편없이 떨렸다. 커크는 자연스럽게 스팍의 오른쪽 가슴에 시선을 두었다. 과학 장교의 뱃지만 뚫어져라 바라볼 참이었다. 아마 계속 보면 정말 뚫릴지도 몰라. 내 눈에서 초강력 빔이 나갈거야. 아마도. 커크는 스팍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함장님. 왜 절 피하십니까?"
"피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왜 절 똑바로 보지 않으십니까?"
그건, 쪽팔리니까.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런 말은 절대 뱉지 못하는 커크였다. 그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스팍의 입을 노려보았다.
"보고 있는데."
"함장님."
자신을 타박하듯 간결한 부름에 커크는 어쩔 수 없이 시선을 조금 더 올렸다. 그리고 스팍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깊고 어두운 흑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정확히는, 3주 전에, 자신의 위에서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어주던 스팍을.
내가 미쳤구나!!!
커크는 다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가라앉았던 흥분에 다시금 불이 지펴지는 기분이었다. 안돼, 안돼, 안돼, 안된다고, 제임스 커크.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스팍은 그의 표정 변화를 온전히 눈에 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욕구를 충족하고 싶지만, 어떠한 이유에선가 그것을 스스로 제어하고 있었다. 스팍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커크의 턱을 가볍게 밀어올렸다. 다시금 둘의 시선이 부딪혔다.
"...스팍."
그러지 마. 커크는 애원하다시피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미약한 부름이 스팍의 마음을 더욱 부채질했다.
"짐."
스팍의 손가락이 커크의 입술을 쓸었다. 아, 놀란 커크가 움찔하며 입을 벌렸다. 인간의 성감대 중 하나는 입술이었고, 벌칸의 성감대 중 하나는 손끝이었다. 다른 벌칸이 이를 보았다면 왜설적인 행동이라고 입을 떡 벌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스팍은 개의치 않았다. 이것은 자신의 함장이자,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을 돕는 일이었다.
커크는 가뜩이나 예민해진 상태에서 스팍의 손이 입술을 어루만지자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다리 사이에서 금방 신호가 왔다. 그는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섰다. 스팍이 무슨 의도로 쫓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그 좋은 머리로 아무런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커크가 한 걸음 물러나자, 스팍이 한 걸음 다가섰다. 커크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오지 마! 제발!!
그의 비명을 우주가 들었는지 때마침 화장실 문에 누군가 노크를 했다. 스팍이 뒤를 돌아보았고, 커크는 이제 살았다, 라는 심정으로 달려나갈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커크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 뭐, 어-??"
스팍이 커크를 붙잡아 칸 안에 밀어넣었다. 딸깍, 하고 걸쇠를 걸자마자 밖에서 화장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커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팍을 보았다. 너무 가까워서 숨이 막혔다. 커크는 다리를 딱 붙이고 자기가 흥분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애썼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용없겠지만. 커크는 당황 속에서 눈을 깜빡였다.
얘가 미쳤나? 발정났나? 폰 파 왔니?
스팍은 커크를 벽에 밀어붙인 채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 소변을 보면서 트림을 하는 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들렸다. 두 남자는 자연스레 숨을 죽였다. 스팍이 밖에 신경을 쓰는 사이 커크는 몰래 손을 뻗어 걸쇠를 풀어내려 했지만, 스팍의 손이 그를 제지했다.
커크는 이제 진짜 울고 싶었다. 나한테 왜 이래? 난 죽어라 참고 있는데!
왜?? 라는 의문이 가득 담긴 얼굴로 커크가 스팍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스팍은 화장실에 들어왔던 크루가 나갈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커크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아서, 커크는 속으로 울분을 삭혀야 했다.
그가 손을 씻고 나간 후에야 대화가 이어질 수 있었다.
"무슨 짓이야 이게?"
커크의 비난에 스팍이 고개를 갸웃하며 외려 반문했다.
"조용히 해결해야 하지 않습니까?"
"젠장, 대체 뭘 해결해??"
"생리적인 욕구 말입니다."
스팍의 시선이 자신의 바지에 가 있는 것을 본 커크는 그대로 스팍의 면상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거든...!"
"예전에는 절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까.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필요 없어...!!"
스팍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걸 듣고 있자니 커크는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졌다. 죽자. 죽어버리자!
"제가 나가면 칸에게 가겠다고 협박하지 않으셨습니까."
"...끙."
기억력 존나 좋네!!! 침음성을 뱉은 커크는 더이상 할말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말했던 걸까. 그래. 그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은 제정신이다. 제정신이라고....... 아마도.
커크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걸 지켜보던 스팍이 입을 다물었다. 커크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팍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날의 일을 통해 (비록 비정상적인 계기를 통해 발생한 일이지만) 스팍은 자신이 커크에 대해 가진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언젠가 커크에게 고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커크가 자신을 피한다면.......
이 사랑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스팍은 커크의 팔에서 손을 뗐다. 이에 놀란 것은 외려 커크였다. 스팍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내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좀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았기에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커크는 어깨를 움츠린 채 그의 눈치를 살폈다.
"제 개인적인 판단에 의거해서 함장님을 함부로 대한 점에 용서를 구합니다."
어? 커크가 입을 벙긋거렸다. 이게 아닌데.
스팍이 걸쇠를 풀어내고 문을 열었다. 그가 걸어나가려 하자, 이번에는 커크가 불안한 얼굴로 스팍을 붙잡았다.
"스팍? 화난 거야?"
커크의 말에 스팍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 여느 때처럼 평온한 목소리였다.
"아뇨(Negative). 화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시계를 흘깃 본 스팍이 말을 이었다.
"다음 시프트까지 10분 남았습니다. 함장님. 조속히 해결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는 커크의 팔을 떼어내고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커크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또 뭔가 잘못한 건가? 내가 화나게 한 거야? 나는 스팍에게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실수한 거야? 커크는 입을 부여잡고 눈썹을 찌푸렸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지난번처럼 날 도우러 왔다고 했지. 그 도움을 받아들였어야 했던 거야...? 스팍을? 스팍이랑 섹스를?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커크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스팍 새끼!! 돕긴 개뿔 뭘 도와!!